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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Arens Of Sheffield 23~24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11 20:27:36
조회 532 추천 2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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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65.

한나가 '직접' 만들었다는 라자냐는 의외로 다른 가족들의 호평을 받았고, 제인과 벨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라자냐 접시를 깨끗이 비워낼 수 있었다. 다시금 찾아온 저녁 속에서 아이들과 엘사, 그리고 한나의 왁자지껄한 대화의 나뭇가지가 우거진 버스 속에서 벨은 제인과 함께 버스 밖에서 간이 의자에 앉아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아렌이라는 접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은 직선의 관계는 아니었다. 한 번 걸쳐 알음알음 알게 된 사이라 대화 주제를 무엇으로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두 사람이었다.


"벨라 일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버스 밖 바람 속의 침묵을 가른 건 제인의 한 마디였다. 그 말 한 마디에서 벨은 여러 가지 의미를 도출할 수 있었다. 안나에게서 부작용이 발견되었고, 이두나도 잠재적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그보다 더 허약한 아이에게 시약도 아닌 능력을 부여시키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다시금 돌아보면, 애초에 발상 자체가 위험한 것이었다. 그저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 때문에 모든 지식과 논리를 무시해 도리어 아이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길 뻔 했다.


"담배 있나요?"



벨이 제인에게 물었다. 제인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서로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만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인은 벨이 음주는 할지라도 흡연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제인은 자주는 아니어도 이따금 집에서 혼자 피워대곤 했다.


"담배도 피는군요... 처음 알았어요."


"벨라를 임신하자마자 끊었죠.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버텼는데. 지금은 좀 못 버티겠네요. 있으면 한 개비만 주시겠어요?"


제인은 잠시만요, 라고 말하고 자신의 커피 머그잔을 벨에게 밑긴다음, 버스의 트렁크를 열고 가방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가져왔다. 휴가인 만큼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 피울 일은 없었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자신도 피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혼자 피는걸 지켜보기에 따른 무안함을 제인은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제인이 벨에게 담배를 내밀고, 자신의 담배를 빼 입에 물었다. 곧이어 둘 사이에 피워진 한 가닥의 불 속에서 담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들에게 안 좋을 텐데."


"어쩌겠어요. 이따가 캠프 파이어로 냄새가 묻힐 거예요. 안 그래요?"



벨이 머그잔을 다시 제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이미 피어오르는 담배 향을 다시 끌 의지는 지금 당장 두 사람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버스의 창문과 문도 닫혀 있었으니 피워도 상관 없으리라.



"아이한테 무관심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엔 벨이 말을 꺼냈다. 다시 얼기 시작하는 로몬드 강을 보던 제인의 시선이 다시 벨로 향했다. 제인이 알게 된 새로운 벨의 모습이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이혼을 했죠. 전 당시에 애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보시다시피, 제 직업이 무언지 아시잖아요. 편모가정이어도 넉넉하게 살아가려고 일에 집중했죠. 근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벨이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담배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벨이 연기를 내뿜자, 자연스러운 바람이 담배연기를 날려보냈다.


"신이 죽은 게 분명해요."


"네?"


제인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손엔 커피잔, 다른 손엔 담뱃개비를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퇴폐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살아있다면, 우리부터 구원하지 않았을까요?"


벨이 말했다. 제인은 반쯤 동의했다. 종교를 믿지 않는 그녀였지만, 한편으로는 종교는 그저 인민의 아편이란 저명한 이물의 말을 부정하고 있었다.  종교를 통해 무언가 노력과 용기가 되는 점에서 반쯤은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녀는 지금 딸을 잃을 상황에 처한 한 어머니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죠? 벨라의..."


제인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빛나는 노을을 벨의 눈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노을은 자연스럽게 번져 있었다.


"길어봤자 한달 남짓이예요."


"아..."


제인이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제인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화기애애한 아렌들의 희미한 대화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이 벨라에 대한 일을 잠시 잊은 듯 하다고 생각했다.


"즐거워 보이네요."


"하지만 저들도 안타까워 할 거예요. 특히 엘리사와 멜리사는 벨라를 만나고 싶어했는데, 벨라가 런던으로 오지 않는 이상 아렌가의 사람들은 영국을 나갈 수 없어요."


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CIA와 MI5, CTFSO와 런던 무장경찰의 경호 하에 그들은 일상적인 비일상에 녹아들어 있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설령 벨라가 런던으로 온다고 하기엔, 몸에 찾아올 무리 또한 고려해야 했다.


