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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Arens Of Sheffield 11~12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02 02:15:24
조회 384 추천 1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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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ing prey 1~92(完)





1~10









24.


"오늘은 여기서 하루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하는게 좋을 것 같아."

엘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폭설은 그치지 않았다. 원래라면 당일 저녁에 로몬드 호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빙판길과 교통체증이 버스의 속도를 더욱 늦추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엘리사의 디오라마는 주변 도로의 상황을 보여주었고 길이 막히지 않은 곳으로 우회한 덕분에 프레스턴의 브롱홀스 휴양지 근처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시간은 저녁 9시 20분, 평소라면 모두 활발할 사람들이었지만 캠핑을 기대하느라 피곤한 듯, 모두들 시트에 머리를 대고 차분히 앉아있었다.

"오늘 바베큐를 하기엔 눈이 많이 오고, 무엇보다 저녁이라 시야 확보가 안되니까 밖에서 먹을 것 좀 사올게요. 초코우유도 보충해야 하니까... 같이 갈 사람?"


엘리사의 디오라마는 유용했지만, 여전히 능력 사용에는 피로가 뒤따랐다. 신약을 맞아 죽음이라는 위기는 더 이상 없었으나 죽은 듯이 숙면을 취하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능력을 많이 써서 피곤한 상태임에도 엘리사는 초코우유를 찾았으며, 혼자서 한 통을 다 마신 뒤에야 만족한 듯 푸스스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런 먹성을 자랑하며 디오라마를 만들었던 하양이는 지금 벨의 무릎 위에 몸을 웅크린 채로 자고 있었다. 벨은 어색하게 웃으며 불참의 의사를 밝혔다.


"까망아, 같이 갈래?"


까망이라고 불린 멜리사는 바깥과 안나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이내 벙어리 장갑을 들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만들어냈던 것보다 더 많은 눈과 얼음을 보게 되어 흥분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엘사 언니는...아, 졸고있구나."


"응? 으응? 나 안 졸았어."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엘사의 모습은 장묘종 흰 고양이의 졸음을 연상케 했다. 안 졸았다고 말한 그녀였지만 입가에 흐른 한 줄기의 침이 남긴 흔적은 지우지 못했다. 엘사의 옆에 앉아 어깨를 기대어 자고있는 한나는 대화소리에도 깨지 않고 고로롱 코를 골고 있었다.


"아냐아냐, 더 자 더...오늘 언니도 힘냈으니까."


"그럼 난 힘 안낸거야?"


멜리사가 도도도 걸어와 안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나도 바닥에 얼음들 치웠잖아."


"아아, 그랬지. 우리 까망이도 잘했어. 그럼 너도 쉴래?"


"아니! 난 안졸려, 같이 나갈거야. 난 엄청 힘이 세니까."


멜리사가 근육을 자랑하듯 음! 하고 팔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패딩에 싸여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안나, 그럼 나하고도 같이 나가자꾸나."


맨 뒤에 앉아있던 이두나가 일어나며 물었다. 옆에 앉아있던 제인은 책 한권을 펴놓고 얼굴에 얹은 채로 자고있었다. 뭐, 피곤할 수도 있지. 내가 비정상적인 거니까. 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바지춤에서 ppk와 탄창 두개를 꺼내 벨에게 건넸다.


"혹시 모르니까 벨 씨가 가지고 있어요. 저흰 트렁크에서 기어 몇 개 빼서 가져갈 테니까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셔야 해요. 꼭이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위치는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관할 경찰들과 국장님에게 보고되고 있거든요."


"그래도 음... 혹시 모르잖아요."


벨이 창틀에 탄창들을 올려놓고, ppk를 가볍게 쥐었다. 장전이 되어있는 만큼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올려놓지 않았다.


"조심히 갔다오세요."


벨의 걱정을 뒤로 한 안나와 두 사람은 버스 밖으로 나왔다. 눈은 발목까지 쌓여 있었고, 손톱만한 눈송이들이 버스의 헤드라이트에 선명히 비쳐 내리고 있었다.


"5분 거리 앞에 상점이 있으니까 좀 걷...기전에 잠깐."


안나가 두 사람을 세워두곤 트렁크로 향했다. 트렁크 문을 열고 짐들 속에서 기어가 든 자루를 끄집어냈다. 소음기 두 개와 P224 두 자루, 그리고 권총집을 챙긴 다음 9mm 탄알박스에서 탄알을 하나씩 탄창에 삽탄했다. 삽탄을 마치고 각각 하나씩 224에 밀어넣은 안나는 트렁크를 닫고 두 사람에게 돌아왔다.


