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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운전교육 -18-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3.27 21:43:40
조회 498 추천 1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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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드먼의 계획은 대충 이러했다. 이미 레즈비언이라는 루머(?)가 돌아다니고 있는이상, 잘 활용해서 엘사와 안나가 서로 사랑하는관계라는 것을 어필한다. 그렇게되면 안나는 동성을 좋아한다라는 증거가 있기에 한스와의 열애설을 맞받아칠 수 있는 논리가 성립된다. 사건들이 모두 정리되고 잠잠해진다 싶으면 통보해줄테니 그때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계획이였다. 부수적인 이득으로는 매일 같이 다닐수있으니 본연의 계획이였던 안나의 운전교육에 대해서도 순조롭게 이어질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렇게 갑자기 정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한번만 저희좀 도와주실수 있으실까요?”


 로드먼이 입술을 내보이며 애원하듯 말했다. 엘사의 입장이야 당연히 두손모아 싹싹빌며 죄송하다며 도와주어야 맞는거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일었다. 마른 침을 삼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안나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남들이 보지못하게 로드먼의 어깨 뒤에 숨어서는 환하게 웃음짓고 있다. 그 모습에 이마를 어루만지고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네, 그렇게 할게요.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란 말씀이시죠?”
 “감사합니다. 방이야 많으니까 불편하진 않을꺼에요. 짐은 오늘 밤까지 보내드릴테니까 혹시 꼭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매니저한테 문자남겨주세요.”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그들은 엘사의 두손을 꼭 맞잡고는 ’잘 부탁합니다‘ 라는 말만 남긴체 빠르게 집을 떠나갔다. 한 두명씩 인사하며 사라지는 모습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안나는 해맑게 웃으며 그들을 마중했다. 어느새 집안에는 다시 정적이 일고, 안나와 엘사만이 소파에 어색하게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있었다.
 상황이 조금 뒤틀렸다는 판단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엘사의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런 예상을 해보지도 않았다. 갑자기 숙소에 불려가서는 안나와 열애설을 만들라니. 기가찼지만 어떠한 표현도 할수없었다. 인생에서 연애야 몇 번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이렇게 멍석을 깔며, 물론. 가짜연애긴 해도. 판을 벌려줄테니 한번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니. 엘사는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담배가 땡겼다.


 “안나, 안나”
 “왜요?”


 엘사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안나의 허벅지를 쿡쿡 찌르자 창밖을 보고있던 안나가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는 아직도 미소가 아른거렸다.


 “나 담배피고싶은데 베란다에서 펴도 돼?. 니네 사장님이라는 사람도 저기서 피던데”
 “안돼요”
 “아, 왜”
 “냄새 베긴단 말이에요. 이참에 규칙이나 만들죠?”
 “규칙?”
 
 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나가 몸을 일으키더니 테이블에서 종이 한 장과 펜을 가져왔다.
 
 “이제 여기서 생활하는데, 어느정도 룰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아, 왜.. 나 규칙싫어. 내가 잘할게 그런거 하지말자”
 “어허! 사람이 성실하게 생활해야죠, 엘사 집에서 담배피고 술마시고 맥주캔도 안버리고 바닥에 널부러져있고. 평소에 그렇게 생활하죠?”
 “....아니거든...”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조용히 답하는 엘사의모습에. 안나는 풋, 하고 웃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종이에 하나씩 숫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안나의 모습에 엘사는 눈썹을 늘어트리고 지그시 그 숫자들을 바라봤다.


 “열개나 만들게?”
 “그럼요. 이쯤은 해줘야 좀더 잘 지켜진다구요”


 결국 안나는 엘사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다섯 개 의 규칙을 만들었다. 사실 엘사가 하루에 한캔이상 맥주마시기 등을 넣어버린 탓이긴 하지만. 열 개에서 다섯 개로 줄어든게 어디인가. 안나는 스스로 종이를 들쳐보이며 자랑스러운 듯, 신발장 옆 벽면에 달려진 보드판에 하나씩 옮겨적기 시작했다.