"어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벨이 어느덧 다 피워 필터만 남은 담배를 떨어뜨려 발로 비벼 끄고는, 이제는 코발트와 붉음의 한가운데를 비추는 로몬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벨의 휴대전화에서 문자음이 한 번 울렸다.


"잠시만요."



벨은 제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제인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신분이 CIA 소속인 만큼 사소한 정보도 비밀리에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휴대폰을 열자, 메세지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벨은 그만 다리가 풀려 주저 앉을 뻔 했다. 그녀가 수신한 메세지에는 병실에 누워 있는 벨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누가 사진을 찍은 것일까? 스카? 아니면 심바? 단순히 상태 보고를 위해 메세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보고를 했더라면, 전화로 직접 했을 사람들이었다. 벨은 곧바로 스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이번에는 심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부장님?]


심바의 명랑한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울려퍼졌다.


"방금 전 메세지, 당신과 스카가 보낸 건가요?"


[무슨 사진 말인데요? 저흰 사진 같은 거 안 찍어요. SNS에 빠져사는 것도 아닌데. 대체 뭐길래 그래요? 삼촌은 지금 저랑 교대해서 주무시고 계시는데, 저한테 얘기해 주세요.]


벨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를 하고 심바에게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의 각도와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려주자, 심바는 사진을 찍은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잠시 통화를 끊었다. 2분 뒤, 심바에게서 전화가 찾아오자, 벨은 번개처럼 전화를 받았다.


[꽃병에 심어진 난에서 초소형 카메라가 발견되었어요. 병원 간호사들에게 물어보아도 언제부터 거기 있었다는지 모르겠다더군요.]


"CCTV 조회부터 먼저 시작하고, 당신을 제외한 화분에서 발견된 모든 지문들을 체취해서 검사를 해봐야겠어요."


그러자 심바가 난처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CIA 부속 의료병동인데, 같은 요원들을 조사하자니, 마음이 좀 걸리네요.]


심바의 말이 맞았다. 의료병동이어도 같은 한솥밥을 먹고 사는 요원들이었다. 하물며 내부조사를 감행하자는 것은, 시민의 기본권에 침해되는 활동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CCTV만 조사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경비 요원을 확충해 병실을 지키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가습 테스트 건은 정말로 안 하는 건가요?]


"안 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거예요. 안나 씨에게서 부작용이 발견되었어요. 그것도 심각한 부작용을요."


[거기까지 묻는 건 실례겠죠. 네, 또 전해드릴 말은 있나요?"


"벨라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통화를 마치고, 벨은 다시금 메세지를 확인했다. 메세지의 서문, 그리고 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따님을 살릴 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127번가 노스웨스트 도로와 103번가 노스웨스트 도로의 교차선, 1주일 뒤 오후.
48.90869009027992, -103.48903591776998

-PS




66.



[오, 대표님. 휴가는 잘 즐기고 계시는 중인가요? 뒤에 있는 링거랑 환자복은 또 뭔가요. 너무 열심히 놀으셨나?]


소란 속에서 평온한 아랍계 남성의 유쾌한 목소리가 안나의 고막을 휘갈겼다. 안나는 자신이 웹캠의 오디오 볼륨 조절을 잘못 설정한 것을 깨닫고 소리를 줄였다. 안나는 현재 CIA 부속의 의료병동의 1인실에서 입원 수속을 마쳤다. 이두나는 동시에 옆 호실에서 입원 수속을 마치는 중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부탁해 이 황량한 병실을 어떻게든 사무실로 오해하도록 꾸며야 했다. 생각나는 사무실용 비품은 오후 중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며, 안나는 병실 침대에서 노트북으로 남아공과 보츠와나 국경에서 구호단체 EML을 현장 지휘하고 있는 관리자 라울에게 보고를 받으려 하고 있었다.


"아뇨, 독감에 걸렸나 봐요. 좀 잔병도 있다고 해서 기왕 입원치료를 좀 할까 싶어서요."


[의욉니다. 평소엔 병 하나 걸리지 않던 대표님이 갑자기 이렇게 아프시니, 아무래도 저희 감독들 역할이 더 무거워지지 않을까...]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여기서 당신들을 감독하고, 지시를 내릴 예정이예요. 그래서 남아공은 현재 어떤가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라울이 화면 아래를 보며 손을 바삐 움직였다. 사그락거리며 종이 스치는 소리와, 바깥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들려왔다. 구호단체의 일원인 만큼, 난민들의 절망이 담겨있을거라 안나는 생각했다.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디서 흘러들어온 건지 몰라도 무장을 한 난민 단체가 나타나 독자적인 캠프를 만들더니, 저희 단체의 물품을 빼앗고 있어요. 또 보츠와나 쪽도 지금 심상치 않습니다. 보츠와나에서 대규모로 발견된 다이아몬드 광맥에 중국이 보츠와나 정부와 채굴권을 사이에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고, 여기에 미국이 끼어든다는 소문이 돌더군요.]


