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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마녀를 홀리는 묘약 5

ㅁㄴㅇ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7.08 02:15:07
조회 506 추천 24 댓글 6



"심장을 얼려주세요."


"뭐, 뭐...뭣!?"


"다시 말씀드려요? 제 심장을 얼려주면 안될까요?"


꼬맹이가 어른이 된 이후로 조금 달라졌다.

처녀인 주제 어딘지 농익은 태도는 차차하고.

어릴 때는 상상을 못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얼음 마녀들은 심장을 얼려서 그 사람의 혼을 잡아둘 수 있다고 들었어요. 여기 보세요!"


"그건...위험해! 거기다가 너는 얼음속에만 있을 뿐이라고!"


"그래도 이런 방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엘사 옆에 남아 있을 수가 없잖아요.


"왜 자꾸 이런 일에 매달리는..."


"말했잖아요! 엘사랑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고."


안나는 대뜸 내 두 손을 잡아챘다.

무섭지도 않아?!

갑자기 얼려버릴줄 아냐고!

이제는 애들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진심에 내가 질겁한다.

안나는 낚아챈 내 손을 자기 뺨에 온전히 갖다 댔다.


"엘사 손은 부드러워서 좋아요."


"그만해!"


나는 후다닥 부엌을 나왔다.

꼬맹이 녀석!

어른이라고?

그래, 어른이 되더니 사람이 완전 달라졌다.

뭐랄까 좀 더 성적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어디가요 엘사!"


안나는 벼락처럼 쫓아와 뒤에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얼려주고 가요! 지금 이 젊음을 간직한 채로 얼어야 한다고요!"


"이, 미친! 떨어져!"


"그럼 다른거라도 들어줘요."


"다른거 뭐!"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시끄러워!"


고집이 이런걸로 전이되니까 미쳐버릴것 같아!

안나는 어른이 되고서 부쩍 더 집착이 심해졌다.

나에 대해서도.

마녀에 비하면 한 없이 짧은 생에 대해서도.

옛날부터 그랬지.

영생을 꿈 꾸면서.

심장을 얼려달라고?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줄 누가 알아!

300년 넘게 산 마녀라도 사실 마녀 세계에서 난 엄청 젊고 경험 없는 편이라고!


"그렇다고 위험한 흑마법들은 손 대고 싶지 않잖아요!"


"그건 절대 안돼!"


"수명에 대해 연구할수록 그걸 다루는 방법은 그쪽 밖에 없어요! 묘약 따위로는...아니면 강령술이라도!"


"그딴걸 하기만 해봐! 가만히 둘거 같아?"


"그러니까 저를 도와줘요! 엘사..."


이번에는 태도를 바꿔서 다른 작전이다.

나는 억척스러운 고집보다 이런 면에 더 약하다는걸 알고 있겠지.

안나는 소심한 목소리로 풀이 죽은채 꼼지락거렸다.


"엘사는 이대로 제가 죽으면 어떻게 할건가요?"


"뭐..."


"그런 생각 안해보셨어요?"


"그런건 일상적이라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차갑게 말하려고 감정을 뒤로 했다.

옛날부터 짐작한 결말이야.

당연한 일이라고.

안나 같은 사별을 한두번 해본줄 알아?

300년이야 300년!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길고!


"꼬맹아, 뭔가 착각하나본데. 나는 마녀란다. 기껏 네가 십년 언저리 알았다고 대단한 유대라 생각말렴."


"아...그렇...겠네요."


충격받은 얼굴이다.

그렇겠지.

충격 받으라고 하는 말이다.


"휴우우. 꼬맹아. 너도 이제 어른이란다. 너도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어."


"제가 원하는건..."


"여기서 영원히 나와 사는건 안돼! 운명을 거스르려 하지마. 아직 네가 겪어보지 않은 일들도 많아. 생의 의미를 나 말고 다른 것에서 찾아보렴. 네가 즐거워하는 일을 찾아서."


"마녀님은 제가 없어도 괜찮은가요?"


"...당연한 말을 하니."


안나는 뚱하게 있다가 말 없이 돌아섰다.

자기 다락방으로 들어간 안나를 보며 나는 한숨을 크게 쉬어댔다.

어려워 정말.

인간들과 깊은 관계가 맺어지는건 적응이 되질 않아.