"엄마, 여기요."


권총집과 224을 받아들은 이두나는 찬찬히 손을 돌려 총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두나가 따로 소지하고 있는 보디가드 380권총과 비슷한 서브컴팩트 모델이라 비슷한 무게와 그립감이 느껴졌다. 권총집을 바지춤에 끼우면 패딩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것이고, 설령 들킨다 하여도 기어를 실은 밴과 함께 전해졌던 새로운 신분증이 일행에게 의심을 안겨주지 않을 것이었다.


"안나, 그래서 뭘 사갈거니?"


"음, 간단하게 샌드위치 위주로 사가려고 하는데... 차는 포트로 끓이면 되고... 멜리사, 먹고싶은거 있어?"


머리에 쌓이는 눈을 장갑낀 손으로 탈탈 터는 멜리사에게 안나가 물었다.


"소시지! 배가 빵빵해지게 먹고싶어."


"버스에 전자레인지가 있으니까... 한 네 줄 정도면 다 먹겠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구나, 안나. 어서 가자. 이러다 우리가 눈사람이 되겠어."


이두나가 안나의 머리 위 눈을 털어주고 패딩에 달린 모자를 씌워 주었다. 안나도 이두나에게 같은 행동을 했다. 이내 눈밭을 걸어가는 아기펭귄과 두 어른펭귄이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이얏."


멜리사가 손을 뻗자, 허공에서 만들어진 주먹만한 얼음들이 세 사람의 앞에 쌓인 눈들을 긁어주는 것처럼 치워주었다. 눈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상점의 간판까

지 한층 걷기가 쉬워질 찰나, 멜리사가 고양이처럼 안나의 등에 기어올랐다.


"업어줘~ 능력을 써서 그런지 피곤해애애."


"멜리사, 안나는 오늘 하루종일 운전했잖니, 자, 이리온."


안나와 나란히 걷던 이두나가 등을 내어주자, 멜리사는 뭉그적거리면서 이두나의 등에 업혔다.


"괜찮겠어요?"


"이래봬도 회사에서 틈틈히 운동하고 있단다?"


이두나가 눈썹을 으쓱했다.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걸어준다면 상관없을듯 싶었다.


"조심만 해줘요. 뭐... 애들이 금방 치료해 주긴 하겠지만..."


"걱정해줘서 고마워, 우리 딸?"


웅얼거리는 안나를 향해 이두나가 말했다.


"우리 어서 안가면 눈사람 될거야!"



등에 업힌 멜리사가 두 사람에게 채근했다.







25.


벨은 세 사람이 나간 뒤 홀로 깨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벨의 마음속에는 오직 벨라 뿐이었다. 2시간 전, 벨라의 임시 병간호를 하고 있던 스카와 심바에게서 엘리사와 멜리사의 물건을 받았고, 벨의 지시대로 물건들을 가공해 가습기와 백신 형태로 벨라에게 주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벨의 머릿속에선 이 방법이 벨라를 낫게 해줄 유일한 길이었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는건 어쩔 수 없었다. 기쁘면서도 불안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벨은 창가어 이마를 기댔다. 차가웠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우으응..."


벨의 품에서 자고있는 엘리사가 몸을 뒤척였다. 여전히 몸은 고양이의 헤어볼처럼 웅크려져 있었다.


"아줌마아..."


"불편하니? 침대로 데려다줄까?"


벨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를 법한 엘리사의 허리를 생각하며 말했다.


"아뇨오... 잠 다 깼어요. 다들 어디갔어요?"


엘리사가 코를 훌쩍이며 주변을 한번 훑어보았다. 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나 씨랑 멜리사, 이두나 사장님은 먹을거리 사러 나가셨단다. 배고프니?"


벨의 말에 엘리사가 두 팔로 배를 감쌌다.


"그런 것 같아요. 능력을 많이 써서 그런가봐요."


"금방 오실 것 같으니까 조금만 참아보자?"


엘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짧은 대화는 이렇게...


"아줌마, 음...벨레라 얘기 해주세요."


끝나지 않았다. 엘리사의 예상치 못한 말에 벨은 조금 놀랐다.


"즐겁지는 않을텐데, 괜찮겠니?"


벨은 안나가 준 PPK를 탄창과 마찬가지로 창틀에 걸쳐놓았다. 손 닿을 거리에 있어 여차하면 뽑아들어 쏠 수 있는지 눈어림으로 짐작한 벨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엘리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단순히 실험체와 연구자였던 관계는 벨라의 치료에 대해 생각을 모아 친구의 딸과 친구의 어머니의 관계가 되었다고 벨은 생각했다.