단순히 남아공 상황만 집중할 수 없다 이말입니다. 라며 라울은 덧붙였다.


[남아공에 있는 미국 현지인들은 90% 가랑 대피시킨 것 같더군요. 샐리맨더 사의 정보원이 전해 달라더군요. 덩달아 영국 시민들도 추가로 구출했습니다.]


"잘 했어요. 라울, 아마 총리님께서도 당신의 행동에 찬사를 보낼 겁니다."


[하, 시민권 받은 값은 똑똑히 해 둬야죠.]


라울은 블루라운드의 보통 입사 절차를 마치고 들어왔고, 안나가 직접 그와의 면접을 가졌다. 안나는 그의 출신을 보고 그를 고용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 출신인 그는 안나의 EML의 활동을 안전케 하는 정보 수집에 탁월한 인재였다. 또한 그는 밝힑 수 없는 MI5와의 흑색작전 도중에 고립된 상태에서 TAR21돌격소총  두 자루로 50명의 적군을 사살한 '정신나간 요원'으로 총리에게서 직접 훈장과 시민권, 그리고 여왕에게 작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현재 이중 국적이었지만, 영국을 더 사랑했고, 영국 시민이자 애국자로써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희 캠프에 경호 인력을 좀 보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껏 저희가 무경호 원칙을 중시했고,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장 단체가 나타났다면 자칫하면 난사로 벌어지게 되고, 국경의 특성상 보츠와나와 남아공 간의 무력 충돌로 세상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UN의 조사국 요원들도 간신히 막아내고 있는 와중에 총성이라도 들린다면... 저들은 그 소리를 토대로 소설을 써낼 겁니다.]


안나는 그의 말에 의중을 이해했다.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사건의 내막이 와전된다면 와전시키는 주체를 제재시켜야 했다. 그리고 제재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는 안나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저희 어머니와 필립스에게 한 번 요청해 볼게요. 좋은 소식이 있을 거예요. 이 일이 끝나고 나면 휴가라도 줄 테니 어디 섬에라도 가서 좀 쉬어야 겠어요."


[쉴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 밥벌이는 하고 살아야 하는데. 어디 아르바이트라도...]



"아르바이트라면, 저희 어머니 밑에서 일하시면 되겠어요. 간단하죠? 끝?"


안나의 간단한 해결책에 라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브렉시트 때문에 취업도 안 되는데, 저는 운 좋게 낙하산이라도 타보게 되는군요.]


"모사드 출신인 당신을 놓친다는 게 이상한 거예요. 보석을 그냥 하수구에 버리는 것과도 같죠."


[가장 아쉬운 건 울프독의 죽음이죠. 참, 대체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런 미친 짓을 한 건지.]


울프독, 그것은 안나가 1년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업계의 별명이었다. 안나는 현재 CIA에서 죽음으로 위장된 채 살아가고 있으며, 그녀의 프로필을 기밀이 해제되기 직전 국장이 된 메가라의 권한으로 모두 소각되었다. 신원 처리가 된 후, 에리얼이 전한 울프독의 실종에 대해서 킬러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톤이란 기업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 단신으로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죽고 말았다.'


'CIA의 맨헌터(암살자, 인간 사냥꾼) 요원과 헌터킬러와 고스트를 통해 탈주한 울프독을 죽였다.'




'아이들을 구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다 죽었다더라.'


라는, 암살 루트와 방식을 생각하는 냉철한 암살자들 사이에서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진실은 안나와 아렌가의 사람, 제인, 그리고 CIA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미국의 파이브 아이즈 수뇌부들 뿐이었다. 모사드였던 라울일지라도 안나의 정체가 임무 완수율 100%의 킬러인 울프독인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또한 안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안나 브라이트이자 스칼렛 위커는 이제 없고, 안나 아렌이란 진정한 정체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울프독이었다는 사실은, 셰필드의 방 서랍 한 켠에 놓여진, 아직 효력이 있는 붉은 수첩 형식의 살인 면허증이 바로 그것이었다. CIA는 울프독이 죽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음에도, 안나의 면허증을 취소시키지 않았다. 이는 메가라가 직접 말했으므로 믿을 만 했다. 하지만 이유가 궁금했다. 왜 과거의 잔재를 남겨둬야 했을까?


