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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번역] Cafe Liegeois 7

ㅇㅇ(107.77) 2019.12.23 02:23:18
조회 656 추천 23 댓글 10

1-6화가 완결이고 7, 8 화가 각각 나중에 나왔던 걸로 기억함. 7, 8 화만 번역했었는데 재업.


Café Liégeois

원문 링크: https://www.fanfiction.net/s/9944005

작가: 4mation


Café Liégeois – 7. With Love



“저 사실 블로그 한 지 꽤 됐어요.”


“네가? 계속 손봐야 하고 업데이트 해야 하는 웹사이트를 유지한다고? 이거 정말 확인해 봐야겠는데? 그리고 내가 ‘봐야겠다’고 하는 건 그저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야. 웃어 봐.”


안나는 그 말에 따라 미소 지었다. 사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엘사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안나는 입이 찢어져라 웃고는 했다. 하루 종일 금발머리와 시간을 보내노라면 집에 갈 때쯤엔 얼굴 근육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놀리지 말아요,” 안나가 기분 좋게 쏘아붙였다. “이래봬도 나 미술 전공생이거든요? 그게 시간관리 못 하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나 해요? 온갖 마감일들 체크해야죠, 자료집 관련 조사해야죠, 하다못해 아트 스타일마다 시대적 요소를 맞춰가면서 작업해야죠. 그림을 예로 들자면 페인트가 다 마를 때까지 드는 시간을 감안해야 하고, 조각을 한다면 구하기 힘든 재료들 때문에 시간이 배로 들겠죠. 게다가 페인트도 종류별 마르는 시간이 다 다르고, 저는 알바까지 해야 하니-”


“안나, 또 시작이야.”


“아, 주절주절. 미안해요.”


“미안하긴,” 엘사가 미소 지었다. “네가 입에 모터를 달 때마다 귀여운걸. 그냥 네 입이 1초마다 단어 1000개를 막 내뱉으면 조금 힘든 것뿐이야. 자, 뾰루퉁.”


“아,” 안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어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려 했지만 제게 그저 한없이 상냥한 엘사를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소 짓는 것보다는 응해주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리고 안나,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난 건축학과거든. 미술 전공생들의 고충 정도는 잘 알 것 같아.”


“전혀 아닐걸요. 엘사는 얼음덩어리를 이리저리 깎아 사람 얼굴같이 보이게 하는 작업의 고통과 피로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잖아요.”


“그럼 넌 오후 내내 다리 디자인 하는데 매달렸는데, 교수님이 사실 이 문제는 사장교 (cable-stayed bridge)가 아니고 현수교 (suspension bridge)여야 하는데다가 이층으로 된 다리 (double-decked)라고 나중에야 말해줘서 여태 해온 최대 중량 계산이 죄다 쓸모 없게 되어버린 적이 있니?”


안나는 입술을 계속 내민 채 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 노력에 오히려 푸하하 천박하게 침까지 튕기며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 이층이라면 이층피자처럼요?” (번역자 주: Double-decker pizza, 말 그대로 두 겹 쌓아 만든 피자. 원문에선 안나가 double-decked를 double-decker로 듣고 피자를 연상하는데...)


다행히도 선글라스에 침이 튄 것을 모르는 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피자말고 2층교: 건너는 다리인데 이층으로 된 거. 진짜, 넌 상식이 너무나도 부족해서 가끔 내가 너랑 사귄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이야.”


“하, 그게 지금 다스베이더가 루크 스카이워커 아버지란 사실도 모른 사람이 할 소리에요?” 안나는 최대한 무덤덤하게 잘라 말했다.


“안나, 난 장님이잖아. 영화나 인터넷은 나한테 좀 힘들지.”


“물론 잘 알지만 엘사, 스타워즈는 오디오북으로도 나왔어요.”


“윽. SF 소설,” 엘사가 한껏 거만하게 콧방귀를 꼈다. “내 아까운 시간을 쓰기에는 좀 비생산적이지.”


공상과학 소설이요.” 안나가 으르렁댔다. 이번에는 절로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그 반응에 엘사가 크게 웃었다.


“넌 항상 그 장르 말만 나오면 방어적이더라. 귀여워. 이제 찡그려봐.”