"음... 하지만 벨레라가 나으면 즐거워질 거예요!"

"벨레라가 아니라 벨-라란다."


"벨르...아."



억지로 발음을 꺾어낸 엘리사가 끄응... 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에 맞춰 벨은 휴대폰을 꺼내 벨라의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엘리사의 눈에 비친 벨라는 예전의 연구소에서 죽어갔던, 그리 친하지 않았던 개체의 마지막 모습과 비슷하다 느꼈다. 그 개체의 능력은 식물이었다. 시들어 마른 식물에 능력을 주입하면 다시 살아나거나, 식물을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동화같은 능력이었지만, 그 개체는 엘리사의 수준으로 통제를 끌어오지 못했다. 결국 통제부족으로 몸속에 나뭇가시들이 자라게 된 그 개체는 엘리사와 감독관의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너도 저렇게 되지 않게 정신줄 잘 붙들어 매.]


옆에 있었던 감독관은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불구로 만들겠다는, 폭력적인 협박이었다.


"엘리사?"


그때를 회상하는 엘리사의 표정은 한껏 경직되었고, 벨은 그런 엘리사를 걱정했다. 능력의 통제를 하지 못한다면 진정제를 투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벨이 입고있는 패딩의 안쪽 주머니에도 1인분 분량의 진정제를 담은 주사기가 들어 있었다.


"아뇨, 미안해서... 일찍 줬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함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두막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곧바로 벨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벨라의 고통을 덜어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장의 이미지 뿐이었으나, 벨라는 엘리사의 과거보다 더 쓰라린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괜찮을 거야. 그거 아니? 너희들이 오두막에 있을 때, 난 벨라에게 너희 얘기를 많이 했었단다. 환상적인 눈과 얼음을 만들 수 있는... 작은 공주님들이라고 말이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말인가요?"


"그...런 투로 말했었지. 벨라는 언제나 너희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만나고 싶어했어."


"지금 통화할 수 있나요?"


엘리사는 안나가 알려주었던 영상통화를 떠올렸다. 영상통화를 한다면 멀리 있어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상대방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벨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병이 악화되고 나선 약 때문에 종일 잠에 빠져있단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못할거야."


혼수상태란 단어는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무서운 단어였기에, 돌려 설명한 벨이었다.


"하지만 곧 깨어날 수 있을거란다. 너희들 덕분에..."


벨이 말하자, 엘리사는 부끄러운듯 손을 두 볼로 가져갔다. 그때, 버스의 문이 열리고 눈보라가 문앞에 휘날렸다.


"우리 왔어요. 어, 엘리사, 벌써 깼니?"


양손에 가득 먹을거리를 가져온 안나와 이두나, 그리고 등에 업힌 멜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 없었죠?"


안나가 버스의 안에 내장된 접이식 테이블을 꺼내 펼치며 물었다.


"다들 조용히 자고 있었어요. 여기 이거..."


벨이 창틀에 끼워둔 ppk와 탄창을 안나에게 돌려주었고, 엘리사는 천천히 내려와 안나의 다리에 안겼다. 정확히는, 안나의 손에 들린 봉투에 얼굴을 파묻었다.


"맛있는 냄새..."


"멜리사, 엘사 언니랑 한나, 제인 씨좀 깨워줄래? 우린 음식을 준비할게."


안나의 부탁에 멜리사는 이두나의 등에서 고양이처럼 사뿐 내려왔고, 이두나는 가까운 의자에 앉아 쉴 수 있었다.


"뭐 사오셨어요.,.?"


"초코우유 두 통하고, 샌드위치 종류별로 두개씩, 그리고 부어스트 네 줄과 으깬감자, 자우어크라우트 등등...배고프지?"


안나가 봉투를 엘리사에게 안겨준 다음 벽에 내장된 접이식 테이블을 펼치며 물었다. 꽤나 무거운 봉투에 엘리사는 뒤뚱거리면서도 안에서 풍겨오는 내음과 온기에 풀어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사언니! 한나언니! 제인언니이! 달님이 일어났어! 밥먹어야해! 지금 안먹으면 다 식는다구!"


가까운 곳에서 멜리사가 세 사람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한나, 엘사, 제인 순으로 깨웠지만 일어난 순서는 정반대였다.


"어서 다들 일어나요. 자기 전에 배라도 좀 채워야지."


안나가 테이블에 한 사람 당 두 개의 샌드위치 팩을 올려놓았고, 부어스트는 접시에 담아 한쪽에 비치된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렸다.


