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번역] 안나 서머즈 Anna Summers, PA 08

번밀레(211.206) 2019.12.19 21:42:35
조회 916 추천 54 댓글 16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viewimage.php?id=3eb3df31f5db3db46dbac4e7468077&no=24b0d769e1d32ca73ded85fa11d028314c091b806630224048cd6cbd105fc69f95478beb1d83c48c6bb39c4bf13689ab26443f79cd47c83ab4b9dcd601f45bb71beb3816196a330c586752

“저기요, 엘사 씨.” 안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히 노크한 뒤 엘사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엘사는 잠시 놀란 듯 했지만 안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방금 다음 주에 있을 오큰 씨 약속이랑 비행편 확인됐어요. 제가 들어본 프랑스인 말 중에 오큰 씨 말투가 제일 스웨덴인 같았어요.”


“아, 고마워요, 서머즈 씨.” 엘사는 자기 셔츠 소맷자락을 쭉 펴며 말했다. 안나가 머리를 마구 내저었다.


“안나요.” 안나가 정정했다. “절더러 안나라고 불렀었잖아요.”


“아- 고마워요, 안나.” 엘사의 얼굴 위로 옅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안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꼭꼭 넣어두기로 했다.


“퀘벡까지 가신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쯤 플로리다에 가야 한다는 규칙 같은 건 없어요?” 안나가 물었다.


“휴가가 아니라 출장이에요.”


“출장이면 저도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글쎄요… 같이 가고 싶은지 몰라서-” 엘사는 다시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더니 소매 단추까지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안나는 곤경에 빠진 엘사를 구해주기로 했다. “농담이에요, 엘사 씨.”


“아.”


“같이 점심 드실래요?” 안나가 물었다.


새 집으로 이사한 고양이 달래주는 기분이네. 안나는 엘사가 자기 초대에 “좋아요”라고는 못하고 뭐라 웅얼거리는 걸 들으며 생각했다. 귀엽기도 하지. 안나는 책상 앞에 있던 자기 의자를 엘사의 사무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감사해요. 오늘 크리스토프랑 스벤 옆에서 점심 먹었다가는 그 둘 목을 졸라버렸을지도 몰라요.”


“아직도 사과 못 받았어요?”


“안 받죠. 그날 둘이 만나서 꽤 재미있기도 했었고 이제 그 둘 안 믿기로 작정했거든요.” 안나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 대답에 엘사의 볼이 빨개졌다.


“가끔 같이 놀러나가요.” 안나가 제안했다.


“그래도 좋아요?” 엘사가 자기가 사는 호텔에서 받아 온 도시락을 꺼내며 물었다. 안나는 엘사가 셰프가 만들지 않은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였을지 궁금했다.


“네! 그- 친구처럼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음… 좋아요.” 엘사가 냅킨을 손으로 배배 꼬며 말했다. “뭘 해야 좋을까요?”


“모르겠어요. 피자 시켜놓고 영화 보기? 뭐하고 놀아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엘사는 당황한 것 같았다. “아…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스키도 타요….” 피자 때문인가? 트러플 올라가고 레어 치즈 잔뜩 뿌린 고급 피자 사오려나? 안나는 엘사에게 좀 더 편안한 주제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요. 올라프랑 놀 때 뭐해요? 스키 탄다고 하지 마세요. 올라프가 바깥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는 하나 몰라. 피자도 무시해요.”


“아뇨. 피자 좋아요. 올라프랑 저는… 아… 밤에… 게임을 같이 해요. 일주일에 한 번. 마샬도 같이요.”


안나의 머릿속에 모노폴리와 클루를 하는 엘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나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같이 해도 돼요? 언제에요?”


“그럴까요?” 엘사는 자기 음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답보다는 질문에 가깝게 말했다. “오늘 밤에 해요.”


“야호!” 안나는 의자 위에서 승리의 춤을 덩실덩실 추더니 손뼉을 짝 마주쳤다.



-



엘사는 우두커니 서서 자기 옆구리를 꽉 붙잡고는 안나가 자기 취미 생활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 아니야. 콜 오브 듀티를 12년이나 했다니. 큰 회사의 CEO로 실격이야. 안나가 집이 떠나갈세라 웃을 게 뻔했다.


“모노폴리보다 훨씬 멋져요!” 안나는 80인치 텔레비전과 게임기와 음향 장비, 그리고 엘사의 취미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보고서는 소리를 꺅 질렀다. 안나는 테이블 위에 피자를 내려놓고는 소파 위에 털썩 앉았다.


