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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48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14 23: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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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에서 나온 우리는 손을 잡고 긴 복도를 걸었다. 그러나 한번 생겨난 두려움은 쉽게 사라질 기미조차 없어 보였다. 


  아니겠지?


  분명 낮에 파티를 할 때만 해도 그렇게 왁자지껄 떠들었건만, 지금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아닐 거야.


  엘사와 맞잡은 손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잠시 손을 들어 올렸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혹여나 엘사가 볼까 두려워서 몰래 옷소매로 닦았다. 그러면서 엘사를 흘깃 곁눈질해 보았다. 


  엘사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다른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는 듯 싶어서 물어봐야 하나 하다가도 끝끝내 버티고 있던 믿음의 끈이 나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주겠지.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다시 엘사의 손을 붙잡자 그제야 엘사는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배시시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안심이, 그리고 그 이면으로 느껴지는 불안감이 내게 다가왔다. 


  닫힌 문을 열고 서재에 들어서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올라프와 스벤, 그리고 크리스토프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잠시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엘사와 함께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 가자! 유니콘, 아이스크림, 성! 오큰! 찻잔! 생쥐! 오, 엘사!”


  딸랑- 올라프와 크리스토프의 차례가 끝났다. 이제 엘사와 내가 한 팀이 되어서 게임을 할 차례였다. 


  "좋아, 자매는 한마음이니까."


  엘사가 설명하고 내가 맞춰야 했다. 게임이 시작되고, 엘사는 무언가를 열심히 온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좋아, 아무것도 없다고? 공기? 나무? 사람? 나무사람! 오, 이건 말이 안 되지… 삽 든 소년? 이빨? 아, 알겠다! 접시 닦기!”


  엘사는 나름 자신의 최선을 다 하는 듯 싶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엘사가 표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북극곰!”


  갑자기 올라프가 끼어들어서 답을 외쳤다. 나는 올라프를 째려보며 외쳤다. 


  “잠깐만, 끼어들면 안 되지!”


  “미안해요.”


  “엘사, 조금만 더 표현해줘!”


  내 말을 들은 엘사는 잠시 고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짚었다. 그때, 엘사는 갑자기 등을 돌려서 창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창문? 창문으로 뭘 표현하려는 거지? 


  “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엘사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 감정인가?


  “공포?”


  엘사는 계속 하늘을 보며 불안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산만함? 걱정됨? 공황에라도 빠지는 거야? 불안감인가? 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줘! 언니 진짜 불안한 것처럼 보였다고!”


  딸랑- 엘사에게서 반응을 얻을 새도 없이 종이 울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우리가 이겼네.” 


  크리스토프가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한판 더 해!”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엘사를 흘깃 바라보았다. 혹시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종전의 모습을 보면 묘사가 아니라 진짜 불안에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엘사는 몸으로 말해요 게임에 특히나 능숙하지 못했다. 


  “음, 그게 말이야, 나 먼저 자러 갈게.”


  그러나 엘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엘사는 걱정스러워하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홱 지나쳤다. 


  “언니, 괜찮아?”


  아닐 거야. 나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답은 내 희망을 완전히 부숴 버리기에 충분했다. 


  “어, 그냥… 조금 피곤하네.”


  엘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서재를 빠져나갔다. 역시,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 싶어 보였다. 대체 무슨 문제이길래 나한테까지 숨기고 있는 걸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그 일 이후로 나한테 숨기는 게 없는 줄만 알았는데.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엘사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 우리 언니 오늘따라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


  옆에서 크리스토프가 무어라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별 쓸모없는 대답이었다. 


  “대체 마지막 단어가 뭐였길래 엘사를 그렇게 당황하게 한 거지…?”


  나는 종이 더미를 뒤적거려서 엘사가 표현하려던 단어를 찾아내었다. 


  “아니, 얼음이라고? 얼음 하나를 표현 못 해서 그런거야?”


  저녁부터 계속 엘사와 나의 곁을 맴돌던 위화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당장이라도 엘사에게 말을 걸어서, 엘사가 가진 근심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었다. 


  “... 당장 가서 엘사의 상태를 살펴봐야겠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대충 그에게 안부를 전하고 급하게 문을 열었다. 내가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도 뒤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기분이 조금 더 언짢아졌지만, 그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엘사가 우선이었다. 그가 나를 진정 사랑하는지, 내가 그를 진정 사랑하는지는 나중에 이야기해보아도 될 일이었다. 


  뭐, 어쨌거나 나를 도와줬으니까. 


  대충 생각을 얼버무리고 엘사의 문 앞에 섰다. 큼, 큼- 목을 조금 가다듬고 문을 두드렸다. 똑, 또똑 똑- 똑. 익숙하면서도 경쾌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 들어와.”


  방문 사이로 들려오는 엘사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가라앉아 있다고 느낄 만했다. 나는 문을 열고 방 안을 빼꼼 바라보았다. 엘사가 달빛을 바라보며, 어깨에 어머니의 스카프를 두른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무슨 문제가 있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엘사에게 다가갔다. 뭐가 그리도 걱정스러운지, 나를 향해 등을 돌린 엘사는 다시 고개를 조금 숙이며 스카프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너랑?”


  “아니, 언니랑. 어머니의 스카프를 두르고 있잖아. 언니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항상 그래 왔잖아… 오, 혹시 우리가 언니를 언짢게 한 거야? 그랬다면 미안해. 그, 있잖아,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몇 명 없어. 진짜야!”


  “아니, 그게 아니야…”


  “그러면 무슨 일인데?”


  엘사는 내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떻게든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게, 그냥…  내가 다 망칠까 봐 그래.”


  나는 깜짝 놀라며 엘사에게 되물었다. 나도 같이 침대에 걸터앉아서 엘사를 위로해주었다. 된다면 뭐라도 해결해주고 싶었건만,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말뿐인 나를 속으로 원망하며 말했다. 


  “뭘 망쳐? 잘하고 있어! 오, 언니… 난 언니를 아는데 언니는 왜 자신을 몰라?”


  “... 잠깐만.”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잠시 정신을 차렸다. 익숙한 문장이었고, 익숙한 분위기였다.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거… 꿈에서 본 장면이랑 똑같잖아.”


  나는 분명히 이 장면을 꿈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기억을 되찾고 보니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엘사를 찾아서, 엘사에게 가야만 한다는 것을. 


  “네가 없으면 난 어쩌지?”


  환상 속에서 내 말을 들은 엘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엘사의 눈을 바라보며, 내 진심을 담아 전했다. 


  “난 늘 곁에 있을 거야.”


  “난 늘 곁에 있을 거야.”


  이상하게도,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심장 부근에서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머리에 한 기억의 파편이 스치고 지나갔다. 


  “미안해, 엘사. 하지만...”


  순간 온몸이 얼음으로 뒤덮이기라도 한 것처럼 차가웠고, 불구덩이에서 구르기라도 한 것처럼 뜨거웠다. 


  “헉, 헉…”


  다행스럽게도 통증은 얼마 지나지 않고 사라졌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박혀버린 고통의 기억이 남아서 나를 괴롭혔다. 


  … 괜찮을 거야.


  나는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왜 엘사는 내가 기억을 되찾는 것을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나는 왜 미안하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기다려, 엘사.”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엘사를 저버리는 멍청한 선택은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편히 잘 자렴, 아가야.”


  환상 속에서 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본 엘사의 모습은 행복에 겨워 있었다. 내 얼굴에도 어느새 웃음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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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푸지마 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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