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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8-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1 17:39:12
조회 257 추천 1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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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잤냐?”
“어제 뜨거운밤을 보내느라..훗”


“..개소리야 남자도 없는년이”



씨익 웃으며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짓는 라푼젤을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엘사였다.


“장난도 못치냐, 어제 집에서 게임하느라. 밤 샜어”
“허어?, 니가 게임도 다하냐?”
“그란투리스모 신작!”



손가락을 들어 살짝 브이를 만들어 보이고는 익살스럽게 운전대를 잡는 듯한 시늉으로 이리저리 팔을 휘적거리는 라푼젤을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씁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어떠냐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고 입꼬리를 살짝 올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던 라푼젤은 뚜벅뚜벅 자신의 공장앞으로 걸어가서는 큼직한 화물용 차단막이 아닌 왼쪽의 작은 쪽문의 도어락을 해제하고는 문을 열어 걸어두었다.



“차 끌고 들어와. 1번 리프트로!”
“오야”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곤 자신의 애마로 돌아갔다. 포르쉐 930. 89년식 늙은이지만, 그 기술력과 관록을 입증하는 듯. 아직까지 건재함을 과시했다. 밟는대로 쭉 뻗어올라가주는 3.3리터 5기통 복서엔진, 트러블없이 깔끔한 변속 직결감을 선사하는 5단 수동변속기. 제로백 5초대의 괴물같은 힘을 가진, 깨끗한 흰색의 바디. 그리고 범퍼와 휠을 가로지르는 깊은 상처. 안그래도 외국의 유명 자동차 튜너인 나카이 아키라 씨의 드레스업 범퍼를 장착한지 세달도 체 되지 않았었건만, 벌써 벗겨진 도장과 휠의 스크레치를 보니 저절도 담배생각이 났다.



그래도 친한 친구인 라푼젤이 정비공장을 해서 다행이지, 라고 위안삼았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는, 정비공장 쪽문으로 들어가며 갈색과 금발의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거리는 라푼젤을 보며, 미안함과 동시에 든든한 친구를 두었다는 우정이 마음속에서 샘솟았다. 선수 시절에서부터 자신을 많이 케어해주고, 테스트 드라이빙을 나갔다가 사고라도 내서 오면 깊은 한숨을 쉬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머신을 고쳐주었다. 어느 날, 3일뒤 경기를 출전하기로 예정되어있었던 차가 심하게 파손되어 이틀 밤 내내 엘사와 그녀가 머리를 맞대어 수리할때도 있었다. 경기전날까지 이어진 수리에 자신이 마무리를 지을테니 선수는 가서 쉬라는둥, 컨디션 조절을 위한 배려까지 하는. 나름 괴짜이긴 했지만 정말 착한 친구였다. 같이 있으면서 먹고, 자며 죽을 고비도 많았다, 그렇기에 둘도없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던 거지만.



’덜컹!..우웅..‘


정비공장 가장 큰 차단막이 흔들리더니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금속이 부딪히는 자잘한 소음이 들리며 조금씩 접히자 공장안으로 이른 아침의 햇볕이 비집고 들어가 조금씩 건물을 밝혔다. 문이 충분히 올라간 것을 보고는 기어를 넣어 공장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언뜻 보아도 꽤나 심각하게 파손된 차량부터 완전 분해된 차량, 고급 스포츠카. 그리고 파란색으로 화려하게 랩핑된 레이싱 머신이 눈에 띄었다.



전방의 1번 리프트라고 써진 안내판이 달려있는 리프트 위로 능숙하게 차를 움직였다. 기분좋은 꿀렁거림을 느끼며 차를 안착시킨뒤, 시동을 끄고는 운전석에서 내렸다. 끙차, 하며 바닥보다 살짝 높은 리프트위에서 내려온 그녀는 잠시 공장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기초점검, 도장부, 판금부, 전자제어, 다이나모까지. 언제봐도 꽤나 큰 공장이다. 자동차를 수리하고 튜닝하는것까지 무리없이 이곳에서 모두 해결할수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것들이 갖추어져 있거나 이 지역에선 볼수 없을 최신형의 정밀기계들이 즐비해있었다.



이런 비싼 기계들을 구비해놓고 손님도 잘 받지않으면서도 망하지도 않는 공장이 신기할 따름이다.


