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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Arens of Sheffield 25~26

개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18 21: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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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71.

"손!"

엘리사가 손을 내밀자, 엘산나는 케이지 속에서 무관심하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 꼬리를 말아 똬리를 틀고 있었다.

"엘리사, 내일 하자. 먹을 거엔 그래도 반응하잖아."

옆에서 마시멜로를 끼얹은 코코아 잔을 내밀며 멜리사가 말했다. 10시가 지난 지금, 두 아이는 꿈나라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여우를 분양받고 난 3일 동안, 이두나와 안나를 제외한 모든 아렌은 오로라처럼 여우를 친화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엘산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우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오로지 사료와 물을 주었을 때만 조금씩 먹었을 뿐, 그 이후엔 케이지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오로라에게 잠시 맡겨서 사회성을 기르게 할까도 생각한 아렌들이었다.

'카페에 털 날리면 위생 불청결로 신고 당할 거예요!'

하지만 꽤나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오로라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난 채로 거절했다. 그렇게 3일, 3일을 케이지에서 보낸 엘산나는 이젠 졸리다는 듯 눈앞의 두 사람에게 보라는 듯 크게 하품을 하며 흐엥엥엥 울어댔다.

"너희들....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니? 자라고 한 지가 언젠데..."

곰돌이 모양이 곳곳에 수놓아진 분홍색 잠옷을 입은 한나가 방에서 나와 두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멜리사, 자기 전엔 핫초코 먹지 말라고 했잖아. 안나 언니가 알면 크게 혼날 거다?"

그러자 멜리사와 엘리사의 어깨가 동시에 움츠러들었다. 자기 전엔 초콜릿 금지는 크리스마스 직후 세워진 가족 규칙 중 하나였다. 이가 썩는다는 아주 간단한 이유였고, 아이들은 제대로 따랐다. 하지만 규칙을 만든 안나가 출장을 간 지금, 두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주 큰 일탈을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하, 하지만..."

"어서 자, 여우도 자야 할 거 아니야. 아니면 그 핫초코를 쿨초코로 만들어 버릴거야."

한나가 손가락을 두어 번 허공에 톡톡 두드리자, 두 사람의 핫초코 잔에 찬바람이 맴돌았다.

"아, 알았어. 자면 되잖아아.... 그리고 언니도 저번에 새벽에 엘리사 초코볼 몰래 훔쳐먹은 거 다 봤거든. 메롱."

멜리사가 혀를 쭉 내민 다음, 종종걸음으로 엘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멜리사와 엘사가 같이 자는 날이었다. 멜리사가 사라지자, 어색한 침묵이 엘리사와 한나 사이에 맴돌았다.

"...몇 개 먹었어요."

"여, 여우가 얼마나 귀여운가 볼까나."

먹은 초코볼의 개수를 엘리사가 물었다. 한나는 딴청을 피우는 척 엘리사 옆으로 다가와 여우를 보려 했다. 하지만 그런 한나의 볼에 엘리사가 눈가루를 퐁 하고 뿌렸다. 캥! 여우의 울음소리와 흡사한 재채기가 한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깜짝 놀랐잖아. 캥."

"에취에요. 에취. 캥은 여우 울음소리구요. 그래서...몇 개?"

"세 개 정도 먹었어. 성장기라 그런지 배고파서 그랬어."

실토한 한나였지만 엘리사는 쉽게 믿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하나는 엘리사의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거두었다.

"...다섯 개 먹었어. 나중에 한 통 사줄게."

"그럼 됐어요. 어서 자러 가요, 우리."

엘리사가 새침하게 한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금발 마음이 풀어진 꼬마와 눈을 맞추면서 한나는 엘리사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침실의 방문, 그리고 케이지는 조금 열어두기로 했다.

'새벽에, 손님이 찾아올지도 몰라요!' 라고 목소리를 높인 엘리사의 주장 때문이었다.




72.



새벽 2시,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다. 엘리사는 안나 언니와 이두나가 끝까지 남아있는 캠핑의 꿈을 꾸며 행복하게 자다, 캥캥거리는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한나의 재채기 소리일까 싶어 고개를 돌려 귀를 기울였지만, 팔베개를 해주고 있는 한나는 고로롱 얕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우의 울음소리가 틀림없었다.



