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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32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0 22:55:23
조회 228 추천 1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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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안 돼.”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의 인영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또각, 또각.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공허를 걷어내듯이 넓게 퍼졌다. 


  “오랜만이야, 안나.”


  “데이지, 여기는 대체 어떻게…”


  나는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분명 빛 하나 없이 깜깜한 어둠 속인데도 그녀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나, 난 현실이 아니야.”


  “... 아.”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짧게 탄식했다. 하긴,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녀가 환상이 아니고서야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뭐, 환상으로나마 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


  나는 힘 없이 축 늘어지면서 말했다. 흐흐, 데이지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작게 웃었다. 


  “그래서, 여긴 대체 어디야? 혹시 아는 거 있어?”


  나는 다시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그러자 데이지도 덩달아 내 옆에 앉았다. 마치 우리가 함께 있었던 과거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이 편해진 나머지 바닥에 다시 벌러덩 누웠다. 


  “안나, 눈을 감아봐.”


  데이지는 갑자기 내게 눈을 감아보라고 했다. 무슨 일이지? 나는 얼떨떨했지만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완전한 어둠이 나를 맞이했다. 


  “... 깜깜한데.”


  “헤, 조금만 기다려 봐. 혹시 들리는 소리 있어?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네 목소리?”


  “아니, 그거 말고. 마음을 비우고 귀를 기울여 봐.”


  여전히 의아했지만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내게 들리는 소리라곤 내 숨소리뿐이었다. 


  “... 아무것도 안 들려. 뭐 하려고 그러는 거야?”


  “너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야. 아니, 너뿐만이 아니라 나도, 그리고 엘사도. 그러니까 다시 한번 눈을 감고 마음을 비워. 네게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 봐.”


  데이지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그녀의 따스한 온기가 손을 타고 내게 전해졌다. 


  “... 알았어.”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혹시 이것도 훈련의 일부이지 않을까? 나는 의심을 애써 숨기고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설마 이게 훈련인가?


  이 방에서 소리를 찾기란 무척 어려웠다. 밖에선 그 흔하던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 방을 채우고 있는 소리는 오로지 내 숨소리, 그리고 쿵쿵 뛰는 내 심장 소리뿐이었다. 


  대체 이 소리에 여기에 뭐가 있다고… 


  쌔액, 쌔액. 나는 내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냥 숨소리일 뿐,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쿵, 쿵. 나는 내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역시 별다른 특이점은 없어 보였다. 


  두 소리 모두 지극히 평범한 소리였을 뿐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집중했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어라?


  문득 나는 내 귀를 자극하는 특이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주 희미해서 듣기 힘들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 엘사, 데이지, 어디 간 거야.”


  “이 목소리는…”


  “보고 싶어…”


  “나잖아?”


  나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저 멀리서 내가 흐느끼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나였다. 


  “어떻게…”


  나는 조심스럽게 또 다른 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내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저기.”


  나는 그녀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싶었다. 


  “어, 저기요? 안나?”


  내가 이리저리 말을 붙여보려는 찰나 뒤에서 데이지가 나를 덥석 붙잡았다. 


  “소용없어, 안나.”


  뭐라고?


  “저건 네 말을 듣지 못하거든."


  데이지는 사뿐사뿐 걸어서 그녀의 곁에 섰다. 데이지가 손을 뻗어서 그녀를 만지려 했지만, 데이지의 손은 또 다른 나의 몸을 허망하게 통과해 버렸다. 


  “... 제발, 무사해야 돼. 제발, 어디 다친 곳이라도 있으면 미쳐 버릴 거야.”


  “오, 안나. 날 이렇게까지 생각해 준 거야?”


  “데이지, 장난치지 말고 빨리!”


  “히히. 알았어. 이 아이는 너야.”


  “아니, 그건 나도…”


  나는 허탈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데이지가 그다음으로 한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네 속마음이지. 네 마음속 깊은 곳, 네가 홀로 외치던 생각이 형상화된 거야.”


  “... 뭐라고?”


  “자, 네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한번 들어볼까?”


  데이지는 활짝 웃으며 내게 길을 터줬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켰다.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가는 내겐 긴장한 모습이 보였다. 


  “대체 엘사는 누구야? 엘사는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건데? 왜 날 밀어내고 있지?”


  “역시, 엘사에 대한 생각뿐이구나. 부디 무사해야 될 텐데…”


  데이지는 한숨을 쉬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져서 얼굴을 푹 숙였다. 


  “괜찮을 거야, 안나. 엘사는 다친 곳 없이 잘 있을 거야.”


  토닥토닥, 내 등 위로 데이지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그 덕분에 나는 정신을 붙잡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 그래, 아직 갈 길이 멀어. 엘사를 찾아야지.”


  고개를 흔들고 다시 눈을 떴다. 또 다른 나의 복장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내가 한창 통제부에서 시달리며 살아가던 시절의 복장을 보는 듯했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또 다른 나도 눈이 풀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엘사를 생각하던 내 마음은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저 옷, 스무 살 즈음인데… 맞아. 난 저때 아무 생각도 없었어.”


  “조금 무섭네…”


  데이지는 갑자기 춥기라도 한 듯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멍하니 서있는 또 다른 나를 응시했다. 


  사실, 내가 봐도 좀 섬뜩하긴 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였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일을 하는, 그러다 닳아버리면 교체되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였다. 


  “...”


  내 속마음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모습, 그래, 저게 바로 내 진정한 속마음이었다. 


  “안나, 너…”


  “왜?”


  “... 아니야.”


  데이지는 뭐라 말을 하려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내 속마음에 대해서 물어보려 하지 않았을까? 나는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 


  “...”


  여전히 내 속마음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그녀의 입가가 조금씩 움찔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슬슬 때가 되었나? 


  나는 가만히 서서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데이지가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나와 내 속마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


  “... 안나, 너 설마.”


  “... 나는 왜 살아가지?”


  “맞아, 데이지.”


  “... 죽고 싶다.”


  “저 때도 한번 시도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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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도박빚 이제 스무개 남았다...
마음을 비우니까 좀 편안해진것 같아!
열심히 쓰자.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간 행복해 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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