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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외전1)

엘산나비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17 17:53:05
조회 842 추천 51 댓글 13
														

본편링크모음 https://sulgal.tistory.com/2323?category=839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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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들어갈까?”




푸른 어둠이 짙게 내려온 파리의 골목을 배회하던 엘사와 안나는 적당히 사람이 북적거리는 카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웨이터에게 안내를 받으며 자리에 착석함과 동시에 메뉴판을 건네받았다. 메뉴판을 집어든 안나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엘사의 것과 제 것을 번갈아 보다가 실소를 흘렸다. 엘사는 그런 안나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





“아, 내꺼는 영어 메뉴판이고 엘사꺼는 프랑스어 메뉴판이길래 그냥...”




이제 나는 누가 봐도 파리지앵처럼은 안 보이나보다 해서요, 안나는 장난기 어린 말투로 툴툴거렸다.




“하긴, 프랑스어도 거의 다 까먹긴 했으니까 할 말은 없네요.”




안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삐쭉 내밀자 엘사는 흐음, 하고 작게 웃더니 메뉴판을 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래도 주문 정도는 할 수 있지?”




엘사가 살짝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르자 카운터에 기대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웨이터가 빌지를 챙겨 빠른 걸음으로 두 사람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Oui, mesdames. Vous avez choisir?” (숙녀분들, 메뉴는 정하셨나요?)




물론 간단한 생활 프랑스어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괜히 엘사 앞에서 녹슨 프랑스어 실력을 뽐내자니 부끄러워진 안나는 답지 않게 괜히 우물쭈물했다. 후... 안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발음하려 애쓰며 주문을 마쳤다. 엘사는 그런 안나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잘하는데?”




“놀리지마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커피가 두 사람 앞에 내려졌고, 엘사의 안나 놀리기는 계속되었다.




“Combien de temps restes-tu à Paris?” (파리에는 얼마나 머물러?)




“아 진짜. 계속 프랑스어로 얘기할 거예요? 한 일주일 더 있을 거예요.”




“Tu comprends bien le français!” (잘 알아듣네!)




“그거야 간단한 것들은... 근데 진짜 그만하면 안돼요?”




“J'arrêterai si tu réponds en français.” (프랑스어로 대답해주면 그만할게.)




엘사가 매력적인 허스키한 목소리로 프랑스어를 하는 모습을 보자니 안나는 예전의 감정이 다시금 들끓어 오를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제가 알던 엘사와는 달리, 능글맞게 자신을 놀리는 엘사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싫지만은 않았다. 몇 년 만에 만난 엘사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예전보다 밝아 보이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괜히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복잡한 심정에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진 안나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엘사에게 이미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대놓고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고 말하기는 꺼려졌다.




“Tu fumes depuis quand?” (담배는 언제부터 피운거야?)




안나가 자리로 돌아와 앉으려 하자마자 엘사가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안나는 움찔하며 앉으려던 몸동작을 잠시 멈췄다가 엘사의 눈을 피하며 마저 앉고는 엘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3년 전부터요.”




3년. 그렇다면 아마 엘사가 떠난 시점부터일 것이다. 원래 피우지도 않던,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는 왜 피우냐며 잔소리를 하려던 엘사는 안나가 담배를 피우게 된 이유가 짐작이 가자 마음 한켠이 쿡 찔려오는 것을 느꼈다.




“C'était dur?” (그동안 많이 힘들었어?)




“힘들었죠. 근데 지금은 괜찮아요. 이젠 그냥 습관적으로 피우는거죠 뭐.”




자신이 떠나서 힘들었냐는 의미와 일이 많이 힘드냐는 의미,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물론 엘사의 질문은 전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둘 중 어느 쪽이든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안나는 엘사의 의도를 모른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답했다. 약간의 거짓말도 섞어서. 하지만 엘사가 이를 못 알아챌 리 없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보고싶었다 고백한 주제에 인터뷰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지금도 자신을 대하는 안나의 태도가 묘하게 쌀쌀맞다는 것을. 안나의 낯선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엘사는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 나간 말을 막지 못했다.




“Tu ne m'aimes plus?”