"으, 신내나..."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테이블 한쪽에 앉은 한나가 자우어크라우트의 냄새를 짧게 평가했다. 그 옆에 엘사, 그리고 엘리사가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잘 익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니 엘리사?"


엘사의 말에, 엘리사가 고양이처럼 자우어크라우트에 코를 가까이 하고 큼큼 냄새를 맡았다.


"시큼해서 기름진 음식에 어울릴 것 같은데요..."


묘하게 엘리사의 말에는 지식이 배어져 있었다. 안나가 각 부서 접시들에 자우어크라우트를 포크로 덜어냈다. 제인은 조금 부운 눈으로 샌드위지의 포장을 벗겼다. 크림과 딸기가 두 빵 속에 어우러진, 케이크같은 샌드위치였다.


"으, 오이잖으아... 일부러 산거였어..."


옆에서 부리나케 포장을 벗긴 멜리사가 볼맨소리를 했다.


"편식은 하면 안돼. 뭐든지 골고루 먹어야지."


"하지만 먹으면 토할것 같단 말야..."


멜리사가 발을 동동 구르며 투정을 부렸고, 벨은 그 모습도 한결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었다.


"안나,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강요는 좋지 않아요."


벨이 안나에게 말했다.


"음...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전 가급적이면 애들이 다양한 걸 먹었으면 하는데..."


"안나 씨도 분명 편식하거나 싫은 음식이나 물건이 있을 거예요. 예컨대... 얼음물 처럼."


"얼음물?"


안나는 속으로 벨이 얼음물로 어떻게 자신을 설득할지 궁금해했다.


"안나 씨가 얼음물을 마시지 않는다 해서, 건강이 좋지 않은 건 아니예요. 얼음물이 아닌 일반적인 물로도 충분히 수분을 보충할 수 있구요. 구태여 멜리사에게 오이를 먹는걸 눈치줄 필요가 있을까요? 다른 채소를 충분히 먹는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해요."


안나는 벨의 그럴듯한 말을 이해했다. 경로가 어쨌든 간에, 성공이란 결과를 도출하면 된다는 뜻과 같았다.


"그럼... 내 거랑 바꿔 먹자, 멜리사, 자."


안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멜리사가 오이 샌드위치를 안나에게 내밀었고, 안나는 포장이 벗기지 않은 자신의 것으로 바꿔 주었다.


"고마워요!"


멜리사가 싱글벙글 웃으며 벨에게 감사를 표하고 덥썩 안나의 샌드위치를 가져갔다. "치킨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의 포장을 뜯어낸 것처럼 멜리사는 기뻐했고, 이내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내 건 뭘까...?"


엘사와 같이 자워크라우트를 포크로 찍어 아작아작 먹던 엘리사는, 이내 자신에게 주어진 샌드위치의 포장을 열었다. 새우와 치즈, 토마토 소스로 이루어진 샌드위치가 나왔고, 엘리사는 선뜻 마음에 들어하며 조금씩 샌드위치를 베어 먹었다.

















26.



랭글리에서 포토맥 강을 가로지르는 체인 브릿지를 건넌 다음 약 세 블록을 나아가면, 메가라의 단골 식당인 'DC BOATHOUSE'가 있었다. 메가라는 약속 시간인 오후 2시가 되기 30분 전부터 이곳의 마스터의 조언에 따라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오늘 미팅에 참석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나 일행에게 여행을 허락한지 이틀, 그리고 실질적으로 여행을 떠난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그 동안 라울에게 지휘 권한을 임시로 맡게 하여 보츠와나-남아공 국경에서 진행시킨 '다림질' 작전은 사실상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라울이 보낸 자료 이외엔 별다른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오카방고 강에선 가장자리가 터져 바람이 빠져 걸레짝이 된 고무보트 수 척이 전부였다. 고무보트의 제조사를 찾으려 했지만 사제로 드러났고, 무기의 출처를 찾기 위해 군벌이 위치한 나카마세레 외곽에 팀을 잠입시켰지만 이미 그곳은 기습 작전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문서의 마지막 문구에 PS란 자가 CIA에 사람을 심어 놓았다고 적힌 듯이, 메가라는 자신의 생각을 읽혀내고 있다는 불쾌감을 지우기 어려웠다. 어쩌면 도청을 당하거나, 추적을 당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었다. 메가라는 정장 코트의 안쪽 주머니에 구비한 P250 서브컴팩트의 존재를 기억하면서, 2층으로 올라온 늘씬한 정장 차림의 사내와 여성에게 눈을 돌렸다. 왼쪽 가슴에 존재한 붉은 배지, 그 배지엔 붉은 색의 탑이 새겨져 있었다.