“저 좀 가르쳐 줄 거죠?”


“게임이라는 게 모노폴리 말하는 줄 알았어요?” 엘사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뭐, 밤에 게임을 한다고 했으니까요. 걱정 좀 했어요. 모노폴리 할 때 좋게 끝난 적이 없었거든요.”


“전 현실에서 모노폴리는 충분히 하고 있으니까요.” 엘사는 여전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랜드마크 건설이라도 하려고 준비하시나 봐요?”


엘사가 다시 웃었다. 안나는 엘사가 웃는 걸 예상조차 못 한 것처럼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보통은 안 그러니까. 엘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엘사는 주변에 워낙 철벽을 치고 사는 사람이라 올라프가 아닌 타인을 보고 웃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안나는 달라. 엘사가 안나를 향해 정신나간 사람처럼 구는 걸 극복하고 난 뒤, 안나는 아주 쉽게 엘사 곁에 있었다. 안나는 재미있는 사람이니까.


엘사는 부엌으로 향하며 물었다. “뭐 좀 마실래요?”


안나는 벌떡 일어서더니 엘사를 따라갔다. “뭐 있어요?”


“음… 화이트 와인이랑 크랜베리 주스도 있고 탄산수랑….” 엘사는 자기와 안나가 평소에 마시는 음료가 너무 다른 건 아닌가 싶어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 거나 골라도 괜찮아요. 맥주도 이것저것 있고….”


“초코우유요!” 안나는 냉장고 구석을 유심히 바라보다 우유 용기를 붙잡으며 외쳤다. “저건 고르면 안 되는 거예요?”


엘사는 멋쩍은 듯 웃었다.


“제발요.” 안나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제가 매일 아침 커피 사오잖아요. 둘 다 누가 뭐라하건 초콜릿에 미친 사람들인 거 다 아는데.”


“좋은 지적이네요.”


둘은 초코우유 두 잔과 접시를 들고 소파로 돌아왔다. 안나는 다시 털썩 앉았다.


“에구.” 안나가 자기 블라우스에 우유를 흘리고는 말했다.


“여기요.” 엘사는 냅킨을 건넸다.


“저를 잘 아시네요.” 안나가 다시 키득거리며 말했다. 안나는 옷을 닦아보더니 이미 얼룩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오만상을 지었다. 그러더니 윗 단추 두 개를 풀었다. 


단추를 계속…. 엘사의 생각이 멈췄다. 엘사도 안나가 무슨 목적이 있어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렇다고 안나가 자기 윗가슴에 흘린 우유를 닦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레이스 달린 흰 브래지어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왜 계속 보고 있지? 엘사는 그냥 우두커니 서서 안나를 보고 있었다. 안나가 냅킨으로 씨름하는 새에 생긴 가슴골을 보고 있었다. 안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안나는 냅킨을 구기더니 내려놓고서는 피자 상자를 열었다. 블라우스 맨 윗 단추 두 개는 여전히 풀어놓은 채로.


엄밀히 따지면 별로 야하지도 않았다. 가슴골 좀 보일 수도 있고 지금은 일하는 중도 아니니까. 하지만 맥박이 날뛰고 마음이 요동치는 걸 볼 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안 앉을 거예요?” 안나는 피자를 입에 문 채 궁금하다는 듯 엘사를 바라보았다.


엘사는 동의의 뜻으로 끄응 소리를 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엘사는 소파 반대편에 앉았다. 엘사는 미리 올라프에게 연락해 따로 앉아서 게임할 수 있게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안나가 옆에만 있으면 생각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내린 처방이었다. 하지만 올라프는 한 텔레비전에 두 사람의 게임 화면이 나오도록 설정해놓았다. 엘사로서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올라프는 엘사가 친구도 만들고, 안나와 접촉도 좀 하면서 관계를 더욱 극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아주 좋을 것이라고 보았다.


엘사는 컨트롤러를 하나 집어 안나에게 건넸다. “시스템에 먼저 등록을 해야 해요.”


“좋아요.” 안나가 엘사 쪽으로 붙어 앉으며 말했다. “선으로 연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 마지막으로 비디오 게임 해본 게 언제에요?”


“엄마가 중고로 세가 게임기 사온 적이 있어요. 그 때 소닉 해봤어요.”