 1. 술 마시지 않기.
 2. 담배는 밖에서 피우기. 꽁초 잘 버리기
 3. 서로의 물건을 함부러 손대지 않기
 4. 어디 갈 때 꼭 말하기, 자주 연락하기
 5. 하루에 한번 뽀뽀하기 (중요)


 “5번은 뭐냐. 원래 없었던거 같은데”
 “제일 중요한 거거든요 헤헤”


 엘사가 고개를저었다. 연애도 모자라서 동거를 하는데. 일방적으로 당하게 생겼다. 이게 말이 좋아 동거지 감금이랑 다를게 뭐가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담배를 피기위해 외투를 찾던 엘사가 안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정적이 그들은 감쌌다. 안나가 지그시 엘사를 바라보더니 한걸음씩 빠르게 엘사에게 다가왔다.


 “무.무섭게 왜그래..흐억!”


 안나가 그녀의 어깨를 밀어내더니 소파에 쓰러진 엘사의 상체에 올라타는 꼴이되었다. 엘사의 귀 옆에 손을 뻗어서는 다른손으로는 버둥거리는 엘사의 손목을 잡아 소파에 밀착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엘사를 바라봤다. 엘사는 떨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눈을 피했다.


 “왜,왜그래 무섭게..”
 “규칙을 만들었으면 지켜야죠”
 “으,응..? 헙!”


 순식간에 엘사의 입술은 안나의 입술과 맞부딪혔다. 엘사의 눈이 커지더니 조금씩 감겨왔다. 안나의 오렌지 빛깔 머리카락과 엘사의 하얀 머리카락이 흩날려 아름답게 섞였다. 그들의 혀처럼. 입술이 멀어지고, 작은 실선이 이어 서로의 뜨거운 숨소리가 느껴질 때, 이번에는 엘사가 안나의 멱살을 쥐고는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그렇게 진한 키스가 또 이뤄졌다.
.
.
.
 “담배 피고올게..”
 “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안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키스가 끝난 다음에도, 엘사는 갑작스러웠던 그 상황을 잊지못했는지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거나 안나가 쥐었던 손목을 어루만졌다.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도 남아있는 안나의 온기가 느껴졌다.


 외투를 챙겨 대충 걸치고는 현관을 나섰다. 담배를 물고 한모금 빨아들이니, 갑자기 앞날이 걱정되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휘둘리는데, 앞으로는 더 심해질걸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담배연기를 뱉는건지 한숨을 내뱉는건지 모르게 연신 숨을 내쉬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눈을 감고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에 집중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옳은일인지, 아니면 모험을 스스로 즐기고 있는건지. 자신조차 정확히 선을 그어 맞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라.. 인생에 있어서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방금 전까지 일어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와 키스를 했고, 사실 마음속에는 두근거림이 있었다. 지금 엘사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들은 사랑일까, 아니면 잠시 정신을 잃을만큼 아름다운 쾌락일까.


 담뱃재를 털었다. 불 끝이 튀어 엘사의 손아귀에 닿고는 연못속으로 톡, 하며 떨어졌다. 아주 미세한 파동이 일고, 물속의 물고기들은 그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앗, 하며 따끔한 느낌에 손을 빠르게 입술로 가져갔다. 피부에 빨간 점이 슬며시 피어오르고, 엘사는 지그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화상, 일순간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병원, 화상, 제이콥.


 “..씨발..”


 엘사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어깨와 등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거울을 볼때마다 어렴풋이 보이는 화상자국. 상처는 아직도 엘사의 몸에 깊게 박혀 고통을 안겨주고있었다. 자꾸만 잊으려고 노력했던 그 기억들이. 아직도 자신의 몸을 갉아먹고, 진득한 괴물처럼 등에 업혀있었다.


 하늘에서 방울방울 비가 떨어졌다. 갑자기 가빠져오는 숨과 함께 하늘은 그녀를 대신해 울기 시작했다. 조금씩 그녀의 외투를 젖어가던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고, 엘사는 소나무 아래 서서 흐릿한 구름들을 보았다. 얼굴에 느껴지는 차디찬 방울들이, 눈물인지 소나기인지 알수없었다. 
 읽던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다 비에 젖어 서있는 그녀를 발견한 안나가 허겁지겁 뛰쳐나왔을때가 돼서야 그녀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터벅터벅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나가 그녀를 대려오고, 거실에 앉혔다. 외투를 벗어 빨래통에 넣은뒤 수건을 가져와 차가운 물들이 뚝뚝 떨어지는 엘사의 머리를 닦아주고 있다.