"엘산나아..."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엘리사는 엘산나의 상태를 확인하러 이물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살금살금, 가족들이 깨지 않게 거실로 나왔을 때, 들리는 소음이라곤 저 멀리 런던의 희미한 소음, 그리고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의 운동, 그리고 여우 엘산나의 울음소리가 든 케이지 뿐이었다. 아렌이면서도 개체인 엘리사는 안나 언니가 말해준 '야시경'처럼 어둠 속에서도 시야 확보가 가능한 눈을 가졌다. 그래서 엘산나가 어디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엘산나는 케이지 밖으로 나와 소파에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꾼 걸까? 엘산나의 눈이 가늘게 떨리며 끄르릉, 끄르릉, 불안한 소리를 냈다.



'추워보이는데에...'



엘리사는 곧바로 서랍에서 담요를 하나 끌어냈다. 안나 말마따나, 자신과 엘리사가 죽었을 때 잠시 감싸 두었던 푸른 담요였다. 사건이 종식된 이후, 세탁을 마쳤지만


여전히 두 아이에 남아있는 특유의 체향은 남아 있었다. 엘리사는 악몽을 꾸고 있는 엘산나의 등에 천천히 담요를 덮어 주려 했다.



에으응, 에으응.



화들짝 놀라 엘산나가 도망치려 했지만, 이내 떨림이 잦아들었다. 담요를 덮어준 사람이 학대를 한 전 주인이 아니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 꼬마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듯 고개와 시선은 어느 하나 고정되는 법이 없었다. 엘산나의 머리와 몸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담요를 자신까지 덮기로 한 엘리사는 엘산나를 번쩍 들었다. 새끼라서 엘리사의 힘으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엘산나는 가벼웠고, 뜨겁지 않은 작은 불꽃같았다.엘산나는 갑작스러운 손길에 버둥댔지만, 엘리사가 품에 안자 차츰 잠잠해졌다. 하지만 떨림은 계속되었다.



"착하지, 착하지이..."



엘산나의 꼬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떨림과 꼬리, 여전히 마음을 쉽사리 열기 힘든 모양이었다. 엘리사는 한참 동안 여우를 꼭 안은 끝에, 디스플레이식 벽난로 조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담요도 있고, 누울 수 있는 소파도 있었다. 엘리사는 벽난로 전용 리모콘을 찾아 전원을 켰고, 원래 벽난로였던 벽에 영사기처럼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의 동적 이미지가 재생되었다. 단순한 시각적 요소였지만, 괜스레 몸이 훈훈해지는 엘리사였다. 엘산나는 깜짝 놀라 발을 바동거렸지만, 그럴수록 엘리사는 배와 등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괜찮아..."



결국, 엘리사는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안고 있던 오른손을 풀고 허공을 한 번 휘젓자, 포로롱 소리와 함께 눈송이들이 피어났다. 엘산나의 시선은 눈송이를 따라 흘러가더니, 이내 엘리사의 손가락에 다다랐다.



"신기하지?"



여우는 그렇다는 듯, 캥, 하고 한 번 울었다. 엘리사는 엘산나를 안아 들고 두 눈을 응시했다. 두려움, 기쁨, 그리고 설레임이 그득한 푸른 눈 속에 디스플레이 벽난로의 불빛이 비쳤다.



"여기 있으면 모두 괜찮을 거야.나도 그랬구, 멜리사, 한나 언니....모두가 괜찮아졌어."



엘리사가 꼬옥 엘산나를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그제서야 여우의 꼬리가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엘리사는 여우의 꼬리까지 놓치지 않고 쓰다듬었다.



"아주 복슬거려. 더 만져봐도 돼?"



엘산나는 싫지 않은든 꼬리를 계속 흔들었고, 엘리사는 이따금 복슬복슬한 꼬리를 매만지며 유대감을 표시했다. 처음 안나가 자신의 어깨와 머리를 토닥였듯이, 자신도 엘산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사는 더 나아가, 오늘 새벽을 여우와 함께 자기로 하고, 서랍에서 두꺼운 담요 하나를 더 가져와 소파 위에 깐 다음, 여우를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춥지 않았다.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따뜻함이란 언제나 존재하기에.









73.


"...대체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한나는 꿈 속에서도 자고 있었다. 마치 영화 인셉션처럼 꿈 속에서 또 꿈을 꾸며 가상의 컴뱃스쿨 사무실에서 엘리사의 몰티저스를 몰래 먹는 꿈을. 하지만 통을 다 비웠을 무렵, 꿈인 것을 자각하며 일어난 그녀는팔과 옆구리가 허전한 것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엘리사가 사라졌음을 알아챈 그녀는 일어나 소리없이 책상 서랍에서 나이프를 꺼내 거실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본 것은, 언제나 아렌가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담요를 둘둘 말아 소파 위에서 자고 있는 엘리사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지금껏 겁에 질려 있던 엘산나의 표정은 잠을 자면서도 행복한 표정이었다. 한나는 거실이 쌀쌀함을 체감했고, 디스플레이 벽난로를 끈 다음, 담요 째로 꼬마 하나, 여우 하나를 든 다음 침실로 옮겼다.