'언젠가 다시 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그래.'



메가라는 단 한 마디로 안나의 의문을 종식시켰다. 보이지 않는 위협, 안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개체 1호와 2호, 그리고 3호를 아렌의 수양가족으로 맞이시켰지만, 이미 CIA를 포함한 중국의 인민정보부, 러시아의 GRU 등의 정보기관들은 능력의 대인저지력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수집했을 터였고, 안나가 그토록 싫어하던 능력, 혹은 아이들의 무기화는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안나는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라울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상의를 해서 그쪽으로 경호원들을 파견하는 걸 검토해 볼게요. 라울, 개인 무장은 챙겨 왔죠?"


[네, 레벨 3 방탄복과 플레이트, 그리고 옵스코어 헬멧에 러시아제 AKM, 필요에 따라 잭나이프도 챙겨 왔습죠. 다른 직원들도 기본적으로 기관단총으로 무장하라고 지시는 했씁니다만... 이 자들은 훈련이라곤 전무인 사람들이라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사격은 하지 말되, 사격 자세들을 잘 알려주도록 해요. 그 갱단 소탕부터 조용히 진행시켜야 할 테니까. 부득이한 도발로 인식되는 행위는 자제하길 바래요,"



[앉아서 구호물자를 뺏기는 게 내키진 않지만...뭐, 알겠습니다. 이만 통신 마치겠습니다.]



라울이 웹캠을 끄고, 화상통화가 끊겼다. 안나는 바로 옆 방에 있을 이두나에게 같이 식사라도 할 겸 링거를 링겔대에 걸으려고 했다. 때마침 수액이 흉년이 든 초원처럼 모두 빠진 상태였고, 안나의 손목에 꽂은 관에서 피가 조금 새고 있었다.









67.


"엄마가 당장은 힘을 쓰진 못하겠구나."


가족과 함께할 지라도, 병원의 밥은 영국 음식답게 끔찍했다. 결국 현지 요원의 조달 하에 저녁부턴 일반식을 먹을 수 있게 된 이두나와 안나는 병원의 중간 층에 나 있는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브렉시트 때문에 물가가 많이 올랐더구나. 우린 문제될 건 없지만, 중요한 건 치안이란다."


안나는 브렉시트가 최근에 활성화된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영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두나의 말대로 물가가 오를 것이며, 불안정한 사회는 치안이 필연적으로 나빠지기 마련이다. 이민자의 유입 또한 감소되며, 이에 따른 잠재성장률과 소비 지출 감소, 그리고 불확실성의 증대로 국내외적인 투자 또한 감소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호황인 사업은 분명히 존재했으니, 그건 바로 이두나의 블루라운드 같은 민간군사기업, 혹은 민간보안기업들이었다. 기업과 졸부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신변을 보호하기에 거리낌이 없었고, 부르는 게 바로 계약금이 되는 실정이었다.


"현재 거의 모든 현장 인력이 투입된 상황이라, 아프리카에 사람을 파견하진 못할 것 같아. 전에 말했던 네 선배들도 이젠 은퇴한 시점에서 부를 수조차도 없잖니."


"그럼 필립스에게 부탁을 좀 해 봐야겠어요. 얼만큼  지출을 요구할 지는 모르겠지만..."


안나가 끄응 하고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전 직장 상사는 현재까지도 안나에게 우호적이었지만, 그건 사업에 관련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사업적으로 안나와 엮인 적은 지난 1년 아래 한 번도 없었으며,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안나는 협상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안나는 몸을 쓰는 타입이었지, 먹물은 아니었다.


"평화유지군은 어떻게 생각하니?"


"그게 말이야 쉽죠, UN이 꼭두각시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되려 무슨 조약이니, 제네바 협약이니 해서 파견조차 꺼릴걸요?"


안나가 흐릿한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메가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낫다고도 생각했지만, 그녀  또한 남아공에서의 현지인 구출을 샐리맨더와 함께 공작, 지휘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투정을 부리는 건 캠핑과, 이번의 병으로도 충분히 족했다. 안나는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부에서 '필립스'라는 이름을 찾아냈고, 이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68.



"엄마, 저 왔어요."


"메그, 저녁은 못 먹는다더니 일찍 왔구나."