“...J’ai pas compris.” (못 알아듣겠어요.)




자, 프랑스어로 대답했으니까 됐죠? 이제 그만해요 이거.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안나가 주변을 지나가던 웨이터를 불러세웠다.




“술 시켜도 되죠?”




안나는 엘사에게 예의상 묻고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웨이터에게 여기서 파는 술 중에 제일 도수가 높은 것으로 달라 주문했다.




“Et vous?” (당신은요?)




안나가 엘사도 추가 주문할 것인지 물으려 엘사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웨이터를 대신해 물었다.




“난 됐어.”




여전히 술은 잘 안하는구나, 안나는 웨이터에게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웨이터는 오케이 싸인과 함께 빠른 속도로 술을 내어왔고 안나는 안주도 없이 술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단단히 심기가 상했는지 이제 아예 엘사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애꿎은 창밖만 바라보는 안나였다. 처음 보는 안나의 무례하다면 무례한 행동에 엘사는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한테 많이 화났어..?”




“아뇨. 화 안났어요.”




“근데 왜 나한테 ‘Vous’라고 해?”




엥? 안나는 뜬금없는 엘사의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것뿐이었는데. 고작 *vouvoyer/tutoyer로 틱틱대는 엘사가 어이없었지만 귀엽게 느껴졌다. 엘사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그 뒤로 몇 번이나 술을 추가 주문한 안나는 이제 거의 테이블에 눕다시피 몸을 기대고는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에엘싸. 엘싸한테 화났냐고오? 그래, 나 화났어!”




혀까지 꼬여서는 테이블을 쾅쾅 치며 안나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모이자 엘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나를 진정시켰다.




“아,안나 이제 그만 마시고 가자.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응?”




“미안하다면 다야? 다냐고오!”




안나가 마지막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으려 하자 엘사는 황급히 잔을 뺏어 들어 술을 제 입에 털어 넣었다. 윽, 엄청 세네 이거. 내일 쟤 죽겠다, 고작 한 모금만으로도 정신이 몽롱해진 엘사는 테이블 위에 돈을 올려두고는 안나를 부축해 카페에서 빠져나왔다. 다행히 안나가 어디에 묵는지 미리 물어본 덕분에 엘사는 안나가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







엘사는 술에 취해 제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 안나를 질질 끌고 호텔방으로 들어와서는 안나와 함께 거의 다이빙하다시피 침대에 몸을 던졌다.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숨을 고르던 엘사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안나가 잠들었나 싶어 고개를 돌려 안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조용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안나와 눈이 마주쳐 깜짝 놀라 입에서 헉, 하는 소리가 났다.




“엘싸... 행복해?”




호텔로 오는 내내 자신을 향한 비난과 원망을 쏟아내던 안나가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자, 엘사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예전의 따스한 안나의 모습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렇게 가버리구 지금은 행복하냐구우...”




여전히 자신을 또렷이 응시하며 말해오는 안나를 보며 엘사는 대답을 망설였다. 애초에 행복의 정의가 뭘까.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안정감을 행복이라 말해도 되는 것일까.




“나느은 진짜 힘들엇써... 그동안 어디가 고장난 사람처럼 살앗서... 그러다 이제야 좀 괜찮아졌는데... 이렇게 다시 엘사를 보니까 좋기도 한데... 여기가 아파.”




안나가 손을 자신의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엘사는 죄책감에 쌓인 눈빛으로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응, 나는 그동안 그렇게 살았어... 엘사는? 엘사는 시원하게 다 훌훌 털어버리고 잘 지냈어?”




발음을 뭉개며 말하던 안나가 이번에는 정확한 발음으로 말해왔다. 그제야 엘사는 입을 열었다.




“안나. 네가 내 생일 선물로 줬던 책 기억나?”




FROZEN. 당연히 기억하지.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 읽으면서 우리 생각이 많이 났어.”




안나는 여전히 엘사와 눈을 맞춘 채 조용히 엘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기 나오는 주인공 중에 언니 있잖아. 13년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동생을 밀어내다가 결국 떠나버리는.”