"헤헤...엘산나아....핥지마아...간지러어...."

여우와 노는 꿈을 꾸듯 행복한 잠꼬대를 하는 엘리사,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캐앵 거리며 잠꼬대를 하는 여우의 소리를 들으며, 한나는 어서 빨리 엘산나가 자신들에게도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담요 경단을 침대 위에 두었다. 다시금 팔베개를 해 둔 한나는, 나이프를 서랍에 다시 둔 다음, 혼자 덮게 되어 넉넉해진 이불을 머리 끝까지 파묻고 다시 잠에 들었다.

자신도 여우와 뛰노는 꿈을 꾸길 바라면서, 그녀의 의식은 다시금 멀어져갔다.










74.



"MRI는 싫은데..."

안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피할 수 없는 수순이긴 했으나, 언제나 웅웅거리는 그 소음이 형상화 되어있다면 직즉 할로우 포인트가 장전된 권총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릴 거라고 안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돈이 안 들잖니. 무엇보다 네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서인거. 알고 있지?"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는 이두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참, 그거 하나 알려줄까? 넌 어렸을 때도 MRI를 싫어했단다. 엘사의 등 위에 올라 타 '말타기 놀이'를 하다가 그만 넘어졌는데, 팔이 부러졌지 뭐니. 그 때 울며불며 언니를 찾던 네 모습이란... 그리고 수술하기 전에 MRI를 찍었지, 그때도 넌 엘사를 찾으며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어. 겨우겨우 초콜릿을 조건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지금도 넌 여전히 이 검사만큼은 싫어하는구나."

이두나가 추억에 잠겨 말했다.

"이것도 네가 우리 딸이라는 증거 중 하나란 거, 기억하렴."

이두나가 안나의 볼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매만졌다. 안나는 거절하지 않고, 다섯 살의 안나로 돌아가 이두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다가오는 MRI 검사를 기다렸다.






75.



"왠일로 저렇게 나와있는거야? 엘리사?"



아침을 먹은 뒤, 한나는 엘리사의 무릎 위에 공손히 앉아있는 엘산나를 보며 물었다.



"새벽에 같이 잤고 또... 요렇게."



포로롱, 소리와 함께 여우의 머리 위로 눈송이가 흩날렸다. 엘산나는 우수와 호기심에 찬 눈으로 사라진 눈송이들을 보며 눈과 고개를 돌리다, 이내 엘리사의 손에 주둥이를 들이대 비볐다.



"아하... 능력으로 친해졌구나?"



"새벽에 눈을 조금 보여줬더니, 이렇게 잘 따르고 있어요."



엘산나가 엘리사의 손을 핥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만화 영화를 보려던 멜리사도 연신 힐끔거리며 엘산나를 쳐다보았다. 멜리사도 엘산나를 품에 안고 싶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환심을 사기엔 불가능해 보였다. 자신은 눈을 뿌릴 줄 모르는데다, 얼음을 만들거나, 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만약 얼음이 엘산나의 머리나 가슴에 맞는다면, 오로지 진실된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음...엘리사, 그대로 있어주겠니? 자...각도와 구도 모두 좋아."



소파의 맞은 편에선 접이식 스툴에 앉아 엘사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엘리사는 최대한 자연스러우면서도, 그림으로 기록될 경직된 웃음을 지어야 했지만, 엘산나는 그러지 않았다. 멜리사의 손에서 몽글몽글 만들어지는 얼음 거품에 관심이 생겨서였다. 에으엥엥엥...엘산나가 엘리사의 품을 떠나기 직전, 한나가 휴대폰 카메라로 둘의 사진을 찍었다.



"휴, 언니. 이거 보고 계속 그리면 되겠다.아슬아슬했어."



"고마워, 우리 한나."



한나 또한 엘사의 옆에 스툴을 깔고 앉아 있었다.



"그건 그렇고, 커미션은 요즘 잘 되가?"



"10년간의 노력이 헛되이진 않았나 봐. 캠핑을 갔다 오니까 40개나 쌓여 있었어, 화이트 씨의 포이즌 애플 출판사에서도 계속 의뢰가 들어오고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나의 소설 삽화를 내가 그리게 됐다?"



"언니가? 이거 정말 아이러니하네. 한정판에 들어가려나?"



