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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가장 따뜻한 색, 블루 10

La vie(175.195) 2020.01.28 16:47:01
조회 1012 추천 45 댓글 15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7화

8화

9화



“Bon anniversaire(생일 축하해), 안나. 하루 늦어버렸지만.”


아 맞다, 나 생일이었지. 크리스토프와 다투고 술 마시며 정신없이 노느라 자신의 생일인줄도 잊고 있었던 안나는 생각지도 못한 생일 축하에 괜히 울컥했다.


“파리에서 맞는 첫 생일인데, 이렇게 조촐해서 어떡하지? 미안하네.”


안나가 아무 말이 없자 엘사가 민망한 듯 말했다.


“조촐하긴요! 언니… 너무 고마워요… 저 진짜 감동 먹어서 할 말을 잃었어요…”


이미 열두시를 넘긴 시각에 허기진 둘은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 맛은 완벽했다. 안나는 온갖 주접을 떨며 식사 시간 내내 떠들어 댔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엘사가 아침 일찍 동네 빵집에서 사온 케이크에 초를 꽂고 소원을 빌기도 했다. 생일 때마다 항상 가족 또는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지내온 안나였기에 이런 조용하고 단촐한 생일 파티는 처음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엘사와 단 둘이 단란하게 보내는 지금 이 순간,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 안나는 행복했다. 외롭지 않았다.


“속은 좀 괜찮아? 어제 많이 취한 것 같던데.”


“아, 네! 괜찮아요. 원래 제가 술을 좀 잘 마시거든요. 어제는 이상할 만큼 술이 잘 안 받는 것 같긴 했지만…”


“혼나야 돼. 겁도 없이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조심해야지.”


엘사가 처음으로 안나에게 정색하며 나무랐다.


“네…죄송해요… 그나저나 어제 언니가 저 데리러 온 거 맞죠?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메가라가 알려 줬지. 너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알아?”


처음 보는 엘사의 표정에 당황한 안나가 말을 돌리려 재빨리 화제를 전환해보려 했지만, 엘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건은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순간, 안나의 머릿속에 어제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엘사가 여자와 실랑이를 하는 장면이었다. 둘의 대화가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안나의 귀에 박힌 한 단어가 있었다.


‘아는 동생.’


“그냥 아는 동생일 뿐 이잖아요.”


“뭐?”


갑작스러운 안나의 태도에 엘사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그냥 아는 동생일 뿐인데 뭘 그렇게 걱정하냐구요.”


자기도 모르게 나간 공격적인 말투에 안나 스스로도 놀랐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


벙 찐 엘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나는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머릿속으로 자기 자신을 두들겨 패는 상상을 했다.


“죄송해요. 제가 술이 아직 덜 깼나봐요.”


안나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이 사용했던 그릇과 수저를 개수대에 가져다 놨다.


“잘 먹었어요. 정리 못하고 가서 죄송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안나… 잠깐..!”


쾅! 안나는 자신을 부르는 엘사를 뒤로한 채 도망치듯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행여나 엘사가 따라 나올까봐 계단으로 1층까지 뛰어내려온 안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 서야 숨을 고르며 잠시 멈춰 섰다.


“헉..허억…”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자신의 말도 안되는 유치한 언행에 안나는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이해가 안됐다. 이런 말도 안되는 심통을 부리다니...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으아아아아! 애새끼도 아니고!”


안나는 괴성을 지르며 눈앞에 있던 깡통을 걷어차 버리고는 어딘가로 씩씩 거리며 걸어갔다.



*



“뭐야 갑자기 불러내더니 왜 아무 말이 없어?”


금발 머리가 붉은 머리에게 쏘아댔다.


“...라푼젤, 있잖아...”


“그래, 말해봐 기지배야. 남친이랑 싸웠어?”


“그것도 그건데...”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얘기해 봐.”


안나는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는 이런 적 있어? 내가 ‘아는’ 언니가 있는데...”


“있는데?”


“나한테 되게 고마운 사람이거든. 내가 엄청 좋아하기도 하고. 너도 알잖아, 원래 내가 사람 잘 따르고 좋아하는 거.”


“알지.”


“근데 그 언니는 그 이상인 것 같아. 음... 뭐랄까, 처음엔 동경이였다? 그냥 다 멋있었어. 공부 잘 하는 것도 멋있고,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것도 멋있고, 미래지향적이고, 똑 부러지고, 강한 사람이야. 근데 상냥해. 그리고... 엄청 예쁘고.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신나서 줄줄 이야기 하던 안나가 잠깐 말을 멈춘채 눈을 밑으로 도르륵 굴렸다.


“존경. 그래 존경스러운 사람이야. 뭔가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랄까? 나랑은 다른 세상 사람 같아서, 그 사람의 세계에는 내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 같아서 이유 없이 서운함을 느낄 때가 많은 것 같아. 내가 원래 그런 쪼잔한 사람이 아니거든? 나 완전 이 시대의 쿨녀 인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서 너무 혼란스러워. 그 사람이랑 거리를 좁혀보려고 다가기도 망설여져.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리고 나만 그 사람이랑 가까워지려고 안달난 것 같아서, 나만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가끔 자존심 상하기도 해...”


안나는 말끝을 흐렸다.


“이거 정상이야? 나는 친구한테 이런 감정 느껴본 게 처음이라서. 너도 그런 적 있어?”


“흠 글쎄, 한 가지 확실한 건 니가 엘사 언니를 엄청 좋아한다는 건 사실인 것 같네.”


“맞아... 잠깐, 뭐? 나..난 엘사 언니라고 한 적 없어!”


라푼젤이 눈을 가늘게 뜨며 안나를 향해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 음흉하게 웃어보였다.


“안나, 있잖아. 우리는 상대가 이성이기 때문에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상대가 동성이기 때문에 사랑을 우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대.”


“하지만 라푼젤... 난 여태껏 한 번도 여자한테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


“넌 그냥 엘사가 좋은 거지, 언니가 여자라서 좋은 게 아니잖아?”


안나는 라푼젤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나는 멍석처럼 굳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라푼젤... 고마워! 다음에 내가 맛있는 거 살게!”


안나가 카페 문을 거칠게 열며 후다닥 뛰쳐나갔다. 그 동안 쌓여왔던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의문들이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맞춰져 갔다. 숨이 차도록 뛰어서 인지, 자신의 감정에 대한 확신 때문인지 안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


이걸 원래 이렇게 장편으로 쓸 생각은 없었는데.. 스토리 진행이 너무 느린가ㅠㅠ

오늘도 읽어줘서 고맙워 쥬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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