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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

엘산나비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7 14:58:52
조회 810 추천 50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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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www.meteo-paris.com/actualites/la-neige-a-paris-toute-une-histoire-22-janvier-2019.html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7화 8화 9화 10화 11화 12화 13화(上) 13화(下) 14화 15화 16화 17화 18화 19화





벨과 엘사의 재회 이후 안나는 한동안 엘사를 보지 못했다. 메가라의 말로는 당분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목적지도 말하지 않고 작은 캐리어 하나만 달랑 들고 훌쩍 떠나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 언질도 없이 갈 수 있지? 물론 안나도 엘사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서운함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엘사가 없는 파리는 무료했다. 아름다워 보이기만 했던 도시는 겨울을 맞이하면서 점점 회색 도시로 변하기 시작했다. 악명 높은 유럽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메가라는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게 진정한 파리 날씨지, 하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아마 다시 봄이 올 때 까지는 이런 하늘을 지겹도록 볼 것이라며, 많은 파리지앵들이 계절 우울증에 시달리곤 한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메가라의 말처럼 파리의 하늘은 안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 주 동안 흐리기만 하다. 안 그래도 엘사 생각에 착잡한데, 괜히 더 가라앉게 되는 안나였다.



하지만 그런 우울감 따위에 굴복할 안나가 아니었다. 안나는 엘사가 돌아오면 실행할 ‘엘사 행복하게 만들기 프로젝트’ 일명 엘행만 프로젝트를 열심히 구상 중이었다. 메가라는 다 좋은데 프로젝트명이 너무 구리다며 핀잔을 줬지만, 안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에 대해 열심히 재잘거렸다.



사실 프로젝트라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지만, 안나는 자신이 딱히 엘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다. 끽해야 늘 해오던 디저트 맛집 탐방, 엘사가 다른 생각에 빠지지 못하도록 옆에서 조잘 대기, 엘사가 어이없어서 라도 웃을 수 있도록 능글맞은 농담 던지기... 정도? 도무지 이거다!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하는 안나였다. 하긴, 그동안 이벤트 같은 거 받아보기만 했지 해준 적은 없었다고! 안나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괴로워했다. 메가라는 그런 안나의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뭘 그렇게 특별한 걸 하려해. 하던 대로 해. 하던 대로~”



“사람이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대.”



안나는 도움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메가라를 노려봤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사이좋게 티격태격 대다 결국 별다른 수확 없이 헤어졌다.





*





지루한 주말이 찾아왔다. 주말이면 쪼르르 엘사네 집에 가서 엘사가 해 준 밥을 얻어먹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안나는 그저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 거리던 안나는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무언가 열심히 읽더니, 이내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챙겨 문을 나섰다.



안나는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메트로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플랫폼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안나는 벽에 붙여진 광고들을 구경했다. 넷플릭스의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 광고, 향수 광고, 영화 광고 따위들을 읽어 내려가던 와중 한 광고가 안나의 눈에 팍, 꽂혔다.



[노르웨이 오로라 투어, 최저 560유로 부터! -오큰 투어]



노르웨이? 오로라? 560유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물론 560유로도 학생 신분인 안나에게는 큰돈이었지만, 한 달 정도 빵만 먹고, 버스와 메트로를 타는 대신 걸어 다니면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오로라라니! 너무 낭만적이잖아! 엘사랑 같이 가면 너무 좋겠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안나는 ‘엘행만 프로젝트’를 핑계로 자연스럽게 사심을 채우고 있었다. 안나는 일단 광고판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뒤, 곧이어 도착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안나가 향한 곳은 헤퓌블릭(République) 광장, 프랑스의 국민 신문고 같은 곳이다. 혁명의 나라답게 이곳에서는 거의 매일 갖가지 시위가 일었다. 오늘의 시위대는 크게 두 무리로 나뉘었다. 동성애자들이 사회에서의 자신들의 평등과 자유 할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와 최근 프랑스에서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



사실 이런 시위는 파리에 온 뒤로 지겹도록 봐왔지만, 그동안 팔이 다 낫지 않아 올라프의 부모님이 선물해 준 새 카메라를 길들일 시간이 없었던 안나는 오늘 큰 시위가 있을 거라는 기사를 보고 망설임 없이 이곳에 나오게 된 것이다. 심심한 풍경 사진을 담는 것 보다 이렇게 역동적인 장면들을 담는 것이 카메라에 빨리 익숙해질 수 있는 길이였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러한 장면들을 접해오다 보니, 어디선가 르포르타주 정신이 끓어오르기도 했고.



물론 엘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기겁을 하며 말렸을 것이다. 이곳의 시위는 아시아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루어 졌었던 대통령 탄핵 촛불 시위처럼 인도적이고 평화롭지 않았으니까. 과격한 시위에 휩쓸려 언제든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다. 지난번 테러 사건 때문에 이런 곳에 오는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꺼려질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안나는 딱히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안나는 셔터를 바쁘게 눌러댔다. 시위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 졌고, 안나도 그에 동화되어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특히, 안나는 동성애자들이 팻말을 들고 열성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사실 여태껏 그들, 동성애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안나였다. 간혹 연예인이 돌연 커밍아웃을 하거나, 학교에서 누군가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들려올 때조차도 안나는 자신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딱히 그들을 혐오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나도... 저들과 같다. 안나는 잠시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앞으로의 자신의 행보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벨과 엘사의 비극을 떠올렸다. 앞으로 자신들에게도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나의 부모님도 자신처럼 동성애에 대해 딱히 편견은 없는 분들이었지만, 그게 자신의 딸의 이야기라면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미지수였다.



