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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안나 서머즈 Anna Summers, PA 18

번밀레(211.206) 2020.01.28 03: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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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12편


13편


14편


15편




쉴 새 없이 울리는 진동에 안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안나는 간신히 한쪽 눈만 뜨고는 자기를 짜증나게 한 주범을 찾았다.


테이블 옆이군… 안나는 테이블 쪽을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창문 틈새로 햇빛이 램프 옆에 마구 널브러진 청바지를 비추었다. 진동 소리는 청바지에서 나고 있었다.


핸드폰. 안나가 고개를 반대로 돌리자 헝클어진 금발머리와 맨 등이 보였다. 안나는 아직 한창 자고 있는 안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여 청바지를 집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문자가 일곱 통이나 와있었다. 마지막 문자는 ‘안나, 전화해!’라는 내용이었다.


안나는 즉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그통에 자는데 방해가 됐는지 엘사가 불평하듯 끙끙거렸다. 안나는 그런 엘사를 무시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번호를 눌렀다. 안 좋은 시나리오 수 만 가지가 안나 머릿속에 펼쳐졌다….


“여보세요?”


“엄마?! 무슨 일이야?!”


“아가, 아무 일도 아니란다!” 안나의 엄마, 이둔이 전화 건너편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집에 전화 안한지 엄청 오래 됐잖니. 안 그래?”


안나는 끙 소리를 내고는 침대 위로 다시 누웠다. 엘사는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저번에 말했지. 집에 공룡이 침입했다거나 그 정도로 긴급한 상황 아니면 설명도 없이 그렇게 문자 보내지 말라고.”


“그렇지만 집에 전화도 안하잖니! 내 딸이랑 대화 좀 하고 싶은데 어떡해?”


각종 욕설이 안나 머리에 떠올랐지만 안나는 심호흡을 했다. “일 하느라 좀 바빴어….”


“안나?” 엘사가 한 쪽 팔로 몸을 바쳐 일어나서는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에요?”


“엄마요….” 안나가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는 속삭였다.


“누구야?” 격양된 목소리가 안나 귓가에 울렸다. “안나야, 너 연애하니? 일하느라 바쁜 줄만 알았는데. 안전하게 하고 있지? 왜 나한테는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엄마도… 아는 사람이야….” 사실이긴 했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통화했을 때 안나는 자기 새 상사가 누구인지와 그 사람이 자길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으니…. 엘사는 안나가 말하는 걸 들으며 계속 안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안나의 볼이 물들었다.


“정말? 이름이 뭐야? 예쁘니?”


“엄청.” 안나가 엘사를 보고 웃으며 단언했다. 안나는 엘사 얼굴에 붙은 머리를 떼어주었다. 숨 막힐 정도로 예쁘지. “그리고… 이름은 엘사야.”


“너네 회사 사장?!” 엄마가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자 안나는 귀에서 핸드폰을 뗐다. 이둔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고 안나는 엘사를 바라보았다. 이걸 못 들었을 리가 없지. 엘사는 살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미안해요.” 안나가 뻐끔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 엄마가 얼마나 속수무책인지 보여주려는 듯 눈을 흘겼다.


한편, 이둔은 계속 웃고 있었다. “좋아.” 이둔이 숨을 헉헉거리며 말했다. “그 여자 진짜 별로라고 흉볼 때 이미 알아봤어.”


“내가 언제 그랬어!”


“변명은. 그래서 그 사람 사랑하니?”


“엄마….”


“아, 사랑하나보네!” 이둔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자 안나는 눈을 꾹 감고 콧잔등을 꾹 눌렀다. “나 좀 바꿔줘! 얘기 좀 해보자.”


안나는 끙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아니. 아침 댓바람부터 내 여친한테 트라우마 심어줄 생각은 없거든.”


“해가 중천에 떴어.”


“그럴 수도 있겠네.” 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계를 흘끗 보았다. 두 시 삼십육 분이라, 좀 많이 낮이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안 돼.”


“좋아. 그럼 오늘 저녁 먹게 둘이 같이 와.:


“엄마….” 안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엘사는 허리를 펴고는 몸을 쭉 뻗고 있었다.


미친. 엘사는 아직도 알몸이었고 안나도 알몸이었다. 정신이 나가버리기 전에 전화부터 얼른 끊어야 했다.


