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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20-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8 16: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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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서 우회전 해서~”


“....”



안나는 두 번째 운전교육이 시작되고부터,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전과는 다르게 빠르게 엘사의 이론적인 설명들과 안내들을 따라 능숙하게 실력이 늘어갔다. 그 점이 굉장히 뿌듯하고 보람찼던지 엘사는 지금 자신의 감정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한 가지라도 더 그녀에게 알려줄 것이 있지 않을까 하며 연신 재잘재잘 떠들어대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우울해 보이는 안나의 어깨와 방금 느꼈던 왠지 모르게 핼쑥해 보이는 건조한 두 볼을 보자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걸까 하고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우회전으로 교차로들 돌아 나선 검은색 승용차는 조금씩 속도가 줄며 기어가더니, 갓길에 멈춰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교차로를 벗어나면서 생기는 흔한 접촉사고들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내뱉던 엘사는 멈춰버린 자동차와 브레이크를 밟고 파킹 기어를 넣은 뒤 멍하니 앞만 응시하는 안나를 보자 하던 말을 멈추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순식간에 정적이 휩싸인 차 안이 머쓱했던 것인지 엘사는 손을 뻗어 비상등 버튼을 눌렀다. 루프를 두드리는 자잘한 빗소리에 딸깍거리며 껐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비상등 램프의 점등소리가 섞이자 고요했던 차 안의 분위기는 더 이상 가라않지 않았다.



“괜찮아?”


“..엘사”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우물거리며 내뱉는 안나의 작은 중얼거림에 엘사는 조심스레 안전벨트를 풀어 가지런히 말려 들어가게끔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묘하게 어두운 분위기와 고민거리가 있는 듯이 아랫입술을 물고 눈을 깜빡이는 안나의 옆모습을 보았다. 걱정되는 듯 엘사의 팔자눈썹이 축 처졌다.



“응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벌써 네 번째 듣는 대답 이였다. 오늘따라 정말 뒤숭숭해 보이는 안나의 표정과 눈빛들. 그리고 교육이 시작 된지 삼십여 분이 지나면서 자동차는 멈추어 있을 때마다 깊은 정적 속에 휩싸여야 했다. 지난번의 안나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명량하고 낙천적인 그녀의 모습은 어디가고 하루 종일 사색에 빠진 듯 나름대로 신난 엘사의 물음에 묵묵부답으로 대답하더니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곤 결국 흐지부지 다시 운전을 하던 그녀였다.



너무도 다른 모습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던 엘사의 가슴속에는 작은 답답함 마저 생겨나고 있었다.


“잠깐만, 멈춰봐”



안나에 대한 작은 설렘이 있던 엘사의 마음역시도 지금은 잠시 몸을 숨겼고, 현재 그녀의 마음속을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것은 걱정과 답답함. 그리고 지금 안나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 이였다. 혼자 고개를 젓더니 다시 기어를 넣으려는 안나의 손을 잡아챈 엘사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를 무시한 채 나름 결연해 보이는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안나를 노려보았다. 악의 없는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로.



“..네..?”


“멈춰보라고,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안나의 시선이 자신이 잡고 있는 손으로 향하자 멋쩍게 주었던 힘을 풀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자신의 손을 매만지던 안나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엘사를 힐긋 흘겨보았다.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듯이 입술을 우물거리던 안나는 다시 기어봉 으로 손을 뻗었다. 다시 출발하려는 것처럼 브레이크를 밟고 앞을 바라보는 안나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노려보던 엘사는 작은 한숨을 쉬고는 기어봉을 잡았던 그녀의 손을 꾸욱 하고 감싸 안았다. 그리곤 자신 쪽으로 홱 잡아당겼다.



“아얏..아파요..”

“나랑 이야기 좀 하자니까?”


“할 말 없어요..”



이젠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만 숙여선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주눅들어있는 어깨를 보자 작은 울화마저 치밀어 올랐다. 엘사는 아파하는 그녀의 작은 신음성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반쯤 일어서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가까워진 얼굴에 놀라 몸을 빼는 안나가 아닌 운전석의 안전벨트 후크버튼을 누르고 몸을 두르고 있던 벨트를 풀어 벗겨내었다. 빠르게 자신의 옷을 스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후크를 멍하니 스쳐보던 안나는 또 다시. 두 손을 맞잡은 채로 입술만을 우물거렸다.



“아니 내가 할 말이 있어.”


“..어떤 말인데요..?”



작게 흔들이는 눈동자와 차갑고 정적인 푸른 눈동자, 두 눈빛이 잠시 만나고 엘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어떻게 생각해?”


“네?”


“나 어떻게 생각 하냐고.”


각기 다른 두려움을 가진 두 눈동자가 맞부딪혔다. 고요의 정적이 그녀들을 감싸고, 흔들리는 눈동자 사이엔 유리창을 두드리며 흘러가는 빗소리만이 존재했다.
.
.
.
“몰라요..그런 거..”