한나는 양장본을 생각하며 말했다. 하지만 안나의 경험이 담긴 '기도하는 먹잇감'에는 삽화가 그렇게 어울려 보이진 않았다. 상상하는 재미를 오히려 해치는 것 같았다.



"한정판은 아냐. 워낙 안나의 책에 기밀 내용과...우리의 내용이 많잖아? 조만간 스토리를 좀 순화시켜서 일종의 판타지 소설로 바꾼 다음, 출판사의 요구대로 삽화를 몇 장 그려내면 돼."



한나는 갑작스럽게 밀려들어오는 정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눅들지 않기로 했다. 지식을 주입당해도 천재는 아니었으며, 이제 겨우 한살인데다, 출판 업계의 사정에 대해 밝지 않은 한나일 뿐이었다.



"한나 너는 어때? 컴뱃스쿨 일은 잘 되가니?"



"잘 되가고 있지. 요즘 신입생들이 많이 늘었더라. 뭐였지... 빵 시트?(bread sheet)? 때문이었나."



"브렉시트 말하는 거지? 요즘 그걸로 사회적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하던데... 우린 보안 걱정을 할 필요까진 없겠지."



엘사가 창밖의 도시를 보며 말했다. 저들 중 누군가는 사복을 입고 아렌들을 감시하는 요원들일 수도 있었다. 이따금 건물 옥상을 보면, 저격총을 양각대에 거치하고 잠복하는 저격수들도 이따금 보이곤 했다. 시민들에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찌 보면 긍정적인 외부효과와 같은 원리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결과적으로, 그녀들이 사는 셰필드가의 치안은 어느 때보다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가족 중 한 사람은 미국의 CIA 출신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1년이지만 열거하기 어려운 핵심 교육들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들은 총기 훈련을 받았거나, 사람을 제압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능력들을 가졌다. 제 아무리 노출이 된다 하여도, 지난번처럼 한스가 고용한 암살자들의 조용한 침투는 불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우린 돈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야. 각자 직업이 있고, 수요가 있잖아. 안나 언니 빼면 말이지."



한나는 장난스레 엘사의 등을 간지럽히며 말했다.



"하지만 한나 네가 지금 모은 돈보다 수백 배는 가지고 있을 걸?"



엘사는 허리를 돌려 한나의 손가락을 피하면서, 안나가 가지고 있을 잠재적인 자산을 생각했다. 그녀 말마따나, CIA의 급료를 추가한 파견 수당과 위험수당으로 재산을 축적했다고 알렸고, 이따금 들어오는 사적 계약금으로 남 부럽지 않은 부라는 것을 경험해 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디에 쓸지 몰라서, 그저 은행에만 저축해 놓았더니, 남들에겐 월급으로 쳐지는 정도의 이자가 쌓였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소설가로써의 등단은 안나의 여생에 돈 걱정을 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처녀작인 '기도하는 먹잇감'은 초판으로 5만부 이상이 팔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10만부를 돌파하기까지 이르렀다. 때때로 동화도 만드는 그녀에게 들어오는 인세 또한 만만치 않았고, 안나는 그 중 일부를 달러로 환전해 놓기까지 했다.



'나중엔 영국 밖에서 생활해야 할지 모르니까.'



안나는 환전의 이유를 물었던 엘사에게 단 한마디로 일축시켰다. 요원의 본능이 여전히 안나에게 남아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엘사는 그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행이라고 치자면, 아주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생활'의 범주에도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헤헤, 그럼 언니는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겠네."



"그래서 EML을 운영하고 있잖니. 만약 안나가 일반인이었다면, 작가 내지 너처럼 컴뱃스쿨에 재직중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이미 됐잖아! 하고 싶은 걸 이루는 게 얼마나 부러운데."



한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심 안나를 부러워했다. 컴뱃스쿨의 교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 빠져들 수 있는, 게임 말고 할 수 있는 취미같은


부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조차 알지 못했다. 싱숭생숭한 느낌이 어깨를 타고 머릿속을 휘저었다.



"한나는 하고 싶은 게 있어?"



엘사가 진지한 어투로 한나에게 물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엘사 또한 자신의 일인 그림 그리기에 말 그대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을 이룬 사람이었기에, 한나에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 이대로 있는 것도 좋고... 게임하는 것도 좋고... 근데 뭔가 불안한 거 있지."



"음... 뭔지 잘 알 것 같아. 지금 내리고 있는 선택의 뒷일이 두렵거나 하는 느낌도 들지 않니?"