아 세상에. 안나를 곧바로 온라인 게임 세상 속으로 떠미는 게 좋은 생각은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올라프랑 마시멜로가 기다리는데. 그리고 엘사는 안나가 자기 옆에 딱 붙어서 어깨 너머로 자기가 게임기 설정하는 걸 바라보는 데에 너무 신경이 쓰였다. 게임에서 뭐라도 죽인다면 안나 가슴에서 시선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주근깨가 가슴골 근처에 특히 더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엘사는 진짜로 뭐라도 죽여야 했다.


“좋아요, 올라프가 이미 안나 계정을 만들어놨네요. 계정 이름이 뭔지-”


엘사는 그대로 굳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올라프가 안나의 계정명을 ‘안나아렌델’로 설정해놓았다.


“아-” 안나가 웃음을 터뜨렸는데 평소보다는 더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옆으로 좀 움직인 것 같은데? 엘사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냥 자세를 고쳤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나요?”


“좋아요. 여기, 왼쪽 스틱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엘사가 자기 컨트롤러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점프고 이건 앉기. 공격은 이거고-” 엘사는 최대한 빠르게 컨트롤러 이곳저곳을 설명했다. 이제 정말로 진지하게 무언가를 죽여야 했으니까. 그 무언가가 한 컴퓨터쟁이일 수도 있고. “알겠어요?”


“그런 것 같아요….”


“좋아요.” 엘사는 헤드셋 두 개를 집어 게임기에 연결하고는 하나를 안나에게 건넸다.


“엘사! 안 들어오는 줄 알았어요.”


“안나를 위해서 시스템 설정 좀 했어요.” 엘사는 목소리로 올라프에게 경고를 보냈지만 마냥 행복한 올라프를 듣고서는 헛수고했다는 걸 깨달았다.


“안녕, 안나! 잘 있었어요? 마시멜로 본 적 있어요? 마시멜로는 제 형이에요. ‘안녕 마시멜로?’ 해요!” 올라프는 평소처럼 엘사의 기분을 알아채지 못했다.


“마샬입니다. 마시멜로 말고.” 마시멜로가 대답했다. 엘사는 마시멜로를 처음 보고 몇 주 간 마샬이라고 부르려 노력했지만 곁에 올라프가 있는 이상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나가 웃었다. “안녕하세요, IT부서에 계신 분 맞죠!”


“네.” 마시멜로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좋아 얘들아. 내가 안나한테 설명은 했어.” 엘사가 빠르게 말했다. “전부 발라버리자.”


엘사는 적을 하나 죽이고 나서 곧바로 기분이 나아졌다. 게임에 집중하며 자기 다리가 안나 다리에 닿았다는 사실과 복잡한 감정도 싹 잊었다.


대부분은.


“앗, 아니 그건 점프인데. 앉아! 앉으라고 바보야!” 엘사는 안나가 버튼을 잘못 누르다가 죽는 모습을 곁눈질했다. 


“지금 뭐 하는지 알기나 해?” 팀원 하나가 안나에게 물었다.


“잘 몰라!” 안나가 대답하고서 캐릭터가 되살아났다.


엘사는 자기 화면에 집중하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자기 옆자리에서 안나가 난리를 치고 있었다. 팀원들은 서서히 화를 나더니 이제는 약간 무례하게 굴기 시작했다.


“안나- 어디가요?” 엘사는 안나의 캐릭터가 방향을 잃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몰라요. 어떻게 쏘는지도 까먹었어요! 뛰는 법 밖에 몰라요!”


“저 앞에 조심-”


안나는 비명을 지르더니 컨트롤러를 떨어뜨렸다.


“아, 뉴비 더럽게 못하네. 가서 밥이나 해.”


클릭 소리가 한 번 나더니 다른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올라프가 넷을 비밀 채팅방에 초대한 것이다.


“밥줘충 작전 할까요?”


“밥줘충 작전이야.” 엘사가 대답했다. 안나는 궁금한 듯 엘사를 바라보았지만, 머리에 피가 잔뜩 쏠린 엘사는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올라프가 마법을 시작하길 기다리면서.


올라프는 처음으로 게임 속에서 여자한테 무례하게 구는 꼴통들 모습을 봤을 때 “밥줘충 작전”을 고안해냈다. 엘사는 올라프가 회사에서 작전을 짜는 걸 “연구 및 개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허락해줬다.


화면이 깜빡거리더니 새 팀원 목록이 떠올랐다.