“좋아.” 안나가 급하게 말했다. “꼭 그래야 하면.”


“아주 좋아. 여섯 시에 봐.” 안나는 대답도 제대로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안나는 끙 소리를 내며 베개 위로 무너져서는 침대 옆 테이블에 핸드폰을 내던졌다.


“뭐라고 하셨어요?” 엘사가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엄마가 당신이 보고 싶대요.”


엘사의 얼굴이 굳었다. 동공이 마구 요동치는 게 보일 정도였다. “걱정하지는 마요.” 안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 좋아할 걸요.”


사실이었다. 이둔은 엘사를 엄청 좋아할 것이다. 엘사가 예쁘고 정중하니 분명 좋아할 것이다. 안나가 엘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보면 엘사가 더 마음에 들겠지.


안나의 흑역사를 언급하는 것도 좋아할 거고… 엄마로서 안나를 창피하게 한 이야기도 하겠지. 안나는 엘사를 보고 옆으로 누워서는 팔을 뻗었다. “당신 데리고 저녁 먹으러 오라네요.”


엘사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는 내뱉었다. “좋아요, 그럼.”


엘사는 몸을 당겨 안나를 끌어안았다. 안나는 엘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얼굴로 느껴지는 엘사의 살결이 너무 좋았다.


엘사에게 이렇게 빨리 푹 빠졌다는 사실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안나는 평소에도 금세 사랑에 빠지는 성격이었고 거기에 따른 문제도 겪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엘사는 분명 달랐다. 안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너무 확실한 사실이었다.


“엄청 좋네요,” 안나가 엘사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 옆에서 깨는 거요.”


“으으음.” 엘사도 동의했다. 엘사는 안나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안나는 엘사 목덜미에 코와 입술을 비비며 따뜻한 피부를 느꼈다.


“사랑해요.” 안나가 단어 하나하나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 말에 엘사의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주저하는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몸을 건너 전해졌다. 엘사가 몸을 뒤로 빼자 안나는 속이 배배 꼬였다. 안나는 엘사를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감정을 바꿀 수도 없었다. 엘사가 눈을 바라보자 안나는 엘사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기만큼 미친 듯이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만 안나는 엘사가 더 거리를 두지 않을지가 걱정됐다.


엘사는 오히려 안나의 볼을 손으로 감싸고는 입을 맞추었다. 안나도 엘사에게 입을 맞추었지만 속은 아직도 철렁했다. 엘사는 안나 허리를 더 꼭 껴안고는 자기 쪽으로 안나를 당겼다. 무언가를 말하는 것처럼, 자기 생각을 알려주려는 것처럼 어딘가 절박한 몸짓이었다. 마치 엘사가 빠르게 곤두박질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나 외에는 다른 무엇도 필요 없다는 듯. 이런 느낌에 안나는 미소를 지었다.


안나의 손이 엘사의 엉덩이로 향하더니 맨살 위에서 원을 그렸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어요.” 숨을 쉬기 위해 잠깐 키스를 멈추자 안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엘사는 싱긋 웃더니 자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좀 남았지.” 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안나를 올려보았다.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눈이면서 동시에 성욕이 가득했다. 그 눈을 보니 안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나한텐 너무 완벽한 사람이야.


엘사는 뺨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제 내가 해줄 차례 맞지?” 엘사가 안나의 맨살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안나는 엘사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추었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렸다.


“그랬었죠.” 안나가 말했다.


절정에 오른 엘사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평생을 해주면서 살아도 행복할 텐데. 전날 밤의 기억은 너무 아찔했다. 엘사가 수줍고 사랑스럽게 자기 몸을 만져준다고 생각하니 몸이 달아올랐다.


엘사가 몸을 일으켜 이불을 치워버리자 두 사람은 알몸으로 서로의 옆에 있었다. 엘사는 안나의 배를 손으로 쓸며 손톱으로 보이지 않는 표시를 냈다. 안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너무 간지러웠지만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안나를 바라보는 엘사의 얼굴에 황홀감이 서려있었다.


“확신이 없어요….” 엘사가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멈추었다. 얼굴은 더 짙게 물들어있었다. 손은 안나의 엉덩이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있었다. 안나의 얼굴과 허벅지 사이에서 엘사의 눈이 요동쳤다.