"울트라."


남성이 메가라의 테이블 근처를 서성거리며 한 마디 내뱉었다. 메가라가 미팅을 하려던 손님이 말할 암구호였다.


"미러."


메가라가 한 단어를 말하자, 그제서야 사내와 여성은 메가라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메가라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재머의 스위치를 눌렀다. 스위치를 다시 누르지 않는 한 도청당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메가라... 국장님, 맞으시죠."


"그러는 당신은 패트릭?"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레드 타워입니다."


패트릭 '레드 타워'가 악수를 청하자, 메가라는 그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그의 손은 샐리맨더의 필립스가 가진 것보다 상처가 더 많았다. 마치 아르마딜로의 껍질을 연상케 하는 투박한 손이었다.


"이쪽은 저희 AI부서 수석 연구원 재스민입니다."


패트릭이 소개하자, 재스민이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메가라에게 인사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저번에 국장님이 얘기해 주신 다목적 AI 건은 저희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마음에 걸리는군요."


"그 문제라 하면...?"


메가라가 턱을 매만지며 그가 언급한 문제에 대해 추정했다. 로봇의 3원칙? 아니면 통제성?


"일단 저희 측 시뮬레이션부터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재스민, 국장님에게 태블릿 보여드려."


패트릭의 말에 재스민이 태블릿을 꺼내 화면을 조정한 다음 메가라에게 돌려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왼쪽엔 단어로 이루어진 홀로그램, 그리고 오른쪽에는 AI의 감정 변화도를 측정하는 그래프가 있었다.


"처음엔 국장님의 수석 그룹이 말하셨던 것처럼 다목적 AI가 여러 단어를 수집하며 지능을 키웠죠. 그쪽에선 약 15살 정도의 지능을 구현시켰다면, 저흰 20살 수준의 지능 구현에 성공시켰습니다. 하지만 변수가 존재하더군요."


메가라는 홀로그램에 띄워진 단어들을 주목했다. 이전까진 없던 성격들의 단어였다. 전쟁, 방화, 테러리즘, 강간, 살인... 좋지 않은 단어들이 떠오를 때마다 감정의 그래프가 화면을 찢어버릴 듯이 요동쳤고, 이내 그래프는 평탄해졌다.


"보시다시피, 그건 AI가 내비친 반응 중 하나였습니다. 스스로 단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죽어버렸죠. 다른 AI는 특이하게도 길길이 날뛰면서 특정 성향의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의사를 저희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스카이넷(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주요 악역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인공 의식, 게슈탈트, 인공 일반 지능 시스템.)의 지엽적 버전이라고 해야겠죠, 패트릭은 덧붙였다.


"끔찍하네요. 그럼... 저희 측 개체를 기반으로 한 인격 프로그램으로 다시 한 번 진행해 보도록 해요."


메가라가 주머니에서 두개의 하얀, 그리고 검은 USB를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저희 측 1호, 그리고 2호 개체가 혼수 상태일 때 추출해낸 인격이 프로그래밍 되어있어요. DARPA(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과 DTRA(위협감소국)의 합작으로, 사흘 전에 프로그램화된 프로토타입이예요. 오늘 제가 본 것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패트릭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 흑백의 USB를 바라보았다. 이제껏 실험한 AI는 말 그대로 수많은 명령어로 만들어낸 소프트웨어였다. 하지만 메가라가 준 USB에는 복사 된 사람의 인격이 들어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능이 아닌, 말 그대로 사람의 정신이 복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배덕감과 윤리의 벽으로 지금껏 넘지못한 과학의 경계 너머의 안개의 일부를 지운다는 흥분이 서로 교차했다.


"재스민, 실험 기기를 제외한 다른 기기의 연결은 모두 꺼 두도록 해요."


패트릭이 USB를 재스민에게 손가락으로 밀며 말했다. 재스민은 말없이 USB를 태블릿 케이스에 끼워 보관했다.


"아, 그리고 국장님. 요즘 필립스는 잘 지낸답니까?"


미팅의 주 목적은 끝난 셈이었으니, 그 다음은 중요치 않은 잡담의 시작이었다. 메가라는 곧바로 랭글리로 돌아가려 했지만, 레드 타워 또한 샐리맨더를 비롯해 CIA와 계약을 맺은 회사 중 하나였다. 계약사의 사장이 직접 왔으므로, 구태여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잘 지내고 있어요. 최근 남아공 내전에 직접적으로 병력을 투입해 현지인 구출에 힘쓰고 있죠. 물론...본사에서."


