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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25-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04 15:46:56
조회 14209 추천 2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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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안, 벽에 기대어 시간을 때우던 엘사는 웅웅, 울리는 핸드폰을 들어 액정화면을 바라봤다. 차를 가지고 스탭용 주차장 한 편으로 와달라는 메시지. 그것을 본 엘사는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몸을 옮겨야 했다. 그 사이 많던 인파들은 어느새 사라져 황량한 광장과 아직 마지막 차례인 듯 택시와 버스를 기다리는 몇 명의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순식간에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고는 자신의 차에 도착했다. 주차장 안은 몇 대의 차들만이 띄엄띄엄 주차되어 있었기에 차키의 버튼을 누르자 작게 울리는 경적소리와 반짝이는 불빛으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시동을 걸고 잠시 기다리던 엘사는 기어를 움직여 주차장의 반대편 구석진 곳에 위치한 관계자 전용 주차장으로 운전했다.



연예인들의 밴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는 것과 반대로 주차장으로 조심스레 들어선 엘사의 검은색 승용차는 공연장과 연결된 작은 통로 앞에 멈추었다. 차 안에서 주위를 둘러보던 엘사는 저 멀리서 총총총 뛰어오는 검은 마스크와 하늘색 빵 모자를 푹 눌러쓴 여리여리한 여성을 보자 문의 잠금을 풀어 두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편한 츄리닝과 후드티를 입은 안나가 차에 탑승했다. 마스크를 썼지만 웃는 눈매를 보니 잠시 식었던 심장이 조금씩 두근대었다.


안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는 안전벨트를 매었다. 멍하니 그 모습들은 관망하던 엘사는 벨트를 매고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드러낸 후 환하게 미소짓는 안나를 보자 그제서야 고개를 슬쩍 돌리며 눈을 피해야 했다.



“공연 어땠어요?”



반달 같은 눈매를 보자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 어느새 무대 화장을 모두 지우고 간단한 기초화장을 한 안나였지만 그럼에도 미색이 짙은 아름다움은 여전히 존재했다. 어색하게 스티어링 휠을 손가락으로 까닥거리며 두드리던 엘사는 안나의 질문에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슬쩍 고개를 돌려 안나를 바라봤다.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였다.



“..좋았어..”


“엑, 그게 끝?”


자신이 생각했던 답변은 아니였는지, 시무룩 해져서는 눈썹을 늘어트렸다. 그리곤 오리처럼 입술을 쭉 내밀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오늘 자신의 공연을 복기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보자 슬며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안나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할 말 있어서 부른거야?”



작게 헛기침을 한 뒤, 주위를 둘러보며 지나가는 차들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안나의 매니저와 코디네이터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근처에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 속 자동차 배기음 만이 조용하게 땅을 울릴 뿐이였다.



“궁금한게 있어서요”



두 손을 꼭 모으고는 시트의 바닥,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집어넣은 뒤 몸을 배배 꼬이며 부끄러운 듯이 행동하는 안나를 잠시 지켜보던 엘사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내등이 켜져 환한 안쪽이 밖에서 보일까 걱정되었다. 불을 꺼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안나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나름대로 아쉬웠기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자동차의 선팅이 짙게 칠해져 있기를 바랐다.



“어땠어요? 저?”


“..뭐, 뭐를?...”



시동을 꺼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던 엘사는 안나의 말에 시동버튼을 향해 뻗던 손도 멈춘 채 화들짝 고개를 돌려 안나를 바라봤다. 침을 꿀꺽 삼키는 자신의 행동에도 헤실헤실 웃더니 오히려 몸을 기울여 가까이 다가오자 엘사는 몸을 뒤로 빼며 애써 기대하는 눈빛을 피해 자신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그럴수록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가까워지는 얼굴에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졌다.



엘사의 품 앞까지 몸을 들이밀던 안나는 코앞에서 희미하게 흔들거리는 엘사의 하얀 백금발을 보고는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숲속의 여우처럼 미세하게 남아있는 포근한 바디로션의 향취를 안나가 맡을 생각을 하니 심장부의 어딘가가 간질거렸다. 점점 빨갛게 상기되는 두 볼을 발견하자 홱 몸을 뺀 안나는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렸다. 손가락들 사이로 환한 미소가 나타났다.



“반했죠?..”


“어..음...”


볼을 긁적이며 머뭇거리던 엘사는 자신의 발 밑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번갈아 흘겨본 뒤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예뻤어.”