안나는 엘사의 말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엘사가 잘 할 수 있게 가르쳐줘야겠네. 로맨틱하면서도 야한 생각이었다.


“일단 해봐요.” 안나가 말했다. “기분 좋으면 말해줄게요.”


엘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엘사는 눈을 안나에게서 떼지 않고 몸을 숙여서는 안나의 배에 입을 맞추었다. 엘사는 배에서 시작해 엉덩이 부근까지 올라가며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엘사가 손을 올려 안나 허벅지 사이를 부드럽게 쓸자 엄청난 떨림이 느껴졌다. 안나는 등을 기댄 채 다리를 벌려 엘사가 몸을 더 자세히 보도록 했다.


엘사는 엄청나게 집중한 표정을 짓고는 손으로 안나의 그곳을 살폈다. 엘사가 털로 덮인 윗부분을 문지르자 안나는 숨을 몰아쉬며 살짝 몸을 비틀었다. 부드럽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다. 소심하지만 달콤했다.


엘사는 손가락으로 그곳을 벌리고는 이미 젖기 시작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엘사는 안나 음부의 바깥쪽을 위아래로 쓸었다. 안나는 닿을 때마다 작게 신음을 뱉었다. 엘사는 싱긋 웃고는 손동작을 계속했다.


안나의 눈에 엘사가 여전히 집중하는 표정을 지으며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핥는 모습이 들어왔다. 엘사는 손가락을 멈추고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안나를 올려보았다. 그 모습에 안나는 숨이 턱 막혔다.


“있잖아요… 연애 소설은 많이 읽긴 했는데,” 엘사가 말했다. “그게… 입으로 하는 게… 늘 궁금했어요.”


엘사는 다시 얼굴을 붉히더니 입술을 깨물고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는 씩 웃었다. 아주 완벽한 날이야. “내가 직접 보여줄게요.” 안나가 제안하자 엘사는 히죽 웃었다. 엘사는 다시 안나의 클리토리스를 누르고는 느릿느릿 원을 그렸다. 그 손짓에 안나의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아직 내 차례인데.” 엘사가 넌지시 말했다. “다음번에 시켜줄게요.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해줄래. 안나한테.”


아주. 완벽한. 날이야. “불만 없어요.” 안나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안나는 몸을 내려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눕더니 손을 뻗어 베개를 잡았다. “엉덩이 아래에 깔아줘요.” 안나가 엘사에게 베개를 건네며 말했다.


엘사가 베개를 대자 안나는 엉덩이를 올렸다. 엘사는 안나를 다시 흘깃 보더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다른 팁은요?‘ 엘사가 물었다. 엘사의 숨결에 배로 느껴져서 몸이 떨려왔다.


안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질문에 대해 생각하려 애썼다, 엘사는 아직도 안나의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고 있었고 그 손짓에 안나의 그곳은 더 젖어가고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엘사가 긴장한 것을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혀를 납작하게 해봐요.”


엘사는 손을 떼더니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었다. 안나는 손을 뻗고 엘사를 위해 아래쪽 입술을 벌려주었다. 엘사가 가까이 다가오자 젖은 틈 사이로 엘사의 숨결이 느껴져 몸이 떨려왔다.


깊게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엘사가 혀로 안나의 음부를 길게 핥았다. 살짝 강했지만 문제될 건 전혀 없었다.


클리토리스에 혀가 닿자 안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엘사가 입을 맞추자 몸을 타고 기쁨의 전율이 다시 흘렀다.


“맛은 어때?” 안나는 엘사의 반응이 궁금해져 물었다. 안나는 엘사가 자신의 그곳을 혀로 핥는 모습을 보고는 눈을 감았다.


“천국 같아.” 엘사가 입을 살짝 떼고는 말했다. 촉촉한 입술이 번들거렸다.


엘사는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 안나의 틈새를 탐험했다. 혀로 핥고, 입을 맞추고, 다시 클리토리스를 자극했다. 그 때마다 안나는 신음을 내고 탄성을 터뜨렸다. 장난스러우면서도 부드러웠다. 이런 자극에 안나는 참을 수 없었다.


엘사가 다시 클리토리스를 핥자 안나는 골반을 들었다. 무어라 지도를 하기에는 너무 정신이 없었지만 엘사가 그곳을 핥아주길 원했다. 엘사는 놀란 듯 소리를 내더니 자세를 바꾸었다.