"그래요? 그 헤라클레스 같은 자식이? 음... 많이 물러졌나 봅니다. 예전에는 킹메이커니 하며 선거판에 뛰어들고, 전쟁터에도 뛰어들던 놈이었는데."


패트릭이 웨이터를 향해 손을 들며 푸념하듯 말했다.


"혹시, 그 현지인 구출 건에 저희 회사도 떡고물 받아먹을 건 없습니까?"


"ASIC 쪽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그쪽한테도 가는 활동비가 적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메가라가 패트릭의 요청을 가볍게 응수했다. VIP 경호 및 국지전에 특화된 블루라운드, 전면/대리전에 특화된 샐리맨더라면, 레드타워는 블루라운드와 샐리맨더의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ASIC의 정보력과 데이터 기술을 갖추고 있는 올라운더형 기업이었으나, 특화된 점이 데이터에 치중되어 있어 무리한 행동을 요구하긴 힘들었다.


"농담입니다. 그래도 요즘 골칫거리가 있으신 것 같다기에..."


"무슨 골칫거리 말이죠?"


"아, 말실수라고 하기엔 늦었나... 남아공 말고도 보츠와나에서 내전이 터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디까지나 저희 정보수집 기술이 뛰어나서 그런 겁니다. 아마 다른 언론사나 기업들은 아직 엠바고 때문에 모르고 있어요. 총...은 들지 마세요."


패트릭이 진정하라며 한 손을 들었다. 메가라는 행동을 감추려는 듯 허공에 멈춘 손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내전은 언제나 새로운 사상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죠. 사람들은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글쎄요. 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소련은 무너졌고, 군비가 축소되었어도 여전히 러시아는 건재하고 중국이 새로이 부상해 제 2의 냉전을 부르짖고 있으니까요. 아프리카는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중국이 서부 진출을 위해 제시한 국가급 정층 전략(国家级顶层战略) 정책이다.)의 꼭두각시가 된 땅이죠. 현 정부가 공화 민주 할 것 없이 중국의 아성을 제지하기 위해 연신 말을 아끼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고 해두죠."


"그런 즉, 지금 내전이 터지려는 그 이유가..."


"그 이유 중 하나가 일대일로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정책이 아프리카에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천문학적인 부채만 떠넘기고, 경제적 종속화를 일으키잖습니까. 다르게 말하면 돈의 노예로 만든다... 이말이죠. 혹시 지금 CIA가 보츠와나 내전이 터진다면, 누구를 지원할지 계획하고 있습니까?"



CIA는 현재 반군을 적으로 잡는 기조를 아프리카에서 취하고 있었다. 국가를 다른 나라에게 빼앗기게 된 반군의 분노는 정당했으나, 시위는 평화적이지 못했다. 남아공 정부는 CIA를 위시한 미국에게 중재를 요청했고, 샐리맨더가 현지에서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나마 민주적인 정부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기에 사상에 기반한 지원은 정부로 향할 것이었다.


"설마 반군을 잡는 건 아니겠죠?"


"반군이 승기를 잡는다 해도 결국 사람만 바뀌지, 사상이 바뀌진 않아요."


"그래요? 내가 기억하는 역사랑 다른가 보군요. 예컨대...'이간질'에 기반한 공작이 CIA의 특기 아니었습니까?"


간단할 텐데, 패트릭이 어깨를 으스대며 말했다. 재스민은 그저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메가라는 재스민이 실어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지금부터라도 반군에 친미 성향을 가진 사람을 심어서 물자를 지원하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각해 봐요. 제 1의 냉전은 동유럽의 목 밑에 칼을 비집었고, 냉전이 잉태시킨 열전은 아시아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 2의 냉전은 첫 번째보다 조용하지만... 터진다면 볼 만할 겁니다. 월가에서 비명을 지를 지도요. 배경도 나쁘지 않네요. 우리보다 무너질 게 거의 없는 아프리카니까. 이 기회에 남아공과 보츠와나 수뇌부를 한번 갈아버리는 것도 좋겠네요. 그쪽 대통령과 총리가 중국과 일대일로에 우호적이지 않습니까?"


패트릭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체스는 끝나지 않았다. 도리어 아프리카로 판이 확장되었을 뿐이었다. 새로운 판에서 민주주의를 심어내기 위해 자라나는 사회주의라는 잡초를 새로이 뽑아내야 했다.


"이 정도면 저희도 끼워주지 않으시렵니까?"


