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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Lullaby - 48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31 00: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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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시간이 흐르고, 홀짝이는 소리도 어느새 멎어 있었다. 영혼은 잠시 창 밖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엘사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 조금 낫지?”


  엘사는 컵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파르르 떨리던 그녀의 손도 이제는 진정된 듯 싶어 보였다. 컵에 담긴 물을 마시는 순간, 그녀를 괴롭히던 걱정과 자책이 물과 함께 녹아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 미안해요,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엘사는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일어났다. 컵을 다시 탁자 위에 올리고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럴 수도 있지, 처벌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는 것이 정상이니까. 하루… 하루째라고 했나? 무슨 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


  엘사는 고개를 숙이며 씁쓸한 자책의 웃음을 보였다. 그는 그녀를 어떻게든 위로하려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비참해지기만 하고 있었다. 


  “... 미안. 젠장, 남을 위로하는건 진짜 못해먹겠단 말이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엘사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가 전해준 물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까지 우울하지는 않았다. 아직 무너지기에는 너무 일렀다. 적어도 안나에게 가서, 안나를 볼 때까지는 이겨 내야만 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일단 답을 좀 해주지 않겠어? 조사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말이야.”


  “... 네? 무엇을…”


  “아까 물어봤던 것들. 어떻게 죽었는지, 무슨 죄를 지은 건지…”


  “아…”


  엘사는 잠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죽음, 낯선 단어였다. 비록 자신이 죽은 자들의 세상에 와 있긴 하지만, 자신은 살아 있었다. 자신은 언젠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였다. 


  이걸 말하긴 조금… 낯부끄러운데.


  엘사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깊은 동굴 속에서, 먹을 것도 뭣도 없이 버티다 결국 죽고 말았어요. 그것도, 유일하게 남은 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이에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나 보네. 하긴, 나도 그랬었으니까…”


  “... 다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텐데.”


  “엘류드니르, 흠뻑 젖은 세상… 생명과 침묵, 이별과 환락의 죄를 심판하는 곳. 역시 맞네.”


  “...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아, 조금 이따 이야기해 줄게. 그나저나, 네가 죽기 전에 말이야.”


  “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러니까 막, 어떤 나라에 무슨 큰 전쟁이라도 일어났다거나.”


  “음, 그게…”


  엘사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안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빠져나왔던 일을 굳이 말을 해야 할까? 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터였다. 


  “... 아뇨, 없었어요. 적어도 제가 살던 나라는 평화로웠던걸요.”


  “흠, 그래? 그러면 어딘가에 전쟁이라도 난 것인가… 아니, 그건 또 설명이 안 되는데. 내가 죽은 뒤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잠깐, 기억이 있어?


  엘사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센트니세에서 살아가는 영혼들과는 다르게, 저 영혼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흠, 아, 맞아. 엘류드니르를 모른다고 했었나?”


  “네? 아, 네.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엘류드니르는 도시의 이름이야.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살게 될 이 도시 말이야. 죽은 사람은 벌을 받고, 자신의 죄를 뉘우친 사람은 이 곳- 엘류드니르에 오게 되지. 직접 겪어 보니까 끔찍하더라. 내 잘못을 내가 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겪었을 슬픔과 고통을 내가 직접 겪어 보니까 말이야.”


  “만약, 죄가 없다면요…?”


  “죄가 없다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


  그는 한번 피식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뭐, 만에 하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면 곧바로 여기에 오지 않을까? 아니면 뭐, 다른 곳으로 가던가 하겠지. 여기는 아까도 말했듯이 생명과 침묵, 이별과 환락의 죄를 심판하는 곳이니까.”


  “생명, 침묵? 이별과 환락…?”


  “그래.”


  그는 말을 하면서 목이 타는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른 영혼들에게도 똑같이 물어봤는데, 전부 저지른 죄가 비슷하더라. 생명의 탄생을 해친 자, 침묵으로 방관한 자, 이별로 눈물을 흘리게 한 자, 정신을 더럽힌 자. 그 죄인들이 이곳에 모이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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