엘사는 혀로 안나의 클리토리스를 누르고는 천천히 혀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다. 엘사의 혀가 위로 향할 때마다 그곳을 벌리고 있는 안나의 손가락에 닿았다. 안나는 눈을 감고 몸 안쪽에서 서서히 밀려오는 느낌에 준비했다.


“멈추지 마.” 안나가 간신히 말했다. 안나는 엘사의 등에 한쪽 다리를 감고 다른 쪽 다리로 몸을 더 높게 치켜 올렸다. 저 엄청난 입에 좀 더 가까워지길 바라면서.


엘사는 자기 몸에 감긴 안나의 왼쪽 다리를 한 팔로 안고는 일정한 리듬으로 혀를 계속 움직였다.


좀만 더… 조금만…


“손… 넣어….” 안나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제대로 말하기조차 힘들었다. 어쨌든 엘사는 우수한 학생이기에 자기 손을 들고는 두 손가락을 안나의 안으로 집어넣었다. 혀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안나는 신음과 울음이 터져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참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손이 자기 위에, 그리고 자기 안에 있는데. 엘사가 손가락을 구부려 안나의 지스팟을 자극하자 안나는 절정 직전의 기쁨을 누렸다.


“엘사!” 안나가 외쳤다. 안나가 오르가즘에 이리저리 몸부림쳤지만 엘사는 혀를 멈추지 않았다.


오르가즘이 서서히 옅어지자 안나는 베개를 놓고선 키스를 하기 위해 엘사의 머리를 위로 이끌었다.


미친. 최고야.


안나는 엘사의 입술에서 자기 맛을 느꼈다. 안나는 절정 뒤의 환희를 느끼며 엘사에게 열정적으로 키스했다.


“나 잘했어요?” 마침내 안나가 숨이 차서 키스를 멈추자 엘사가 웃으며 물었다.


“레즈비언인 거 오랫동안 숨긴 거 맞아요? 오르가즘 오는 걸 보니까 거의 프로던데.”


엘사가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다시 웃었다. 안나는 그 반응 때문에라도 다시 키스해야 했다.


“이제, 엘사만 괜찮다면,” 안나가 널브러진 베개를 집으며 말했다. “엘사도 기분 좋게 해줄까 하는데요.”



-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또 저렇게 서로를 안았다. 엘사는 타인에게 이렇게까지 찰싹 달라붙는 게 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둘은 세 시 사십오 분이 되도록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러다 안나가 저녁 약속을 떠올렸다.


둘은 허겁지겁 샤워를 마쳤고 엘사는 살짝 불만스러운 기분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같이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안나가 깔끔한 옷이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어젯밤에 입었던 옷에는 피냐 콜라다와 가라오케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엘사가 가라오케 냄새가 정확히 무어냐고 물어봤을 때 안나는 괜히 심란해졌다. 안나는 지금 엘사 옆 조수석에 앉아 엘사가 빌려준 치맛자락을 매만지며 자기 입술을 앙 물고 있었다.


“언제 꺾어요?” 엘사가 물었다.

“네?” 안나가 말했다. 안나는 잠시 자기가 어디 있는지조차 까먹은 것 같았다. “아, 두 블록 더 가서 우회전해요.”


분명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건 안나였지만, 지금은 자기 엄마를 본다는 사실에 누구보다도 마음이 뒤숭숭했다. 엘사가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도 자기와는 진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살짝 혼란스러웠다. 엘사는 핸들을 꺾고 도로를 따라 쭉 직진했다.


“다 왔어요.” 짧고 적막한 거리를 반 정도 왔을 때 안나가 입을 열었다.


엘사는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집은 단층에 밝은 파란색으로 칠을 했고 문과 창틀은 흰색이었다.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나무 색이 보였다. 앞마당에는 가슴께까지 오는 나무 울타리가 둘러져 있었다. 울타리 바깥은 전부 정원이었다. 정원에는 크로커스와 노란 수선화가 죽은 잎을 헤치고 고개를 들고 있었다.


