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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마녀를 홀리는 묘약 3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6.27 17:58:42
조회 437 추천 25 댓글 6



"저기 마녀님!"


7살 때 안나를 거두고서 그 후로 다시 7년.

이 꼬맹이의 말투나 음정만 들어도 의중을 알 수 있었다.

지금처럼 끝의 말머리가 치솟는 애교 섞인 비음은 무언가 부탁이 있을 때다.


"안돼."


"듣지도 않고 안돼요?"


"응."


딱 잘라 말해도 이건 그냥 의례다.

마도서에 몰입하는 척 안경을 고쳐쓰는 내 책 위로 안나는 고개를 불쑥 내민다.


"진짜 안돼요?"


안나는 억지로 내 시야에 들어온다.

몇 번 의자를 돌려 피해봐도 금방 돌아오고 뗄 방법이 없는 진드기.

내가 계속 무시하자 안나는 "안돼요? 안돼요? 응? 듣지도 않았는데요? 마녀님!"

온갖 시끄러운 사이렌으로 결국 내가 마도서를 접게 만든다.


"또 뭐니 꼬맹아."


"안나에요!"


우리 대화는 비슷하다.

이제 건방지다는 투로 안나를 내려다볼 차례고 안나는 눈을 빛낼 차례다.


"말해보렴."


"저희 오두막 위층에 남는 다락방이 있잖아요?"


"그래서."


"거길 저만의 연구실로 쓰고 싶어요! 이제 여기는 마녀님과 함께 쓰기에는 지나치게 비좁잖아요?"


"안돼. 거기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고?"


"마녀님이 감시하면서도 안된다고요?"


안나는 어이가 없다는듯 제스쳐로 손을 흔들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 안돼."


"제발요 마녀님. 저만의 공간이 있으면 해요."


"이유가 불충분해."


나는 다시 읽던 부분을 펼쳤다.

안나는 다급하게 팔짱을 낀채 손가락을 잘근대고 탭댄스를 추듯 오른발을 딱딱딱딱딱 부딪힌다.


"저도 사춘기에요."


"풋! 그러니?"


기껏 나온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혹여나 허락의 의사로 생각할까봐 서둘러 감췄다.


"제발요 마녀님! 대신에 연구 일지를 써서 꼬박꼬박 하루에 세 번씩! 밥 먹을때마다 마녀님에게 보고할거고요. 또, 너무 어지럽지 않게 일요일에 한 번씩 대청소할거에요. 또, 실수하면 안되니까 위험한 일은 반드시 마녀님 연구실에서!"


나는 잠깐 고민하는척 했다.

사실 안나도 나도 알고 있다.

이 부탁을 들어줄거라는걸.

그렇지만 안나는 만약의 가능성에 걸려서 끝까지 굽실거리고 있고. 나는 반대로다.


"네 짐은 네가 옮기렴."


"그럼요! 역시 들어주실줄 알았어요!"


"너, 나를 놀리는거 같다?"


"제가요? 물론, 마녀님이 99.9%의 확률로 들어주실거라 생각했어요!"


"0.1%의 마음이 갑자기 드는걸."


"마녀님 제발요! 감사하다는 말을 잊었어요!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손을 싹싹 비는 귀여운 태도에 빙긋 웃었다.

나에게 딸은 없다. 딸은 커녕 특별히 가족이라고 할 것도.

시간에 풍화되어서 긴 세월을 어른이 되어 살아가다 보면 어린 아이의 동심이 닳아버리는걸 이 꼬맹이에게서 되찾는다.

안나는 즉시 자기 자리에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얼마나 대단하겠어.

말한대로 사춘기 꼬맹이 정도의 변화겠지.






"요새는 뭘 연구하고 있니?"


"안나의 묘약이요."


이제 묘약 연구에 관한 대화는 일상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보다 안나의 묘약? 어이가 없네.

그냥 장난 아니었어?


"말도 안되는 연구는 빨리 포기하렴."


"그럴수는 없어요. 안나의 묘약은 궁극의 묘약이라 분명히 약초학과 마법약 제조 관련에 한 획을 그을 대작이 될거니까."


"보통 인간들은 그렇게 못해. 천 년을 사는 마녀들이라면 간혹 모를까."


"저는 보통 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요!"


"보통 인간이 아니면 뭘까. 보통 바보는 아니라는거?"


"적어도 마녀님이 골라 주신 책들은 10살 이전에 전부 뗀 천재죠. 그게 아니면 마녀님이 제 그릇을 잘 통찰하지 못했다는거고요. 지금처럼."


"천재라니. 스스로 천재라고 하는 건방진 천재도 있구나."


"마녀님이 가끔 칭찬해준 말이에요."


무슨 말을 할까.

꼬맹이와 대화하다 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내가 열불이 뻗치기 전에 안나가 잽싸게 꼬리를 마는 경우.

하나는 말 섞다 보면 끝이 없는 맹랑함에 기가 차 내가 먼저 포기하는 경우.


전자면 무슨 말을 못하게 된다.

상황을 얼렁뚱땅 넘겨버려서 더 나가면 내가 이상해지는 느낌이라.

후자면 안나는 바로 한 걸음 슬쩍 더 넘어온다.

아마 지금도...