그 때, 엘산나가 멜리사의 얼음에 관심을 보이며 코를 들이대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안-돼!, 안나 언니가 위험하댔어. 먹으면 안 돼."



멜리사가 얼음을 손에 쥐자, 순식간에 얼음은 손으로 스며들었다. 대신 엘산나는 멜리사의 무릎에 앉아 TV속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네모낳고 커다란 물건에서 터져나오는 두 번째 세상은 이제 막 세상을 경험하는 어린 여우에게 더욱 각별했다. 여우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시선 속에 창가에 놓인 두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안나가 엘리사와 멜리사를 그리워하며 키웠다던 흰 꽃과 작은 꽃이 각각 한 송이씩 피어 있었다.





한나는 꽃집을 운영하는 자신을 생각했다. 온갖 꽃들 사이에서 물을 주고, 직접 꽃가루도 묻혀주고, 키워낸 꼬을 팔고... 생각보다 흥미로운 일 같았다. 컴뱃스쿨을 주업으로, 꽃집을 부업으로 하면 될 것 같았다. 살아있는 꽃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해봐야 알겠으나, 조화를 만들어 파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음... 꽃에 관련된 걸 해보고 싶어. 내가 배울 수 있을까?"



한나는 말이 끝나자 엘산나의 입에 작은 튤립 한 송이를 그려주는 엘사를 볼 수 있었다.



"당연하지, 날 봐봐. 눈이 안 보이고, 인생의 거의 절반을 갇혀 지내면서 혼자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어. 한나, 난 선생님이 없었지만, 너를 가르쳐 줄 선생님은 많아. 당장 안나를 봐, 널 지켜주고, 가족들을 지켜주기 위해 1년간 너를 가르쳤잖니. 우리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것부터 시작하자."





엘사가 살풋이 웃으며 패드의 펜으로 한나의 볼을 간질였다.



"간지러워."



"간지러우라고 한 거야. 우리 핫초코 먹을래? 핫초코 먹을 사람?"



엘사가 손을 들어 제안하자, 모든 아렌이 손을 들었다. 한나도 손을 들면서, 이따가 꽃꽃이를 하는 법부터 알아보기로 결심을 세웠다.





75.5


잠깐! 핫초코는 내가 만들게.


왜, 한나. 언니도 충분히 만들 수 있....


지난번에 마시멜로랑 같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터뜨린 사람이 누구였더라...? 핫초코를 뎁힌 다음에 마시멜로를 넣고 저어줘야 한다고. 그것도 일정한 스냅이 있어야 하는데, 언니는...아휴우...



...그냥 그림 그리고 있을게에...


그림? 그럼 나도 그려줘! 엘리사와 엘산나 말고 나만 단독으로!












76.




안나는 떨고 있었다. 1월의 추운 겨운 날씨인 탓도 있었지만, 안나가 발과 다리를 떠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안나, 춥니? 너무 많이 떠는구나."



안나의 옆에서 담요를 덮어주는 이두나가 있었다. 하지만 이두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또안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안나와 이두나의 몸에는 능력이 축적되어 있었고, 이미 안나의 손에선 능력의 부작용인 나뭇가지가 튀어나온 전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MRI검사를 두 사람이 받아야 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두나 아렌 씨, 안나 아렌 씨. 들어오세요."



무뚝뚝해 보이는 간호사가 두 사람을 불렀다. 안나는 그 간호사가 소속 기관 특성상 대부분의 고객이 첩보 요원이라 그들에게서 표정을 옮긴 것이라 확신하며, 이두나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넉살 좋은 의사가 컴퓨터 화면에 이두나와 안나의 MRI 스크린을 띄워두고 손가락을 턱에 괴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명찰에는 '젠킨슨'이라고 쓰여 있었고, 그의 의사 가운은 한껏 구겨져 있었다.



"나쁜 소식과, 덜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어느 것부터 들어 보시겠습니까?"



결국, 둘 다 나쁜 소식이었다.



"나쁜 소식부터요. 저에 대한 얘기죠, 선생님?"



"네...아시다시피, 맞습니다. 벨의 응급처치 당시에 손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나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손에만 그치는 게 아니었어요. 여길 보시면..."



젠킨슨이 모니터를 돌려 안나와 이두나도 볼 수 있게 했다. 안나의 몸을 투시한 갈비뼈들 사이사이로 검은 색 줄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다. 불길한 생각이 그들을 엄습했다.



"저것들이 모두 다...설마..."



"...지금은 연질이지만, 핏줄과 힘줄은 절대 아닙니다. 더 정확한 연구가 되려면 이틀 정도 걸리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나뭇가지의 일종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희로써는 말이죠."



