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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팬픽] Whiskey Bonbon -23(上)

ㅇㅇ(14.32) 2021.03.13 05:07:52
조회 305 추천 27 댓글 6


하편은... 월요일에 마저 올라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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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거기다 이 여자하곤 더더욱. 엘사는 잔뜩 긴장한 안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혹시 추워요?”
“아뇨, 춥지는 않은데......”
“그럼 왜 이리 굳어있어요?”
“잠시만, 제가 사실, 이런 일에 서툴러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몸으로 하는 건 전부 자신 있을 줄 알았더니.”


엘사가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자신도 실력도 없어! 안나가 속으로 외쳤다.


“저, 미리 말해두겠는데, 기대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실망할 거예요.”
“겸손도 하시지.”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사실은 잘하죠? 엘사가 약 올리듯 말해도, 안나는 제자리에서 째려만 볼 뿐 별다른 응징이 없었다. 그때서야 엘사는 안나가 실로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임을 직감했다. 


“그럼 정말로.....?”
“얘기했잖아요......”


......스케이트 탈 줄 모른다고! 안나는 안전대를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는 양 꽈악 붙들었다. 그리고는 후회했다. 어쩌자고 나는 얼음조각을 보러가다 얼음판 위에 있게 된 걸까?


사연은 이러했다. 하하호호 마켓을 쏘다니던 두 사람은, 바비큐 부스에서 순록고기를 팔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서 가까스로 본분을 기억해냈으며(“저거 봐요, 크리스토프가 봤으면 통곡했겠다.”, “크리스토프가 누구죠?”, “알잖아요, 지금 가게 봐주고 있는...... 맞다, 우리 가게!”), 친구 잘못 만난 죄로 고생하고 있을 둘을 위해 음식이라도 사다 바쳐 우정의 금을 메워보려는데, 봉투를 건네받자마자 달려드는 갈매기 떼거지를 피해 정신없이 도망쳤더니, 발이 멈춘 곳에 아이스링크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 거기까지만 해도 감당할 수 있는 탈선이었다. 다만 엘사가 아이스 스케이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과, ‘커플 할인’이라는 문구가 시너지를 일으킨 것이 문제였지. 엘사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안나를 향해 ‘자기야, 저거 타자.’라는 폭탄을 투척했고, 정신을 차리니 둘은 어느덧 빙상장에 입장하고 있었다.


“우선 장소를 옮겨요.”


안전바와 한 몸이 된 안나를 살살 떼어내며 엘사가 말했다. 갓 태어난 아기 사슴과도 같은 생초짜를 가르치려면, 사람이 많은 가장자리보단 비어있는 중앙이 낫겠단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안나는 격렬히 저항했다.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는데 어떻게 가냐구요! 안나가 설움에 겨워 소리쳤다.


“앞으로 가는 법부터 알려줘요, 제발!”
“방향키라도 눌러보지 그래요?”
“......여기서 나갈래!”


나가는 법은 알고? 엘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안나의 팔을 잡은 채 중앙으로 이끌었다. 아이스링크 한복판에 유배당할 낌새에 안나가 패닉했다. 살려줘! 집에 갈래! 엄마한테 이를 거야!


“이제 그만! 너무 멀리 왔잖아요!”


이는, 안나에게 있어 엉금엉금 기어나가기에도 벅차단 뜻이었다. 알았어요. 엘사는 순순히 안나를 놓아주고 한 발치 거리를 띄웠다. 안 돼, 버리지 마! 엄마와 떨어진 새끼 코알라처럼 안나가 잽싸게 엘사의 등에 달라붙었다. 엘사는 원데이 스케이트 클래스가 순탄치 않겠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래서, 걸음마부터 알려드리면 되나요?”
“그냥 이대로 붙어 다니면 안 될까요?”
“그럼 실력이 안 늘잖아요.”
“넘어져서 다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다들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예요.”


