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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51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25 2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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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사가 다시 돌아온 지 닷새째 되던 날의 새벽이었다. 나는 아직도 잠에 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고만 있었다. 이유 없는 불안감이, 이유 없는 슬픔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하아. 


  아무래도 자는 것은 그른 듯 싶었다. 나는 뒤척이는 것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피곤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창문을 열었다. 중천에 뜬 달이 피오르를 아련하게 비추고 있었다. 인적 하나 없는 피오르의 쓸쓸함이 마치 내 심정을 보는 것만 같았다. 


  엘사… 


  엘사는 분명 옆 방에서 자고 있건만, 그 어느 때보다도 멀게 느껴졌다. 엘사가 방에 스스로를 가두던 때보다도, 엘사가 아토할란에서 돌아오지 못한 때보다도. 


  이번엔 도대체 무슨 일인지.


  걱정과 이유 없는 상실감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포기하면 분명 편하겠지,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내 마음을 지켜주는 기억이, 엘사가 내게 따스한 사랑을 전해 주던 이 기억이 나를 붙잡았다. 


  그러고 보니 엘사의 생일이 곧 다가올 텐데. 


  항상 이 맘 때가 되면 엘사의 생일이 어느새 와 있었다. 내가 받았던 만큼 엘사에게 해 줘야 되는데. 올해는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엘사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꼭두새벽부터 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 머리 아파.


  너무 정신을 쏟아부은 탓일까, 갑자기 생겨난 미약한 두통이 생각을 방해했다. 집중할 수도 없고, 무언가를 할 것도 없겠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엘사의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방 문이 손쉽게 열리고, 침대 위에서 곤히 잠에 빠져든 엘사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나 쉽게 열리는 문이었는데, 왜 난 열어버릴 생각을 못 했을까? 건장한 성인 남성 한 명이 혼자서 충분히 부숴 버릴 만한 문인데, 왜 하인을 불러서 문을 부숴 버리고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의미 없는 푸념을 반복하면서 나는 엘사의 옆으로 다가갔다.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서, 목 아래까지 이불을 덮어 올리고, 입을 조금 벌리며 자는 모습은 어머니가 어릴 적 말해주었던 신화에 나온 여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프레이야… 여신 같아.


  미의 여신이 환생한 것만 같은 아름다움은 마치 나를 홀리는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엘사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그녀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 진짜 신이라도 된 것이 아니잖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마를 한 번 쓰다듬었다. 엘사의 이마에서 전해지는 포근한 온기가 내 두근거리는 마음을 꼭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어!?”


  순간, 엘사의 이마를 짚고 있던 내 손 위로 작은 눈송이가 나타나더니 떨어져 내렸다. 내 손등 위에 앉은 눈송이는 눈을 깜빡 감았다가 뜨니 사라져 있었다. 달빛에 비친 것을 잘못 보기라도 한 걸까? 나는 당황하면서 작게 소리쳤다. 


  “끄응…”


  그 때문일까, 엘사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다시 들려왔다. 아예 잠에서 깨어난 엘사는 상체를 일으켜서 나와 마주 보았다. 


  “앗, 엘사! 나 때문에 잠에서 깬 거야?”


  나는 엘사가 편히 일어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며 물었다. 


  “아니, 잠자리가 좀 불편해서 그랬어. 그나저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바쁘게 준비한 거야?”


  “응?”


  설마.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당황하면서 되물었다. 


  “생일 선물이 일어나자마자 보는 우리 동생 얼굴이라니, 너무 행복해!”


  … 망했다. 


  그 순간 내가 떠올릴 수 있던 단 한 가지 단어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 했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초콜릿? 아니, 그건 작년에 했잖아. 초상화? 아니, 그건 재작년에…


  “안나?” 


  엘사의 말을 듣고 정신을 퍼뜩 차렸다. 앞에서 엘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눈 앞에 손을 대고 흔들고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오, 어, 엘사, 그게 말이지…”


  둘러댈 말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차마 엘사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안나.”


  휙- 엘사는 갑자기 나를 그녀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깜짝 놀란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내 뺨은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3년 전 네 생일, 기억해?”


  엘사는 내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는 등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느끼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3년 전 내 생일.


  엘사는 내 생일 준비로 너무 무리하다 보니 감기에 걸리게 되었다. 그런 몸으로 나를 이끌며 열심히 생일 축하를 해 주었지만, 전부 끝내기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내가 엘사를 간호해 주게 되었던 날이었다. 


  그날 무슨 프러포즈라도 받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 날 선물 받았던 모자가 떠올라서 얼굴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엘사는 과연 그 모자의 의미를 알고 선물해 준 걸까?


  “그때, 네가 말했지? 날 간호할 수 있는 게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엘사는 내 등을 계속해서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는 그 시간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언니를 정성스레 간호해 주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던 그 날이 아직까지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다. 


  “응.”


  “안나,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 무엇보다도 네가 더 소중해.” 


  엘사는 그 말과 함께 나를 꼭 껴안았다. 엘사의 심장이 콩콩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해, 내 동생.”


  “... 응, 나도. 생일 축하해, 언니.”


  그제야 나는 최근에 느낀 불길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빌었다. 엘사도 무조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짧지만 길었던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포옹을 풀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우리의 얼굴엔 어느새 자연스러운 함박웃음이 피어올라 있었다. 


  “아, 맞아. 엘사?”


  문득 나는 엘사가 밤에 신음을 내면서 고생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응?” 


  “혹시 지난밤에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


  엘사는 내 물음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음, 아니. 사실 잘 모르겠어. 최근에도 몇 번 그랬는데, 깨고 나니까 기억이 안 나더라고. 뭐, 별 일 아니겠지.”


  “별 일 아닐 거야. 엘사,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손으로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누구보다도 나는 엘사의 말을 믿고 싶었다. 이 평화를 다시는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었다. 


  “응, 꼭 말할게.”


  엘사는 내게 미소를 지어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다른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불길함을 느끼며 그녀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의 미소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뾰족한 가시를 숨긴 장미를 닮아 있었다. 다시 한번 불안감이 솟구쳐 올랐다. 


  제발, 엘사.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꼭 내 곁으로 와 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언니가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비는 것이었다.




81/81



도박 변제 완료!!!!!!!!!!!!!!!!!!!!!!!!!!!!!!!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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