“기다려보세요,” 안나가 고상한 척 얘기하려고 했지만 인상을 찌푸리려는 도중이라 잘 되지는 않았다. “언젠가 외계인이 정말 존재한다고 밝혀지는 그 날, 엘사 귀에 대고 ‘것 봐요!’라고 엄청 크게 소리쳐서 꼭 고막에 노트르담 대성당 종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해줄게요.”


“지금 날 콰지모도에 비유한 거야? 그건 좀 심하잖아, 안나. 나도 여기 뾰루지가 난 건 아는데 그렇다고 해서 날 ‘광대들의 왕’으로 만드는 건 좀 그렇지.”


“아, 심통 좀 그만 부려요. 콰지모도는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비록 친구가 집시, 군인 장교, 성가신 석상들밖에 없지만요.”


“...그것도 디즈니 말하는 거지?”


“이번엔 제발 디즈니에 대해 바락바락 따지고 들지 마세요.”


“어떻게 안 그럴 수 있어? 그 회사는 고전 문학을 과하게 달콤한 요소로 가득 찬 애들 만화영화로 재탄생 시키는데, 난 너희 세대가 여태 당뇨로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야. 왜, 다음엔 ‘눈의 여왕’을 말하는 눈사람이랑 바보 같이 특징 없는 왕자나 등장 시켜서 코미디로 만들라 하지 그래.”


“엘사, 당뇨는 농담 삼아 할 얘기가 아니에요.”


“...지금 그걸 따지는 거야? 이런, 내가 어떻게 널 사랑하게 된 걸까?”


“내가 엘사의 꿈 속 판타지마다 주인공이니까요?”


엘사가 움찔했다. “제발 다신 내 꿈을 그렇게 표현하지 마. 날 무슨 변태로 만드니. 어리둥절.”


“아, 엘사,” 안나는 시키는 대로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놀렸다. “엘사가 속으론 변태인데다 성별도 뒤바꾸는 페티쉬가 있다는 점은 우리 둘 다 이미 잘 알고 있잖아요. 너무 낙심하지 마요. 흉 안 볼게요.”


엘사는 어디에다 머리를 들이받고 싶은 심정을 꾹 눌러 참았다. 생각보다 힘든 싸움이었다.


“딱 한 번 꿈 속에서 내 남자버전이 있었다고 말해줬더니 이제 날 완전 성전환자 워너비로 몰아가고 있어...”


“둘이서 뭐해?”


두 손을 급히 떼는 엘사의 귀가 쫑긋했고, 안나는 누가 방 안에 들어왔는지 보기 위해 휙 뒤돌았다.


“라푼젤, 노크 할 줄 몰라?”


안나의 발랄한 사촌이 문가에 서서 환하게 웃다 방 안으로 폴짝 들어와 허리에 손을 얹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방 문을 안 닫는 건 너잖아. 활짝 열린 문을 보고 ‘들어오세요’라고 생각하는 날 책망하진 마. 엘사, 넌 평소에도 안나 얼굴을 그리 붙잡고 있니, 아님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이라도 되는 거니?”


엘사는 창피함에 얼굴에 피가 쏠리며 붉게 물드는 뺨을 느낄 수 있었다. 안나 침대 위에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엘사는 두 손으로 안나의 얼굴을 감싼 채 안나가 짓는 여러 표정들을 새겨두려 하고 있었다. 물론, 안나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머릿속으로 대충 알고 있었지만, 스크린에서 이미지를 보는 것과 그 이미지를 느끼는 것엔 분명 차이가 있다.


적어도 엘사는 안나에게 그렇게 설명했었고, 안나는 그 후 한 5분간 그 터무니없는 비유에 깔깔대며 웃었었다.


그리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어색한 상황이 벌어진 거고.


“아냐!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어.” 엘사가 머뭇대며 나름 안나와 제 명예를 보호하려 했지만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불에 데인 듯 안나 얼굴에서 손을 급히 떼냈다.


언제나처럼 명쾌 발랄한 안나는 여자친구 가족의 심판 아래 몸서리칠만한 창피함에서 엘사를 구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엘사가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해서. 엘사가 표정을 말하면 내가 그 표정을 짓고, 그럼 엘사는 그걸 만져보면서 이론적으로 ‘안나는 지금 이렇게 생겼구나’를 알 수 있는 거지. 사실 난, 엘사한테 최면을 걸어서 내가 웃을 때마다 손 끝이 간질거리게 됐음 하는데.”