아군은 엘사와 안나, 올라프, 마시멜로였고 적군은 방금 전까지 무례하게 굴던 팀원들이었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전체 채팅방에 들어와 있었다. 올라프가 저 자식들에게 장송가를 들려주고 싶었으니까.


적 팀 목소리가 마구 섞여 시끄러웠다. 다행히도 올라프와 마시멜로의 목소리가 채팅방에 울려 퍼졌다.


“하느님, 자비로우신 우리의 여왕을 지켜주시고.”


엘사가 공습을 명령했다.


“고귀한 우리의 여왕께서 만수무강하게 하소서.”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하느님, 우리의 여왕을 지켜주소서.”


확인 사살을 위해 한 번 더.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승리와!”


“잠깐! 이게 말이 돼?”


“행복과 영광을 주시고!”


“뭐 시발?”


“이게 뭐냐고!”

올라프와 마시멜로가 쏜 폭탄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썅! 이거 사기야!”


“시발 노래 좀 그만해!”


“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 올라프와 마시멜로는 꿀 같은 목소리로 화음까지 넣더니, 노래를 이 절까지 고래고래 불렀다.


엘사는 숨어있다 튀어나와서 총알을 마구 갈겼다. 떠들던 적 하나는 올라프와 마시멜로 목소리에 묻혀 뭐라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엘사는 탁 트인 곳에서 누군가 이상할 정도로 정확하게 저격하는 걸 보았다. 마시멜로가 분명하다.


엘사는 적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췄다. 노래 소리에 묻혀서 징징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올라프가 자기 말이 적한테 들리게 해줄 것은 알고 있었다. 


“여왕은 밥 안 해. 밥은 너 같은 놈들이나 가서 해.” 엘사가 당당하게 말했다.


“오직 당신만을 우리가 믿사오니!


하느님, 우리 모두를 지켜주소서!“


게임이 끝나고 화면이 다시 깜빡였다. 모두 접속을 종료했다. 엘사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한 거예요?” 안나가 물었다. “원래 이런 게임 아니지 않아요?”


“네. 그게… 그렇게 여혐에 찌들면 안 되잖아요.” 엘사는 아직 화면을 보고 있었다. “밥줘충 작전”을 쓴지도 꽤 오래됐었다. 엘사는 실력이 너무 좋아서 아무도 엘사더러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나가 멍청이들만 하는 게임이라는 첫인상을 받는 것은 싫었다. 엘사는 자기가 정말로 안나와 게임을 같이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엘사는 심지어 안나와 정기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안해요.” 엘사는 안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다음에는 저런 사람들 안 만나게 오프라인으로 해요. 게임 하는 법도 더 알려줄게요….”


“괜찮아요.” 안나는 엘사를 진정시키려는 듯 엘사의 무릎을 두드리며 말했다. “게임은 엘사 씨가 하고 저는 그냥 구경하는 건 어때요?” 안나가 마치 폭탄 다루듯 컨트롤러를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놓으며 물었다. “게임 하는 거 보고 싶어요.”


엘사는 안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 엘사나 안나나 서로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없었다. 엘사는 안나 얼굴에 난 주근깨 하나하나를 외울 정도로 눈 안에 얼굴을 가득 담았다.


엘사는 자기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안나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엘사는 목청을 가다듬더니 헤드셋을 벗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모드 볼래요?”



-



안나는 자기가 직접 하는 것보다 엘사가 게임 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 존재조차 몰랐던 엘사의 옆얼굴을 볼 기회도 얻었다.


엘사는 정말 얼음여왕이었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그 얼음여왕은 아니었다. 엘사는 침착하고 계산적이었으며 전략가였다. 엘사는 남들이 자기를 쏘거나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진다고 해서 겁먹지 않았다. 엘사가 명령을 내리면 다른 사람들이 명령에 따랐다.


그리고 엘사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자 몸을 앞으로 쭉 빼고는 아랫입술을 앙 물었다. 엘사는 일 할 때처럼 한 치의 긴장도 없이 게임에 온전히 몰두했다. 중요한 순간이 지나가자 엘사는 숨을 내쉬고는 손으로 머리를 빗었다. 습관처럼 보였다.


끝나기 일보직전에 엘사 팀이 다시 깃발을 가져왔고 게임에서 이겼다. 엘사와 안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엘사의 눈은 흥분과 행복에 겨운 듯 빛나고 있었다. 안나는 순수하게 행복해 보이는 엘사에게 사로잡혔다. 엘사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는 모습. 안나의 상상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안나는 둘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간격을 좀 벌려야했지만 그 순간 안나는 그럴 수 없었다. 엘사의 무릎이 안나의 무릎에 닿아 온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안나는 그걸 깨닫는 순간 갑자기 온 신경이 쏠렸다.