싫어! 아프잖아! 무서워! 붙잡힌 허리가 점점 조여들자 엘사마저도 겁을 먹었다. 알았어, 잡아줄 테니까 일단 이것 좀 놓고 얘기해요! 그제야 안나가 둘둘 감긴 팔을 풀어 앞으로 내밀었다. 엘사는 그대로 도망치는 건 어떨지 3초 정도 고민했으나, 닥쳐올 후환이 두려워 순순히 손을 맞잡았다.


“자, 천천히 앞으로 나와 보세요.”
“어, 어떻게요?”
“일단 무게중심을 낮춰서- 아니아니, 주저앉지 말고! 네, 그대로 유지하시고. 한 번 평소에 걷는 느낌으로 미끄러져보세요. 발목은 꺾이지 않게.”


걷는? 느낌으로? 미끄러진다? 생전 처음 듣는 단어라는 듯이 안나가 엘사의 말을 반복했다. 우리 친구, 어디가 이해 안 돼요? 엘사가 상냥한 선생님을 이미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순 아닌가요?”
“친구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안나는 자신만의 논지를 펼쳤다.


“자, 내가 앞으로 가고 싶으면 작용반작용의법칙에따라뒤로힘을주면서얼음을차고나와야하는 거잖아요,그런데얼음마찰계수가작으니까미끄러지듯이움직이게될테니관성의법칙에따라힘을앞쪽으로줘야하지않을까요?그럼앞으로가려면힘을같은방향으로줘야하는거예요,아님반대로줘야하는거예요?”


이게몬소리지? 엘사는 작용 반작용 부분부터 이해를 포기했지만, 눈부신 미소까지 잃진 않았다. 


“직접 해보면 어때요?”


어디, 그럼. 몸소 가설을 입증코자 손을 놓음과 동시에, 안나는 서서히 다리에 힘을 실었다. ......뒤로 가잖아? 당황하여 팔을 퍼덕이자, 그마저도 추진력으로 작용하여 안나의 몸은 중심으로부터 더욱 빠르게 멀어졌다. 엘사, 살려주세요! 엘사는 스케이트 영재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뒤로 가는 법부터 가르쳐야겠는걸.”
“아니, 멈추는 법이요! 지금, 바로!”
“나름 잘 가고 있는데 왜요?”
“안 보이니까 그렇지!”
“스키랑 비슷해요. A자로......”
“이, 이렇게요?”


쨘. 안나는 다리를 벌린 채 양손을 머리위로 뾰족하게 맞댔다. 누가 봐도 완벽한 A자세였다. 아니, 손 말고! 발을 모으라니깐! 그러나 엘사의 외침은 닿지 못했고, 안나는 중심을 잃은 채 무너졌다. 아야야...... 엉덩이를 붙잡고 신음하는 그녀의 곁에 엘사가 스윽 미끄러지며 다가왔다.


“넘어지는 자세만큼은 완벽했어요.”
“......칭찬 고맙다.”
“그래도 조금만 손보면, 금방 배우겠는데요? 이번엔 앞으로 해봐요.”


또요? 아무래도 엘강사의 커리큘럼을 따라가다간 엉덩이가 네 쪽이 될 것 같았다. 안나는 울먹이며 호소했다.


“그냥 저는 밖에서 지켜보면 안 될까요?”
“엄살 피우지 말고 어서 일어나요.”


엄살 아닌데! 안나는 진정 울고 싶었다. 정말 기어서 나가는 수밖에 없나? 아님 모르는 사람 등에 매달려? 그래도 아는 사람이 낫겠지? 안나는 일어나자마자 엘사가 내민 손을 비껴 그녀의 무스탕을 꽉 움켜쥐었다. 엘사는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얘가 또 왜 이래! 엘사가 안나의 손등을 찰싹찰싹 쳐냈다.


“손을 잡으라니까, 자꾸 이상한 걸 잡고 있어!”
“입구까지만 가줘요, 제발!”
“제가 무슨 택시예요?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가는 것까지만 해봐요, 우리.”
“뒤로 간 걸로 퉁쳐주심 안될까요?”
“원리는 비슷하니 금방 터득할 거예요.”


