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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37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5 21: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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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천장은 막혀 있는데, 웬 눈이지?”


  마치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차가운 칼바람이 우리의 머리칼을 잔뜩 흩트려 놓았다. 


  “으, 추워…”


  몸이 갑자기 으슬으슬했다. 이빨이 딱딱 소리를 내면서 마구 떨렸다. 뼈가 시리는 듯한 추위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데, 데이지, 괜찮아?”


  나는 마구 떨리는 이빨을 겨우 진정시키고 물었다. 말을 끝내자마자 이빨이 다시 덜덜 떨려왔다. 


  “응, 나는 괜찮아. 안나, 음… 불이라도 만들어 보면 좀 낫지 않을까?”


  나는 데이지의 말을 따라서 브루니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브루니는 묵묵부답이었다. 


  “듣지를 않네, 으… 춥다.”


  숨을 한번 뱉을 때마다 허공에 새하얀 김이 생겼다. 추위에 떨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데이지는 내 곁으로 와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러면 좀 괜찮으려나… 어때, 안나?”


  “응, 좀 괜찮아. 고마워, 데이지. 으으…”


  데이지 덕분에 손이 얼어붙을 것만 같던 느낌은 조금씩 사라졌다. 하지만 옷 사이로 파고드는 칼바람은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버티자, 안나. 이것도 환상일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눈도 금방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 여긴 어디지? 으으으…”


  “글쎄, 처음 보는 곳인데…”


  나도, 데이지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난 작은 골목길이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어서 골목길을 나왔다. 낯선 건물들이, 낯선 집들이 보였다. 


  “조용하네.”


  빼곡히 들어선 집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건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고 나서야 불이 켜져 있는 집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노크해볼까?”


  “응.”


  똑똑, 우리는 두드렸다. 하지만 집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역시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으으… 아무도 없나?”


  문고리를 잡고 슬쩍 돌려 보았다. 이상하게도,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와 데이지는 눈을 크게 떴다. 


  “계세요?”


  우리는 문을 살짝 열고 집 안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마주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계, 계세요?”


  우리는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마구 어지럽혀져 있었다. 화분이 쏟아지고, 책상이 부서진 채로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아무도 안 계세요?”


  목소리를 조금 키워서 소리쳐 보았다. 여전히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득 벽에 걸린 시계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날짜를 머릿속에 박아 놓았다. 


  그러다 문득 어느 소파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소파 곁으로 다가갔다. 그 소파 위에는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 조심스럽게 손을 다가가 대 보았다. 


  “... 따뜻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까지만 해도 여기에 사람이 있었어. 그런데…”


  집 안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저항하다가 끌려 나간 것처럼. 


  “... 나가자.”


  나는 급하게 그 집을 나왔다. 데이지는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뒤따라 달려왔다. 다시 우리는 처음 왔었던 그 골목길로 돌아왔다. 어느새 무릎 정도까지 쌓인 눈밭이 나를 다시 반겨주었다. 


  “안나, 갑자기 왜 그래?”


  “위험해. 방금 그 집, 안드로이드한테 끌려간 것 같아.”


  “... 진짜?”


  내 말을 들은 데이지는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고 내게 다시 물었다. 


  “도대체 왜?”


  “나도 모르지. 그리고 여기…”


  큼, 큼. 나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 엿듣는 사람이 있을까 살폈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지금 과거에 와 있어.”


  “과거!?”


  “쉿, 쉿!”


  나는 손으로 데이지의 입을 막았다. 데이지의 볼이 크게 부풀었다가 작아졌다. 


  “... 과거라고?”


  “응, 아까 달력을 봤거든. 한… 25년? 그 정도 된 것 같아. 내가 태어나던 날? 때마침 내 생일이랑 똑같더라.”


  “25년… 어, 어… 네 생일?”


  데이지는 잠시 어디 나사라도 빠진 것처럼 머뭇거렸다. 


  “음, 어… 생일 축하해?”


  “어, 음… 고마워, 데이지.”


  생각지도 못한 생일 축하를 받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아무튼, 과거라… 생각해 보니까 맞긴 맞네. 지금껏 계속 네 과거를 봐 왔었잖아.”


  “그렇긴 하지. 엘사와 너를 만나고 난 후,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고아원 화재, 그리고 고아원에 다닐 때. 이렇게 봐왔으니까.”


  “그리고 네가 태어나던 때. 이러면 퍼즐이 풀릴 것 같은데.”


  “음…”


  사실, 나는 그녀의 말에 단언할 수 없었다. 나도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 누가 자신이 태어난 모습을 기억하겠는가?


  “글쎄, 썩 보고 싶지는 않은데.”


  그리고, 데이지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난 고아잖아.”


  내가 태어난 장면을 내 눈으로 보게 된다면, 내 진짜 부모님도 알게 된다는 의미였다. 나는 도저히 그 장면을 두 눈 뜨고 보고 싶지 않았다. 


  “아…”


  데이지는 짧게 탄식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차피 훈련이잖아. 


  결국 이겨내야 할 시련일 뿐이었다. 참고 버텨내야만 엘사를 향해 갈 수 있을 터였다. 


  “... 그래도 봐야겠지.”


  나는 다시 눈을 뜨며 말했다. 데이지는 내가 걱정된다는 듯이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괜찮아. 어차피 환상인데, 뭐.”


  바로 그때였다. 


  화악-


  “뭐, 뭐야!?”


  데이지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아주 작은 불꽃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불꽃…?”


  나는 그 불꽃을 보자마자 브루니를 떠올렸다. 브루니?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지만, 브루니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갑자기 웬 불꽃이지?”


  그때, 어디선가 세찬 눈바람이 몰려왔다. 불꽃은 꺼질 듯 말 듯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66/81


으아악 오글거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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