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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17-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5 15:58:04
조회 187 추천 15 댓글 4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은 조금씩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되고, 커져가며, 희망을 좀먹어 갔다.


안나는 잠들지 못한 채 밤을 지새워야 했다. 검게 내려온 다크서클과 헝클어진 머릿결, 두 눈의 말미엔 새벽 내 눈물을 흘린 흔적이 말라붙어 있었다. 자신의 몸을 따갑게 감싸는 아침의 햇살이 창문에서 내리쬐고 그것을 반 즈음 감긴 눈으로 받아들이던 안나는 일으켰던 상체를 다시 침대에 뉘이고 이불을 머리 끝 까지 올려 덮었다.


오늘은 비가 왔으면 좋겠다. 그녀는 며칠간 자신을 극심하게 괴롭히는 고통속의 악몽과 싸워야했다. 몇 년 전, 사랑했던 연인, 엘사 에델바이스를 잃은 뒤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며 피어올랐던 악몽들 말이다. 7년이라는 시간은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였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안나는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고된 스케쥴을 버티며 최고가 되기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되면 어디선가 나타난 엘사가 또 다시 자신을 축하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년 전 예술대상을 수상했던 와중에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몇 번을 매니저에게 부탁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알 수 없다’, 라는 것뿐. 하루씩 지나가는 날들 속에서 안나의 마음 속 버텨오던 희망은 점점 시들어갔다. 약해지고 바래저서는 눈을 떼면 하얀 연기가 되어 금세 사라질 것만 같았다.



사람은 죽기 직전 가장 화려하게 불타오른다고 들었다. 인내심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안나는 그녀를 보았다. 정확히는 그녀를 닮은 사람을 보았다.



엘사 아렌델, 하얗고 기다란 장발을 땋은 머릿결을 가졌지만 행동과, 표정, 모습들은 너무도 많이 닮아있었다. 조금은 털털하면서도 거친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바다처럼 파란 눈. 작게 주름지는 눈웃음. 심장이 떨릴 듯 아름다운 미소, 미묘하게 올라가는 입 꼬리와 차갑게 내던지는 듯한 목소리. 일분, 일초를 바라보며 점점 그녀에 대한 확신이 일렁거렸다. 저 사람이 엘사 에델바이스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너무도 오래된 기억 속에 묻혀있던 감정을 끄집어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의 본능은 능숙하고 기계적으로 그녀와 엘사 에델바이스 사이의 퍼즐조각을 빠르게 맞추어 갔다. 봄비가 내리던 날의 첫 만남이후로 매일 매일 엘사 아렌델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자연스럽게 엘사 에델바이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안나의 뇌 속에선 착각과 희망, 사라졌던 쾌락의 망각들이 치열하게 뒤엉켜 있었다. 그럴수록 점점 양극화 되는 감정의 기복과 함께 찾아오는 억겁의 외로움은 이성적인 판단을 짓밟아갔다.



‘그녀는 엘사 에델바이스 일까?.’


‘엘사 아렌델 일까?.’


‘그녀를 좋아해도 되는걸까?.’


‘하지만 엘사 에델바이스는 죽었잖아.’


‘아니 죽지 않았어.'


‘그녀는 에델바이스가 아니야.’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야.’


‘닮았기에 좋아해도 되는 것 아냐?.’


‘잊지 마, 아렌델은 널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에델바이스가 아니야.’


‘만약, 그녀가 에델바이스가 맞다면? 저 눈동자를 봐, 내 기억속에 있는 푸른 눈동자를 가졌어.’


‘내 기억이 잘못 된 걸까?, 이 모든 게 꿈 이였으면 좋겠어.’


‘그녀가 엘사 에델바이스가 맞다면....나는 누구지?..’



‘안나 아그나르, 배신자.’


‘모든 일들의 원흉.’


‘너가 없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너가 잘못한거야, 너가 그녀를 죽였어.’


‘약해빠진 울보.’
.
.
.
‘넌 사라져야해. 엘사 에델바이스의 죽음에 대한 죗값을 치러아해.’