그러니까! 그 원리가 뭔지 모르겠대도! 하지만 이 이상 징징거리기엔 자존심이란 것이 있어, 더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안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서 손을 풀었다. 엘사가 등을 돌려 마주보는 자세로 손을 붙잡았고, 이어 천천히 미끄러지며 안나에게 당부했다.


“우선 제가 끌어줄 테니, 처음은 미끄러지는 느낌 위주로 익혀둬요.”
“뒤로 탈 줄도 알아요?”


안나가 놀라워했다. 엘사는 대답 대신 ‘너도 아까 했잖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썹을 치켜들었다. 안나는 주눅 들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그러면, 한 발로 타는 건요? 공중 3회전 스핀도 할 수 있어요?”
“자꾸 딴소리하면 손 놓을 거예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동작에 집중하세요.”


먼저, 스텝부터. 뒤꿈치에 힘을 주면서 미는 거예요. 엘사가 말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엘사가 부르는 숫자에 맞춰 안나가 다리를 번갈아 움직였다. 뭐야, 할 만 한데? 곧잘 움직이게 되자, 동작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좋은데, 한 번 혼자서 해볼래요?”


뭐라구!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안나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지만, 엘사는 그대로 홀로서기를 감행시켰다.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안나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엘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느리기가 굼벵이 기어가는 수준이었다. 잘못 말한 거겠지? 엘사는 안나의 뒤로 다가가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도와달란 말씀이세요?”
“그래!”


아하, 더 빨리 달리고 싶었나보다! 엘사는 안나의 요구사항(?)을 접수하고, 소원대로 등을 훅 떠밀었다. 악, 미쳤나봐! 안나는 저항할 새 없이 쭉쭉 밀려나갔다. 경황없는 와중에도 엘사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안나가 악에 받쳐 외쳤다.


“야, 이 새디스트야!”
“안나, 앞에, 앞에!”
“그래, 앞으로 가고 있잖아, 누구 덕분에!”
“그게 아니라, 사람 조심하라고요!”


사람? 안나가 머리를 돌리자,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커플들이 코앞에 닥쳤다. 안 돼! 할 줄 아는 건 직진 주행 뿐, 그야말로 핸들도 브레이크도 없는 자동차나 다를 바 없는 안나에겐 너무나도 벅찬 시련이었다. 아니지, 브레이크는 있잖아! 안나는 패닉 속에서 A자 정지를 기억해내고, 그대로 실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행히도 발뒤꿈치를 모아버린 탓에, 그대로 다리가 쭈욱 벌어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그녀가 애타게 부르짖던 관성의 법칙으로 인해 앞에 있던 커플들을 모조리 습격하여 연쇄추돌사고가 일어나고야말았다.


신음으로 아수라장이 된 빙판 위에서 안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발 수업 끝났다고 말해줘요.”



*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한 건 처음이에요.”


으으, 좀 전에 벌어진 인간 볼링쇼를 떠올리며 안나가 몸서리쳤다. 죄송해요. 엘사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바라신다면 저를 인간 썰매개로 취급해도 좋아요.”


개같은 소리하고 있네...... 안나는 무시하려 했으나, 호기심 차원에서 짚고 넘어가고픈 부분이 있었다.


“그럼 뭘 해줄 수 있는데요? 마당 경비?”
“뒤에 매단 채로 빙상장 40바퀴 돌기.”


필요 없다는 듯 안나가 이맛살을 찌푸리고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마 우리 둘 다 블랙리스트로 찍혔을 테니, 사십은커녕 반바퀴 돌기도 전에 쫓겨날 성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나는 꿈에 그리던 땅을 디뎠다.


“땀을 흘렸더니 춥네요.”


나름 운동했다고 말이지, 안나가 자조하며 손을 맞비볐다. 그 모습에 엘사가 가증, 아니,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손이 얼었어요?”
“네, 장갑도 없이 얼음판을 굴러다녔더니......”


잠깐만, 혹시 이건 스킨십으로 흘러갈 조짐인가? 안나의 설레발 세포가 유난을 떨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럼 겨드랑이에 끼고 계세요.” 였다. 오냐,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안나는 침착하게 싱숭생숭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래, 잠깐 빌릴게요.”
“아니, 내 거 말고!”