“겁주려는 건 아니고요….” 안나가 긴장한 듯 앞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좀 희한하긴 해요. 시끄럽고요. 엄청 시끄러워요… 또 엄청 고집 부릴 때도 있고-”


“안나, 나는 당신 어머님 좋아할 거예요.” 엘사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래도 안나 키워주신 분이잖아요?”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고 안나는 재빨리 움직여 엘사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엘사를 문가로 이끌더니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빗장을 풀었다.


왜 이렇게 울타리가 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곰 한 마리가 엘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엘사는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무키!” 안나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곰은 진로를 바꿔 안나에게 달려들었다. 엘사는 손을 내리고는 안나를 끌어당겨 괴물로부터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안나는 팔을 쭉 뻗고는 무릎을 꿇었다.


안나는 곰을 붙잡고 넘어졌고 제 얼굴을 덮는 거대한 혀를 느끼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멍멍이!” 안나가 자기를 산채로 잡아먹을 것 같이 생긴 ‘무키’ 아래에서 행복한 듯 소리 질렀다.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 그랬어?”


무키는 행복에 겨워 짖더니 두 사람 주위를 빙빙 돌았다. 엘사는 저 큼직한 괴물에 깔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개가 어떻게 저렇게 클 수가 있지? 안나 어머님이 동물한테 실험하는 미친 과학자였나?

“엘사?” 안나가 이름을 부르자 엘사는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내고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무키가 두려운 눈치였다. 안나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개 별로 안 좋아해요?”


“엄청 크네요.”


안나가 웃으며 명령했다. “무키, 앉아!” 무키는 뛰는 걸 멈추더니 몸을 접어 제자리에 앉았다. 머리가 엘사의 허리 언저리에 왔다. 안나가 무키의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마구 만지자 무키는 헥헥거렸다. “봤죠. 덩치만 커요. 한 번 만져줘요.”


엘사는 동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안나가 저런 얼굴을 하고 부탁을 하는 걸 보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엘사는 손을 뻗어 무키의 머리를 소심하게 쓰다듬었다.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검은 털은 부드러웠다. 무키는 엘사를 보더니 계속 헥헥거렸다.


“애니!” 집 문이 벌컥 열렸다. 갈색 머리의 날씬한 여자 하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와서는 안나를 꼭 끌어안았다. 무키는 다시 껑충거리고는 마구 짖으며 주위를 맴돌았다.


안나는 자기 엄마한테 안겨있느라 무키가 무얼 하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엘사는 겅중거리는 강아지를 보고 겁에 질려서는 안나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무키, 앉아!”


무키가 말을 들었다. 안나와 이둔은 고개를 돌려 엘사를 바라보았다. 엘사는 살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미소를 지으며 안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둔이 안나를 놓아주며 말했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누구인지 소개 좀 해보렴.”


엘사의 볼이 물들었다. 안나는 다시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엄마, 엘사 아렌델 씨야. 내… 어, 그, 여자친구고, 우리 사장님이야. 그래도 일단은 여자친구지. 엘사, 이둔 서머즈 여사에요.”


엘사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지만 이둔은 그 손을 무시하고는 엘사를 꼭 끌어안았다. 팔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갈비뼈가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만나서 정말 기쁘구나, 아가!” 이둔이 마침내 엘사를 풀어주며 말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자.”


이둔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엘사는 환대에 어안이 벙벙해 제자리에 돌처럼 굳어있었다. 안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엘사의 손을 잡고는 엘사를 안으로 이끌었다.


“옷을 빌려 입은 걸 보아하니,” 이둔이 어깨 뒤 엘사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사이가 꽤 좋은가 보네?”


안나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안나는 엘사의 손을 더 꽉 쥐며 말했다. “새 옷일 수도 있잖아. 못 본지 몇 달이나 됐는데. 옷 새로 살 수도 있지.”


이둔은 현관에서 현관을 벗고는 눈썹을 치켜뜨며 몸을 돌렸다.


“스타일 좀 바꿔봤어.” 안나가 변명했다.


“으으음. 그래. ‘여친 옷 빌려 입은’ 스타일이네.”


“조용히 해,”


엘사는 이 상황이 너무 놀라웠다. 안나가 방금 자기 엄마한테 조용히 하라고 하다니. 이둔은 또 그 말에 웃고는 다시 안나를 끌어안다니. 안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둔의 허리를 꼭 껴안고는 거실로 들어섰다.


