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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1

엘산나비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8 17:11:57
조회 710 추천 47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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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한 일요일 오후, 7평 남짓의 조그마한 방 안 책상 앞에 앉은 안나는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제 촬영한 사진들을 열심히 보정한 뒤 시위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장문의 글과 함께 SNS에 업로드 한 안나는 게시글에 달린 댓글들을 찬찬히 정독 중이었다.



[안나, 프랑스 가더니 기자로 전직이라도 한 거야?]



[이런 거 말고 거기서 패션 사진 작업이나 해서 올려봐라]



[우리 안나 진지충 다 됐네ㅋㅋ]



[프로즌 타임즈 사회부 편집장입니다. 게시하신 글 잘 봤습니다. 얘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관심 있으시면 frozentimes@ny.us 로 메일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안나는 친구들의 조롱 댓글을 읽으며 씩씩거리다 마지막 댓글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프로즌 타임즈? 거기서 내 사진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고? 그리고 연락 좀 달라니? 안나는 사실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댓글을 단 아이디를 클릭해봤지만 프로필 사진도 없고, 타임라인에는 아무 게시물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친구 중 누군가 장난 쳤다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댓글 정독을 완료한 안나는 다른 창을 켜 다시 열심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큰 투어... 인당 560유로에 숙식 제공... 픽업에 운전 가이드까지? 이게 말이 돼?”



안나는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에 이거 사기 아닌가, 싶었지만 그나마 몇 없는 후기들이 호평을 하고 있었기에 별 다른 의심 없이 재빨리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책상 위 놓인 달력에 빨간 색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별안간 오로라를 보러가자는 안나의 제안에 엘사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졸업도 했겠다, 어차피 당분간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까. 엘사가 생각보다 쉽게 ok해서 안나는 어..진짜요? 오로라 보러 갈 거예요? 노르웨이 갈 건데? 라며 재차 물었지만, 엘사는 그런 안나를 보며 푸스스 웃으며 그래, 어디든 좋아. 라고 대답했다. 무턱대고 눈사람 만들자고 나오라 했더니 군말 없이 나와 준 것도 그렇고, 밑도 끝도 없이 오로라를 보러가자는 제안에도 좋다고 하고... 갑자기 예스걸이 되어버린 엘사가 조금 낯설었지만 안나는 언니가 혼자 생각 정리하고 오더니 심적으로 많이 나아졌나 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




“으아아 춥다...”



엘사와 안나는 오슬로 공항에 도착해 픽업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오후 4시밖에 안되었는데도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언니는 목 안 아파요? 잘못 잤는지 목이 엄청 아프네...”



초저가 항공 비행기를 타고 온 탓인지 앞뒤 좌석과의 간격이 너무 좁아 비행 내내 의자를 거의 90도로 고정한 채 온 탓에 안나는 온 몸이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뭐 그렇다 해도 오는 내내 입까지 벌려가면서 푹- 자버렸지만. 비행기만 타면 잠이 쏟아지는 안나였다. 이씨, 비행기 안에서 엘사랑 영화도 같이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려고 했는데. 첫 스타트부터 이게 뭐람!



“난 괜찮아. 그보다, 안 무거워? 차 올 때 까지 그냥 좀 내려놓지.”



오로라 한 번 제대로 찍어보겠다며 삼각대까지 대동해 온 안나였다. 소매치기 당하면 어떡해요! 메가라 언니가 조심하라 그랬단 말이예요. 안나가 식겁을 하자 엘사는 남유럽도 아니고 북유럽은 치안 꽤 괜찮은 걸로 아는데.. 그리고 그 무거운 걸 누가 어떻게 소매치기를 해.. 하고 안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낡은 카니발 한 대가 두 사람 앞으로 탈탈탈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이내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는, 꽤 큰 차임에도 몸을 구겨 넣은 듯 불편해 보이는 사내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파리에서 오신 안나씨, 엘싸씨 맞죠? 야?”