성인 여성간의 유치찬란한 모습이 시선을 끌었는지,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뎌졌다. 그리고 개중엔 둘을 알아보는 지인도 섞여있었다. 어쩌면 이토록 좁은 동네에서 여태 마주치지 않은 점이 신기할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눈에 보이는 장면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지, 당혹스런 어조로 엘사의 이름을 불렀다.


“라이언 양?”


......그리고 옆은, 차일드 씨의 따님? 정체가 발각되자 두 사람은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동시에 굳어졌다. 우리 아빠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지? 안나가 두려워하며 삐걱삐걱 고개를 돌리자, 시선 끝에는 북클럽 회장인 마티아스와 그의 짝이 있었다. 안 돼! 안나의 머리위로 벼락이 내리쳤다. 혹시 아빠도 여기 계신 거 아냐? 안나가 초조하게 주변을 탐색하는 동안, 엘사가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이, 이런 데서 다 뵙네요, 회장님.”
“산책길에 잠깐 구경하던 중이었는데......”


두 분도? 회장이 손바닥을 펼친 채 엘사를 가리키자, 그녀의 입에서 술술 극비가 흘러나왔다.


“아뇨, 저희는 근처에서 함께 일을......”


그러나 다행히도 보안은 지켜졌다. 누가 누구에게 허리께를 꼬집힌 탓이었다. 옆구리를 움켜잡은 채 신음하는 파트너 대신 안나가 나서서 수습하기 시작했다. 절대 우리가 꽁냥대고(?) 있었단 사실이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안 돼!


“근처에서 우연히,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 그래서 함께 있는 거구요!”


그러니까, 제발! 안나가 목 놓아 애원했다.


“아빠한테 저희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비밀로 해주세요!”


마티아스와 헬렌은 지긋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마치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지’, 혹은 ‘젊은 것들이란’ 등을 내포하는 양. 그가 푸근한 미소를 흘리며 안나를 안심시켰다.


“알았어요, 여러분이 어디에 뭘 넣고 있었는지 전하지 않을게요.”


그게 더 이상해! 안나가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차라리 본 대로 말하는 편이...(ex. ‘따님분들이 길 한복판에서 겨드랑이에 손을 쑤셔 넣고 있더라고요.’) 아니, 이것도 이상한데! 안나는 모르는 게 특상책이란 격언을 또 한 번 되새겼다.


“그냥 모른 척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제발제발제발제발요! 안나가 애걸복걸 매달렸다. 그, 그래요. 마티아스가 주춤거리며 대답했다. 정말이죠? 꼭이에요, 꼭! 광기와도 가까운 집착에, 회장 내외는 거듭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럼에도 안나는 여간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내가 몰랐다 뿐이지, 혹시 스쳐간 사람 중에 엄마나 아빠가 계셨던 건 아닐까? 안나는 혹시나 하는 맘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다행히 부모님(※특히 이두나)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허나 부재중 전화 기록이 13통이나 찍혀있었다. 발신인은 크리스토프였다. 안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맞다, 가게!


“당장 가야겠어요!”


딴 길로 새지 말았어야 했어! 안나는 돌아가면 무조건 싹싹 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뇌물, 아니, 음식은 어쨌지?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으로 두었던 곳을 바라보자, 갈매기 떼가 들끓고 있는 모습에 이미 운명을 달리했음을 짐작했다. 새로 사야겠죠? 엘사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하지만 장르가 루프물로 바뀔지도 모른단 생각에,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가요!”


안나는 엘사의 팔목을 낚아채고, 다리 건너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부스와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테이크아웃 잔이 그녀의 시선을 속속 사로잡았다. 두 사람의 가게에서 판매 중인 핫 토디였다. 손님이 꽤나 많았나본데? 안나는 내심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삐 시달리고 있을 친구들을 위해 속력을 올리려는데, 마침 옆을 지나는 관광객 무리에게서 무시하기 힘든 말이 들려왔다.