엘사가 머리를 몇 번 쓸고 나자 묶었던 머리가 풀렸다. 풀린 머리가 엘사의 완벽한 푸른 눈을 살짝씩 가리고 있었다.


안나는 손을 뻗어 엘사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엘사는 갑자기 숨을 들이쉬었다. 갑자기? 아니면 혹시….


“…그녀에게 승리와! 행복과 영광을 주시고!” 헤드셋에서 노랫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둘 다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엘사는 놀란 듯 숨을 헉 쉬더니 헤드셋을 집었다.


“그 노래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아까 아무 말도 안했다고 해서 다시 부르라고 허락한 게 아니라고!”


“오랫동안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


“당장 그만 두지 않으면 둘 다 쏴버릴 거야….”


올라프와 마시멜로는 엘사의 말을 무시하고선 노래의 이 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엘사는 콧방귀를 뀌더니 자기와 안나의 헤드셋 코드를 전부 뽑아버렸다.


“지금 영국 국가 부르는 거예요?”


엘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안나를 바라보았다. 엘사가 마치 한참을 시달린 사람 같아 보여서 안나도 웃던 것을 멈추고 최대한 진지해보이려 했다.


“농담이에요.” 엘사는 어떻게든 설명을 하려는 눈치였다. “제가 ‘얼음여왕’이니까요. 제가 또 엄청 많이 이기기도 해서 승리 자축용으로 부르는 거예요. 그래도 제가 오늘은 부르지 말라고 했거든요. 엄청 엄청 부끄러우니까요. 밥줘충 작전 할 때는 예외긴 해요. 심리적 압박감이라는 게 중요하니까요.”


엘사는 헤드셋 선을 배배 꼬며 말했다. 그러는 동시에 자기 친구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달라는 듯 간절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는 아주 살짝 킥킥 거렸다.


“안나-”


안나는 웃음보가 터졌다. 그러더니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엘사는 속절없이 가만히 있었다. 안나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정말- 귀여워- 죽겠어요!” 안나는 자기 옆구리를 붙잡고는 헉헉 댔다.


안나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동안 엘사는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안나는 엘사와 눈만 마주쳐도 다시 웃어댔다. 결국 엘사는 소파에 앉더니 피자를 꾸역꾸역 먹으며 안나가 웃음을 멈추길 기다렸다.


“좋아요- 이제 나아졌어요.” 안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안나는 남은 우유를 전부 들이켰다. “이제 게임 더 할 거예요?”


“그럴 수도 있어요. 안 지루해요?”


“제가 지루해보여요?” 안나가 등을 기대며 물었다. “계속 해요. 엄청 재미있어요.”


마침내 엘사가 다시 웃었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안나가 무언가 떠올린 듯 갑자기 물었다.


“네?” 엘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더니 무언가 불안한 기색이 보였다.


“진짜 밥 안 해요?” 안나가 물었다. 원래 물으려던 질문은 다른 것이었지만 엘사가 셰프에게 캐비어와 상어가 들은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엘사는 눈을 끔뻑이며 멍하니 말했다. “아마도요?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요. 샌드위치 먹고 싶어요? 주문할까요?”


안나가 킥킥 거렸다. “아뇨, 아니에요. 좋아 그럼 질문 하나 더요.”


엘사는 눈을 치켜뜨고는 안나 입에서 이상한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저번에 전화했을 때도 이 게임 하고 있었어요?”


엘사는 컨트롤러를 꼭 안더니 눈을 피했다.


“…맞아요.”


안나는 씨익 웃었다. “앞으로 수요일에는 전화 안 할게요.”



-



“으으음….” 다음 날 아침, 엘사는 카페 모카를 가지러 안나 책상 앞에 와서는 등 뒤로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안나는 엘사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배배꼬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 어떻게 내 상사라는 거지? 안나는 태블릿을 내려놓고는 엘사가 할 말을 다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데, 괜찮으면- 제 말은 혹시 좋으면요. 그러니까 안나가 같이 가줘야 할 것 같아서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일도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어, 한 번 생각해볼래요?”


안나는 엘사의 말을 열심히 해석해보았다. 대체 무슨 말인지 몰겠네. 이제 엘사는 어디가 안 좋은 사람처럼 자기 옷 앞자락을 부여잡고 있었다. “제가 뭘 생각해요?” 안나가 최대한 조심스레 물었다.


