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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외전4)

엘산나비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3 21: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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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읽던 책을 덮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엘사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나는 책을 조심스럽게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던 외투를 챙겨입었다. 문밖을 나서려다 멈칫하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카메라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카메라를 챙겨 호텔 방을 나섰다.




안나는 엘사의 회사로 향했다. 어차피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엘사가 퇴근하자마자 만나서 같이 이동하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좋겠지. 엘사도 더 빨리 볼 수 있고. 카메라 때문에 어깨는 무겁지만 엘사에게 향하는 안나의 발걸음이 가볍다.





*





전날, 엘사가 안나를 데리고 향한 곳은 예술 서적이 가득한 책방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 서적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사진집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안나는 이곳이 마치 보물창고처럼 느껴졌다. 안나는 감탄을 자아내며 책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책들을 뒤적거리다 곧 마음에 드는 사진집 하나를 집어 들고 이내 집중해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책방을 둘러보던 엘사는 안나의 집중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슬쩍 안나 옆으로 가 말을 걸었다.




“이 작가 사진이 마음에 들어?”




“어, 네... 사진이 되게 좋네요.”




“어떤 점이 좋은데?”




“음...”




안나는 시선을 위로 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엘사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냥, 느낌이 좋아요. 사진은 해석하는게 아니라 감정으로 느끼는 거니까.”




사진뿐만이 아니라 영화든 음악이든 마찬가지 아닐까요? 안나가 자신의 답변이 만족스러운 듯 뿌듯하게 미소짓자 엘사도 그런 안나를 보며 따라 웃었다.




“이제야 좀 안나 같네.”




그렇게 한참을 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엘사가 안나의 손에 봉투를 하나 쥐어주었다.




“뭐예요?”




“선물. 그 작가 사진집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길래.”





*





안나는 어제 일을 생각하며 괜히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엘사네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몇 분 일찍 도착해버린 안나는 엘사를 기다리는 동안 익숙하게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거의 다 피워 갈 때쯤, 동료들과 함께 건물에서 나오는 엘사가 보였다. 안나는 급하게 담배를 끄고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며 쭈뼛거렸다. 그렇게 안나가 고민하며 우물쭈물하는 와중에 엘사가 안나를 발견하고는 놀람과 동시에 반갑게 웃으며 안나에게 다가왔다.




“안나! 여기까지 웬일이야? 데리러 온 거야?”




“어, 음.. 네. 어차피 약속 장소가 근처이기도 하고...”




더 빨리 보고 싶어서요. 안나가 답지 않게 괜히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러는 동안 엘사의 동료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왔다.




“Bonsoir, Ravi de vous rencontrer! Elle est ton amie, Elsa?”

(만나서 반가워요! 엘사, 네 친구야?)




“Elle est ma copine.”

(제 애인이에요.)




자신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던 안나는 엘사의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엘사의 대답을 들은 동료들은 휘파람을 불며 두 사람에게 좋은 저녁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엘사 역시 자신의 옆에서 벙쪄있는 안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안나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회사 동료들에게 자신을 애인이라고 소개해버리다니. 그렇게 막 커밍아웃 해도 되는 건가? 진짜 내가 알던 엘사가 맞나..?




“혹시 갑자기 그렇게 소개해버려서 불편했어? 그랬으면 미안해..”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는 안나를 보며 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아, 아뇨. 그냥 좀 갑작스럽다고 해야하나.. 당황스럽기도 하고.. 나보다는 엘사가 걱정돼서요. 좀 의외기도 하고..?”




안나는 엘사가 과거에 자신을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소개했던 때를 떠올리며(물론 그때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도 전이었지만) 왠지 모를 감격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애인이라니? 애인..은 맞지만 돌변한 엘사의 태도가 낯설기만 한 안나였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가 바 테이블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파리 1구에 위치한 유명한 일식당의 우동. 엘사와 안나는 각각 우동을 하나씩 주문했다. 쌀쌀한 날씨에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는 듯한 따뜻함에 안나는 국물을 들이키며 자신도 모르게 음, 하고 만족스러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후로 안나는 식당 내부가 조용한 탓도 있었지만, 아까 엘사의 충격(?) 발언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탓에 말없이 조용한 식사를 했다. 엘사는 그런 안나를 조심히 살피며 말을 건넸다.




“안나, 무슨 일 있었어? 아니면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래?”




“네? 아녜요. 그냥 너무 맛있어서 음식에 집중하느라..”




엘사의 질문에 안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이 이렇게 변해버린 거예요? 묻고 싶은 질문을 가슴 속에 묻으며.





*





어찌저찌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둠이 내려앉은 파리 거리를 거닐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고독하게 홀로 연주를 하고있는 파사쥬(passage:통로)를 통과하니 우아하게 조명을 빛내고 있는 루브르가 보였다. 입구가 좁고 천장이 높은 탓에 마치 동굴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등 뒤로 웅웅 거리며 퍼지는 바이올린 선율이 눈앞에 보이는 광경과 조화를 이루어 참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안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그 순간을 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카메라 들고 나왔네?”




엘사가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누구가 카메라 잡는 모습이 멋있다고 그래서요~”




안나가 능글맞게 말하며 자신을 보고 사랑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엘사를 향해 예고 없이 셔터를 눌렀다. 아 뭐야~ 엘사가 앙탈을 부리며 카메라를 낚아채려 하자 안나는 재빠르게 피하며 엘사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연인들이 흔히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듯 뛰놀던 두 사람은 루브르 앞 분수대에 걸터 앉아 숨을 골랐다.




안나는 찍은 사진들을 엘사에게 보여주며 이건 잘나왔네, 못나왔네 하며 엘사를 골렸다. 사진을 넘기다 보니 안나가 찍은 취재 사진과 파리 사진들이 나와 엘사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신나게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엘사는 그것을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어대던 안나가 작품 설명을 마치자 둘 사이에는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안나는 눈앞의 루브르를 올려다 보며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기쁘게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즐거워한 게 얼마만이던가? 그래, 나는 엘사 옆에 있을 때 가장 나답다. 엘사는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엘사의 새로운 모습들이 낯설고 내가 알지 못하는 엘사의 시간들이, 내가 모르는 엘사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엘사가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든, 지금 엘사의 모습이 어떻든간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엘사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그건 천천히 알아가도 되는 문제였다. 그저 이 순간을 누리자. 사진이, 영화가, 그리고 음악이 그렇듯 사랑 또한 머리로 해석하는게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안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엘사.”




안나의 부름에 엘사가 고개를 돌려 안나를 바라봤다.




“사랑해요.”




엘사가 어떤 모습이든 내 마음은 언제나 같을거예요, 안나의 진심어린 고백에 엘사 역시 살포시 웃음 지으며 말했다.




“나도 사랑해, 안나.”




여전히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이 둘을 감쌌다. 두 사람은 나란히 루브르를 향하고 있던 몸을 틀어 마주보며 한참동안 서로의 얼굴을 눈으로 담았다.







_____


오늘도 읽어줘서 고맙다 쥬미들!! 늘 재밌게 읽어줘서 고마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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