옆에 선 웨이터에게 프렌치 토스트 한 조각과 커피를 주문한 패트릭이 메가라를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거즘 확신이라도 하고있는 것처럼, 그의 얼굴에 의심과 부정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한스, 메가라는 패트릭에게서 한스의 프로필을 보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거절할게요. ASIC과의 일에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좋은 정보를 주었으니, 그에 맞는 보수를 조만간 입금해 드리겠어요. 그러면 충분한가요?"


메가라는 패트릭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표정은 구겨짐 하나 없었다. 숨기고 있을지라도,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누설하지 않기 위해 예정에도 없던 보수 카드를 꺼내야 했다. 이 정도라면 그도 납득할 터였다.



"뭐어... 우리야 돈만 받으면 장땡이죠. 돈 앞에서 니편 내편이 어딨겠냐마는... 아, 아직 제 얘기 안 끝났습니다. 보츠와나 내전의 다른 이유를... 알 것 같거든요.



그는 은근히 만족한 듯한 눈치였다. 겨우 몇 마디 조언한 것으로 그에게 수만 달러 이상의 보수가 떨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 막 국가기관에 눈에 들어온 이상, 눈도장은 확실히 찍어두고 싶었다.


"먼저 일어나겠어요."


"쿠즈 가메에서 천문학적인 양의 석유와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지역의 채굴권을 두고 싸우는 나라가 있었더군요."


메가라가 코트를 챙겨 입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뜻밖의 말에 동작을 멈췄다.


"사실인가요?"


메가라의 말에, 패트릭은 두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옆에 앉은 재스민은 공허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메가라는 재스민의 시선에서 한심함을 읽을 수 있었다.



"뭐, 제가 '뇌 미식가' 출신이잖습니까."




모사드, 그중에서 '키돈'(암살팀) 출신인 그는 자신이 속했던 기관을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싶어 이른 은퇴를 결심했고, '야호로만'(통신감청 전문기술팀) 동료들을 설득해 레드 타워를 설립했다. 그의 말에 넘어간 야호로만 동료들은 수많은 사얀(공작 지역에서 모사드를 도와주는 유대인)들의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모사드에 준하는 유대인 네트워크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국장님이 들으시기에 흥미로운 정보들도 있는데."



"그 말이 진심이어야 할 거예요."


메가라는 다시금 자리에 앉아 패트릭을 노려보았다. 패트릭은 능글맞게 웃으며 마치 연설의 리허설을 하려는 듯 두 손을 세 번 비볐다.



"일단 저희가 알아낸 바로는 그곳에 100억 배럴의 석유, 그리고 8천만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다더군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이건 겨우 표면일 뿐이라는 겁니다. 또한 그곳에 중국과 러시아가 연루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보츠와나 정부는 채굴권을 쉽게 넘길 생각이 없어 보이더군요. 민주적인 민족주의자들의 정부인가 봅니다."


메가라는 생각했다. 미세하지만, 흩어졌던 퍼즐조각이 조금씩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두 나라 중 하나, 어쩌면 둘이서 내전의 배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요. 또... 보츠와나 쪽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습니까? 비상식적으로 많은 무기가 유통 되었다던가."



메가라는 라울과의 화상 회의를 기억했다. 메가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치 그걸 노리고 있었다는 듯, 그의 눈빛이 사뭇 매서워졌다.



"출처가 러시아일 겁니다."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어서 말해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니까."



"간단합니다. 우리 회사는 전신이 모사드이다 보니까, 암살과 납치에 특화되어 있죠. 아프리카 지역에서 떠오르는 신흥 무기상이 가진 재력의 근원에 대해 궁금해서 조사해 보았더니, 보츠와나의 야당 군벌에 무기를 납품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 무기상의 직업 이력에 아톤 법무팀이 있었고요."


"아톤?"



"네, 주가조작이란 표면적인 이유로 공중 분해된 기업 말입니다. 러시아 거잖아요? 원래도 파악 못했던 한스는 말 그대로 귀신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


"그 무기상 이름이 뭐죠?"


"이름이라기보단, 별명이 맞는 표현일 겁니다. 아파치, 아파치라고 불리더군요. 근데 이 친구, 뒤가 좀 많이 구린 것 같아요. 단순한 거래의 성격이기보단,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뭐 아무튼... 아톤 쪽을 조사해 보셔야 할 것 같네요. 이건 제 추측이지만, 중국 측은 일대일로 때문에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뭐, 우리는 반군을 지원하는 게 어때요?"



이란-콘트라 때(1987년 미국 CIA가 스스로 적성 국가라 부르던 이란에 대해 무기를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그 이익으로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반군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정치 스캔들) 처럼 말이예요. 패트릭이 웃으며 말했다.메가라는 뜬금없는 그의 주장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전면적인 개입은 백악관의 정책 흐름상 불가능했다. 겨우 지인의 구호 단체에 요원을 심어 소규모 팀으로 작전을 이뤄내야 할 정도로 현 정부의 대외 정책은 강경했고, 소극적이었다.