엘사의 가치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이였다. 엘사는 아버지 앞에서 늘 공손하고 완벽하게 행동해야 했으니까. 대기업의 후계자다운 행동을. 농담도, 포옹도 할 수 없었다.


이둔은 두 사람을 이인용 소파에 앉혀놓고 안나가 옷을 빌려 입은 걸 다시 놀렸다. 엘사는 얼굴이 화끈했다.


어머님도 아는 거야. 우리가… 같이 있다가 온 걸 아시는 거야. 아침까지도 계속 한 것도 아시겠지.


몇 시간 전만 해도 엘사는 안나 품 안에 쏙 안겨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나의 어머니와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다. 엘사는 최대한 안나와 떨어져 앉으려 소파의 팔걸이 쪽으로 바싹 당겨 앉았다. 왜 하필 여기에 앉히셨을까?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저녁으로 로스트비프와 감자를 차려준다고 하셨을까?


“그래서 우리 아름다운 아가씨 꼬시려고 딸내미가 무슨 짓을 했을까?”


엘사는 괜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기에게 묻는 질문을 잠시 알아듣지 못했다.


…젠장, 뭐라고 하지? 엄청 길기도 하지만 팬티 보인 걸 얘기할 수도 없는데. “저희 집 앞에 침낭 깔고 자고 있었어요.”


이둔이 깔깔거리며 마구 웃었다. “진짜 우리 딸스럽네!”


“좀 복잡한 사정이 있었어.” 안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중얼거렸다.


“저 때문에 그런 거죠.” 엘사가 덧붙였다. 엘사는 이둔이 두 사람 사이에 있어 안나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둔이 미소 지었다.


“아, 저번 애인보다 훨씬 좋네. 걔 이름이 뭐였지?”


“엄마….” 안나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름이 엄마는 아니었잖아.” 이둔이 자기 볼을 톡톡 쳤다. “저스틴? 제이슨?”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ㅈ‘로 시작하는 이름이었는데.” 이둔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엌을 맴돌았다. “어쨌든, 이번엔 정말 좋은 사람이네. 엘사, 와인 어떠니?”


이둔이 부엌 밖으로 나가자 안나는 엘사에게 기대더니 엘사 손을 붙잡고 그 위에 빙글빙글 원을 그렸다. 엘사는 안나가 자기 몸 위에 원을 그리던 기억이 떠오르려는 걸 단호하게 억눌렀다. 이둔은 다시 돌아와서는 와인잔 두 개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는 팔걸이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엘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엘사는 이둔이 뭐라 할지를 몰라 꼼지락 거리고만 있었다.


“그래서 타코만 먹니? 아님 핫도그도 먹니?” 마침내 이둔이 입을 열더니 와인을 길게 쭉 들이켰다.


엘사는 혼란스러웠다. 로스트비프 차려주신다고 하지 않았나? 안나는 앓는 소리를 내더니 엘사 손을 놓고 자기 얼굴을 가렸다.


“물어볼 수도 있지!” 이둔이 이렇게 말하자 엘사는 더 혼란스러웠다. 안나는 또 앓는 소리를 내고는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무키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안나 손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안나는 무키를 확 끌어안았다.


“물어, 무키. 얼른 이 고통을 끝내줘.” 무키가 안나의 손을 핥았다.



“죄송한데,” 엘사가 말했다.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요.”


안나가 고개를 벌떡 들더니 믿기지 않다는 듯 엘사를 바라보았다. 이둔도 눈썹을 치켜뜨며 휘청거렸다.


“와, 당신 정말 세상 물정 모르네요.” 안나가 중얼거렸다.


이둔은 충격에서 벗어난 듯 씨익 웃었다. “이제 알면 되는 거지. 내 말은-”


“타코요, 엄마!” 안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둔에게 달려가 팔을 잡아당겼다. “그냥 타코. 이제 부엌으로 가야하지 않아? 타는 냄새 나는 것 같은데.”


“애니, 그게 중요하니?”


“그럼. 엄마. 중요하고 말고.”


“좋아, 좋아. 가서 한 번 보마.” 이둔은 안나의 팔을 찰싹 때리더니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어슬렁어슬렁 부엌으로 향했다. 안나는 시뻘건 얼굴로 소파 위로 드러누웠다. 엘사는 웃음을 억눌렀다.


“그래서 무슨 질문이었어요?” 엘사가 물었다.


