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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Stolen Ice 5. (오션스일레븐 엘산나)

thk(118.97) 2014.06.22 00:21:56
조회 2166 추천 51 댓글 14

Stolen Ice

 

번역 허락 글

Chapter 1. Prologue

Chapter 2. Field Trip

Chapter 3. Working Hard or Hardly Working

Chapter 4. A Spark

 

 

Chapter 5. Working Hard or Hardly

 

 

최소한 저택 내부가 외관보다는 나았다. 깔끔한 조형물, 점잖은 풍의 대리석 아치 기둥, 그리고 노란색 벽과 크림 화이트 색 타일에는 방 안 조명이 아름답게 반사되었다. 과하게 호사스러운 샹들리에가 오점이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무어 저택의 인테리어는 과시성, 기능성, 그리고 미학성의 세 용도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개인 전시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보안은 생각보다 철저했다. 안나는 몇 몇 감시카메라를 눈짓으로 확인했으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퀸이 CCTV 기록에 안나가 남지 않도록 저택의 중앙 보안시스템을 이미 해킹해놓았다. 스틸레토 힐 안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게 할 만큼 놀라게 한 건 절대적으로 많은 보안 요원의 숫자였다. 에일리언 같이 생긴 하얀색 이어폰 코드를 귀에 끼고 현관에 서 있는 덩치들의 머리 수만 세어 봐도 최소 6명이었다. 물론, 이 곳이 전시회장의 메인 홀이긴 했으니 비싼 작품들 근처에는 당연히 더 많은 요원들이 배치 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남쪽 동 1층과 2층 입구에 주둔하고 있는 별도의 보안요원 4명을 보니, 그 곳에 오로지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공개되는 귀중한 예술품들이 모여있는 듯 했다.

 

퀸이 Stepton 금고를 해제할 수 있도록 안나가 잠입해서 커버를 치고 시간을 벌어줘야 하는 바로 그 곳.

 

젠장.

 

쇼나 빨리 시작해야겠다.

 

“무어 선생님!” 안나가 활기찬 목소리로 외치며 호스트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예이츠의 작품 전시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오웬 무어는 자신의 뒤섞인 핏줄의 국적을 싫어하는 중년의 미국인들 중 하나였다. 한 번 밖에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라도 좀 더 흥미로운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라면 온갖 아는 체를 해댈 종류의 사람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의 가계를 더듬어 올라가면 아일랜드의 고대 가문 중 하나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서재에 역사책 몇 권을 구비해 놨을 것이다. 무어는 자신의 혈통 중 1/16을 차지하는 아일랜드 계통을 우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태세였고,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등쳐먹으며 쌓아온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호화스러운 전시를 열곤 했다. 이를테면 이번 전시회 같은.

 

소문에는 그가 아일랜드 계 빨간머리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안나의 머리 같은)

 

“예이츠의 작품에 대해 아나 보죠?” 마리아나 해구만큼이나 커 보이는 언청이 입술에 번지르르한 미소를 흘리며 무어가 말했다. “아직 통성명을 하지 못했군요 이름이…”

 

“코너. 사라 코너에요. 더블린(*아일랜드의 수도)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의 학부생이에요. 지금은 휴학하고 미첼 재단에서 일하고 있죠. 뉴욕대에서 선생님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감사하게도 제 교수님께서 초대장을 보내주시기로 하셨어요. 이 미국 땅에서 어떻게 선생님의 저택에 들를 수 있게 되었는지 정말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영광입니다.”

 

안나의 천진난만한 수다에 무어의 표정이 한 층 밝아졌다.

 

“안나 양의 교수님 성함이 어찌 되시나요?”

 

“게일/켈트족 지역연구 학과의 파워 선생님이십니다. 지금 뉴욕에서 1학기 교환 교수로 오셔서 보스턴 대학과 공동 연구 중이세요.”