마녀도 인간도.

다 똑같은걸 알면서도 다른 선상에 서야 하는게.

어렵다 진짜.






꼬맹이가 안보인지 한 달이나 넘었다.

한 집에 있는거는 같은데 나를 마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이다.

아마 내가 본 꼬맹이의 노여움중 가장 긴 신기록이었을까?

늘 하는 생각이었지만.

차라리 잘됐어.

그러다가 어느날 제 발로 떠나기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어차피 서로가 잊혀지는 시간까지 채 10년 남짓이다.

마녀들은 시간을 짧게 계산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만약 안나가 사라져도 어느날 문득 다시 떠올릴 때면 서로의 세상은 바뀌어 있는거다.


"마녀님, 아니 엘사!"


그래도 꼬맹이 너는 참 특별했어.

그런 생각을 하던 참에 벌컥 다락방으로 이어진 문이 열린다.

안나는 플라스크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묘약을 들고 있었다.


"꼬맹이? 너 집에 있기는 했었니?"


"그런게 뭐가 중요해요. 새로운 묘약을 만들려고 꼬박 일주일을 넘겼다고요."


플라스크에 들어 있는 무색의 액체는 기묘한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저런 빛깔이 나올 수 있는 묘약이 있었던가?

묘약의 색만 보아도 어떤 재료가 어떻게 쓰였는지 으레 짐작이 되지만 이건...

완전히 처음 보는 부류였다.


"대체 이게 뭐니?"


"안나의 묘약이죠!"


"안나의 묘약? 하."


"비웃으셔도 좋아요. 아직 이 묘약에 대해 모르시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거니."


"조금만 드셔보시면 안될까요?"


나를 뭘로 아는거야?

내가 실험용 쥐인줄 알아?

인상을 찌푸리자 안나는 격하게 손사래쳤다.


"단순히 평을 듣고 싶어서요. 제 걸작에 대해서. 아주 소량만 드셔봐도 되잖아요. 어차피 마녀님은 엄청난 저항력이 있으니까. 게다가 종종 평가 해주셨으면서 왜 그러세요."


"뭐, 그건 그렇지."


나는 의심 없이 안나가 건넨 플라스크를 집었다.

특이해. 정말로 특이해.

이런건 본적이 없기는 하단 말이야.

꼬맹이의 맹랑함 덕에 쌓인 의구심은 미뤄둔다.

지금은 순수한 탐구적인 열망이다.

안나는 기대감이 가득한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독설은 못하게 하려는건가.

웃는 얼굴에 침 뱉기는 껄끄러우니까.

여하튼 나는 자칭 안나의 묘약을 크게 한 입 마셨다.


"큭? 으읏...!"


나는 묘약을 마시자마자 속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각에 신음을 토했다.

아니, 묘약이 삼켜진 입속을 시작으로 넘겨지는 식도와 뱃속까지.

미친듯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온 신경이 순식간에 예민해지다 못해 견딜 수 없어서 경련이 온다.


"으...너, 너어...이 꼬맹이 대체...뭘..."


다음 순간에는 온 몸에 감각이 두루뭉실 사라져간다.

손에 힘이 쭉 풀려서 붙잡은 플라스크를 놓쳐버려 바닥에 쨍그랑하고 깨졌다.


"이쪽에 앉으세요."


어느새 안나는 의자를 끌고 와 나를 거기 앉혔다.

몸에 힘이 없고 말을 안들어서 손쉽게 의자에 털썩 떨어졌다.

나는 입가를 감싸며 방금 삼킨 묘약의 후폭풍을 견디려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뭐, 뭐를 먹인...거야..."


손에서 마법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된거지?

아예 나의 모든 능력이 사라진거 같아.


"안나의 묘약이라니까요 위대한 마녀님. 킥킥."


"그, 그마....잠깐...."


"잠깐만 기다리면 다 괜찮아질거에요."


몸이 마비가 된다.

생각이 짧아지고 사물 분간이 안된다.

안나는 오히려 헉헉대며 힘들어 하는 내 머리를 짚어 쓰다듬었다.


"마녀님도 이렇게 연약해질 때가 있네요."


"너, 너어...가미히...."


"조금 격한 방법이라 죄송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거 같았으니까."


안나는 시계를 보며 초침을 셌다.

똑딱. 똑딱. 똑딱.