"마녀님이 생각하셔도 제가 보통은 아닌거 같죠? 부정은 안해주시잖아요."


"휴우우, 꼬맹아. 착각은 자유래도 어느 정도여야지."


"흐흐, 사실은 수명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수명?"


"일명 불로초!"


나는 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인간들은 죽음을 너무 너무 두려워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마녀들은 보통 죽음과 거리가 멀다.

마치 죽음이란게 머나먼 나중이라 미뤄놓은 일 같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들은...

그리고 안타깝지만 마녀들의 신묘한 마법조차도 시간과 운명을 어쩌지 못한다.

세상이 정한 절대적 규칙 몇 가지들은 천지가 개벽해도 바꿀 수 없는 법이다.


"너도 오래 살고 싶니?"


"네! 무지 무지 오래 살고 싶어요!"


"안타깝지만 안될 일이야."


"고루한 연구로구나. 죽음은 세계의 법칙에 정해진 결말이야. 여태까지 수 많은 시도들에도 그 누구도 영생의 결말을 맞이할 수는 없었단다. 하물며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죽음에 집착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이기 십상이지."


연극하는 말씨에 당황.

나는 미간 사이를 좁혔다.


"뭐하는거니?"


"대충 마녀님이 하실 말들을 먼저 선수쳐봤어요."


"너어....!"


말투를 괴상하게 따라하는 건방진 태도에 내가 손바닥을 들자 안나는 책상 아래로 숨는 시늉을 한다.

휴, 정말.


"사실 정말이에요. 죽음을 피할 수 없는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늦추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자세하게는 젊음을 유지하는 연구죠."


"나이를 먹기 싫어진거니? 고작 14살 주제."


"마녀님은 300살이나 되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14살이면 인간 수명에서는 거의 10분의 1을 훌쩍 넘겼다고요."


"노화를 늦출 수는 있단다."


"그거랑 달라요. 젊음을 유지하면서도 마녀님만큼 오래 살고 싶어요."


"아서렴. 죽음과 생에 관련한 일은 위험한 분야야. 깊어질수록 이상한 유혹에 빠지게 될게 분명해. 흔히들 하데스가 유혹한다고 하지. 겉모습을 바꿀 수 있는 폴리모프 주스나 늙어서도 젊은 체력을 가질 수는 있어."


"그걸로는 만족 못해요."


내가 수년간 안나를 보고 파악하는 습성 또 한가지.

지독하다 못해 어느때는 마녀인 내가 질려버릴 정도로 끝장을 내야 하는 성격이다.

끝장을 낸다는건 결국 안나의 성미에 찰 때를 말한다.

단호한 말에서 그 고집을 절감했다.


"대체 왜 그렇게 집착하는거니? 좋은 재능을 타고 났고 충분히 특별한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럴까? 너는 분명히 보통 인간보다 뛰어나. 날 만난 덕에 그 뛰어난 능력도 잘 써먹고 있고. 거기에 만족하는 방법을 배우려무나."


안나는 선뜻 대답하지 않고 귀를 긁적였다.

내 말이 듣기 싫은가? 사춘기 소녀란.


"마녀님과 오래 살고 싶어서요."


생각치 않은 대답이었다.


"나와 오래 살다니. 그게 무슨 이유가 있지?"


"제가 마녀님을 좋아하니까요."


"혹시나라도 나와 같이 살다보면 더 신기한 마법을 체험할거라 생각하는거니. 그럼 기적 같은 일을 겪을까?"


"그런게 아니라니까요! 마녀님을 좋아한다! 그게 전부에요. 마녀님은 모르겠지만 저는 아주 아주 옛날부터 마녀님을 찾아 다녔으니까요. 처음 이 숲과 산에 사는 마녀님 얘기를 들었을 때 운명처럼 느꼈어요! 마녀님을 만나고 싶다고."


첫 만남을 돌이켜봤다.

당차게 대답한 안나였지만 그때 몰골은 꽤 위험했다.

혼자 과일 나무를 올라본다고 낑낑대다 팔과 다리가 나무에 긁혀 피가 난 상처들.

제대로 잠을 못 자는 상태로 예민해진 몸에 미약한 영양실조.

거기서 이틀 정도 나를 만나지 못 했다면 안나는 기력이 다 했고 일주일 정도면 아사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를 보자마자 아무렇지 않는 모습에 당황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나를 데려다가 응급처치로 온갖 묘약을 주스라며 줬던게 안나의 재능에 영향을 줬었을려나.


마녀의 금기는 셀 수가 없다.

고릿적 역사속 것들까지 세어보자면 끝이 없을 정도.

그중에 비교적 최근에 지켜야한 엄중한 사항들이라면 인간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마녀임을 들켜서는 안된다.

중세의 대대적인 마녀 사냥 이후에 마녀들은 대부분 인간들에게 치를 떤다.

그것과는 별개로 또 인간들과 너무 깊은 관계에 빠져 마녀임을 잊어가는 순간 마녀는 마녀가 아니게 된다.

자신도 어느새 인간과 닮아 버려서 관계의 종말과 시간의 간극을 못 견디고 자결하는게 대부분 마녀의 결말이다.


나는 안나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애써 어린애 장난으로 무시했다.

나도 인간처럼 닮아버리게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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