 

“오! 파워 교수라면 잘 알죠. 최근 아일랜드 골웨이 지방을 방문했을 때 뵈었어요. 그런데 내 귀가 정확하다면 안나 양은 아일랜드 서부 억양이 아닌 것 같군요. 더블린 사투리 같은 촌스러운 구석도 전혀 없고 말이지요. 혹시 어느 지역에서– ”

 

“북부 지역의 도네갈 출신이에요.” 안나가 흠 잡을 데 없는 아일랜드 억양으로 대답했다.

 

“으음흠, 오웬?”

 

“결례를 범했군요. 사라 코너, 나의 아름다운 아내, 카를라를 소개하죠. 이번 전시회를 총괄했어요. 카를라, 모국을 떠나 교환학생으로 잠시 방문 중인 매력적인 아일랜드 여학생이야. 미첼 재단의 장학생으로 와 있다고 하는군. 최소한 미국 정부가 뭔가 제대로 하고 있는 일이 하나는 있는 모양이야.”

 

“만나서 반가워요,” 카를라가 말했다.

 

그러나 별로 반가운 톤이 아니었다. 그녀는 먹이를 노리는 새처럼 안나를 낚아 챌 준비가 되어 있다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무어 부인, 정말 굉장한 이벤트로군요.” 안나가 아부를 떨고는 무어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예이츠의 유화를 볼 수 있길 바랬는데 말이죠. 물론 여기 있는 작품들 또한 대단하지만 말이에요! 작품들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선생님이야 말로 훌륭한 팬이시잖아요.”

 

“여보, 그래도 될까?” 무어가 아내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전 그럼 한 바퀴 돌고 올게요.” 땅딸막한 무어 부인이 구석으로 걸어 가더니 샴페인 두 잔을 비웠다.

 

“이 선들이 보이나요, 여기?” 무어가 전시된 작품 중 연필 스케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잭 예이츠는 말을 굉장히 좋아했죠. 명암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시간을 꽤나 쏟았어요.”

 

“오 정말이에요?” 안나는 이 남자가 스케치는 고사하고 움직이는 동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음영선이 중요한지에 대해 지식이 전무함을 알면서도 물었다.

 

“더블린의 미술관에서 예이츠가 말을 그린 유화를 본 적이 있어요. 때때로 그저 미술관 벤치에 앉아 색감을 바라보곤 하죠. 그의 연필 스케치는 클래식하지만, 사실 그 유화의 대담한 색상 표현이란 그저… 짜릿해요.”

 

그 말과 동시에 안나는 무어의 어깨와 팔꿈치 사이 축 늘어진 부분을 손으로 슬쩍 훑어 내렸다.

 

“억눌린 에너지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색상이 정말 풍부했어요.” 안나가 화사하게 싱긋 웃었다. “이런 환상적인 색상이라면 눈에서 별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말이에요.”

 

“뭐, 만약 내가 그의 유화를 좀 갖고 있다면 어떡할래요?”

 

“가지고 계신단 말이에요?” 안나가 채 일 초도 안 되어 호기심 많은 학부생에서 빈틈없는 여자의 얼굴로 낯빛을 바꾸며 물었다. “저는, 음… 가까이서 그 작품들을 볼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에요. 너무 많은 유화들이 프레임 손상 때문에 공개 전시회에서 제외 되었거든요.”

 

“높은 곳에 제가 친구들이 좀 있죠. 보통 아무나 이 개인 전시실에 들이진 않아요.”

 

예예 무어 선생님, 퍽이나 그러시겠죠

 

“아마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드려야 되는 거겠죠? 전 타국에 나와 있는 가난한 학부생일 뿐인걸요, 하지만 무어 선생님…”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툭 떨어뜨렸다. “빨간머리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는지 아시잖아요?” (*1)

 

그리고 안나는 그의 팔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무어가 안나와 눈을 맞추더니 윙크를 해 보였다. 안나는 이런 저질 유부남들의 음흉한 눈길에 구역질을 참아내야만 했던 수많은 경험이 충분히 있었다. 안나는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그의 어깨에 괜히 보푸라기가 있는 척 손길을 떼내었다. 그리고 곧 파티의 주인은 안나를 남쪽 동 2층으로 안내했다. 무어가 안나를 발코니로 데려가는 와중에 현관에 서 있는 카를라가 보였다. 그 노년의 부인은 게스트들이야 어찌 생각하건 말건 잘생긴 웨이터들 중 한 명을 코트 보관실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와 똑같은 일이 족히 두 배의 나이 차이가 날 법한 호스트가 에스코트하고 있는 이 아리따운 아가씨에게도 일어 날 수 있었다.