메가라가 집에 돌아왔을 때, 거실엔 여느 때와 같은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TV의 토크쇼 프로그램을 켜 둔채 흔들의자에 앉아 무언가 뜨개질을 하는 올리비에의 무릎에는 작은 고무탄 권총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에가라는 권총에 주눅들지 않았다. 올리비에가 그녀에게 적의를 가져서 그런 게 아니라,메가라가 그녀를 학습시킨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CIA 요원으로서의 삶을 언제까지나 비밀로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신분 노출이 되었다간 그녀의 어머니 또한 암살의 표적에 들어갈 수도 있었기에, 최소한의 무장은 당연했다. 메가라는 두손 가득 들고 온, 업무용 서류가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풀고 거실 한 가운데에 놓여진 테이블 위 케이크와 펴지에 시선을 주목시켰다.



"아까 그 꼬맹이가 두고 갔더구나. 그 에 말마따나, 너를 흠모하고 있대니 뭐래니?"



올리비에가 기분 좋게 호홍거리며 웃었다. 메가라는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연애게 관심이 없는 그녀였지만, 사소하게나마 일상 속의 비일상을 즐기게 된 어머니의 기쁨을 해치고 싶진 않았다.


"엄마한테 온 편지예요?"


"아니, 그 꼬마가 너에게 보낸 편지라더구나, 그게 그 러브레터인가 하는 건가보구나? 요즘 애들이란..."


올리비에가 메가라를 향해 흐붓이 웃었다. 부정하지 않기로 한 메가라는 편지봉투를 내려다 보았다. 꽤나 고풍스러운 문양으로 봉랍 처리된 편지는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올리비에가 고개를 끄덕이자, 메가라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고 편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는 편지의 내용을 읽고 얼굴에서 서글서글히 남아있던 미소를 순식간에 죽였다.




더 이상 날 추적하려 들지 마시길.


-PS.




69.


"아유, 나 귀 막을래애..."


멜리사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귀를 막았다. 엘리사는 시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신기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동행한 엘사와 한나, 그리고 오로라는 어떤 여우를 골라야 할지 생각중에 있었다. 캠핑에서 돌아오자, 예상했던 대로 이두나와 안나는 일부 짐을 챙겨 나간 뒤였다.


"이렇게 많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이름표가 있기에 망정이지 하나같이 활발해서 알아보기조차 힘들겠어요."


오로라가 수많은 케이지 중 하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케이지에 들어있는 여우 한 마리가 가만히 꼬리를 말고 자고 있다, 오로라의 인기척에 일어나 캥캥거리며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사긋이 웃는 오로라는 케이지에서 몸을 뗐다.


"아, 여우 알아보고 오신 건가요?"


다섯 사람의 뒤에서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귀를 막고 쭈그려 앉은 멜리사를 제외한 네 사람은 동시에 뒤를 돌아 보았다. 멜빵 바지를 입고 야구 캡을 쓴 남성이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소장 데이비슨'이라 적혀 있었다.


"네, 한 마리 키워보려고 하는데, 저희가 동물을 처음 키워보는 거라 쉽게 고르기 힘드네요."


"처음 키워보는데 여우를 키우신다? 좀 무모한 선택 아닙니까?"


소장이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우에 대해서 이런 말이 있다. 하드웨어는 강아지, 소프트웨어는 고양이라 할 정도로 여우는 활발함 그 자체였다.


"차라리 강아지 내지 고양이를 키우는 게 어떱니까? 제가 잘 아는 소장 친구가 있는데..."


"괜찮습니다. 아이들이 원해서 키우는 거니까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려는 소장의 행동을 한나가 말렸다. 그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이라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계획이 틀어진다면 아이들이 펑펑 울거나, 두 동물을 키워야 하는 엘사의 체력에 한계점이 있었다.


"와, 이 여우 엄청 하얘, 그리고 순해 보여."


"복실복실해 보여..."


두 아이는 동시에 한 케이지 앞에 멈춰 서서 안에 든 여우에 대해 평가를 했다. 마치 뱀의 똬리를 튼 것처럼 꼬리를 몸에 말아 우수에 찬 호기심어린 눈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 그 아인 북극여우란다, 하지만 입양 절차가 좀 복잡하고, 여타 다른 여우들보다 키우기 까다롭지. 환경적인 요소가 중요하거든."


소장이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른 케이지들을 하나 둘 살펴보았다. 아이들의 키가 닿지 않는 케이지에는 오로라, 엘사, 그리고 한나가 훑어 보며 자신만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늑대를 탐색하고자 했다. 하지만 10여분 뒤, 그들은 각자의 의견에 교집합을 이루는 여우를 찾지 못했다.


"다시 고양이와 강아지로 돌아가 봐야 하나..."