“아!” 엘사의 귀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래요. 출장이요.”

추천 비추천

54

고정닉 13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62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6 286
1123711 청정한 헬요일 ㅇㅇ(223.62) 00:18 10 0
1123709 뒤조심)아 되게 충격적인 짤 봫는데 얘기할데가 여기밖에 없어 [7] ㅇㅇ(110.47) 06.09 64 0
1123708 디시 이미지 왜 깨져... ㅇㅇ(223.62) 06.09 11 0
1123707 누가먼저 보내나 시합! [1] ㅇㅇ(223.62) 06.09 25 0
1123706 일편단심 안개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4 0
1123705 넘쳐나는 go간 [1] ㅇㅇ(223.62) 06.09 29 0
1123704 축 늘어진 흰 옷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아기 [1] ㅇㅇ(223.62) 06.09 23 0
1123703 설갤 단점 ㅇㅇ(223.33) 06.09 15 0
1123702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2 0
1123701 그런가 [2] 설갤러(118.43) 06.09 16 0
1123700 아니 69라고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699 크 69가 와버렸다!!!!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698 엘산나를 만난게 행운이야 [5] ㅇㅇ(223.62) 06.08 31 0
1123697 배거파 [1] ㅇㅇ(110.47) 06.08 17 0
1123696 오늘막글 ㅇㅇ(223.62) 06.08 15 0
1123695 어 내일이 69잔아 ㅇㅇ(223.62) 06.08 14 0
1123694 쥬미 영화 보러옴 ㅇㅇ(211.234) 06.08 17 0
1123693 안탄절 지나면 엘탄절도 금방 ㅇㅇ(223.62) 06.08 16 0
1123692 모험가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20 0
1123691 싯발 언제 비 그친거냐 [1] ㅇㅇ(223.62) 06.08 20 0
1123690 수상하게 칼을 잘쓰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1 0
1123689 뭐지? 결혼식인가? [5] ㅇㅇ(211.234) 06.08 56 5
1123688 정령을 잡아다 예쁘게 묶어 공물로 바치기 ㅇㅇ(223.62) 06.08 22 0
1123687 혐퀘후식사 [2] ㅇㅇ(211.234) 06.08 19 0
1123686 오늘은 자동으로 실내활동 [1] ㅇㅇ(223.62) 06.08 19 0
1123685 자연스레 깊어가는 둘의 관계 ㅇㅇ(223.62) 06.08 21 0
1123684 아찜글 ㅇㅇ(211.234) 06.08 15 0
1123683 새벽글 [1] ㅇㅇ(115.138) 06.08 17 0
1123682 다다음주가 안탄절이네 곧 [2] PeopleOfArendel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3 1
1123681 안나가 엘사를 [1] ㅇㅇ(223.62) 06.07 31 0
1123680 엘산나의 금요일 ㅇㅇ(223.33) 06.07 16 0
1123679 여전히 존버중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26 0
1123678 안나vs안나는 기존쎄 대결일듯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34 0
1123677 애틋하게 뺨쓰담 ㅇㅇ(223.62) 06.07 21 0
1123676 눈 깜짝할 새 킹요일 ㅇㅇ(223.62) 06.07 21 0
1123675 원하는 초능력을 얻는 대신 댓글이 부작용을 정해줌 [18] ㅇㅇ(115.138) 06.07 86 0
1123674 크으 모닝갤먹 [1] ㅇㅇ(223.62) 06.07 23 0
1123673 [그림] 원치 않은 신앙 [10] 애호박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105 10
1123672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창작물 [6] 케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112 11
1123671 세명이서 서로 아래 핥으려면 원을 그려야하냐 [3] ㅇㅇ(223.62) 06.06 53 0
1123670 프로즌 ost는 언제 들어도 좋아 [2] 설갤러(118.43) 06.06 24 0
1123669 크읏 이러다 울룩불룩 설줌이 돼버렷 [1] ㅇㅇ(223.62) 06.06 28 0
1123668 엘사만 만나면 움츠라드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6 0
1123667 태어날 때 부터 얀데레 엘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48 0
1123666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3 0
1123665 이럴 때 정신놓으면 갓반인 된다 [2] ㅇㅇ(223.62) 06.06 32 0
1123664 말라간다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5 0
1123663 단편이나 떡밥 내놔!!! ㅇㅇ(211.234) 06.06 24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