누구누구랑 똑같네. 안나가 작게 읊조리자 엘사는 푸스스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그런데 동생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언니를 향한 사랑을 표현한 덕분에 결국 언니도 과거의 상처를 딛고... 두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같이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잖아?”




엘사는 잠시 말을 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자신이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해줄 동생을 몰라보고 밀어내는 멍청한 언니가 마치 내 모습 같았어.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내는 언니에게 햇살같이 따뜻한 사랑을 변함없이 주는 동생을 보면서...안나, 네가 생각났어.”




‘안나’라는 이름을 입에 담자 엘사의 목이 메여 왔다. 오랫동안 불러보고 싶었던 그 이름을 부른다는 감격 때문일지, 그저 그동안 억누르며 살아왔던 감정들이 갑자기 터져 나온 탓인지, 엘사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런 엘사를 보며 안나 역시 그간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감정들이 댐을 부수듯 넘쳐흘러 자신을 뒤덮는 것을 느꼈다.




“...후회했어?”




“...떠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나는 엘사의 위로 올라타 자신의 입술로 엘사의 입을 막았다. 갑작스럽게 덮쳐진 탓에 안나를 밀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엘사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술에 취해 급하고 서툴기만 한 안나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손을 그녀의 머리로 가져가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한참을 거친 키스를 퍼부어대던 안나가 숨이 달리자 줄곧 하나였던 입을 떼어내고 밭은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밑에 깔려 얼굴을 붉히고 있는 엘사는 아름답다는 말로 형용하기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안나는 손을 뻗어 엘사의 뺨을 쓰다듬었다. 술기운 탓일까, 아니면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자신의 대범한 행동에 안나 스스로도 놀라던 와중, 안나의 손목이 엘사의 손에 잡혔다. 그리고는 갑자기 안나의 시야가 반전되더니 이제는 안나가 엘사의 밑에 깔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순식간에 포지션을 빼앗겨버린 안나가 토끼눈을 뜨고는 자신의 위에 올라타고 있는 엘사를 쳐다보았다.




“손목도 안좋으면서...”




엘사가 안나의 손목에 채워진 손목 아대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기자이기에 항상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안나에게는 한 몸과도 같은 것이었다. 분명 긴 옷을 입어서 잘 안보였을 텐데 이런 건 또 언제 봤대... 안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엘사의 손에서 벗어나려 팔에 힘을 주었지만 찌릿한 통증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손목에 느껴지는 통증에 안나가 살짝 인상을 쓰자 엘사는 안나의 미간에 키스를 뿌리며 안나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무리하지 말고, 긴장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




이 말을 끝으로 정신없이 쏟아지는 키스와 자신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안나는 거의 혼절해버릴 뻔했다. 곧이어 엘사의 손이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터치하자 안나의 입에서는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많이 힘들어? 술 마셔서 내일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야?”




엘사가 약간은 조롱하듯 도발하자 안나는 손을 뻗어 엘사의 양 볼에 갖다 대고는 얼굴을 끌어당겨 서로 이마를 맞대게 했다.




“전부 다 기억해. 엘사랑 함께한 모든 것, 엘사와 관련된 모든 것들, 전부. 전부 다 기억할 거야.”




안나의 말에 엘사는 이제껏 안나에게 지어 보였던 미소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안나를 품에 안고는 목에 얼굴을 묻은 채 키스했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호텔 창밖으로는 에펠탑이 반짝이며 그녀들을 비추고 있었다.







*vouvoyer/tutoyer 는 쉽게 말하면 서로 존댓말하는 사이/반말하는 사이 라고 볼 수 있는데, 프랑스어에도 존댓말/반말이 있거든. 보통 친한 사이에서는 영어에서 남녀노소 you를 사용하는 것 처럼 프랑스어로는 tu를 사용하는데, 반대로 격식을 차려야 하거나 처음 보는 사람, 아직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vous를 사용해. 그래서 엘사가 안나한테 삐진거지.





--------------



안뇽 쥬미들 가따블 기억하니...?



외전 쓴다고 했었는데 소비러 생활이 넘모 달콤하고 재밌어서 게으름 피우다 이렇게 늦어버렸네ㅠㅠ



그래도 기다려줘서 고맙고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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