한나가 끄응 하며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돼지를 제외한 어떤 것이든 키워도 상관없는 방향의 그녀였지만, 여우의 종류는 많았고, 성향들 또한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가장 동물을 키워하고 싶어하는 엘리사와 멜리사의 여우 취향은 극과 극이었다. 하루 종일 여기서 지내게 되는걸까 싶어 한나는 엘사와 오로라만이 알게 작은 한숨을 쉬었다.


"어, 어어... 저 여우."


엘리사가 문득, 케이지 중 하나를 가리켰다. 멜리사도 호기심이 찬 채로 엘리사의 옆에 바싹 붙었다. 그곳에는 겨우 팔뚝만한 여우 한 마리가 다른 여우들과 다르게 잔뜩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여우같은 캥캥, 캬르릉 하는 울음소리가 아닌, 그르륵 거리며 늑대와 비슷한 울음소리를 자아내는 붉은 여우였다. 엘리사는 저 여우에서 자신을 겹쳐 보았다. 처음 연구소에서 안나에게서 구해졌을 때, 안나는 엘리사를 눈앞의 붉은 여우처럼 보았을 것이었다.



"아, 그 아이는 이전 주인에게서 학대를 받아서 저렇단다.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려고 들고 있지."


소장이 친절하게 태도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엘리사는 더더욱 눈앞의 여우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으으... 한스 나쁜 바보탱이."


멜리사는 그 여우에게서 자신을 버린, 지금은 죽은 한스를 떠올렸다. 안나와 엘리사를 생포하기 위한 작전에 어린 나이에 참가했지만, 안나와 엘리사를 능력을 통해 거의 잡았을 즈음, 같은 팀의 배신으로 인해 죽을 뻔한 위기의 수렁에서 안나가 무식하게 빼내 구원해 주었다.


그리고 한나와 엘사는 그 여우의 불안한 눈에서 자신의 인생 전반을 둘러보았다. 한 남자의 비정상적인 욕망으로 인해 능력을 얻고 시력을 잃은 엘사, 안나의 유전자를 받고 촉진제를 받아 강제로 피 튀기는 싸움 기술을 배워야 했던 한 살의 한나. 네 사람의 마음 속에선 그 여우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이 여우를 키우고 싶어요."


"동감이야. 아무리 키우기 힘들어 보이지만... 결국 마음의 문을 열게 되겠지."


나처럼. 멜리사는 처음 안나에게 가족이라고 불렀던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대가 없는 사랑은



"하하, 꼬마야. 그건 아주 상당히 힘든 일이란다. 거의 항상 붙어다니면서 여우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있니?"


소장이 친절히 설명했다.


"네에..... 가능할 거예요. 아마도요오."


엘리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우를 빤히 들여다 보았다. 여우가 저리 가라는 듯 캥캥거리며 엘리사를 향해 짖었지만, 엘리사는 소장이 케이지에서 여우를 빼내 이동식 케이지에 넣을 동안 그것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 눈웃음을 지어보이기까지 한 엘리사였지만, 여우는 캬르릉거리며 아렌들을 경계했다.



"분양 절차는 마쳤고, 이제 동물용품을 산 뒤에, 집에 가는 거야. 가는 김에 겸사겸사 먹을 것도 사고. 집에 가면 언니와 엄마하고 통화해야 하고. 좀 바쁘지?"



"그래도 엄마하고 언니보다 힘들진 않잖아. 우리가 힘을 내야지! 우선 이름부터 짓자, 이름!"


멜리사가 여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엘사는 여우 특유의 촐랑거리는 성격에 비유하여 '촐랑이'라고 짓고 싶었다.



"촐랑이, 어때?"


그러자 엘사를 비롯한 분양소의 모든 사람이 침묵했다. 비즈니스 미소를 짓던 소장의 얼굴에 만연했던 웃음이 사라질 정도였다.


"어... 혹시 다른 이름은 없어?"


"당연히 있지. 촐싹이. 덜렁이. 꾸러기....."


자신있게 말을 꺼낸 엘사였지만, 점점 목소리는 작아들어갔고, 덩달아 귓불은 빨개졌다. 한나는 멋쩍이 웃으며 위로하듯 엘사의 어깨를 괜찮다고 토닥였다.


"음...저도 하나 생각난 게 있는데요오..."


엘리사가 손을 들고 말했다. 한나는 엘리사도 엘사처럼 비슷하지만 촌스러운 이름으로 생각해 냈을 거라고 판단했다. 유전자를 통해 태어났으니, 언어 감각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 마지않았다.



"엘산나, 로 지으면 어떨까요오...?"


"뭐?"


"응?"