라푼젤은 한 2초간 멍하니 있다 두 손을 뺨에 찰싹 맞대고 딴 사람들은 잠자는 아기 팬더를 봤을 때나 내뱉을 법한 탄성을 질렀다.


“완전 귀여운 아이디어야! 안나, 넌 정말 엘사 같은 사람 만난 거 행운인 줄 알아. 정말, 내가 여태껏 들었던 아이디어 중 최고로 귀여운 것 같아. 그래서 이게 성전환자 워너비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게 이 실험에 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거라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가줄게.”


“라푼젤, 이상한 얘기 그만해.” 엘사가 딱 잘라 말했다. 안타깝게도 엘사 특유의 비꼬는 유머는 라푼젤의 가벼운 농담엔 상대가 안 됐다.


“라푼젤, 괜찮다면 우리 지금 좀 혼자 놔둘래? 그 뜻은 ‘성가신 사촌은 저리 꺼져.’ 이 말이야.”


“쳇, 혼자 놔두긴 개뿔. 나랑 유진이 데이트 할 때 끼어든 적이 도대체 몇 번이더라?”


“그 때 딱 한 번 우리 동네 축제에 따라간 게...”


“따라간 건 괜찮다 쳐도, 내가 걔랑 ‘사랑의 터널’ 오리보트 타고 가는데 가운데 떡하니 앉는 건 아니지.”


“치, 그게 무드를 망친 건 아니잖아. 그 터널엔 로맨틱한 거라곤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 내가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은 터널을 본 건 생물학 교과서에서 무스 똥구ㅁ-”


“아, 너희 둘 대화 이제 더 이상 못 들어주겠어.” 침대 옆으로 다리를 휙 내리며 엘사가 말했다. 바닥을 손으로 훑다 신발끈 끝 플라스틱을 느끼고는 끈을 잡아 신발을 끌어올렸다. 신발을 신고 오랜 연습을 통해 익힌 간격을 맞춰 신중히 끈을 묶었다. 일어나서 두 팔을 머리위로 올려 기지개를 키자 어깨에서 시원하게 으드득 소리가 났다. 그 행동이 셔츠를 위로 당겨 드러난 매혹적인 하얀 허리를 안나가 침 흘리며 보게 만들었다면, 그건 그냥 보너스.


“여기 온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라푼젤? 아님 우리 둘만의 친밀한 시간을 망치려고 온 거야?”


라푼젤은 전혀 당황치 않고 손톱을 살펴보며 살짝 뒤로 기댔다.


“오, 난 친밀한 시간을 망치려고 사는 거란다, 엘사. 그게 내 삶의 낙이야.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서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 2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난 다른 사람들의 마지막 24시간을 망치려 다닐 거야. 그리곤 영원히 행복한 여자로 생을 마감하겠지.”


“그래. 난 네가 착하고 순수한, 이 세상 때묻지 않았던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


라푼젤은 손톱을 물을 뻔하며 캑캑댔다. “넌 그때 나 몰랐거든?”


“맞아. 근데 내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네 반응이 이러면... 그때 널 몰랐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네.”


“Elsie,” 안나가 여자친구 허리에 팔을 두르며 끼어들었다. 엘사 목에 얼굴을 비비며 턱 날을 입술로 쓸었다. 엘사가 부르르 떨었다. “Elsie, 라푼젤한테 그러지 마요. 우리 둘이 싸운 뒤 화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단 말이에요.”


라푼젤이 웃었다. “Elsie?!”


“응, 그래, 고마워, 라푼젤.” 엘사가 로봇처럼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이 포옹중독자에다, 이상한 별명이나 짓는, 과하게 활동적이고, 아침마다 폭탄 맞은 까치집 머리에 입 냄새 심한 애랑 평생 엮어줘서 정말 고마워. 너 없었음 어쩔 뻔했어. 네가 제일 최고야.”