의사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체내의 식물화, 그것도 필연적으로 죽는 부작용 중 하나였다. 어떻게 죽는지의 이미지는 생각해 두지 않았지만, 분명 곱게 죽진 않을 것이었다. 동충하초, 안나는 문득 벌레의 몸에 들어간 버섯 포자가 몸을 갉아 먹어가며 종국에는 버섯을 피워내는 해괴한 물건을 떠올렸다. 오메가 보고서에는 그런 말이 없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그럼... 덜 나쁜 소식은요."



사실상의 시한부 선고임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생각 이상으로 침착해 있었다. 무섭기보다는 억울함과 죗값을 치루는 느낌이었다. 이른 나이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움과, 그동안 죽이고 다치게 한, CIA의 부름을 받고 처리한 타겟들의 저주를 이제서야 받는 것 같았다. 문득 안나는 뮬란을 떠올렸다. 1년 하고 한달 전, 모래바람과 포탄이 흩날리는 곳에서 백린탄을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간, 그리고 안나에게 블루라운드의 인연을 맺게 해준 친구의 해맑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나도 널 따라가려나.'




"...씨? 안나 씨?"



의사가 안나를 재차 불렀다. 그리고 안나의 몸이 흔들렸다. 이두나가 사색에 잠겨 말을 흘려들은 안나의 몸을 흔든 것이었다.



"아, 네. 뭐라고 하셨죠?"



"다행스러운 점은, 이두나 아렌 씨께선 몸에 전염된 부위가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팔에 담석으로 추정되는 물질 빼면 전무하다는 점이죠. 아마 이건 수술로 금방 빼낼 수 있겠지만, 안나 씨의 경우엔 여러 차례 부분적인 수술을 하셔야 할 겁니다."



마치 사랑니를 뺄 때 처럼요, 의사가 덧붙였다.



"그럼 뽑아내면 끝인가요?"



"글쎄요." 의사가 여전히 탐구적인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의 말은 어느 하나에 꽂히지 않고 허공을 맴돌았다.



"오메가 보고서에 따르면 다시 자랄 확률은 매우 큽니다. 이건 일시적인 응급조치에 불과해요. 이두나 씨의 경우, 즉각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반면에, 안나 씨는 빼고 난 뒤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 동반될 겁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안나는 다시금 자신의 몸에 암세포처럼 퍼진 검은 줄들을 확인했다. 마치 죽은 핏줄 같았고, 손에 박혀있는 듯한 고통만 빼면 몸 전체의 고통은 전무한 수준이었다. 차라리 암에 걸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 안나였다. 적어도 암은 지금껏 인류가 쌓아온 의술과 통계로 완치율에 희망을 걸 수도 있지만, 개체의 능력에 따른 부작용은 선택적 위험을 가진 방사능과도 같았다.



"수술 날짜는 언제 잡으실 겁니까? 가장 빠른 시간은 5일 뒤 오후 세시 정도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그럼 저희 엄마 먼저 수술을 잡아주세요. 전 그 다음으로요."



"그 다음 수술 날짜는 그로부터 3일 뒤에나 가능할텐데, 그러시겠습니까?"



안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안나는 자신을 일종의 AI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려 했다. AI는 전자제품이므로, 언제든지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다. 그저 안나의 방화벽이 일시적으로 무너져 바이러스에 취약해진 것이고, 방화벽은 다시 세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안나..."



그런 긍정적인 안나를, 이두나는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안나의 첫 번째 죽음은 폭발에 휘말린 파편의 복부 관통상이었고, 이후로도 안나의 몸에 부상이 입혀지는 걸 두려워했다. 그리고 행복이란 운명은 안나에게 지속적인 수술이라는 비극을 안겨주었다. 이두나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안나는 이두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손은 긴장이라도 한 듯 얼음장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괜찮을 거예요. 아톤에서 연구한 게 있길 바래야죠."



안나는 84년부터 작년까지 아톤에서 진척된 연구가 있기를 바랬다. 완치제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최소한 억제제 시제품의 화학식 정도는 만들어 뒀으리라고 생각했다. 벨의 연구팀, 그리고 사무 분석국 요원들이 죄다 아톤의 백업 서버의 바다에 뛰어들어 최소한의 방도책을 찾아내려고 불철주야 백업 서버를 가열시키고 있었다. 안나는 문득 다른 개체들이 궁금해졌다. 안나가 실질적으로 만난 개체는 엘리사, 멜리사, 그리고 한나 뿐이었고, 다른 개체들은 CIA를 위시한 서방의 부대가 아톤이 남긴 연구소들에 침투하여 구출하고 있다고 메가라가 전했을 뿐이었다.