‘확실히 집안에 돈이 많은 사람은 달라도 다르구나’


어디선가 스멀스멀 코를 자극하는 오일냄새를 따라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PDK 8단 변속기가 자신의 몸체를 벗어던지고 앙상하게 테이블위에 분해되어있다. 톱니바퀴와 클러치부품이 따로 모아져 촉촉하게 오일이 묻어있있다. 눈을 반짝이며 그것들을 자세하게 훑어보고는 고개를 돌려 바로 옆 테이블위에 놓인 엔진을 보았다. 혼다모터스의 V-TEC엔진. 피스톤까지 완전히 분해되어 가지런히 모여있는 각각의 작거나 큰 부품들을 보여 입맛을 다셨다. 따로 리빌딩 작업중인 듯 한쪽에는 신품처럼보이는 베어링과 풀리, 실린더가 포장이 뜯어지지않은 채로 박스안에 모여있었다.



“야! 그거 만지면 안돼!”
“알았어, 안만지니까 걱정마. 놀래라..”



어느샌가 빨간색과 하얀색이 조합된 정비용 스즈키복으로 갈아입은 라푼젤은 2층 사무실과 1층을 오가는 철제계단의 난간에 기대어 턱을괴고 엘사를 바라보고있었다.



“그거 먼지들어가면 니가 물어내라”
“어차피 방수포도 안씌워 놨으면서 무슨, 나 마실거나 줘”



질린다는 눈빛으로 엔진과 변속기들을 저만치에서 바라보던 라푼젤은 올라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여기가 다방인줄 아나본데..따듯한거?”
“아이스커피로 한잔”
“올라와, 이야기나 하자”



엘사는 뒤돌아 자신의 애마를 바라보고는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공장을 메아리치는 자신의 발걸음을 들으며. 라푼젤이 사무실의 문을 열자 그녀의 등뒤로 따라 들어갔다. 내부는 언제 보아도 단조로웠다. 서류함, 접객용 소파와 회의에 쓸것만같은 사무용 책상과 의자들, 그래프 데이터가 인쇄된 종이들이 널부러져 있다. 작은 정수기 하나, 사무실의 한 면을 꽉 채우고도 공간이 비좁았는지 여기저기 쌓아두거나 쑤셔둔 정비지침서와 공학서적들. 오랜시간이 지났는지 빛바래 누렇게 변질된 서적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라푼젤의 자리는 가장 구석진 창가옆이였다. 빛이 들어와 라푼젤의 자리를 가득매우고 창틀의 난간에는 자그마한 관상용 난 한송이가 회분에 담겨있었다. 사무실을 두리번거리는 엘사에게 라푼젤은 소파를 권했다.



고개를 끄덕거리곤 소파에 앉자, 라푼젤은 능숙하게 커피머신을 준비했다.


“사장 아니야?, 명찰에는 기술선임이라고 붙어있던데, 특이하네”

“사장은 맞긴한데, 경영은 내가 안해. 난 현장이 더좋아, 언제 책상에 오래붙어있는거 봤냐? 대충만들어서 달고있는거지 ‘기술선임’, 우리 어릴 때 느낌 나잖아. 안 그래?”


라푼젤이 자신의 자리를 가리키더니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네.”

라푼젤이 고개를 돌렸다. 엘사와 눈이 마주치자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엘사도 라푼젤을 따라 피식, 웃어보였다. 그녀가 건네준 커피 잔을 받아들고. 손끝에서부터 차가운 한기가 느껴지는 것을 매만지다 그것을 한모금 홀짝였다.


‘어릴때라.’


엘사에게 커피를 건네준 라푼젤은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컵에 따른 뒤, 그것을 들고 엘사의 앞 회의용 테이블에 올려둔뒤 의자를 하나 빼 등받이가 앞에 가도록 한 뒤 턱을 괴고 앉았다. 지그시 엘사를 바라보던 라푼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뭔 고민있냐?”
“..어??”


고개를 살짝 돌려 왼쪽 대각선 아래 그 언저리를 멍하니 처다보던 엘사를 빤히 바라보던 라푼젤은 자신의 말에 살짝 놀라며 토끼눈이 되어 바라보는 것이 웃겼던 것인지 살짝 실소를 내었다.


“어떻게 알았어?”
“너를 하루이틀보냐...어휴 무슨 고민인데? 한번 이야기해봐 이 해결사님이 들어는 주마.”


두눈을 끔뻑거리던 엘사는 커피를 한잔 홀짝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됐어, 별로 안중요한거야”
“지랄..얼굴에 존.나.심.각.함 이라고 써있는데 무슨...”


흐음, 고개를 갸웃거리던 라푼젤은 말없이 엘사의 하얀 머릿결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나서 어떻게 살았는지 들어보려했건만 별 말도 없이 멍하니 있는 엘사를 보니 예전이랑 다를 것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너 애인생겼냐?”
“..푸훕!!”
“야이! 이게 미쳤나! 어제 빤 옷인데 에이 진짜 커피 다 묻었네 진짜!!”