“잠깐,” 안나가 골반으로 엘사를 밀치며 말했다. “아직 ‘평생’이라고 아무도 말 안 했어요. 보통 그건 반지, 데이트, 그리고 많은 준비가 필요한 거에요. 지금 여기 제 방에서 라푼젤을 증인으로 두고 프로포즈를 하면 그 궁둥이를 뻥 차서 휠체어 타고 결혼식 올리게 할 거에요.”


“그게 더 나을지도,” 엘사가 과장된 한숨을 뱉었다. “그럼 신랑이 카펫을 벗어나 관객석으로 걸어갈 창피한 일도 안 생길 거 아냐.”


“아니, 왜 엘사가 신랑이에요?” 안나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항의했다. 엘사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건 신문 1페이지 기삿거리일걸. ‘이런 비극이! 신랑이 음료수 그릇에 고개를 박고 익사했다. 증인들 말에 따르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잘 보고 갔어야만 했다고 한다’.”


“너흰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긴 한 거니, 아님 매번 이렇게 서로 틱틱 쏘아대니?” 라푼젤이 침대에 풀썩 앉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


“안 그래. 가끔은 그냥 앉아서 쪽쪽거리기도 해.” 안나가 실토했다. “사실 정말 재밌어. 엘사가 완전 집중한다니까. 내가 혀로 요렇게 뭔가 하면, 하악 숨소리를 토해내는데-”


“딱 거기까지.” 라푼젤이 한 손을 들이밀며 말을 끊었다. “알고 싶지도 않은 내용이란 거 모르니?”


“저 발랄한 히피 얘기 좀 들어. 모처럼 맞는 말 하네.” 엘사가 얼굴을 가린 손에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 왜, 지금 나 머리 길렀다고 히피라는-”


“라푼젤? 우리 둘만의 시간을 방해한 이유는? 언제 설명 해주긴 할 거야?”


“알았어!” 라푼젤이 양손을 허공에 던지며 말했다. “15분 후에 저녁식사 한다고 엘리스 이모가 말해주랬어. 너희가 섹스를 하든 뭘 하든 기다리다 음식이 식을까 봐 걱정됐나 봐.”


“이제 좀 불편해질라 그래.” 엘사가 말했다.


“아니에요, 엄마랑 아빠가 이렇게 우릴 지지해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안나가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제가 한스랑 사귄다고 했을 때 그 반응은 정말 알고 싶지도 않을 걸요...”


“안나, 넌 걜 그날 아침 처음 봤고 둘이 그 주말에 깨졌잖아.” 라푼젤이 끼어들었다.


“아, 사소한 디테일.” 안나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내 말은, 부모님이 우릴 완전히 지지하시는 것에 우린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야.”


“네 표정들 연구 할 때가 무지 그립다.” 엘사가 털어놨다. “그땐 적어도 조금만 창피한 얘기를 하고 있었지, 이렇게 ‘오, 제발, 내 얼굴이 타올라서 계란 후라이 해 먹어도 되겠네’ 정도로 창피하진 않았는데.”


“그럼 계속 연구나 할까요?” 안나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그래, 계속 해.” 라푼젤이 똑같이 웃음 지으며 말했다.


“라푼젤, 나가.” 엘사가 명령했다.


“아, 넌 하나도 재미없어.” 라푼젤이 한숨을 쉬었다.


엘사는 라푼젤이 일어나자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 안나와 포옹하는 동안 잠시의 정적, 그리고 멀어져 가는 발소리와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침대에 누워 후 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안나가 옆에 앉으며 삐걱이는 침대를 느꼈다. 엘사는 미소 지으며 일어나 앉아 손을 내밀었다. 안나는 고분고분하게 내민 손에 얼굴을 묻고 엘사가 얼굴 구석구석을 그려보도록 허락했다.


자, 이리 보자. 엘사가 집중하느라 아랫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매끈한 뺨, 살짝 뾰족한 코, 아직 남아있는 젖살, 살짝 튀어나온 인중, 잠..깐...


“라푼젤,” 엘사가 상냥한 목소리로 불렀다.


“응, 엘사?”


“내 손에서 네 면상 좀 치우고 너희 둘 다 데어데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엉덩이 차이고 싶지 않으면 얼른 안나보고 이리 오라고 할래?”