“그리고?”



고민하는 듯 신음성을 내뱉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서웠어.”


“...네?”


마지막 말에 의아스럽다는 듯 두 눈을 깜빡이는 안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여름은 다가오지 않았는데 더워지는 실내에 손을 뻗어 에어컨을 켰다. 머릿속에선 빠르게 방금 전 공연장 안에 있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눈을 부시는 조명들 사이로 보였던 아름다운 비너스의 모습. 그녀가 바로 안나 아그나르였다. 잠시 동안 엘사는 관중석 안에서 무대 위 닿을 수 없는 거리사이에서 서늘한 외로움을 느껴야했다. 가깝지만 먼. 지금은 자신의 옆에 있지만 언제라도 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완전한 존재. 이십분 간 안나의 공연 내내 자신을 감싸오던 사색의 주제였다.



“뭔데요오오 나 이런거 못 참는단 말이에요”



고민은 고민을 낳는다. 또 다시 고민의 우물에 갇혀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던 엘사의 머릿속, 안나의 작은 칭얼거림에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흩날리는 잡념들. 정신을 차린 엘사는 이것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럴수록 안나는 어깨를 살짝 들썩거리며 앙탈 아닌 앙탈을 부렸다. 언제부터였을지 감정에 진심을 담는 그녀를 보자 첫 만남의 찰나가 희미하게 떠오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이 다들 널 좋아하는데 나도 그 사람들처럼 널 좋아할 수 있을까 걱정됐어. 그래서 무서웠어. 남들처럼 응원 해주지 못할까봐”


“에이..그게 뭐에요..”



정리되지 못한 고민들 속 가장 마음속을 울렸던 하나의 질문을 쪼개어 다시 짜 맞추었다. 사실 방금 뱉었던 말은 엘사의 진심이 아니였다. 진정 심장에 새겨졌던 고민은 짧은 시간동안 만들어질 수는 없는 말 이였다. 너무도 많은 감정과 광경들을 받아들여야 했기에, 아직도 엘사의 머릿속은 백지의 상태에서 아직도 한 문장도 써 내려가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이제야 떠오르는 작은 단어 하나, 하나를 읊어나가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완성되지 못한 그것들은 탐욕, 두려움, 사랑, 약속 등 이였으니까.



자신이 원했던 만큼의 의미가 담기지 않은 말을 뱉은 엘사는 나름대로 찝찝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굳이 확실하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진실 된 가슴 속 외침은 고이 접어 머릿속 한 편으로 접어두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나는 애매모호한 엘사의 답변에 김이 빠지듯이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직은 아니에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설마, 벌써 반해서 약속을 어기려는건 아니죠? 그렇죠?”


“노력해볼게...”



엘사에게는 한 없이 후회되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안나였다. 플린 라이더의 묘지에서 나누었던 말들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라는 생각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는데, 굳이 못 박는 말을 하는 안나를 보자니 저절로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면서도 먼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대단한 촉을 가졌구나 싶기도 했다. 분명 먼저 약속을 맹세한 엘사에게 전하는 속뜻이 깊은 압박 이였다.



그녀와 진심을 담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져야 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상처도 모두 아물어 진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이 둘 만의 맹세였으니까.



“그래서 할 말은 다 끝났어?”


“으으..저랑 같이 있기 싫은거에요?”



다시 찾아온 정적 속에 입을 연 것은 엘사였다. 무의식적으로 던져진 말은 너무도 무신경한 듯이 차가웠다. 엘사의 입에서 나온 말에 꽤나 놀란 듯 안나는 인상을 쓰고는 따지듯이 되물었다.

“아, 아니야!!”


“원래 그렇게 무감각해요? 매니저랑 코디언니는 이미 집에 갔어요. 여기 저 ‘혼자’ 라구요.”



혼자라는 말을 강조라도 하듯이 손으로 안나 본인을 가리키는 제스쳐를 하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잘난 래퍼처럼 자세를 취한 안나의 두 눈은 기대감이 잔뜩 들어간 어린아이처럼 초롱거렸다. 이즈음 되면 이제 자신이 속뜻이 전해졌겠지, 라는 미소를 띄우고 엘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왜?”



왜 같이 가지 않았냐. 라는 짧고도 무신경한 말을 뱉었음에도 엘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안타깝다는 듯이 숨을 내쉬는 안나를 온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바라봤다.


“에휴..그거 알아요? 우리가 알게 된지 며칠은 지났는데 한 번도 둘이서 놀러 가본 적 없다는거?”