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모든 고민들을 해결해줄 물음을 들었음에도. 그녀의 입은 그녀의 마음과는 다른 대답을 내뱉었다. 그것이 진심이 되었든, 선의의 거짓 이였든. 불확실성 속에 단단하고 굳은 결연이 숨어있는 질문에.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자신이 뱉었던 물음에 엘사 역시도 스스로 확실한 대답을 생각 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 누군가가 머릿속을 들여다본 뒤. 그녀가 말하지 못하고, 의식하지도 못했던 가슴 속 깊은 곳에 생겨났던 원초적인 고민을 끌어와 만들어낸 듯한 질문 이였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 하냐는 말. 안나에게도, 엘사에게도 이 작은 외침에 대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공허 속을 떠돌다 사라진 소리는 그녀들의 마음속에 깊게 박혀있던 고민들에 대한 저항 이였다. 나를 어떻게 생각해, 라는 물음은 여타 다른 사람들의 질문들과는 사뭇 다른. 그녀들 만의 약속된 금기였다. 서로는 서로에게 이야기 하지 못했던 많은 고민들 사이에서 비롯된 착각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라는 벽 사이에 서있을 뿐 이였다.



안나는 엘사에 대해 진심으로 좋아하는 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말하지 않았다. 엘사는 안나에게 자신이 좋아한다는 것을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렇기에 말하지 못했다. 좋아한다고. 서로는 착각 속에 쌓여진 두려움 앞에 가려져 서로의 진심을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았으니까. 완숙하지 못한 사랑이기에, 서로 다른 길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그래?, 너가 힘들어 보이길래 걱정되서 물어봤을 뿐이야. 이런 상태로는 뭔가를 알려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엘사는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진실된 말을 전하지 못했다. 머쓱해지고 어색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과장스럽게 목소리를 높여 스쳐가는 듯 비아냥거릴 뿐이였다.



“..정말로..그게 물어보려던 거였어요..?”


“...그래..맞아, 내가 조금 전에 했던 말들 기억이나 하고 있는거야? 듣는 둥 마는 둥 대답도 안하잖아”



엘사의 말을 듣자 축 쳐진 어깨로 길게 한숨만 쉬던 안나는 계속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발밑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였다. 또 다시 자동차 안은 깊은 정적에 쌓였고 엘사 역시도 입을 닫아버렸다. 마음 속, 말할 수 없어 응어리진 작은 고민들을 겨우 외면하며 어색 하지 않게 손만 휘적거릴 뿐이였다.



“..닮았어요..손짓도..목소리도...그래서 싫어요...이래서는 좋아할 수가 없잖아..”



엘사는 놀란 듯 토끼눈이 되어 멍하니 안나를 바라보았다. 작게 중얼거리며 들릴 듯 말 듯 한 그녀의 목소리가 흩날렸다. 과장되게 움직이던 하얗고 가는 자신의 손도 얼어붙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작게 경련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고 작은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그녀를 달래줄 수 없었다. 안나의 중얼거림은 울먹거리는 흐느낌이 되고, 곧 한 맺힌 처절한 외침이 되었으니까.



“미안해요..나도,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만나러 온 건데..울지 않으려고 했는데..이런 내가 싫을텐데..”



엘사는 안나의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약하고 가여웠으니까. 중간이 끊어져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을 쏟아내던 안나는 두 손을 들어 방울져 떨어지는 자신의 눈을 부볐다. 훌쩍이며 들리지 않을 비명을 질렀다.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과 간헐적으로 울컥거리는 호흡을 듣던 엘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리던 안나의 두 손을 잡아끌었다. 작은 신음을 내뱉으며 힘없이 딸려 오는 작은 두 손. 그리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여 우는 자신의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안나를 응시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엘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왜, 무슨 일인데. 나한테 말해봐”


“말 못해요..죄송해요..싫어할게 뻔한 데 어떻게 말해요..”


“방금 솔직히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는데, 그거 하나만큼은 들었어. 좋아 할 수가 없다며. 누구를..? 나를? 왜? 뭣 때문인데?”



엘사는 무언가 결심한 듯 흔들림 없는 결연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봤다.



“미안해요..”


“내가 여자라서? 그래서 날 좋아할 수 없는거야?”



안나는 잡힌 손을 뿌리치려 팔을 당겼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자신의 손을 잡아 끌어당기는 엘사에게 힘없이 끌려갈 뿐이였다.



“아니에요 그런거..”


“하..그래 이렇게 된거...”



엘사는 손을 뻗어 고개 숙인 안나의 턱을 잡았다. 가녀린 손끝에서 우악스럽고 조금은 거친 힘으로 안나의 얼굴을 들어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안나의 두 눈은 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안나의 눈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을 보려는 듯 눈동자 너머 자신의 하얀 백금발 머릿결이 보일 때 까지 조용히 초록빛깔의 두 눈을 관망했다. 침을 꿀꺽 삼킨 엘사는 안나의 두 어깨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품안에 담긴 안나가 놀란 듯 작은 비명을 내뱉고, 엘사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자 엘사는 안나의 가녀린 등을 조심스레 토닥였다.



“나 너 좋아해. 아니 좋아 하는 거 같아.. 너도 모른다고 했지? 그래, 사실 나도 모르겠어. 나도 널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착각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어... 자, 나도 이야기 했으니까. 너도 말해줘. 왜 말 못하는 건데?”



귓가에 속삭이는 엘사의 떨리는 목소리와 진심을 담은 고백. 크게 떠진 안나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고 그녀의 품 안에 담긴 채 눈물을 떨어트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자신의 몸을 토닥이는 따듯한 엘사의 손길을 느끼면서.



“..엘사아아...흐윽..흐으윽..”


“그래그래..괜찮아 괜찮을 거야..그러니까 말해줄 수 있겠어? 너의 이야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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