예상보다 더 특이한, 혹자는 엘사의 이름짓는 솜씨가 더 좋다고 할 만큼 엘리사의 발언은 무언가 나사 두어 개가 빠져 있는 듯 했다. 이름의 절반을 차지하는 엘사는 침묵했고, 오로라와 한나가 반응했다.


"아뇨, 그게요. 안나 언니 머리 색깔이 붉은색이고, 엘사 언니처럼 음..."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런거지?"


엘사가 엘리사의 볼을 가볍게 죽 잡아당기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엘사는 겉으론 활발해 보였지만, 여전히 남들을 극히 의식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다. 한스는 사랑이라 불렀지만, 자신에겐 학대라고 느꼈던 일들을 십여 년 동안 겪은 그녀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곤 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엘리사는 그런 모습이 앞에 있는 여우랑 비슷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엘산나! 엘산나, 이름 좋은 거 같은데?"


뜻밖에도, 멜리사가 엘리사의 주장에 재청했다.


"하지 말라고 해도 부를 거지?"


엘사의 물음에, 멜리사는 응! 하고 해맑게 대답했다. 엘산나 라는 이름이 퍽 마음에 들은 탓인지, 여전히 경계심이 어려 있는 여우에게 엘산나아, 엘산나아, 하고 불러댔다.


"내 이름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한나가 엘사의 옆구리를 푹 찌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오로라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숙여 여우를 들여다 보았다. 그러자 특이하게도, 여우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천천히, 머뭇거리며 케이지의 쇠창살로 코를 들이밀었다.


"왜, 왜 그러지?"


도리어 놀란 사람은 오로라였다. 그녀가 한 것이라곤 그저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을 뿐이었다.


"언니가 마음에 드나 봐요. 예뻐서 그런거 같아요. 부럽다아..."


"내 생각에는, 오로라 씨가 카페에서 가져온 케이크 냄새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한나가 오로라의 한쪽 팔에 걸려진, 조각 케이크가 담긴 가방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에이, 설마요. 얘가 그렇게 경계를 쉽게 풀 리가 없잖..."


그때였다. 애애앵, 애애앵, 마치 아기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합친듯한 소리가 여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오, 얘가 당신에게 호감이 생겼나 봐요. 한 번 케이지를 풀어볼까요?"


"설마 물진 않겠죠?"


"물면 제압하면 돼. 그러니까 양 귀를 손으로 잡고 핸들을 돌리듯이... 아, 아냐."


한나는 자기도 모르게 개과 동물들을 죽이는 법을 언급할 뻔했다. 엘리사가 뒷말이 궁금한 듯 빤히 올려다보자, 잘못 말했다고 한나는 둘러대었다.


"그럼 케이지를 열어볼까요?"


소장이 케이지의 쇠창살에 걸려 있던 걸쇠를 풀었다. 오로라가 손을 내밀자 여우는 천천히 코를 큼큼거리며 한 걸음씩 게이지를 걸어나왔다. 엘리사와 멜리사가 흔들리는 복슬복슬한 검붉은 꼬리에 작은 탄성을 자아내는 동안, 엘사는 오로라와 같이 몸을 수그려 여우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여우의 눈에는 잔뜩 질린 겁과, 오로라에게서 나오는 향긋한 빵과 커피의 향기에 설레는 듯한 눈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오로라가 손을 내밀자 처음엔 큼큼거리던 여우는 이내 오로라의 손에 입을 비볐다.


"만져봐도 돼요?"


멜리사가 소장에게 물었다.


"음, 글쎄다. 아마 네가 빵을 굽거나, 아주 맛있는 닭다리를 들고 있다면 여우가 금방 널 좋아할 텐데 말이야."


소장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멜리사, 지금 내가 시선을 끌고 있으니까, 한 번 만져보지 않을래?"


여우는 오로라의 손에 정신이 팔려 꼬리를 팔락거릴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고 푸른 고슴도치가 나오는 게임 속 캐릭터를 떠올린 한나는 엘리사와 멜리사가 여우의 몸에 손을 가져가 만지는 사이에, 파닥파닥 흔들리는 꼬리에 손을 가져갔다. 목도리를 연상케 하지만, 따뜻함이 동반하는, 알 수 있는 사랑스러움이 느껴졌다.


"엘산나, 엘산나? 네 이름이 엘산나라는데, 마음에 드니?"


오로라가 아렌들을 대변해 여우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하지만 여우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리 만무했다. 여우는 그저 오로라의 손에 맛있는 음식이 쥐어지는 순간을 기대하며 캥캥거리며 꼬리를 흔들거릴 뿐이었다.






