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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Lullaby - 68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6.26 0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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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어리?” 엘사가 되물었다. “아… 그 덩어리.”


  간단해요. 그 덩어리를 지탱하는 기둥들, 그러니까… 영혼들, 그 영혼들에게서 뻗어 나온 끈을 끊어 버리면 돼요.


  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곧바로 정령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끊지?”


  정령의 시야로 보았을 때도 그런 끈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아차린 것이 전부였다. 정령의 시야로만 볼 수 있다면, 정령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야 하는 걸까?


  엘사는 고개를 숙여서 정령을 바라보았다. 작고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엘사는 정령이 마치 자신에게 어떤 확신을 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는 방법을 알고 있니?”


  … 당신께서도 이미 방법을 알고 있잖아요.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정령의 말을 듣고, 엘사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한편으로는 그 말을 들으니 설레는 속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 정령의 눈으로, 영혼의 기억을 살펴봐야 해요. 저들이 잠식된 이유를 알아낸다면, 혹은 슬픔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저 덩어리에 연결된 끈도 쉽게 끊어질 거예요.


  “기억을 살펴본다고? 하지만, 그건… 이미 해 본 방법이잖아.”


  엘사는 방금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기 정령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해요.


  ‘더 깊은 곳?’


  사람의 기억, 그보다 더 깊은 곳이라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엘사는 정령을 빤히 바라보면서 설명을 더 요구했다. 


  그들이 느끼는 절망, 그리고 왜곡되어버린 꿈들.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해요.


  “그렇게 하면 그 끈인지 뭔지 하는 것을 끊어버릴 수 있는 거야?”


  맞아요. 기둥에 약간의 균열만 생겨도 머릿돌은 금세 무너질 거예요.


  “머릿돌? 아… 그 덩어리를 말하는 거야?”


  네, 맞아요.


  쿵, 쿵. 광기에 찬 영혼들이 일제히 발을 굴렀다. 그로 인해 생긴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이런, 아무래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네요.


  “... 응, 뭐라도 빨리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네? 뭐라고요?


  “아니, 아냐.”


  말로는 얼버무렸지만, 엘사는 설레는 감정을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었다. 다시 그 감각을 맛볼 수 있다니, 그녀는 환희하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으… 


  “갈 길이 멀어, 어서…!”


  엘사는 거듭해서 정령을 재촉했다. 정령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게 과연 옳은 결정이 맞았을까? 혹시 자신이 계속해서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어쩔 수 없어.


  정령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엘사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정령에게 귀를 기울였다. 


  방법은 방금이랑 똑같아요. 눈을 감고ㅡ


  “눈을 감고, 온몸에 힘을 빼고, 허공에 몸을 맡기는 것. 맞지?”


  ㅡ… 네, 맞아요.


  엘사는 순식간에 대답을 하고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자, 어서…!”


  정령은 진정 자신이 옳은 결정을 한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고민했다.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여전히 석연찮은 생각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계약을 통해서 엘사의 마음이, 생각이, 사념이 전해지고 있었다. 순수하던 정령을 흔들어 놓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 좋아요, 가요.


  정령이 말을 마치자 엘사는 자신의 의식이 까마득하게 멀리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모이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지만, 때마침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받쳐 주었다. 


  곧, 그녀를 땅 위에 붙잡고 있던 제약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이상 땅에 내려와 있을 필요가 없었다. 중력은 그녀를 더 이상 붙잡지 못했다. 


  또,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의 감각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다. 틀에 갇혔던 감각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녀가 가진 감각의 범위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게, 멀리 퍼져나갔다. 모든 존재들이 그녀의 곁에 존재했다. 


  아… 


  그녀는 환호성과 함께 팔을 쭉 펼쳤다. 그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마치 아이처럼,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뭐지?


  그때, 그녀의 감각에 무언가 불쾌한 것들이 걸렸다. 그녀는 그제야 잠시 묻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책무.


  해자를 몸으로 메우고, 그 해자를 뛰어 넘어서 그녀를 향해 다가오려고 하는 오염된 영혼들. 그녀는 더러운 영혼들을 정화할 의무가, 그리고 책무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령의 본능이 그녀에게 어서 저 영혼들을 정화하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머릿돌… 기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버티지 못하고 그 또한 무너지리.


  그녀가 허공에 손짓하자,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버린 영혼들의 머리로부터 한 개씩의 물방울이 솟아 나왔다.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그 물방울들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지만,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저 물방울들을 터트려 버리고 싶었다. 구역질 나오는 기운이 한가득이었다. 그러나 그녀 안의 정령의 본질이 그녀를 급하게 저지했다. 


  무턱대고 터뜨려 버리면,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것이다!


  정령으로서의 본질이 나지막이 읊었다. 그녀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손짓 한 번으로 저 물방울들을 모조리 터트려 버릴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저들을 구원하여야 한다…!


  정령의 본질이 다시금 속삭였다. 구원,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저들을 구원해야 한다. 분명 자기 자신이 속삭인 것이 맞았다. 그렇게 할 마음이 분명 있었다. 


  왜?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속 어느 부분이 그것을 아니꼬워하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가고, 그녀의 생각이 반복될수록 그 의문은 점차 잦아들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예정되었다고 보아도 아무 위화감 없을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오감이 개화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뚜렷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눈으로는 죽었다 살아나도 보지 못할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한번 손짓하자, 영혼들의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던 물방울이 그녀에게 날아와 그녀의 주위를 천천히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역겨움 또한 한층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가에 패인 주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저 방울을 손으로 감싸라.


  정령의 본질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그녀의 가슴 언저리로 날아온 한 물방울을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마침내 물방울이 그녀의 두 손에 갇힌 꼴이 되자, 그녀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뽀글뽀글, 그녀의 몸 또한 물방울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위에 느껴지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무척이나 좁은, 구슬처럼 동그란, 답답한 공간이었다. 마치 방금까지 보았던, 그녀가 손으로 감쌌던 그 물방울을 느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눈을 감고, 다시 떴다. 그녀는 그 물방울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바라본 구체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수많은 물방울들이 그 안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겉에 보이는 검게 물든 물방울들은 그녀를 밀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손짓을 한번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뜨자, 그녀는 순식간에 그 공간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바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부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물방울들이 서로 얽혀서 작은 새싹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


  그녀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순수하고 투명해야 할 물방울들이 심하게 더럽혀져 있었다. 모든 물방울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수가 그러했다. 


  그녀는 더럽혀진 새싹을 노려봤다. 분을 참기가 힘든 듯, 그녀는 이빨을 드러내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저 더러움이 주위에 퍼질 것만 같았다. 어서 저 물방울을 다시 돌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아직 불완전해. 계약은 임시였을 뿐, 아직 전달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결심하고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티끌 하나 움직이는 소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엘사는 눈을 다시 떴다. 흐릿하고 초점 없던 그녀의 눈이 다시 본래의 푸른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엘사는 머리가 아픈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이마를 부여잡았다. 


  “으으…”


  온몸이 저리고 뻐근한 느낌이었다. 갓 잠에서 깬 사람처럼 모든 것이 몽롱했다. 엘사는 작은 신음과 함께 몸을 움직여 보려 했다. 


  “... 어?”


  엘사는 그제야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 몸이 왜 이래!?”


  그녀의 몸은 여전히 물방울로 변한 채였다.








세이브 써두고 갔던거 탈탈 털었는데 고작 이정도라니 흑흑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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