처음에 불 같이 뜨거워졌던게 조금 진정되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어떤가요 제 안나의 묘약이? 사실 완성은 예전에 했는데 좀 더 완전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엘사를 관찰할수록 뭔가 더하고 싶은 것들도 많아져서요."


"지, 지어....치워...너..."


"지금 마녀님이 가진 저항력은 완전히 없는 상태에요. 그 묘약의 기본 베이스는 안티클이니까. 몸이 둔감해지죠? 폴라미닝이에요. 펠리시스로 신경도 예민해질거고. 마녀님이 종종 제 방을 들이닥칠 때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혹시나 싶어서."


안나는 혼자 떠들어댔다.

그러라지.

나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아봤지만 역시 마법이 나오지 않는다.


"한 번 제 묘약을 테스트 해볼까요? 마녀님은 절 어떻게 생각하나요?"


안나의 질문마다 몸이 부글거린다.

축 늘어진 내 몸에서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말이 나온다.

펄시리즐인가.

어떻게 이런 복합적인 효과가...


"다...당연히....가장 사랑....하는..."


"정말요? 거짓 없는 진짜겠죠?"


"그...거야 당....연....아니야!....으윽.....큿!"


"혹시나 싶어 아모텐시아도 섞었는데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안나는 펄쩍이며 기뻐했다.

사랑의 묘약?

대체 몇가지나 되는 약이 혼합된거야.

그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한 가지 묘약에 어떻게....

나는 가눌 수 없는 정신 속에 방금 마신 빛나던 묘약을 다시 상기했다.

궁극의 묘약...

한 천재가 만들었다는....

그게 정말인가?

대체 이게....생각이 따라가질 못한다.


"저에게 사과하고 싶은 일이 있죠? 최근에?"


"그...그래..."


"뭐였나요?"


"너....네가 필요해....없어지지 마...아줘...."


안나는 그럼 그렇지 하는 의기양양한 태도다.

굴욕이다.

어떻게 내가.


"엘사."


더 이상 내 의지가 나를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지금 순간에 나는 이 묘약 탓에 안나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었다.


"제가 엘사와 영생하는 방법을 찾았어요. 사실 오래전에 알고 있던거에요."


"그...그만...."


"마녀들이 부리는 주술의 일종이에요. 평생의 종속으로 혼을 나누는 것이죠."


마녀의 각인을 얘기하는건가.

그, 그건.....


"마녀의 각인을 남기고 주술로 묶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랍니다. 엘사는 알고 있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펄시리즘의 효과가 안나가 묻는 말에 전부 거짓 없이 답하게 만든다.


"흡혈귀들과 비슷한 방식이죠. 다만 피를 매개로 하는게 아니라...다음은 엘사가 말해줄래요?"


더 얘기하지마 제발.

나는 저항하기 위해 간신히 손을 들어 입을 막아 봤다.

안나는 허망하게 연약한 내 두 손을 떼어버리고 얼굴을 가까이 마주댄다.


"두 사람....이....하나가 되어야해..."


"그렇군요.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


"큿...큭....! 마녀의.....순결....을....사랑하는...사람과....첫 관계로...."


나는 수치스러움을 꾸역꾸역 참으며 토했다.

고작 20살 언저리의 꼬맹이에게 300년을 넘게 처녀로 지낸 내 순결을 고백하는건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잘했어요 엘사.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이 없으니까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네요."


안나는 다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젠장....왜 기분이 좋지....

나는 이 모든게 그 망할 안나의 묘약의 효과 탓으로 생각하려고 발악했다.


"제 즐거움을 찾으라고 하셨잖아요."


"그...그래에...."


"엘사에게 제 묘약을 삼키게 한게 몇 번이나 될거 같아요? 항상 제가 만든 식사를 드셨으니까요."


"너...너 대체 언제부터?!"


"후훗, 엘사와 사랑하면서 평생 배우고 공부하는 즐거움도 누리고 싶어요. 이게 제가 찾은 즐거움이니까."


안나는 내 손을 잡아 자기 뺨에 대었다.

마치 내가 안나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니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나.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저 지금 내 눈에는 안나의 입술이 덮쳐오는 것만 보이니까.

나는 허망하게 내 입술을 내어주었다.


아.....


대체 꼬맹이주제 언제 이렇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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