“맛이 없진 않은데, 아쉽네......”


뭐라고! 안나의 귀가 쫑긋 섰다. 안나는 발을 멈추고, 그들의 뒤를 살금살금 밟았다. 무슨 일 있어요? 엘사가 의아해했다. 쉿! 안나는 검지를 입에 대며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피드백이 얼마나 귀한데! 안나는 집중하는 표정으로, 그들 간의 대화에 가만히 주의를 기울였다. 개중 누군가가 비아냥거리듯이 말을 받았다.


“왜, 기대했던 점원이 아니라서?”
“그것도 그건데, 여기서밖에 먹을 수가 없잖아.”


하다못해 분말이라도 팔면 좋을 텐데. 그녀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사실 액체인 것도 좀 그래. 기념품으로 사가려면 고체인 편이 낫지.”


그럼 잔뜩 사갈 텐데 말이야. 이 말은 안나에게 쐐기가 되었다.  그녀에겐 나름대로 자신작이었겠으나, 그것에 얽힌 사연을 모든 이가 알아줄리 만무했다. 여태 방향을 잘못 잡고 있었나? 잃어버린 고객만족과 ☆매출☆에 미련 섞인 눈빛을 뚝뚝 보내고 있는 안나에게, 엘사가 나직이 위로를 건넸다.


“직접 녹이는 방식이니 어쩔 수 없잖아요.”


그대로 얼려서 팔수도 없고. 엘사가 농담조로 덧붙였다. 잠깐만, 얼린다고? 안나의 뇌리에서 연결고리가 차례차례 이어졌다. 일부러 얼리지는 않더라도, 처음부터 굳혀서 만든다면? 가나슈에 알코올을 섞으면 비슷한 맛이잖아! 아님, 필링으로 채우는 건 어때? 그래, 위스키 봉봉처럼!


일단 맛보기라도 내놓고, 반응을 볼까? 안나의 눈동자에 다시 희망이 찰랑이기 시작했다. 지금 가서 준비하면, 내일까진 완성할 수 있을 거야! 엘사는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는 파트너를 경계하는 듯이 쳐다보았다. 요 꼬맹이가 또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엘사의 불안한 예감은 대개 그렇듯,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엘사,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들어나 보고?”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데, 먼저 집에 가도 괜찮을까요?”
“뭐라구요?”
“제발, 이 기회를 떠나보내고 싶진 않아요!”


안나는 반쯤 무릎까지 꿇고 사정사정했다. 부탁이에요, 제 아기※를 만나게 해줘요! (※안나어 번역: 초콜릿) 그리고 그 아인, 당신 아이※이기도 하다구요! (※안나어 번역: 술) 수수께끼와도 같은 발언에, 역시나 주변에선 가차 저널리즘이 팽배했다. 저게 그, 요즘 유행하는 광공인가벼? 그려, 그려. 그 있잖어, 뭐여, 임결육? 임신튀? 임모티콘? 어휴, 할아머니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들으셨어요! 그리고 저런 사람은 그냥 상종 못할 쓰레기라고 하는 거예요~


뭐라구? 아니야! 엘사는 또다시 트라우마에 사로잡히려다, 간신히 정신을 추슬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하고 일어나요!”
“정말? 그럼 가도 괜찮은 거죠?”
“대체 무슨 일이길래......”


맞다, 참! 안나가 의도치 않게 엘사의 말을 끊었다.  


“혹시 가게에 가져다 둔 위스키 중에, 아직 새 것도 있나요?”


아마도? 엘사가 미심쩍은 투로 대꾸했다. 좋아요! 안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끝나고 그것도 가져다 줄 수 있어요?”
“가져오라고요? 어디로요?”
“저희 집이요!”


어딘지는 이미 아시죠? 엘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를 승낙의사로 받아들인 안나는 “고마워요, 그럼 이따 봐요!”라는 말과 함께 저 멀리로 사라졌다.


아까는 분명 ‘부탁 하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엘사가 멍한 눈빛으로 안나가 떠난 자리를 주시하다, 문제는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방금, 집으로 오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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