 

“여러분, 잠시 비켜주시지요.”

 

그러자 보안요원들이 남쪽 동으로 가는 길을 내 주었다. 안나는 재빠르게 Stepton 금고로 향하는 길목의 계단을 확인했다. 복도 한 군데 전체는 일련의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스커비꽃과 각 방 문 위에 장식된 성 브리지드(*아일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성자)의 십자가로 꾸며져 있었다. 아일랜드를 향한 눈뜨고 못 봐줄 재현이었다.

 

널찍하고 채광이 좋은 서재 겸 집무실로 무어가 안나를 안내했다. 잭 B. 예이츠의 유화 5점이 걸려 있었다.

 

“혹시 예이츠의 ‘The Wild Ones’ 아닌가요?” 깜짝 놀란 안나가 물었다.

 

“안목이 굉장하군요, 코너 양.”

 

“처음으로 백만 파운드가 넘는 가격에 팔린 20세기 아일랜드 작가의 작품이잖아요. 어떻게 손에 넣으셨는지 궁금한데요.”

 

“오, 뭐, 학문의 세계는 교수님들이 가르치는 만큼 그리 딱딱하진 않답니다. 연줄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그런거죠 코너 양.”

 

“제발 사라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럼 날 오웬이라고 불러요.”

 

“당연하죠, 오웬.” 훤히 드러난 어깨 위로 안나가 아주 잠깐 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 이 부분, 두껍게 스패클링(*회반죽 덧칠)을 했네요. 표현주의의 아주 모범적인 전형이죠.”

 

“아름다운데 똑똑하기까지, 사라.”

 

“아닙니다,” 안나가 방 가운데 있는 마호가니 테이블에 손가락을 끌며 수줍게 말했다. 안나는 필요 이상으로 엉덩이를 흔들며 무어에게로 느긋하게 다가갔다. 무어가 고개를 숙여 자신에게 기울이도록 안나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미첼 재단이 도네갈의 아무 여자에게나 장학금을 주는 건 아니니까요.”

 

“사라가 바로 그 케이스라 매우 감사하군요.”

 

“혹시 말이지요…” 느릿느릿 말을 끄는 안나의 둥그렇게 말린 손가락이 무어의 아르마니 정장 소매를 천천히 훑어 올라갔다. 안나는 마호가니 탁자 위에 걸터 앉아 무어의 바짓가랑이에 닿을랑말랑 다리를 꼬아 치마를 거의 끝까지 말아 올렸다. 

 

“혹시 제가, 몸단장을 할 만한 방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선생님과 함께… 작품들에 대해서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이죠, 저는 그저- ” 매력적인 반달 눈썹을 뽐내며 안나가 무어의 머리부터 발끝을 두어 번 훑고 난 후 말했다. “-준비하고 싶어서요.”

 

무어가 튀어 나오려는 기침을 참더니, 땀이 축축한 손바닥을 안나의 허리 뒤에 올렸다.

 

손 치워, 이 아저씨야! 라고 안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홀을 따라 내려가서 오른쪽 3번째 방에 있어요. 준비가 다 되면 내가 그리로 가지.”

 

“10분이요.” 안나가 무어의 넥타이를 와락 움켜쥐고 열띤 숨을 내쉬며 말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휘청이는 몸을 진정하기 위해 문고리를 잡더니 다시 방으로 돌아가 허리띠를 슬쩍 아래로 내리는 모습을 본 안나는 만족스러웠다.