센 발음으로 사투리를 쓰며 말을 걸어온 사내는 힘겹게 운전석에서 내린 뒤 짐을 실어주겠다며 두 사람의 짐을 번쩍 들고는 트렁크에 실었다. 엘사와 안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추우니 얼른 차에 타라는 오큰의 말에 홀린 듯 뒷자석에 몸을 실었다. 숙소로 가는 동안 붙임성 좋은 오큰이 이런 저런 말을 건네 오자 어색했던 분위기가 금방 풀렸다.



“저.. 그런데 이번 투어에 동행하는 다른 사람들은 없나요? 저희뿐인가요?”



엘사가 약간 불안해하며 물었다.



“야, 두 분 아주 운이 좋으신 거죠! 오붓하게 단 둘이서 조용히 오로라도 보고,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으시겠어요!”



“하하, 그렇구나. 그런데 숙소가 꽤 머네요? 생각보다 한참 가는 것 같은데...”



“그렇죠? 아무래도 오슬로랑 아렌달이랑 거리가 좀 있으니까요.”



아렌달? 엘사가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려 안나를 쳐다봤다. 안나도 자기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표정으로 엘사를 쳐다봤다.



“아렌달...이요? 저희 오슬로에서 묵는 것 아니었나요?”



“야? 아니요! 픽업 장소는 오슬로이고 숙소는 아렌달이라고 안내문에도 나와 있는 걸요! 오슬로같은 도시에서는 오로라도 잘 못 봐요 어차피! 아렌달이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힐링하기 딱이죠!”



아뿔싸. 내가 또 사고를 쳤구나! 안나는 자신의 준비성 없음과 덜렁대는 버릇에 치가 떨렸다. 나만 믿으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엘사에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저렴한 가격에 눈이 멀어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안나는 자신을 어이없게 쳐다보는 엘사에게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안나는 빨리 이 상황을 수습하려 아무 말이나 막 내뱉기 시작했다.



“하하...! 아렌달? 이름도 예쁘네요! 언니 이름도 아렌델인데! 혹시 언니 조상님들 중에 노르웨이 사람이 있는 거 아닐까요?”



친절한 오큰만이 안나의 아무 말에 그래요? 신기하네요! 하며 맞장구를 쳐 줄 뿐이었다. 안나는 엘사의 눈치를 보며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두 사람은 아렌달에 도착했다. 아렌달은 작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건물들을 보며 안나는 우와 우와 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차는 이내 어떤 레스토랑 앞에 멈춰섰다.



“시간도 시간이니 먼저 저녁 식사부터 해야겠죠? 야?”



꽤 허기졌던 두 사람은 흔쾌히 레스토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뭐가 제일 유명하고 맛있어요? 묻는 안나에게 오큰은 당연히 루테피스크죠! 하며 망설임 없이 말했고, 두 사람은 가이드가 추천하는 음식이니 믿고 먹을 수 있겠지, 하며 루테피스크를 주문했다.



곧 세 사람 앞에 음식이 서빙 되었고, 코를 찌르는 루테피스크 향에 안나는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자연스레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추천해 준 음식인데 먹어는 봐야겠지. 안나는 두 눈을 딱 감고 작게 한 조각을 잘라내 입 안에 가져다 넣었다. 윽, 역시. 내 입맛에는 안 맞아. 안나는 재빨리 입을 물로 헹구고는 엘사를 쳐다봤다. 엘사는 괜찮나? 그런데 웬걸, 엘사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루테피스크를 해치워내고 있었다.



“왜? 안나, 입에 안 맞아? 난 괜찮은데?”



엘사는 생각보다 비위가 좋구나. 그래, 엘사가 좋으면 됐지. 안나는 허허 어색하게 웃고는 많이 먹으라며 제 접시에 있는 루테피스크를 엘사의 접시에 덜어줬다.




*




충격과 공포의 저녁 식사를 끝내고, 두 사람은 드디어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차가 점점 산 속으로 향했다. 마을 호텔이나 하다못해 민박에서 묵는 거 아닌가? 뭐 어디 별장 같은 데라도 가는 건가? 안나는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 왔지만 차마 묻지는 못하고 점점 불빛이 사라져 가는 창밖만 바라 볼 뿐이었다.