“..아냐!!”



공허속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은 굳게 닫혀있던 정적을 깨트렸다. 방안의 벽을 타고 넘나들던 소리는 아침의 햇살에 밀려 빠르게 흩날렸다. 이윽고 또 다시 고요한 정적이 스멀스멀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 속에는 그렁거리는 눈망울을 한 채로 두 손으로 이불을 꼬옥 쥐고는 작게 경련하는 가녀린 한 소녀가 있었다.


“엘사..”



아렌델을 이야기 하는것일까?, 아니면 에델바이스? 안나 스스로도 생겨난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도와줘..”


순간, 안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녀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을 때 까지 절대로 열어 볼 수 없었던 꼬깃꼬깃 접힌 종잇조각. 금단의 서처럼 애써 지우려 노력했다. 그 속에 담겨있을 많은 글자들과 무방비한 기억에 깊은 흉터를 남길 그녀의 필기체. 지금껏 용기가 없었던 안나의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붉게 달아오른 눈동자와 촉촉이 젖은 동공 사이로 작은 일렁임이 일었다.



충동적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안나는 터벅터벅 빠르게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 작고 귀여운 장식들이 달려있는 화장대 아래의 서랍들 속, 가장 깊고 어두운 칸을 열어 그 속을 보았다. 그늘진 물건들 사이에서 반짝반짝 광이 빛나는 작은 상자, 갈색의 나무의 결을 그대로 내보이는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보석함. 떨리는 손끝으로 보석함에 손을 가져다 댄 안나는 간헐적인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 차례 낮은 신음과 긴 한숨을 쉰 뒤, 부릅뜬 눈을 하고 선 보석함의 윗부분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을 주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비단으로 덧대어진 작은 공간이 열렸다. 빛바랜 종잇조각과 아직도 반짝반짝 빛나는 세공된 보석이 박힌 목걸이. 둘 다 엘사 에델바이스의 손을 거친 흔적이 남아있는 것들이였다.



목걸이에 머물렀던 눈길을 돌리고 손을 움직여 종잇조각을 잡았다.



이 안에 자신이 찾고자 하는 하지만, 찾을 수 없이 근처에서 머물렀던 답이 적혀져 있을 것이다. 때가 되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새겨 넣은 안나는 조심조심 찢어지지 않게 곱게 접혀있던 종이를 열었다. 위험한 폭발물을 만지는 화학실험을 하는 듯 얇은 질감을 매만지고 잘게 주름진 굴곡을 하나하나 보았다. 오래된 종이의 삭힌 향이 미세하게 피어오르고 모두 다 펼쳐진 누런 종이의 안. 작게 휘갈긴 글씨들을 보았다. 아주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를 두 눈으로 머릿속에 새겨 넣듯이.
.
.
.


안녕 내 사랑. 안나


내가 떠나간 이후로 많이 힘들었을 거야,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절대로 도망친 것이 아니야, 많은 사람들은 나를 배신자이고 사라진 인기를 찾아


어디론가 떠나갔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정말로,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난 너와의 작고 소중한 꿈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야.

기억해줘, 언젠가는 꼭 너 앞에 나타날 테니까. 그동안 잠시 나를 잊어줘.


많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홀로 버티는 것이 힘들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날 흔적도 없이


떠나갔다는 것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겠지.


그렇기에 안나 너에게 부탁할게.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깔끔하게 나를 잊어. 너를 위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 내가 보이지 않을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게. 내 걱정은 하지 마.


나는 결심했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였어. 이해해주길 바래. 사랑하니까, 잊을 수 있는 거야. 난 너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모든 걸 조심해야해. 연예인은 그런 삶을 살아가. 언제든지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항상 걱정을 안고 행동해야겠지. 난 그런 더럽고 치사한 것들을 부수러 가는 거야.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질 테니.


그러니 언제나 밝은 미소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


이만 줄일게.


-엘사 에델바이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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