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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50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21 22: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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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게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나는 모두에게 억지 미소를 보여주면서,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망할. 


  사실, 이런 자리는 내겐 필요 없었다. 그저 엘사만 내 곁에 있으면 그만이고, 엘사만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명예도, 권력도, 재력도 결국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너만 내 곁에 있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고개를 돌려 엘사를 힐끔 쳐다보았다. 모든 일이 끝난 줄만 알았건만, 엘사는 그렇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걸까, 엘사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이제는 조금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모두가 행복해야만 하는 대관식이었건만, 정작 나는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쓰린 마음을 움켜쥐고, 어떻게든 이 공허함을 들키지 않게 숨기며, 얼굴에 미소를 한껏 담아서 엘사에게 말을 걸었다. 


  “상왕 폐하, 이만 이리로 오는 게 어때요?”


  엘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엘사에게 손을 뻗자, 엘사도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엘사는 아무 말도 없이 내 곁에 섰다. 뭐라 말이라도 할 것만 같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그녀는 내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의아함이 생겨서 그녀를 바라보자, 엘사가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엘사?”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간신히 억눌러 놓았던 짜증이 다시금 솟아오르고 있었다. 엘사의 얼굴에 내 얼굴이 닿을 것처럼 내밀고 나서야 엘사는 정신을 차린 듯 싶었다. 


  “오, 어, 안나.”


  잔뜩 당황하며 뭐라고 제대로 답을 하지도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탄식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픔이 몰려왔다. 이대로 엘사를 붙잡고 싶었다. 다시 방에 가두기라도 해서, 그녀와 평생 함께 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헤어지기 싫었다. 


  하지만… 


  그러나, 심정이 복잡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나도 섣불리 뭐라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결국 이렇게 보내야만 할 뿐이었다. 


  “엘사.”


  내 말을 들은 엘사는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우린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거지…?”


  하지만, 그녀를 보내야만 했다. 그게 엘사가 바라는 일이었고, 엘사가 나에게 아렌델을 맡긴 이유였으리라. 


  “엘사… 그쪽으로 가서도 잘 지내야 해? 특히 제발…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


  그래도, 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해 주었다. 이 세상에서 엘사를 다치게 만들 존재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응, 꼭 명심할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사는 작은 미소와 함께 나를 껴안았다. 나도 엘사를 더 세게 껴안았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혹시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서.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창 밖에는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평소였다면 진작 잠에 곯아떨어질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엘사.


  눈만 감으면 그 앞에 엘사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마법을 들키고 멀리 도망치던 그녀의 모습이, 그리고 아토할란을 혼자 가기 위해 나를 밀어내던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안 돼… 


  밤새도록 내 머릿속에 유일하게 있던 것은 그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느새 빠져든 꿈속에서도 엘사가 내게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얼마 자지 못하고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이상한 위화감이 한가득 느껴졌다. 


  추워…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만 같은, 엘사가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던 그 시절의 차가움과 외로움이었다. 아니, 그 시절보다 더욱 차가웠다. 그 시절에 나를 감싸던 쌀쌀한 따스함이 아닌, 그저 칼날 같은 차가움만이 가득했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멀었는데…  


  나는 작게 투덜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을 보고 나는 입을 닫을 수 없었다. 


  “눈!?”


  사람 한 명은 족히 파묻어버릴 것만 같은 폭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엘사는 일주일 뒤에 다시 노덜드라로 간다고 했었는데, 이 정도로 눈이 오면 녹크를 타고 돌아가야 될 판이었다. 


  잠깐만. 


  무언가가 이상했다.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해도, 이제껏 아렌델에는 저 정도로 폭설이 온 적이 없었다. 


  설마 또?


  단 한 번, 엘사가 북쪽 산으로 도망쳤던 일을 제외하면 말이었다. 순간 과거의 기억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엘사가 나를 깨우러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지도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었다. 불안감이 나를 휩쌌다. 나는 당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종을 불렀다. 


  “밖에 누구 있습니까?”


  “예, 여왕 폐하.”


  “혹시 엘사… 방에 있나요?” 


  내 목소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종의 입에서 들려오는 말은 내 기대를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 


  “폐하, 상왕 폐하께서는 간밤에 외출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직접 확인해 보셔야 할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밖에서 시종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시종에게서 종이를 건네받았다. 


  안나, 급한 일이 생겨서 노덜드라에 잠깐 가 있을게. 미안해. 


  종이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가 없었다. 대관식을 마치고 나자,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타국의 이들이 많이 생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도 만날 수가 없었다. 식음도 전폐한 채, 나는 오로지 엘사를 걱정하게 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눈이 그쳐 있었다. 나는 공황에 빠지고, 시종들과 병사들을 불러 올라프를 내 곁으로 데려오라 명했다. 그들은 내 명령을 듣고 곧장 올라프를 내게 데려왔다. 분명 그들도 내 이상한 모습을 보았으리라. 어쩌면 도심에 가서 내가 미쳤다고 수군거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올라프가 멀쩡하다는 사실만 보게 되면 그만이었다. 올라프가 멀쩡하니, 엘사도 멀쩡하게 살아 있을 터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게일이 한 통의 편지를 내게 전해주었다. 


  안나, 별다른 설명 없이 나와서 미안해.

  정말로 급한 일이 생겨서 별 수 없었어.

  당분간 게일을 통해서 자주 연락할게.

  내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무리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엘사.


  나는 안도의 한숨을 겨우 내뱉을 수 있었다. 엘사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탄식의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엘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이 기약 없는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눈 앞이 깜깜했다. 




  몇 주 뒤, 나는 절벽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태어나서 이토록 초조해져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대다수가 엘사와 관련된 일이었다. 언제 돌아올까, 어디 다치지는 않았을까, 무슨 일은 없었을까, 이런 걱정을 하게 될 때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왜 엘사는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걸까? 


  저 멀리, 엘사의 형체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체통을 던져버리고 그녀가 달려오는 방향을 향해 똑같이 달려갔다. 


  “안나, 미안해.”


  엘사는 나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엘사의 품 안에 얼굴을 묻고, 웃은 채로 울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가서 미안해. 앞으론… 그런 일이 없을 거야.”


  엘사는 내 등을 토닥이며 내게 미안하다 말했다. 저 말을 믿을 수가 있을까? 불신과 믿음이 내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열리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어서 그녀에게 말을 전했다. 


  “엘사, 부탁을 해도 될까?”


  “얼마든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숨을 꾹 참았다가 쉬는 둥, 한번 얼굴을 찌푸렸다가 피는 둥 불길한 느낌을 날려 버리려 노력했다. 


  “사라지지 말아 줘, 제발…”


  만약에라도 언니가 없어지면, 난… 


  나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그리고 저 멀리, 우리를 비추고 있는 태양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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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편 돌파!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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