“그냥 잠깐 생각해봐요.” 안나가 천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타코랑 핫도그라. 성적인 질문인가. 답이 타코라면…/


“아.” 엘사는 당황한 걸 감추려 잔을 들고 와인을 벌컥 들이켰다.


“세상에… 엘사, 끔찍해요. 엄마 일은 미안해요. 매너를 가르치려고 시도는 했는데-”


엘사는 잔을 내려놓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둔은 짓궂고 직설적인 사람이네. 이상할 정도로 신선했다. 이둔과 안나는 모녀지간보다는 오래된 친구사이 같았다. 엘사는 그런 관계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특히나 상대가 아빠라면 더더욱. 엘사는 진심으로 샘이 났다.


엘사는 손을 뻗어 안나의 손을 쥐었다. “어머님이 우리 엄마 하면 안 될까요? 나 진지하게 어머님이 좋아요.”


안나도 엘사의 손을 꽉 쥐며 희미하게 웃었다. “좋아요. 입양하죠 뭐.”


“아님 둘이 결혼하던가!” 이둔이 부엌에서 외쳤다. 안나는 제자리에 쓰러져서는 엘사 다리에 얼굴을 묻고 크게 끙끙 거렸다.



-


“그래서….” 엘사가 말했다. 저녁은 뒤에서 식어가고 있었다. 이둔은 안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놨다. 안나를 찾으려고 경찰을 불렀더니, 알고 보니 나니아 찾는다고 벽장에 박혀있던 얘기부터 고등학교 시절 남친 여친 얘기까지. 한 번은 가수 하나에 꽂혀서 걔만 따라다니겠다고 선언했다니. 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안나는 얼굴을 붉히고는 창피해서 죽고 싶다는 말을 거창하게 내뱉었다.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엘사는 자기가 안나를 똑바로 대하지 못한다고 이둔이 자기를 문전박대하는 상상을 멈추었다. 엘사는 자기 두 번째 잔을 빤히 바라보며 하고 싶은 질문을 속으로 삼켰다. 이둔은 여섯 살 안나가 자기 결혼식에 무슨 드레스를 입고 어떤 꽃을 장식할지 계획하던 이야기를 막 마친 참이었다.


“어머님.” 엘사가 말하자 이둔이 시선을 피했다. 분명 자기를 이둔이라고 부르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게 어려운 모양이었다. “어떠셨어요? 안나가 양성애자라고 커밍아웃 했을 때요.”


이둔은 씨익 미소 지었고 안나는 다시 테이블 위로 고개를 떨구었다. “파티를 열워줬지.”


“내 인생에서 가장 창피한 순간이었어요.”


“아가, 무슨 소리야. 더 창피한 순간도 많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 불렀잖아. 내가 걔 좋아한다고 말도 하고.”


“그게 가만 두면 절대 말 안 할 것 같아서!”


엘사는 농담을 주고받는 모녀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안나는 고개를 돌려 엘사를 올려다보고는 엘사를 벌해달라는 듯 하늘을 향해 손을 모았다.


“어떻게 그걸….” 엘사는 질문이 목에 콱 걸린 듯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걸 받아들였냐고?” 이둔이 묻자 엘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둔은 손을 뻗어 안나의 뺨을 꼬집었다. 안나의 입술이 더 튀어나왔다. “어쨌거나 내 애기인걸.”


안나는 웃으며 손을 찰싹 때렸다. 안나는 등을 기대고 앉아 엘사의 손을 꽉 쥐었다.


이둔은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을 보더니 머릿속으로 무언가 생각했다.


“커밍아웃한지 얼마 안 됐니?” 이둔이 물었다. 엘사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둔을 보았다.


“제대로 하지도 못 했어요….” 엘사가 말했다.


“내가 벽장에서 억지로 끌어내서 윽박지른 수준이었어.” 안나가 말했다.


이둔이 능글맞게 웃었다. “역시 내 딸이야.” 목소리로는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엘사, 내가 조언 좀 해줄게.” 이둔이 말했다.

“무시하고 싶으면 무시해도 좋아요.” 안나가 덧붙였다.


“내가 더 젊었을 땐 더 과묵하고 점잖았단다. 안나, 그만 웃어. 그 시절에는 모든 게 불행했어. 행복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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