 

안나는 서둘러 계단을 찾아가서, 2층에 있는 가구 위에 놓여진 고약한 손님이나 종업원이 놓고 갔을법한 반쯤 빈 샴페인 잔을 낚아 채 들었다. 그리고는 이어폰이 작동하길 바라며 조용히 속삭였다.

 

“퀸? 엄, 안녕, 들려?”

 

“응?”

 

“금고 근처에 있어?”

 

“이 창문 밑에 15분간 매달려 있었어. 네 대화에 토할 뻔하면서 말이지. 보안요원들은 보여?”

 

안나는 계단을 두 칸씩 한번에 뛰어 올라가며 카펫이 소음을 줄여줘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한번, 두번, 그리고 세번 코너를 둘러보니 마침내 3층 알코브(*방 속에 부속으로 딸린 작은 방)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보였다. 안나는 끈 없는 가운의 윗부분을 추켜세워 가슴을 만져 위치를 다시 잡고는, 얼굴 쪽으로 잔머리 몇 가닥을 빼냈다.

 

“보여. 얼마나 필요해?”

 

“4분 28초.”

 

“와우. 정확하기도 해라.’

 

“정확성이 고층빌딩에서 번지점프를 할 때 몸과 아스팔트 바닥 사이 1인치 간격을 유지하는가 아니면 죽음인가를 갈라 놓는 차이를 만드는거야.”

 

안나는 아까 집어 온 샴페인을 귓가와 목 언저리에 대충 뿌리는 동시에 보안요원들을 살폈다. 클러치에서 볼펜형 손전등을 꺼내 눈으로 바로 쏘아서 동공을 확장시켰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진 묻지 않을게.” 안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알겠어, 4분 30초쯤. 가.”

 

안나는 큰 소리로 깔깔거리며 코너를 돌고는 벽에 휘청휘청 기대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웁스!” 그녀가 반쯤 빈 샴페인 잔을 흔들며 말했다. “하이이이이이이!” 불분명한 발음으로 안나가 크게 외치며 보안요원들을 향해 비틀비틀 다가갔다. 180cm은 족히 넘어 보이는 거구의 두 남자가 서로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더니 안나를 바라보았다.

 

적갈색 머리의 안나의 눈에 도저히 인간이 통과할 수 없는 팔각 모양의 창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검은 형상이 보였다. 창문을 통과한 퀸은 곧장 금고문으로 걸어가더니 키패드 앞에 손을 대고 흔들었다. 불빛이 경고음 하나 없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블랙 캣 슈트의 여자는 오후 산책이라도 가는 마냥 느긋하게 금고로 다가갔다.

 

안나에겐 아직 4분이 남아 있었다.

 

“신사 여러분,” 안나가 아일랜드 억양으로 말했다. “제가 이 미국 땅에서의 작은 파티를 헤집어 놓은 듯 하군요.”

 

“여기 올라 오시면 안 됩니다, 아가씨.”

 

“오, 하지만, 무어 선생님이 절 남쪽 동으로 안내해주셨는걸요. 그가 내게 보여 주고 싶어 했거든요- “ 안나가 키득거렸다. “-개인 컬렉션을 말이에요.”

 

안나가 그들을 보며 싱긋 웃자 보안요원들이 능글맞은 미소를 교환했다. 또 한 번 킥킥대며 웃은 안나는 샴페인을 후루룩 마시고는 입가에 주르륵 흘렸다.

 

“오, 젠장!” 샴페인이 카펫 바닥을 적셨다. “거기 신사 두 분, 절 좀 도와주시겠어요? 이 포도 주스에 그만 취해버렸네요. 우리 본토 섬에서는 맥주만 마시거든요. 샴페인은 별로.”

 

“2분.” 안나의 이어폰에서 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나가 뒤로 쓰러지는 척 하자, 남자 한 명이 거대한 손바닥으로 안나의 팔을 잡아챘다. 제발 이 일이 걸리지 않고 무사히 끝나기를, 그렇지 않으면 안나는 자신의 윗팔뼈가 아기 새의 목처럼 너무도 쉽게 반토막 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안요원이 알코브 코너에 있는 쿠션 의자로 안나를 데리고 갔다.