라푼젤의 한마디에 눈동자를 크게 뜨고는 마시던 커피를 뿜어버린 엘사 덕분에, 라푼젤은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옷 여기저기에 아메리카노가 튀자 황급히 테이블의 티슈를 가져와 엘사에게 몇장 던저주고는 자신도 슥슥 닦아내었다.


“콜록!,콜록!..아 미안하다 야”
“아니 미친 있으면 있다고 하면되는거지 커피를 왜 뿜어 미친년아!”
“아니! 갑자기 그렇게 훅 들어올줄 알았겠냐”
“내가 언제 깜빡이 키는거봤어? 운전할때도 깜박이 안키는데?”



커피 잔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는 청자켓 이곳저곳을 닦아내는 엘사를 어처구니 없다는 듯 바라보던 라푼젤은 의자에 혹시 커피가 묻지 않았을까 슬쩍 바라보더니 주춤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랑이다..아우 어쩌냐 바닥에 커피 다 쏟았네..”
“냅둬, 알아서 치울테니까. 그래서, 있다고?”


“..그게말이지..쓰읍..”


엘사는 라푼젤의 마지막 말에, 커피 잔을 들던 그 자세로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나 요새 운전교습 강사일하고있어.”
“뭐? 운전교육?”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마라, 그냥 잠깐 하는거야. 돈도 없고 그래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하는거지.”
“굳이?, 너 예전에 일했던 그 일 다시하면 되는거아냐? 바텐더 하지않았었어?”
“그 이모는 상대하기 귀찮아서 싫어.”



라푼젤은 연신 콜라를 마시며 입을 축였다. 지금까지 엘사의 말만 들어보자면 꽤 이 바닥에선 이슈가 될 만한 이야기였다. 몇 년 전 은퇴하고 운전석에도 못 앉겠다던 사람이. 어느새 운전교습 강사가 되어있을 줄이야. 아마 지금 연락이 가는 동료들에게 말해주면 금방 소문이 퍼질 가십거리였다.


엘사는 라푼젤의 복잡미묘한 표정과 살짝 식 올라가는 입꼬리에 불안함을 떨칠수가 없었다.


‘괜히 이야기 했나..’


호록, 또다시 차가운 커피가 몸을 타고 들어갔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겠고, 부담스러운 그녀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그저 창밖만 바라보고있었다.


“야 근데. 그럼 무슨말이야. 애인생겼다는 건 뭐야?”
“어? 아니 별거아니긴한데..”


거짓말 하지 말라는 듯, 라푼젤은 가늘게 뜬 눈으로 엘사의 떨리는 두 눈을 맞췄다. 껄끄럽다는 듯 침을 삼키며 눈을 피하는 엘사의 모습에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라푼젤은 조용히 헛기침을 했다.


“너 누구 교육해주는 거야?”
“..있어 그런게”


“핸드폰 내놔 봐”


척, 하며 손을 내미는 그녀를 엘사는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빨리 줘봐 딱 봐도 이미 각이 보이는구만 뭘 숨기고 있어”
“아니라니까, 너가 생각하는거 아니야”


“그건 보면 알겠지..이익!”
“야야야! 아얏! 아파 이년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뒤, 왁 하고 엘사에게 달려든 라푼젤은 어깨를 턱, 집고는 한손으로 청 자켓의 주머니를 뒤졌다. 몸을 버둥거리며 배배꼬던 엘사지만 힘에서는 부족한 듯 우악스러운 손으로 더듬어대는 그 손길을 피할수 없었다. 곧, 상의 주머니에 곤히 넣어주었던 핸드폰을 빼앗긴 엘사는 살짝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라푼젤을 바라봤다. 개의치 않는다는 듯 홍홍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엘사의 핸드폰을 이리저리 훝어보던 라푼젤은 잠금버튼을 눌러 화면을 보았다.


“야 이거 풀어봐”
“내가 풀꺼 같냐?”


“참 까탈스럽기는...팔,오,이,영. 됐다!”
“..!!”


까르륵 웃으며 핸드폰을 흔들어대는 라푼젤을 경악스럽다는 눈으로 보던 엘사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실까아~”


반달같은 눈이 되어 히히덕거리는 그녀를 보며 마음 한구석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불안함?, 기쁨?, 오랜만에 느끼는 설명할수 없을 원초적인 감정에 침을 꿀꺽 삼켰다.

“별거 아니라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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