 “어디 아파요?”
 “아니야 그런거.”


 걱정하는 듯이 눈썹을 올리고 울상짓는 안나를 보며, 엘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근데 왜 비를 맞고 서있어요, 이렇게 물빠진 생쥐꼴을 하고선..”
 “가끔 옛날 생각나서. 비를 맞고 있으면 그 기억들도 다 씻겨 흘러갈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갈아입어야겠어요.”


  안나가 엘사의 윗옷 아랫단을 잡았다. 들어올리려는 듯 힘을 주자 엘사가 본능적으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안나는 황급히 손을 때었다. 엘사역시 생각보다 강하게 힘이들어간 자신의 두손을 바라보고, 작게 흔적이 남은 안나의 손목, 자신의 손가락 자국들을 보았다.


 “죄,죄송해요”
 “아니야, 아! 옷좀 가져다 줘. 내가할게”


 간헐적으로 떨리는 팔을뻗어 안나에게 수건을 받았다. 엘사는 애써 웃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안나가 침실로 들어가 속옷과 입을 옷들을 꺼내러 간 사이. 엘사는 화장실 앞에 서서는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거울을 보았다. 그 상처와 대면해야한다. 가슴속 한구석에 응어리진 염증같은 것이 또 다시 고통을 일으켰다. 작은 한숨을 쉬고, 누군가 보지는 않을까 고개를 숙인체 얼굴을 찡그렸다. 터질것만 같은 울음을 참으며, 문을 닫고 화장실에 들어가자 한기가 그녀의 몸을 감싸안았다.


 “...으흑..”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제이콥의 모습이, 예전 상을 타고 힘차게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그녀의 자화상이. 자신감에 넘쳐 팬들에게 미소짔던 그 기억들이. 순식간에 가슴에 비수를 꽂으며 돌아왔다. 붉어진 눈시울에 방울이 떨어질까, 엘사는 빠르게 손으로 눈 주위를 닦았다.


 ’똑똑똑‘


 문 밖에서 조심스럽게 노크하는 소리에, 엘사는 목이 매여 터지는 숨을 참았다. 문 밖에 기다리는 안나의 모습을 생각하자,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으려도 했지만 이내 다시 거두었다.


 “그..저 옷 가져왔어요..”
 “..고마워..”
 
 “저..엘사?”
 “...”
 “힘들면 얘기해요. 그 마음 다 아니까요..”


 매였던 목이 터져왔다. 깊은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울음을 잡을수는 없었다. 엘사는 손을 뻗어 문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엘사의 앞에 서서 따듯한 미소를 짓는 안나. 어느샌가 얼굴을 눈물이 흐르고 있다. 자신의 몸이 차갑게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두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아주었다. 아주 따스한 그녀의 온기로.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울었다. 자신의 기억들을 지우고 싶었다. 그리고 안나는 그 기억들을 고스란히 받아주고 있었다.
.
.
.
 엘사는 침대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다. 안나만이 조용한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있고, 시간은 어느샌가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제 밥먹어야 되는데’. 하지만 엘사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든 사람은 또 처음이였다. 겨우겨우 부축하여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고, 혹시라도 감기에 걸릴세라 살며시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 그리고 등 뒤의 상처, 화상자국처럼 보이는 흉터도 보았다. 왼쪽 어깨 언저리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깊에 박힌 흉터는 오롯하게 자리에 남아 그 세월을 엘사와 같이 했다는 모습이였다. 옷들을 모두 벗기고, 속옷을 갈아입힐때엔 자신도 모르게 잠깐의 욕정이 일었지만, 그녀의 이마에 짧게 키스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곧 택배올 시간인데..”

 ‘띵동.’


 때마침 종이 울리고, 안나는 자고있는 엘사가 종소리에 깨진않을까 인터폰을 빠르게 지나쳐 현관으로 달려갔다. 슬리퍼를 꼬깃꼬깃 신으며 자고 일어났을 때 자신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것을 보며 좋아할 엘사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안나는 현관을 열고 대문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누구세요~?”
 “...택밴데요”
 “네! 잠시만요오~”


 안나가 대문의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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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들 신작 queen winterless 많이 사랑해주세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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