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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2) 안놔와 위대한 마법사 4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25.39) 2016.03.24 01:27:05
조회 387 추천 17 댓글 6

파비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 몸을 옮겨왔다해도 영혼 깊숙한 곳까지 퍼진 얼음은 숨길 수 없어. 하얀머리는 저벅 저벅 테이블쪽까지 걸어가더니 넓은 의자에 대충 앉아서 기대어. 파비도 테이블 가까이 와서 컵을 올려둬. 불만이 많아 보이는 하얀머리는 퉁명스럽게 말했어.

"대체 뭐죠? 갑자기 착한척하는 이유는."
"착한척이라니, 말이 심하군. 난 그저 세상의 흐름을 따랐을 뿐이지."
"오..그 흐름이냐니 뭐냐니 때문에 그 귀한걸 저 인간한테 던져줬단 말이에요? 그게 일을 더 망쳐버린건 알고요?"

병주고 약주고도 아니고. 하얀머리는 선한쪽으로 기운 앞뒤 꽉막힌 트롤에게 코웃음 쳤어. 고지식한척. 홀로 모든걸 깨우친 척 하는게 참 보기 싫지만 현재 마왕계승을 돕는 무리중 하나기에 찾아오는 걸테지.

"그래서. 돕는 이유는? 배신은 뻔해서 재미없으니 들어주지 않을겁니다."
"말했었잖아. 이번 여왕은 차기 마왕과 어울리지 않다고."


하얀머리는 입을 쭉 내밀고 불평을 토해냈어. 여유로이 차 한잔 하는 트롤의 얼굴을 크게 때려주고 싶지만 단단한 낯짝을 때렸다간 파비의 도움으로 겨우 얻은 인간 몸뚱이의 손목이 나갈테지. 파비는 쿠키 하나를 집어 먹었어.

"저 인간을 보면서 확신했다. 여왕에게 주입된 마력은 녹아 사라질게야."

안나라는 용사와 만날 운명이 정해진 그 후부터 소용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파비는 무리한 도박을 하지 않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계산하며 어찌하면 세상의 균형이 맞을지를 보며 마왕의 무리를 돕거나, 인간을 돕거나 하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볼 수 있어.

참으로 박쥐 같은 존재야. 희망이 없는 곳엔 아예 손을 떼겠다는 얘기에 하얀머리는 치를 떨었어. 마왕이 탄생하지 않으면 차가운 마력을 이을 계승자가 사라져버려. 주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계속 가지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고 겨우 주입시키고 감정을 얼려놨는데 일을 그르쳐?

"포기하는게 좋을거야. 용사의 따뜻함은 어떤 얼음조각을 가져와도 이길 수 없을테니."
"아...일이 이렇게 된건 당신이 아닌 그 여자인간 때문이다?"
"긴 세월동안 인간계가 유세한 탓에 마왕의 무리와 동업자 노릇을 해왔지만 이젠 아니야. 바뀐 이 흐름을 즐겨야지."

뒤바뀐 흐름으로 마왕은 사라지고 알맞은 계승자가 탄생하기까지 수백년이란 시간이 걸릴텐데 그사이에 인간계가 치고나오면 마왕의 무리들이 곤란해질거야. 파비는 그때가서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겠다는데 하얀머리는 아직까지도 파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속내를 알 수 없는 늙은이야. 하얀머리의 일족과 전부터 알고, 손을 잡아온 사이여서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는 건 있을 수 없어. 미쳤다든가 아니면 정말 파비의 말대로 세상이 변하려 하든가. 둘중 하나겠지.

"내가 이곳에 있는 한 마법계에서 너희 무리에 손을 쓴 일은 없을거야."
"......"
"지금 남은 그 마력을 가지고 돌아가거라. 이미 끝난 게임이니까."

팔짱을 낀 하얀머리는 지금 쓰고있는 임시 몸뚱이를 부숴버리고 싶었어. 겨우 뺏은 어린 엘프의 몸은 차가운 마력을 이기지 못해서 얼어버리고 다른 마음에 드는 것을 구하려면 힘도 비축하고 시간도 많이 벌어둬야 하겠지.

파비는 그녀가 아직 포기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어. 아직 남아있는 차가운 마력을 쓸 셈인거야. 여왕에게 더 주입해봤자 인간의 따뜻한 마음씨에 영향받아 녹아 내릴테고, 이 몸으로 행동하면 파비의 자리가 위험해지고. 하얀머리는 오랫동안 안나가 앉았던 자리에 놓인 찻잔을 보다가 조그맣게 변한 마력주머니를 두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려.

영향력을 주는 근원지를 끊어버리면 그만인데. 간단한 걸 놓치고 있었네.

"있잖아요. 파비." 하얀머리가 질문해.

"그 사랑이라고 하는건 인간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겠지요?"
"시험해 볼 셈인가?"
"그래요. 시험. 바로 그거죠."

하얀머리는 언젠가 인간이란건 그런걸 극복해서 더 강해진다고 들은 바 있어. 여왕을 정말 사랑한다면 나서서 해줄지도 몰라. 가장 위험한 시련같은것 말이야. 목숨이 위험해질 만큼. 혼이 약해진 틈타 파고들면 몸뚱이를 빼앗을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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