“사실 난,” 문에 가로막힌 안나 목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엘사가 장님 슈퍼히어로를 알고 있다는 것에 지금 되게 끌리는데요?”


-


“네 블로그에 뭐가 있는지 나한테 아직 얘기 안 해줬어.” 엘사가 안나의 귀에 대고 웅얼댔다.


그날 밤이었다. 저녁식사 후 엘사, 안나, 안나 부모님, 라푼젤은 가볍게 모노폴리 보드게임을 하러 모였고, 머지않아 은행장을 맡은 라푼젤이 예상치 못한 불경기에 부동산 가격이 500% 인상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안나는 부정한 분배에 분노했고, 월가시위를 집안 거실에서 하자 라는 건의로 엄마와 말싸움을 했다. 상황은 거기서 점점 악화됐다. 엘사는 슬기롭게 피해 숨어있다가 한 20분 후 세 번의 혁명과 다섯 번의 화폐개혁, 그리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하나가 휩쓸고 간 피폐한 자리에 돌아와 지쳐 떨어진 가족을 뒤로한 채 독재자로 군림할 것을 선언했다.


그 뒤로는 모두가 재미있었다는 말과 함께 쉴 곳을 찾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지금 안나 침대 위에 엘사는 안나를 뒤에서 꼭 껴안고 누워 밀착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안나와 라푼젤이 함께 있는 집 안 치고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순간을 건들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그게, 그 생각이 떠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나,” 엘사가 안나를 살짝 밀었다. “안나.”


“잠 못 자게 고문해도 다 좋아요.” 안나가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전 엘사를 ‘절대로 독재자가 아닌 자애로운 대통령님’이라고 안 부를 거에요.”


“아니, 안나, 그게 아니고. 진짜 네 블로그에 뭘 올렸어?”


“나중에 말해줄게요.” 안나가 끙끙대며 엘사의 가슴이 기분 좋게 등을 눌러오는 그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고 귀를 막으려 애썼다. “지금은 잠 좀 자고요.”


“안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엘사가 조금 더 세게 밀치며 징징댔다.


“아, 알았어요.” 안나가 투덜댔다. “그렇게 알고 싶으면 얘기해줄게요.”


엘사가 쫑긋 귀 기울이며 속으로 스스로에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렇게 가끔 유용하게 구걸하는 것도 괜찮지.'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럼 얼른 말해줘.”


“꼭 알아야만 하겠다면,” 안나가 입 주변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내며 말했다.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쓰고 있었어요. 엘사가 말해준 그 다른 세계 이야기들이요.”


엘사는 안나가 웃어넘기기를, 그냥 짓궂은 농담이라 말하기를, 사실은 그 부끄럽고 어색한 자신의 여러 화신들을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6초간 그렇게 기다리다 폭발했다.


“안나! 무슨 소리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러다 이 현실을 부서뜨려버리는 역설을 만들어내면 어떡하려고 그래? 우리 개인적인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면 어떡해?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 창피한 건 둘째 치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미안해요,” 안나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안 들려요.”


어딘가 묘하게 이상한 그 말에 엘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게 뭔 소리야?”


“엘사가 너무 시끄럽고, 나는 졸리고, 그 둘은 상호적 베타적이다, 이 말이에요.” 안나는 비죽대며 고개를 더욱 베개에 파묻는 동시 등 뒤 엘사에게 몸을 비비려 하며 말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알았어, 알았어, 진정할게.” 엘사가 툴툴대며 몸에 힘을 풀었다. 기분 좋은 듯 한숨 쉬는 소리와 가슴팍을 찌르는 등골이 느껴졌다. “그래서, 안나. 인터넷에 올린 이 엄청나게 개인적인 이야기들에 대해 얘기 좀 해줘.”


“꼭 엘사가 아니면 개인적이라고 할 수도 없죠,” 안나가 샐쭉하게 대꾸했다.


“알았어, 그래. 그냥...” 엘사는 큰 숨을 들이쉬고 열까지 세다가, 넷에서 그만 못 참고 숨을 내쉬었다. “그냥 말해줘.”