 

“고마워요. 제가 잠시만 앉아있어도 될까요? 불행히도 파티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네요, 오, 하지만 무어 선생님의 특별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 또한 흔치 않지요.”

 

“예술 작품을 논할 자유로운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아가씨.”

 

“그렇게 수상한 일만은 아니에요,” 안나가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경박한 미소를 띄운 채 말했다. “무어 선생님 같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은 이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입수하기 위한 충분한 연줄을 가지고 계심을 짐작하겠지요. 이 모든게 그저 동화 속 얘기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음을 말이에요, 그렇죠?”

 

두 남자는 안나에게 시선을 고정 시켰다. 몸집이 좀 더 건장한 사내가 권위적인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랫층으로 에스코트 해드릴까요?”

 

“그냥, 잠시만요, 잠깐만 앉아서 좀 진정하고 갈게요.”

 

“30초,” 허스키한 목소리가 안나의 이어폰에서 다시 들려왔다.
 
안나는 편두통을 달래려는 척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 사이로 금고 문에서 아까 통과한 창문 쪽으로 은밀하게 이동 중인 퀸이 보였다. 어두운 밤이나 흐릿한 모니터 빛의 방해 없이 확연한 자세로 선 여자의 몸매를 보고 있노라니 놀라웠다. 모래시계 같이 호리호리한 허리로 흐르는 유려한 각선미, 스니커즈를 신은 두 발과 단단한 어깨선 사이로 떨어지는 백금발의 땋은 머리.

 

이 모든 게 굉장하게 느껴졌다. 퀸이 문자 그대로 창문 밖으로 뛰어 내리기 전 까지는.

 

너무 놀란 안나는 숨을 크게 들이 마셨으나, 다행히 기침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안나는 비틀비틀 서서 술 취한 연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쪽이죠, 맞나요?”

 

“아니요, 이 쪽입니다.” 보안요원이 부드럽게 안나의 어깨를 돌아 세우며 말했다. “무어 선생님은 보통 서재에서 손님 접대를 하십니다.”

 

“그렇군요,” 안나가 샴페인 잔을 든 손으로 아양을 떨며 손을 흔들며 내려갔다. 두 보안요원의 시야에서 안나가 보이지 않게 되자, 안나는 걸음걸이를 바로 하고 저택 홀의 중앙 계단으로 바로 뛰어내려 갔다. 코트 보관실에 맡겼던 숄더 랩은 내버려 두기로 했다. 15분이란 시간이 카를라 무어 부인과 웨이터 간의 은밀한 유희에는 빠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와의 하룻밤을 기대하고 있을 오웬 무어에게는 더더욱.

 

결혼이란 참담할 거야.

 

연회장 벽에 바싹 붙어 이동한 안나는 부엌을 지나 종업원 용 출입구로 빠져 나왔다. 10분 후, 부러진 힐 한 쪽을 신은 안나는 다시 저택 진입로에 주차된 검은 세단 옆에 서 있었다. 어마무시한 첨단 장비를 장착한 퀸의 하얀색 밴이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빠르네.” 밴의 옆 문이 스르르 열리자 안나가 말을 건넸다.

 

“그리고 넌 이상한 목소리로 말하더군. 아주 많이.” 퀸이 손을 내밀었다.

 

“잘했어!” 안나가 꺅 외치며 퀸이 내민 손을 찰싹 내리쳤다.

 

퀸은 즉시 손을 떨구고는, 안나가 친 손 끝을 다른 장갑 낀 손으로 문질러댔다.

 

“왜- 대체 뭐였어 이게?”

 

“하이파이브?” 안나가 물었다.

 

“뭐라고?”