만약 개체들을 위한 교육 내지 사회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쪽으로의 입학을 고려해 봐야겠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수술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억제시키게 만들었다. 또한 ASIC의 자문관 당텍을 사칭하고 블루라운드로 들어왔던 한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작자가 지난 세월을 오메가 프로젝트에 시간과 돈을 헛되이 보냈지 않기를, 안나는 지금은 죽은 그에게 처음으로 희망을 바랬다.




75.


접선지는 캐나다와의 국경에 다다랐기에, 오후의 햇살을 받음에도 벨은 재킷이 아닌 패딩을 단단히 입어야 했다. 황무지나 다름 없는 노스웨스트의 고속도로는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었고, 저 멀리에 캐나다의 푸른 숲이 내다보였다. 벨은 그 숲을 내다보면서, 일주일 전 있었던 캠핑을 떠올렸다. 모든 게 잘 될 것 같았던 캠핑은 안나에게서 능력의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벨라에게 비밀리에 진행시키려 했던 가습 테스트도 사실상의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었다. PS라는 익명의 사람과 만나 치료약을 받는것이었다.



혹시 몰라 치마춤에 챙긴 XD3 서브컴팩트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그녀는 멀리서 다가오는 노란색 카마로 차량에 주목했다. 돌아다니는 차가 없는 국경의 한적한 고속도로를 저렇게 존재감 있게 달려오는 차로 보아, PS일 가능성이 높았다. 2분 뒤, 카마로는 벨의 앞에 멈춰 서머 흙먼지를 일으켰다. 손을 휘저으며 먼지를 쫓아낸 그녀는 차에서 내린 사람이 사내의 골격을 가지고 있고, 복면과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벨, 맞습니까?"



사내가 물었고, 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물건부터 보여주시겠어요?"



사내는 벨의 요청에 어깨를 으쓱이며 트렁크에서 두 개의 아이스박스를 꺼내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자, 안에는 차갑게 냉각된, 흡사 백신 같은 약병들이 대략 열 개 정도 들어 있었다.



"우린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트로이 목마라는 게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거죠?"



벨은 가방을 닫으며 말했다. 벨의 정체와 휴대폰 주소를 아는 이상, 그들은 벨이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 가능성이 있었다.



"아렌, 아렌들의 신상을 우리에게 넘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들의 동향을 우리에게 보고해 주시면 좋겠네요."



"그건..."



"압니다.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라는 거죠. 아, 그리고.. 따님의 병원비가 감당이 안 되시는 것도 우린 알고 있습니다."



의표를 찔린 벨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내는 다시 트렁크로 들어가, 이번에는 철제 가방 하나를 꺼내 가져왔다.



"백만 달러, 그리고 백만 달러가 들어있는 카드입니다. 모두 세탁을 마쳤고, 사용해 보았자 금융 시스템에선 분산적으로 쓰였다고 속여질 돈들이죠. 일종의 암호화폐처럼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빚을 지고 있었다. 유복할 수 있을 정도로 CIA의 연구소장으로 일하며 돈을 받았지만, 미국의 의료제도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물거품으로 만들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벨라처럼 장기간 입원하는 환자의 경우 치솟는 의료비는 대출로 겨우 막을 수밖에 없었다. 벨은 그럼에도 생각했다. 자신이 오메가 프로젝트를 파헤쳐 안나와 벨라의 치료제를 만드는 데 불확실한 시간을 쏟아낼 것이냐. 아니면 당장의 불확실한 치료약과 돈을 받고 사내의 목마가 될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그 치료제의 효과는 시간이 갈 수록 떨어지거든요. 만들어질 땐 100%였지만... 지금은 한 80%의 확률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신중해지세요. 시간은 당신 편이 아닙니다. 우리 편입니다."

우리, 벨은 그 사내가 단체에 소속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백신은 지속적으로 몇 번 맞아야 효과가 지속된다...고 하더군요,"

"연구부가 아닌가보죠?"

"난 그저 PS일 뿐입니다. 나와 같은 PS는 세상에 여럿을 두고 있죠. 추종자도 수없이 많고요, 어서 선택하세요."

벨은 잠시 고민하다, 아이스 박스를 집어들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첫 번째 보고는 지금으로부터 사흘 뒤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로 보고하세요."

PS가 주머니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아주 작은 무전기 같았고, 통화 기능만 겨우 있는 구식 휴대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디 따님의 병과... 안나 아렌의 병이 낫길 바라겠습니다."