“블로그 포스팅마다 제목을 붙이잖아요? 그래야 사람들이 포스팅을 구분할 수 있죠. 그래서 제목을 붙이고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내버려둬요. 사람들은 웃고, 울고, 그 안에서 위안을 찾죠.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을 느껴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보세요.” 안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다른 세상 속 엘사와 다른 세상 속 안나는 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요, 그죠? 그 중 제가 봤을 때 중요한 이야기, 감성적으로 제일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 뭐 그런 것들을 골라서 블로그에 올려요. 그러니 지금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엘사 이야기는 인터넷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안심해요.”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 우리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들을 도와?”


“봐요, 이야기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봤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속 세상엔 참...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말 지치고, 슬프고, 그저 고달프죠. 삶이란 게 어쩔 땐... 개 같잖아요. 그렇게 현실에 치일 땐, 음,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도움을 찾아요. ‘자, 여기 봐. 삶은 고달프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냐. 이 이야기들을 봐. 그래, 사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도 있지만, 몇 몇은 사실이야. 네가 처한 일들을 똑같이 겪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너와 똑같은 조건하에 있어. 그러니 힘 내라고, 버티라고. 삶이 우릴 넘어뜨려도 나중에 꼭 다시 일으켜 세워 줄 거고, 먼지를 털어주고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줄 테니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정말 도움이 돼요. 가끔은...”


“가끔은?”


“가끔은,” 안나가 작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가끔은 그 사람들이 제 블로그에 글을 올려요. 자신들이 겪은 일들, 아니면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 그렇게 적어서 올려요. 그럼 또 다른 사람들이 그 글을 보게 되고, 거기서 또 영감을 얻는 거에요. 그래서 이 모든 감정이, 경험이 다 하나로 연결돼요. 버틸 수 있게. 도움이 되게. 치유를 받게.”


안나가 뒤돌아 엘사를 마주했다. 파란 눈이 파란 눈을, 눈물이 글썽한 청록색 눈이 놀란 하늘색 얼음을 바라봤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엘사. 우리 이야기가 그런 일을 해요. 사람들이 버틸 수 있게 도와줘요. 더 나아질 수 있게 도와줘요. 치유될 수 있게 도와줘요. 그렇대요. 사람들이 제게 도움, 희망, 치유에 대해 말해줘요.”


“그럼 넌 뭐라고 말해?” 엘사는 자신이 왜 그걸 묻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따스함. 마치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커다란 무언가의 일부분이 된 듯한 느낌.


안나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기대 부드럽게, 천천히, 다정하게 키스했다. 뒤로 물러서며 보다 밝게 웃었다. 속눈썹엔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머리는 산발을 한 채, 침 자국 묻은 얼굴로 안나는 웃어 보였고, 엘사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사랑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전 계속 읽으라고 해요. 계속 글을 쓰라고 해요. 그리고 지금처럼 계속 멋지게 살라고 해요.”


“I tell them to keep reading. I tell them to keep writing. And I tell them to keep being awesome.”


---



작가의 말: 음, 생각보다 훨씬 감성적인 내용이 됐네.


차분히 기다려줘서 고마워. 카페 리에주아는 이걸로 완전히 끝났어. 내가 쓴 글 중 제일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제일 마음을 쏟아 부은 것 같아.


이건 엘산나나 프로즌, 혹은 디즈니에게만 쓴 러브레터가 아냐. 이건 팬픽션에게 쓴 러브레터야. 그러니까... 다들 고마워. 기다려줘서 고마워. 기대해줘서 고마워. 믿어줘서 고마워.


카페 리에주아가 정말로 끝났으니까 뭘 해야 할까? 읽던 팬픽이 끝나면 항상 해온 대로 다시 처음으로 가서 뭔가 새로운 걸 찾아봐. 그게 팬픽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잖아? 끝났다고 정말로 끝난 게 아냐.



번역 뒷얘기


작가가 독자들은 물론 다른 창작러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쓴 글이란 게 티가 팍팍 나서 작가의 말까지 번역함. 솔직히 마지막에 ‘keep being awesome’이 표현이 안 됨. 1-6편까지 번역된 거 읽어보고 나름 맞춰서 하려고 했는데 능력부족으로 포기. 그래도 6편 따라 안나는 엘사한테 존댓말, 엘사는 안나한테 반말 쓰는 걸로 했음. 그러고 보니 라푼젤은 안나랑 엘사 둘 다한테 반말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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