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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35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3 23: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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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뭐, 뭐야!?”


데이지도, 그리고 나도 깜짝 놀라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닿았다가는 순식간에 타버릴 것만 같은 불길은 아이의 주위를 감싸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저건…”


익숙한 광경이었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곧 불길은 나 자신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들 것이었다. 과거에 그랬었으니, 분명 그럴 것이었다.


“살, 살려줘!”


다른 사람의 형체가 희미하게 생겨났다. 그 형체는 곧바로 불에 잡아먹혀서 사라지고 말았다.


“안나, 미, 미안해…! 제발 살려줘!”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가 마찬가지로 불에 잡아먹혔다.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불쾌한 익숙함을 느꼈다.


“불길이 아이들을 잡아먹고 있어…?”


데이지가 그 광경을 보며 작게 외쳤다. 그 말을 듣자 무언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머릿속에 아주 작게 남아있던 기억의 파편이 살며시 제 존재를 드러냈다.


“... 고아원이구나.”


“고아원…?”


불길에 잡아먹히는 낯익은 얼굴들, 그리고 어린 나의 모습을 보아하니 내가 고아원에 다닐 시절이 분명했다.


“오랜만이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 보니 이상한 위화감이 점차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 불이 어디서 났었지?


기억을 가만히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올려낼 수가 없었다. 아니,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내게는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시절이었다.


“끙.”


머리가 아팠다. 조금 멀쩡하다 싶었는데도 두통은 어느새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괴롭혔다. 그와 동시에 팔과 다리가 갑자기 저려왔다.


“안나, 괜찮아!?”


데이지는 내게 급하게 달려와 비틀거리는 나를 부축해주었다.


“... 응, 괜찮아.”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섰다. 아이의 주위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이상해…”


다시 봐도 무언가가 이상했다. 아이는 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겁에 질려 있기만 했다. 어디 뜨거워하거나 아파하는 모습이라곤 전혀 없었다.


다시 또 정적이 일었다. 나는 내 옛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다가를 반복했다. 내 어릴 적 모습을 도저히 두 눈 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가 한 짓이 아니야! 나, 난…!”


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에 당혹감이 찰수록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길길이 치솟았다.


“너, 넌 악마야! 여기서 썩 꺼져!”


저 멀리에 다른 아이의 모습이 생겨났다. 어린 시절의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소리 없이 흐느꼈다. 불길은 제 입을 길게 벌렸다.


“... 빌어먹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화악, 불길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어린 나에게 뭐라 말을 하던 다른 아이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제발, 그만 보여 달란 말이야!


나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너울거리는 불꽃은 자신의 영역을 계속해서 넓혀갔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몸집을 불려 가던 불꽃은 이내 고아원 건물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쩌적- 고아원 건물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건물 바깥 어디선가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나는 화들짝 놀라 주저앉고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무너지는 건물 사이로 생긴 작은 공간에 들어가 몸을 간신히 숨긴 나는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훌쩍, 훌쩍.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방 안에 홀로 울려 퍼졌다. 그 어린 나이에 온갖 차별이란 차별은 다 당했으면서,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배신이란 배신은 다 당했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누가 나를 도와주러 오지 않을까, 혹시 누가 내 손을 붙잡아 주지 않을까. 혹시나 살아남았을 다른 사람을 기대하면서, 나는 벽장 속에서 울며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그만…”


나는 머리를 쥐고 무릎을 꿇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기억 속에 잠들어있던 내 괴로움을 강제로 꺼내서 다시 보여주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었다.


쿵, 벽장 문이 세차게 열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던 내 앞에 따스한 손길 따위는 없었다. 신고를 받고 진압하려 온 소방 안드로이드의 딱딱하고 차가운 손이 나를 반겼다.


“...”


안드로이드들은 나를 덥석 들어 안고 고아원을 나섰다. 쾅, 거리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와르르, 쿵. 그리고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무리 뒤돌아 보려고 해도 안드로이드는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안드로이드에게 끌려가고, 차가운 독방에 갇혀 조사를 받게 되었다.


“안나…”


옆에서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도 내게 뭐라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 듯 싶어 보였다.


“... 난 괜찮아.”


나는 에둘러 대답했다.


나는 괜찮아.


마음속으로 다시 다잡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린 나의 모습이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아이는 이제 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괜찮아, 괜찮다고.”


누군가 내 귓구멍을 열어젖히고 내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모든 것이 다시 드러나고 있었다.


“안나!”


데이지가 옆에서 내게 무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걸 때마다 나는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안나, 너 안 괜찮아 보여. 정신 차려, 안나!”


데이지는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다시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힘이 풀린 나머지 다리가 마구 떨렸다.


“아, 이런, 시간이…”


옆에서 데이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야로 슬쩍 보이는 그녀의 발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망할. 안나, 일어나!”


데이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안나, 엘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데이지의 목소리는 아주 작게 들리더니, 이내 아예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 중 하나가 나를 강제로 일으키고 있었다.


엘사?


“그러니까, … 포기… 마…”


“... 데이지!”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데이지의 모습도, 내 어린 시절의 모습도, 주위를 다 태워 버리던 그 불꽃도 사라져 있었다. 어둠이 다시 내 주위를 감쌌다.


“데이지…”


주먹을 꽉 쥐었다. 주저앉았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엘사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하겠다던 내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무기력했었다.


“... 멍청아, 왜 그랬던 거야.”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물어뜯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인데, 지금까지 잘 견뎌 왔는데, 왜 갑자기 무너졌던 걸까. 어차피 방금 내 곁에 있었던 데이지는 환상이고, 진짜 데이지는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쿵,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작은 빛 한줄기가 문틈 사이로 방 안을 비추었다. 저 멀리서 그 남성이 내게 나오라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방금까지 있었던 나의 어릴 적 모습이, 그 주위로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이 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당신도 저런 마음이었나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나 자신도 모른 채로 중얼거리며 다시 눈을 떴다. 다시 방에 들어오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방 안에서 일어나는 환상은 점점 내 과거를 들춰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태어날 무렵에 일어났던 일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와 엘사에 관한 일도, 혹은 나와 데이지에 관한 일도. 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도는 기시감을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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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에서 던진 떡밥 드디어 하나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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