“아...그랬나..”



생각해보니 그랬다. 지금까지 안나를 만난 것은 끽해봐야 두 번 남짓. 많이 만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순수한 만남을 전제로 약속이 있던 것도 아니였다. 두 번 모두 다른 이유로서 얼굴을 보았던 것이였다.



“네에 그랬다구요. 그러니까..”


“음, 그래서?”


“..후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아는거에요? 데이트 신청 하는거잖아요. 데.이.트.”


“데이트?”



영화처럼 극적으로 흘러갔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떠보니 이런 사이가 되었지만 확실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지나간 시간들이였다. 안나의 생각에도, 엘사의 생각에도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데이트를 할 필요가 있다. 라는 희미한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었다. 다만 두 사람중 누군가의 용기가 필요했을 뿐. 그리고 그 용기를 가진 안나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였다.



“저랑 같이 단. 둘. 이. 있는 게 쉬운 줄 알아요? 언제까지 운전교육이다 뭐다 특별한 날에만 만날 수는 없다구요. 그것도 계약대로면 다음번이 마지막인데. 이제 저랑 연락 끊고 살 꺼에요?”


“당연히 아니지..”



생각만 해도 슬퍼지는 상상이다. 만약 자신 옆에 앉아있는 작고 귀여운 연예인 아가씨와 아무런 인연도 없었더라면, 그로서 평범한 세 번의 교육을 받고 그저 지나가는 인연 이였다면. 아마도 엘사 자신은 또 다시 무채색의 지루한 일상으로 흘러들어가 따분한 하루하루를 담배를 피우며 쓸데없이 날려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인생에 뜻깊은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머뭇거리다 사라진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어서 가요.”


“응? 어디로?”


“엘사가 가고 싶은 대로. 지난번 거기처럼 아름다운 곳으로요!”



답답하게 구는 엘사가 조금은 싫었는지, 살짝 노기가 섞인 듯이 앞을 가리키던 안나는 흥, 하고 작게 콧김을 불고는 팔짱을 껴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그럼에도 슬쩍 엘사를 훔쳐보고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엘사는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없이 기어봉을 잡아 어디론가 출발했다. 엘사와 안나는 어디가 되었던지 좋았을 것이다. 둘 만이 함께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이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안나는 운전하는 엘사를 보고, 엘사는 자신의 앞만 바라본다. 지난번과 똑같이.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기대감이 섞인 묘한 기류가 차 안에 감돌았다. 두 사람 모두 조용한 차안에 희미하게 퍼지는 라디오 음악에 자신들의 감정을 담아 흘러가게 두었다.
.
,
.


어두운 도로를 더듬더듬 밝히는 가로등을 빠르게 지나치는 검은색 승용차. 그 뒤로 점점 멀어지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밤중의 콘서트를 하듯 반짝거리는 별빛처럼 빛나는 네온사인들과 호흡하듯 희미하게 들리는 시내의 소음들.



“정말 숙소로 안가도 괜찮겠어?”


“휴가 냈어요.”


“휴가?”


“이제 공연도 끝났겠다 이 바닥에서는 비수기라 일주일 정도 쉬어도 될걸요? 그러니까아..”


“우리 여행가요!!”


“갑자기?”


“네에에에 가요오오오 제바아알~”


“...가고 싶은곳 있어?”


“야호! 이렇게 바로 가줄줄은 몰랐는데! 고마워요오~”


“조, 조심해!”


“어디로 갈까요?”


“나야 모르겠는데..”


“바다 보러가요!”


“..그래..그러지 뭐.”


“그런데 옆에 있던 여성분, 친구 아니에요?”


“맞긴하지”


“같이 갈걸 그랬나..”


“아니 별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넵..”


“날씨가 따듯했으면 좋겠네”


“이제 곧 여름이니까요.”


“벌써 그렇게 됐나..”


안나와 일주일 동안의 휴가. 벌써부터 설레어 오는 마음에 엘사의 자동차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비어있는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달려 나아갔다. 목적지는 모른다. 하지만 계속 가다보면 바다가 보일 것이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무척이나 행복할 것이라는 건 당연했다. 밤 새어 가다보면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해 한숨 잠을 자고 잔잔한 파도 위에 올라선 일출을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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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은 굳이 묘사 넣기 애매해서 안넣었어. 대화만으로 흘러가는게 좋아보여서 ㅎㅎ 상상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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