"그 정도 매장량이면 꽤나 짭짤할 텐데, 어차피 친미니 반미니.... 사상보단 돈이 먼저인 법이죠. 적당히 야당 인사를 구슬린 다음에 내전보다 작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겁니다. 피를 적게 흘리고, 더 많은 살을 취하자는 뜻이죠. 성공한다면 국장님에게도 적지 않은 돈벼락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만? 일대일로의 폐해는 이미 몇가지 케이스가 있으니, 그것으로 정부를 경직시키고, 야당을 고무시키며, 대중을 일깨워야죠."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패트릭은 종업원이 가져온 커피와 토스트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한 번 맡으며 말했다.



"제 얘긴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만한 정보까지 드렸으니, 그만한 보수가 있길 바래요."



커피잔을 들고 패트릭이 말했다. 메가라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져 가는 CIA의 국장을 흘긋 쳐다보면서, 군사기업의 CEO는 옆에 앉은 수석 연구원을 위한 샌드위치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리고 토스트를 자르며 입에 넣기까지, 그는 사기업도 아닌 국가기관들이 왜 AI를, 그것도 인격에까지 관여하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는 입 안에서 잘 뭉개진 토스트, 그리고 조금의 커피를 삼킨 후 무심하게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에겐 비명을 지를 입이 있었다.











27.

카산드라, 나예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맞아요. 공작을 할 거예요. 또 하나 더, 보츠와나 야당 정치인들의 프로필도 조사해서 내 책상에 올려두도록 해요.


그리고 H와 미팅을 잡도록 해요. 이를수록 더 좋아요.









28.



간단한 저녁 식사 이후, 안나는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에 들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안나의 신경은 곤두세워져 있었다. 겨울에 엮인 일이 있어서였을까, 안나는 첫 캠핑의 하룻밤을 긴장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오이는 싫다거어...."


안나의 품 속에서 꿈지럭대며 멜리사가 볼멘소리로 잠꼬대를 했다. 안나는 멜리사가 추위에 떨지 않게 담요를 멜리사 쪽으로 덮어준 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중간하게 잘 바에야 차라리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버스의 한 켠에 마련된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려던 안나는, 이미 누군가가 안나보다 먼저 커피 주전자를 들고 있는 걸 확인했다.


"제인?"


제인이 조금 놀라며 안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깜짝 놀랐어요..."


제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잔에 커피를 따랐다.


"안 피곤하세요?"


제인이 안나에게 물었다. 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호한 답변을 했다.


"너무 설레서 그런가... 잠이 통 안 오네요. 저도 커피 마실건데, 끓여주시겠어요?"


"음, 그냥 제가 운전할게요. 안나 씨는 아침에 아이들 챙겨야 하잖아요?"


제인은 대신 냉장고에서 캔 콜라를 꺼냈다. 안나는 하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잠이 들기를 택했다. 그 전까지 제인과 얘기를 하며 시간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안나가 운전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고, 제인은 운전석 옆 시트에 앉았다. 막상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짧은 적막이 흘렀고, 그 적막을 깬 사람은 제인이었다.


"겨울이 되니까, 악몽을 자주 꿔요."


"악몽?"


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캔을 딴 안나가 제인의 악몽에 관심을 가졌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저의 목을 조르는... 불쾌한 꿈이요."


"그 사람이 혹시..."


안나는 제인이 언급한 그 '누군가'를 알 것 같았다. 제인이 별 말을 꺼내지 않았다는 건, 안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 되었다.


"맞아요, 한스... 그 사람이 자주 꿈에 나와요. 안나, 혹시..."


"제인."


안나는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한스는 죽었어요. 그 별장에서 터진 소이탄에 불타 죽었어요. 내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믿어줘요."


당시 안나와 함께 있었던 팀원들도 심각한 부상을 입을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폭심지에서 천문학적인 확률로 복부 관통상으로 끝난 안나였고, CIA의 비밀 안치소에서 불에 타 죽은 한스를 목도했다. 한스는 죽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설령 살았다고 해도 사회적으론 죽은 놈이니까...뭘 어쩌진 못할 거예요."


안나가 제인을 안심시켰다.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을 떠올려 뻣뻣해진 입술을 혀로 적신 안나는, 지금은 커튼으로 쳐둔 버스의 앞 유리창을 조금 풀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또다시 버스엔 적막이 찾아왔고,
눈송이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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