안나는 잠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복잡한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려는 듯 다시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한참을 현장을 담는 것에 집중하던 안나는 코트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안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가라가 보낸 메시지였다.



[엘사 왔다.]



*




안나는 막차가 끊기기 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메가라의 메시지를 받고 당장 엘사를 보러가고 싶었지만 시간도 늦은데다가, 너무 피곤했기에 엘사에게는 내일 연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칠 뻔한 안나는 허겁지겁 하차하고는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터벅터벅 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시원한 바깥 공기가 느껴졌다. 쌀쌀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에 안나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곧이어 지상으로 나오자, 안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을 자아냈다.



아직 이른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이미 눈이 내리기 시작한지 꽤 된 듯 거리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 쌓인 눈이 주변의 소음마저 흡수하는 듯 고요했다. 눈이 쌓인 거리와 고풍스러운 파리의 건물들은 주황색 조명을 받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야말로 겨울왕국 같았다. 안나는 그 아름다운 광경을 한참을 넋 놓고 감상하다가 홀린 듯 핸드폰을 꺼내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뚜-



긴 신호음 소리가 이어지고, 연결이 끊길 때 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언니! 지금 집이예요?”



“응, 안나. 오늘 저녁에 돌아왔어.”



“지금 밖에 눈 오는 거 알아요?”



“뭐? 정말?”



“네!! 그것도 엄청 많이!! 완전 예뻐요! 언니, 저랑 눈사람 만들래요? 나와요 지금 집 앞으로 갈게요.”



안나는 엘사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고는 눈이 와서 신난 강아지마냥 발발거리며 엘사의 집으로 향했다.



엘사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저 멀리 건물 대문 앞에서 엘사가 팔짱을 끼고 입김을 뿜어내며 안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리운 얼굴에 안나는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운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전속력으로 질주해 그대로 엘사의 품에 골인했다.



“언니! 보고 싶었어요!”



안나의 몸통박치기에 엘사가 잠시 휘청했지만 이내 곧 중심을 잡고 거의 제 쪽으로 몸을 기대고 쓰러지다시피 한 안나를 일으켜 세웠다.



“안나 위험하잖아. 조심해야지.”



“언니 밖에 완전 예쁘죠?! 파리도 언니가 돌아온 게 좋은가 봐요. 이렇게 환영을 해주네!”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는지. 엘사는 아무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려 혹시라도 안나가 저에게 실망했으면 어쩌나, 어색해지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함을 느꼈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순수하고 따뜻할 수 있지, 생각하는 엘사였다.



“그러게. 파리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건 나도 처음 봐. 원래 겨울에도 눈 한 번 올까말까 한데...”



“정말요? 나 완전 럭키걸이네! 이렇게 아름답고 유니크한 순간을 그것도 언니랑...”



안나는 신이 나서 주체 없이 떠들어대는 제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 그리고는 허허 어색하게 웃으며 제 발 밑에 있는 눈을 뭉쳐 눈뭉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선을 땅에 고정시킨 채 열심히 눈뭉치를 불려가던 안나의 눈앞으로 무언가 들이밀어 졌다.



“손 시리잖아. 장갑 끼고 만들자.”



안나는 엘사의 섬세함에 감탄하며 기쁘게 장갑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장갑이 한 쌍 뿐이었다. 안나는 장갑 한 짝을 엘사에게 건넸다.



“어떻게 저만 껴요, 우리 한 짝씩 나눠 껴요!”



그렇게 두 사람은 장갑을 한 짝씩 나눠 끼고는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었다. 만드는 동안, 그동안 묻고 싶은 질문들이 꽤 많았을 텐데도 안나는 엘사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듯 했다.



눈이 꽤 많이 쌓인 덕에 완성된 눈사람이 제법 컸다. 안나는 자신의 작품을 뿌듯하게 지켜보다 무언가 생각난 듯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가에 놓인 재활용 수거용 쓰레기통을 질질 끌고 오더니, 그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타이머를 맞췄다.



“안나 뭐해?”



“뭐하긴요, 사진 찍어야죠! 우리의 첫 합작품인데!”



남는건 사진밖에 없다구요, 안나가 말을 덧붙이며 셔터를 누르고는 엘사와 눈사람을 향해 뛰어갔다. 삐-삐-삐-삐-삐...찰칵. 묵직한 셔터소리와 함께 사진이 촬영되었고, 안나는 종종 걸음으로 도도도 걸어 카메라를 가져와 사진을 확인했다. 안나는 엘사에게도 사진을 보여주며 언니 표정이 이게 뭐예요~ 장난스럽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안나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언니, 저랑 오로라 보러 갈래요?”







-------


이번화에 딱 눈사람 만드는 장면을 쓰고 싶었는데 타이밍 좋게 눈이 왔네ㅋㅋㅋ


어느덧 벌써 20화라니! 함께해준 쥬미들 넘 고마워 완결까지 잘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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