 

“하.이.파.이.브?” 너무도 놀라 보이는 퀸의 모습에 자못 혼란스러워진 안나가 설명했다. “왜 있잖아, 사람들이 신나면 서로 하는거? 일이 잘 끝났을 때?”

 

“오 그래, 맞아… 하이파이브.”

 

“네가 일생에 한 번도 하이파이브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쪽에 감히 내기를 걸어도 될까?” 안나가 말했다.

 

퀸이 낮게 으르렁대며 말했다. “난 내 이어폰을 돌려받길 원했을 뿐이야.” 퀸이 한 번 더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안나가 한 번만 더 장난을 치면 바로 쳐내버릴 기세로 빳빳하게 펴져 있었다.

 

“그냥 보이는 걸.” 안나가 말했다. “난 사람들을 관찰하고 연구해, 내 일을 위해서.” 여자의 얼굴이 움찔하는 걸 알아챈 안나는 뭔지 모를 – 그러나 샴페인과는 전혀 상관 없는 – 만족감이 올라왔다. “그리고 너는– ”

 

“알아. 이상하지.”

 

“매력적이야.”

 

그 다음 퀸의 행동은 안나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안나에게 지나칠 정도로 가깝게 몸을 기울였다. 안나를 만지진 않았지만, 사람과의 상호 작용이 한여름의 눈사람만큼이나 아주 생소한 개념인 것처럼 탐구 정신 충만한 눈으로 안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퀸은 곡예사처럼 발 앞꿈치로 짚고 서서는 차 안에서 밖으로 몸을 쭉 내밀었다. 그녀가 안나 얼굴 코 앞에 있었다.

 

“니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진 상관 안 해.” 중저음의 목소리에 안나의 목 뒤에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다.

 

안나는 자신의 이 신체적 반응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네네, 뭐, 그러시든지.”

 

안나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었다.

 

“그래서 조각상은 빼냈어? 금고를 정말 순식간에 딴 거 같던데… 내가 아는 해커가 있는데 그런 시스템을 뚫으려면 족히 이틀은 걸릴 거야.”

 

퀸은 애매하게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이어폰을 받아 쿠션 케이스에 집어 넣었다.

 

“조각상은 빼냈어.” 퀸이 확인하라는 듯 대리상 조각을 꺼냈다.

 

“이 조각의 미니어쳐는 진짜 별로야.” 안나가 말했다. “특유의 장엄함을 잃어버리거든. 그렇지 않아?”

 

“나는 모르겠어.”

 

“의견이 있을 거 아니야.”

 

“난 내 의견을 말하고 돈을 받는 게 아니야. 나는 한스 웨스터가드에게 이걸 전달하는 임무로 돈을 받을 뿐이야. 자, 이제 나에게 무의미하게 던질 수다거리가 더 남아 있나?”

 

안나가 입술에 손을 올렸다. “내 무의미한 수다거리를 억지로 듣게 해서 미안하네. 함께 일해서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 같은 허접한 사기꾼도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참을 순 없을 거 같네.”

 

“즐거울 필요는 없어. 일이잖아.”

 

“그렇다고 즐거울 수 없다는 말은 아니야.”

 

“우리가 다시 마주칠 확률은 매우 적을 테니, 지금 언쟁을 더 이어나갈 이유는 없을 것 같군. 내가 한스에게 조각상을 전달하면 보수금은 정해진 비율대로 배분될 거야. 굿 이브닝, 사라.”

 

“굿 이브닝, 여왕 폐하.”

 

안나는 발걸음을 돌려 검은 세단에 올라 탔다. 광분한 안나는 미친 듯이 과속을 해서 차를 몬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속도위반 딱지를 뗄 위기를 겨우겨우 모면하기도 했다.

 

안나는 정말로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

 

 

 

 

 

========================================================================

1) 빨간머리는 성미가 폭력적이고 주근깨 있는 천한 신분이다 뭐 이딴 선입견이 있음. ‘Gingerism’이라고 해서 Racism이랑 비슷한 개념으로 근거 없이 빨간 머리를 차별하는 사상까지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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