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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46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21 21:49:44
조회 178 추천 19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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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지.”


  “응?”


  “너 말이야, 환상이라고 했지?”


  데이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 질문이 고민을 해야만 하는 질문이었을까?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응… 그렇지? 진짜 나는 밖에 있으니까.”


  “혹시, 진짜 너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데이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진실일까, 혹은 거짓일까. 나는 애석함을 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이런… 오늘은 여기까지구나.”


  환상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데이지의 목소리도 서서히 작아졌다. 그런 순간에도 데이지는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입술을 옴짝달싹거렸다. 


  … 또야.


  털어놓을 것 같으면서도 끝내 털어놓지 못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자 아주 오래전에 묻어 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때 괜찮다고 넘겨 버리고 말았었던 아쉬움이 다시 나타나서 자기 몸집을 키워 가고 있었다. 


  “... 제발.”


  “응? 아, 안나, 왜 그래?”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낮게 소리쳤다. 분명 작게 혼잣말하려 했건만,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데이지가 깜짝 놀라며 내게 되물었다. 나를 위해서 숨기려고 하지만, 정작 내겐 아픔만 주는 데이지의 모습은 엘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내겐 남에게 무어라 요구할 자격이 없었다. 나는 나고, 남은 남이니까. 데이지도, 엘사도.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남이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당장이라도 터트려 버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 잠깐만.


  무언가가 이상했다. 


  “... 윽.”


  머리가 지끈거렸다.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을 놓쳤다. 쓰러지려고 하는 몸을 다시 힘들게 균형을 잡았다. 옆에서 데이지가 안절부절못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사는 내 언니잖아. 


  “크윽…”


  머리가 다시 한번 지끈거렸다.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 무언가가 이상했다. 기억이 뒤죽박죽 섞인 채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가족이 없잖아.


  엘사는 분명 내 언니였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가족도 없었다. 


  말도 안 돼. 


  생각이 정리되기는커녕 머리만 아파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손으로 긁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기억과 기억이 맞부딪혔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내겐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통제부에서 온갖 수모를 겪던 기억이, 고아원에서 모욕을 참아 가며 살아가던 나날들이 내 머릿속에 있었다. 아주 평범한, 별 볼일 없는 기억들이었다. 


  그 옆으로 엘사와 같이 아렌델에서 지내던 기억들도 같이 남아 있었다. 엘사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던, 엘사의 방문을 두드리던, 그리고 같이 스케이트를 타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무엇이 옳은 기억이고 무엇이 잘못된 기억일까, 이제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모든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탓에 전보다 강한 이질감이 나를 덮쳤다. 


  우욱-


  니는 참지 못하고 바닥에 토사물을 뱉어냈다. 최근에 먹은 것도 없어서 그런지 묽은 액체만이 나올 뿐이었다. 


  “안나…”


  옆에서 데이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희미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만 지나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안돼.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말을 해야만 했다. 평생을 참고 살아왔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숨기는 건, 이제 그만…”


  주먹 쥔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다 못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힘겹게 일으킨 몸은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일어섰다. 


  데이지가, 아니, 정체 모를 환상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따스함을 잃은 그녀의 손은 냉기만을 내뿜고 있었다. 


  “말해 줘.”


  “...”


  “제발,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말해줘.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데? 뭐를 숨기고 있는 건데?”


  “... 너…”


  환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잠시 흐르고, 그녀는 다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기억… 하는 거야?”


  “뭘?”


  그녀는 다시 말을 잇지 않고 머뭇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해 소리쳤다. 


  “제발, 제발!”


  그녀는 기운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모습까지도 완전히 엘사를 빼다 놓은 것처럼 닮아 있었다. 


  “... 미안해. 하지만, 네 기억이… 이건 생각보다 너무 이른데…”


  흐려지고 있던 그녀의 모습은 이제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무척 작아져 있었다. 


  “네, 기억, 아렌델…”


  그녀가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눈을 감았다가 뜨자, 그녀는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데이지… 


  무언가가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기억이 내 머릿속에서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걸까, 나는 아직도 섣불리 결론 내릴 수가 없었다. 


  기억, 아렌델. 


  환상은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던 걸까? 나는 고민에 잠기려 했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깊은 곳에 잠겨 있던 기억이, 엘사가 울부짖던 모습이, 엘사가 스스로를 가두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혼란스러웠다. 지금 내 선택이, 엘사를 만나려 하는 선택이 옳은 결정인 걸까? 우리는 서로 만나면 안 되는 운명이 아닐까? 마치 누군가가 우리 둘의 사이를 강제로 떼어내 버리기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쿵-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방에 돌아와 있었다. 나는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아직까지도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눈을 감았다가 뜨면 아렌델 성에 다시 가 있을 것만 같았다. 엘사와 함께 웃음이 가득한 나날을 지내던, 어렸을 적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아… 엘사.”


  이상하게도, 아렌델에 여름이 다시 돌아온 날 이후의 기억은 어중간하게 있었다. 엘사와 나 사이에 큰일이 있었다는 것만 떠오를 뿐, 그 외의 기억은 없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손으로 헤집는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답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침대에 몸을 던져 풀썩 누웠다. 


  아, 머리야. 


  내일 다시 그 방에 들어가서 데이지의 환상과 이야기를 나눠 본다면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생각과 함께 눈을 감았다. 갑자기 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부디, 나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줘.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만 같았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75/81


늦어서 미안하드아아아...

시간 나는대로 틈틈히 쓰는데도 진짜진짜 얼마 못 쓰네 ㅜㅜㅜ

더 노력할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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