드디어 차가 어느 지점에 멈춰 섰다. 엘사와 안나는 ? 표정을 지으며 앞좌석 오큰을 쳐다봤다. 오큰은 아무 말 없이 자신만 빤히 쳐다보는 두 사람에게 숙소 도착했다고, 안 내리고 뭐하냐며 재촉했다. 안나는 이게 말로만 듣던 인신매매구나. 내리자마자 삼각대로 오큰의 대가리를 쳐버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오큰이 뒷자석 문을 열자 안나는 와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오큰에게 달려들었다. 덩치에 비해 재빠른 오큰이 우어억 소리를 내며 피하고는 지금 뭐하는 거냐고 성을 냈다. 안나가 으허헝 제발 우리 팔아넘기지 마세요. 하고 울부짖자 오큰은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듯 폭소했다.



“안나씨, 무슨 소리예요? 진짜 안내문 제대로 안 읽으셨구나, 야?”



네..? 안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두 눈을 꿈뻑거리고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멀지 않은 곳에 안락해 보이는 텐트가 있었다.



“아... 여기가 숙소...? 예요?”



오큰이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고는 짐을 내리기 위해 트렁크 쪽으로 갔다. 엘사는 뒤에서 이 모든 과정을 어이 털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엘사와 눈이 마주친 안나는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렇게 덜렁대고 대책 없는 자신이 창피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미안함이 컸다. 오큰이 텐트로 짐을 옮겨주고, 텐트 앞에 있는 아담한 모닥불에 불을 피워주고는 자신은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본인 텐트가 있다며, 두 분이서 프라이빗한 시간 보내길 바란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윽고 두 사람만 남자,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저... 언니... 미안해요...”



안나가 거의 울먹이며 말하자, 엘사는 이제는 해탈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나 이런 거 좋아해. 나름 운치 있고 좋은걸. 근데 안나 혼나긴 혼나야겠다. 그렇게 조심성 없어서 진짜 나중에 큰일 나겠어. 전적도 있고 말이야.”



히잉... 그래도 엘사가 괜찮다고 해줘서 안심하는 안나였다. 두 사람은 모닥불이 꺼질 때 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점점 깊어가고, 오랜 이동시간 덕분에 피곤했던 둘은 그만 잠자리에 들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순간 하늘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에 두 사람은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와아...”



오로라가 두 사람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저 아름답다는 말로밖에는 형용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이내 나란히 다시 캠핑용 의자에 앉아 말없이 오로라를 감상했다.



“그런데 안나, 사진 안 찍어?”



한참을 넋 놓고 오로라를 감상하던 엘사가 물었다.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죠.”



안나는 엘사를 보고 씨익 웃으며 허세 부리듯 말했다. 엘사가 하하, 뭐야 그게... 근데 좀 멋있네. 라고 말하자 안나는 사실 이거 영화 대사예요. 하며 개구지게 웃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눈 앞에서 춤추는 오로라가 사라질 때 까지 지켜봤다. 분위기에 취한 안나가 엘사의 어깨에 기대왔고, 엘사는 갑작스러운 안나의 스킨십에 살짝 놀랐지만 티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물론 안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엘사의 몸 덕분에 엘사가 당황했다는 걸 눈치 챘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텐트로 들어온 두 사람은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안나는 거의 눕자마자 곯아떨어져버렸다. 엘사는 그런 안나를 보며 살풋이 미소 지었다. 본인 계획대로는 안된 듯 하지만, 그래도 이 오로라 투어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 엘사 본인을 위해 계획된 것임을 알기에, 조금 서툴더라도 자신을 위해주는 안나가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텐트가 생각보다 따뜻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운지 안나는 자면서 끙끙 소리를 내며 앓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꾸물대며 웅크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사는 안나에게 가까이 다가가 몸을 끌어안았다. 안나의 어깨에 얼굴을 붙이고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듣자니 자신도 바로 잠에 빠질 것만 같았다.



“잘자 안나. 그리고 고마워...”



엘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는 이내 곧 자신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



찌통발암진지한 장면만 쓰다 보니 달달한거 어케 쓰는지 까먹음;; 후...


안나가 인용한 영화 대사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에 나오는 명대사 중 하나!


무튼 오늘도 읽어줘서 고맙따 쥬미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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