70.


[이 번호로 전화가 올 지는 꿈에도 몰랐는데.]


"잘 지냈어요, 필립스?"


이두나가 먼저 자러 가겠다고 자신의 병실로 들어간 사이, 안나는 자신의 전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지, 그리고 네 이미지상 분명 이 전화가 가벼운 내용을 담고 있진 않을 걸 알고 있어, 내 말이 맞나?]


"유감스럽게도, 맞는 말이예요."


안나가 능청스레 웃었다. 휴대폰을 들고있는 손목이 징징 울리면서 통증을 자아냈지만, 안나는 통화를 마치고 진통제를 처방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꾹 참았다.


"지금 남아공 현지 작전은 얼마나 진척되고 있죠?"


[아, 현지인 구출 작전은 거의 완료된 상태고, 지금은 내전으로 인한 치안 유지에 힘쓰고 있지. 이거 영업 비밀인데, 말해줘도 되나 모르겠어.]


"구호단체 대표에게 말해도 비영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안나가 말했다. 전화기 너머에선 종이가 넘겨지는 듯 사각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저희 EML이 보츠와나와 남아공 국경에서 난민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 알고 계시죠?"


[그야 물론이지. 현지 요원이 드론으로 찍어봤는데, 디스트릭트 9(SF 영화 '디스트릭트 9'속 외계인 수용구역)보단 훨씬 낫더군. 후원자들이 꽤나 되는 모양이야. 딥스테이트라고 의심해 봐도 되겠는데.]


"그래 봤자 빌 게이츠 재단만 하겠어요. 아무튼, 단도직입적으로 요청드릴게요. 저희 난민 구호소에 경비 인력을 파견시켜 주세요."


[경비 인력? 너희 블루라운드는 어쩌고?]


"알다시피, 브렉시트 때문에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짐에 따라 치안이 불안정해서, 현재 경찰력으론 한계가 있고, 재력이 있는 자들은 보다 강호된 경호를 원하죠. 저희 인력들은 거의 차출된 상태라 현지 파견도 불가능해요."


필립스는 잠시 고민하듯, 말을 끊었다. 그가 다시 입을연 때는 그로부터 30초가 지난 뒤였다. 다시 전화를 걸려던 찰나, 그가 대답했다.


[좋아. 180 마이크(MINUTE를 뜻하는 특수부대 은어)거리에 우리 돈을 먹은 QRF(Quick Reaction Force:신속대응부대, 작전 동안 현지에서 기용한 미군 또는 동맹세력을 두는 것을 말함) 민병대가 있으니, 그쪽에게 미리 연락을 해둘게.]


"믿을만한 자들인가요?"


[샐리맨더가 키워낸 외국인 유학생들이야. 너만큼은 아니어도, 구호소 경비는 충분히 맡을 놈들이라고. 그리고 가는 게 있다면, 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필립스가 자신의 QRF를 장담하며, 안나에게 대가를 물었다.


"EML에 체류해 있는 동안 최대한의 물자를 지원할 게요. 그리고 내전이 마쳐진다면 어느 쪽 정부든 간에 우리에게 보상을 할 거예요. 그 보상의 절반을 샐리맨더에게 양도할게요."


안나의 말이 마치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기쁨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녹음하고 있는 거 알지? 나중에 다른 말 했다간 아주 골치 아파질 거야.]


"제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나요. 아무튼, 요청에 응해줘서 고마워요."


[그래, 메가라한테 안부 한 번 전해주고]


"서로 싸웠어요?"


[어... 싸우진 않고, 요즘 관계가 좀 멜랑꼴리해서 말이지.]


이상한 이유를 대며 필립스가 전화를 끊었고, 안나는 통화 중에 수신된 메세지의 알림을 확인했다. 사진이 첨부된 메세지의 발신인은 한나로 되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뚱한 표정의 여우와 엘리사, 그리고 멜리사가 있었고, 멋쩍이 웃는 엘사와 오로라, 그리고 한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여우를 분양받았어. 아직 낯가림이 심하다 보니까 쉽사리 다가가질 못하네.
아 참, 여우 이름은 엘사 언니와 언니의 이름을 합친 엘산나인데, 그렇게 불러도 돼지?





안나는 순간 자신이 물을 마시고 있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여우의 이름은 안나의 손에 고통을, 입가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벽의 방음이 되지 않는 보양인지, 벽 너머 이두나의 병실에서도 쿡쿡거리며 숨죽여 웃는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나는 항의를 할까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여우에게 이름을 넣을만큼, 아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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