PS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트렁크를 닫은 뒤, 차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

"잠깐만요."

이제 막 시동을 걸려던 그의 카마로 창문을 두드리며 벨이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뭐죠? PS가 아니라. 진짜 이름이 뭐죠?"

사내는 스크린을 내리며 불쾌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김에서 막 피워낸 담배 냄새가 역력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둘러 주변을 살펴보았다.

"파울 세르난데즈.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윽고 시끄러운 엔진음이 들렸고, 카마로는 짙은 스키드 마크를 남긴 채 접선지를 떠났다. 황량한 벌판에 홀로 남은 벨은 아이스박스와 돈가방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 뿐이었다.




73.

"아우, 졸려..."
꼭두새벽에 일어난 엘사는, 한나의 발이 자신의 배에 올려져 있다는 사실로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사소한 복수라도 하듯 볼을 살짝 꼬집은 엘사는 우유라도 마실 겸 부엌으로 나서려 했다. 그 때, 문 밖에서 키득거리던 소리를 들은 엘사는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아이들이 문 밖에서 장난을 치려는 것을 깨달았다.
'장난엔 어울려 줘야지.'
엘사는 아이들이 자신을 놀래키려고 문 앞에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엘사가 문을 열었을 때, 문 근처엔 아이들이 없었다. 다시 자러 갔나? 엘사는 바로 옆 침실에 있을 아이들의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눈을 통해 아이들이 누워 있는 걸 확인한 그녀는, 아침에 아이들이 자신을 속인 것에 실패한 것을 놀리기로 하고, 다시 침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때 바닥에 물기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고개를 숙여 거실까지 향하는 물방울들을 만져보자, 그 속에는 얼음과 눈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등 뒤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이들의 침실이 아닌, 거실에서. 엘사는 여우가 낸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분명히 사람의 소리였다. 재빠르게 침실 옆 서랍에서 장전된 고무탄 권총을 뽑아 든 엘사는 천천히 거실로 나서는 벽 가장자리에 기대었다. 마치 캠핑 때의 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엘리사와 수중 서핑을 즐기고 돌아온 뒤, 어지럽게 놓여 있는 테이블보를 바라보며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해 불안에 떨던 엘사였고, 그 심정은 지금과 비슷했다. 대체 그 누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미끼로 아렌들을 또다시 위험에 빠뜨리려는 걸까? 엘사는 조심스럽게 권총을 들어 벽끝에서 기울여 거실로 겨누었다. 거실에는 엘산나가 몸을 말며 캥캥거리며 소파 위에서 눈덩이와 같이 뛰놀고 있었다.

정확히는, 엘리사와 멜리사의 형상을 한 움직이는 눈사람들과 같이 엘산나는 놀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아주 작아서, 웃음소리로 들렸던 것이었다. 잠귀가 밝은 엘사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고, 사건의 당사자들은 자고 있으며, 한나는 밤귀가 어두웠다. 엘사는 잠시 총을 거두고 여우와 눈덩이들의 놀이를 지켜보았다.
[엄청 큰 늑대야!]
[아냐, 여우야. 엘산나잖아!]
마지 요정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눈사람들에서 들려왔다.
[짜잔, 잡아봐라! 못 잡겠지?]
요리조리 폴짝폴짝 뛰어대는 두 눈사람들을 엘산나는 고개를 왔다갔다 돌려가며 잡아먹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도 눈사람들은 엘산나의 이빨을 피해갔다. 엘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차츰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하마터면 여우에게 총을 겨눌지도 모를 상황에서, 엘리사와 멜리사의 능력이 새로이 발현된 모양이었다.
[이번엔 여기까지. 다음에 또 놀자! 붉은 늑대야, 알았지?]
[아침에 보자아...!]
그 때, 폴폴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사 쪽으로 다가오는 눈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엘사는 총을 집어넣을 새도 없이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소리에 집중했다.
[으음, 방금 전까지 인기척이 들렸었는데에...]
[바깥소리겠지. 으하암. 어서 자자. 이러다 아침에 못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재잘재잘 수다를 떨면서 문앞을 지나던 눈사람들의 발소리는 어느 순간, 뚝 끊기고 말았다. 엘사는 한참 동안 문 앞의 소리에 주목했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복도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엘사는 마치 잠입요원이라도 되는 양 문을 아주 살짝 열어 복도를 살펴보았다.

복도에는방금 전의 눈사람이 다녀간 듯한 눈과 얼음이 점점이 놓여 아이들의 방으로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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