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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약수위]REMAKE/ 운전교육 -31-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17 02: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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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캐주의


아토할란의 바다. 그것을 관망하듯 우두커니 서 있는 하늘색과 순백의 페인트로 칠해진 비슷한 풍경의 한 펜션. 절벽과 모래사장, 아토할란의 도심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먼발치에서 보이는 거리에 위치한 곳.



 더 없이 맑은 하늘과 조각구름 사이. 아침 해는 떠올라 펜션의 유리창을 빤히 비춘다. 광휘의 빛은 펜션 올라프의 가장 최고급 객실 속, 침대 위에 몸을 맞대어 곤히 잠든 두 명의 여성들에게 내리쬔다.



 고요하다. 다른 휴양지의 어떤 풍경들과는 사뭇 다른, 넓은 펜션의 주차장에는 검정색 승용차 한 대와 하얀 스쿠터 한 대만이 주차되어 있을 뿐, 물놀이가 하고 싶어 튜브를 몸에 끼우고선 부모님에게 보채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해변으로 내려가는 가족들도 없고, 아침의 햇살에 손을 잡고 꺄르륵 대는 연인의 풋풋한 간질거림도 들리지 않는다.



 일층의 카페에선 따듯한 열기를 머금은 수증기만 폭폭 피어오른다. 주방의 안에선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성만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재료를 다듬고, 창고를 정리하느라 바쁜 듯하다.



 “오늘은 어떤 요리가 좋을까나”



 파스타는 어제 만들었다. 아침부터 고기는 많이 거북하겠지. 상큼한 드레싱이 곁들어진 샐러드와 신선한 양상추, 달걀프라이, 베이컨 조금이 들어간 샌드위치가 좋을 듯싶었다. 어제의 숙취가 남아있다면 토마토 주스를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채소가..아, 여기 있네.”



 바닷가인 아토할란의 채소는 비싸다. 하지만 언제나 신선한 채소가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그녀는 돈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매일 약간의 식재료를 시장의 단골 가게에서 구입해 그날의 음식들에 들어갈 재료들을 준비한다. 낭비되는 일은 드물다. 몇 년을 운영하며 자연적으로 몸이 기억하는 손님들의 숫자와 신기하게도 식재료들의 양에 맞추어 카페와 펜션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으니까.



 겨우 이차선 도로변의 건물이지만 간간히 지나다니는 차들. 그중 풍경에 빠져들어 자연스럽게 펜션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선 절벽과 석양, 바다와 모래사장의 경치를 감상하는 사람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동을 끄고는 카페의 문으로 조심스레 들어와 커피를 시키고는 했다.



 “드레싱은....키위가 괜찮겠다.”



 원래부터 펜션과 카페를 같이 운영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의 카페는 무척이나 작은 공간으로 시작되었다. 그저 일층의 체크인 카운터 한편에 작은 커피머신을 두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을 객실로 담아 올릴 뿐이었으니까. 그때는 펜션의 손님이 참 많았었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던 것이었던지 풋풋한 사랑을 나누는 젊은 커플들이 주로 찾는 그들만의 관광명소처럼 되어선 나름 북적거리며 바쁜 하루를 보내곤 했었다. 여름 때면 해변의 저 먼 곳에서부터 기분 좋은 커플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오곤 했다.


 

 5년 전, 한 여성이 이곳에 며칠간 머물기 전까지는.



 자신처럼 구릿빛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투박해 보이던 갈색피부, 그리고 참 잘 어울리던 흑단발의 머릿결을 가졌던 여성. 너무도 깊고 짙은 눈을 하고선 매혹적인 미소를 가졌던 그녀.



 그녀는 자신을 멜리사 화이트라고 소개했다. 여름의 성수기가 끝나가고 가을의 쌀쌀함이 찾아올 무렵, 아직은 어울리지 않던 국방색의 야상, 데미지가 들어간 청바지, 검은색 나시 티는 시간을 거스르듯 그녀와 참 잘 녹아내렸다. 그녀의 분위기와 야성적인 눈웃음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거친 삶을 살아 온 듯 내리깔아진 희미한 다크서클과 반대로 쾌활한 성격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아무렇지 않게 펜션의 입구로 들어와 지루함에 하품을 하던 내 앞에 지폐 다발을 하나 턱 올려두었다. 그리곤 며칠간 가장 풍경이 좋은 방 하나를 쓰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앞에 어떠한 말도 내밀 수 없었다. 지폐 다발 때문이 아닌, 그녀의 눈 속에 담겨있던 깊고 아득하게 다가오는 슬픔과 고요를 보았으니까. 두 개의 계단을 올라서며 객실의 방문을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기 전까지 나는 그녀와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앙 다문 입술 밖으로 단어들과 문장들을 만들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원래 조용한 사람이었던 것인지 처음의 인사와 눈웃음. 몇 마디 말을 제외하고는 내 뒤를 묵묵히 따라올 뿐이었으니까.


 

 ‘참 좋은 방이네요, 내가 원하던 풍경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와의 첫 만남의 대화는 끝이 났다. 그녀는 당연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는 테라스에 나와 햇빛을 쬐곤 했다. 점심을 가져다 줄때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올라갈 때에도 그녀는 테라스의 철제 의자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짓고 눈을 맞추어 올뿐, 담배를 입에 물고는 뻑뻑 피워대며 저 먼 수평선의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 외에는 이곳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태양의 빛을 듬뿍 받고 바다의 짭조름한 바람을 쐬어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해바라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담배 많이 피우시네요.’



 둘째 날의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간단한 샌드위치를 가져다 주기위해 올라가자 언제나 그렇듯 테라스에 나와 햇빛을 쬐던 그녀를 보았다. 그리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보았다. 재떨이에는 한 가득 꽁초가 담겨있었고 그 옆에는 반쯤 남은 담뱃갑이 놓여 있었다. 목소리에 어색하거나 떨림이 있었는지 되새기며 확인하던 사이 내 말을 들은 그녀는 감았던 눈을 뜨고는 나에게 씨익 웃음을 지어왔다.



 ‘걱정해주니 고맙네요.’



 아득하게 떨려왔다. 차가운 목소리는 햇빛의 따듯함에 녹아내려 포근하게 귀를 간지럽혔다. 하루 새에 목소리를 잊어버렸던 것인지, 아니면 그때와는 다른 목소리였던 것인지. 짧은 두 마디의 단어들은 무엇보다도 나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눈빛. 갖은 고통을 견디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다 온 것만 같은 깊고 푸른 눈. 바닷가에서 태어나 지금껏 오래 살아왔던 나는 그 눈빛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눈은 오랫동안 배를 타고 심해의 물고기들을 낚아오며 세월을 불태우던 마을의 어부 아저씨들에게서 보았던 눈이었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온 거친 사람들의 눈동자 말이다.



 ‘..아, 죄송해요..혹시 방해가 되었다면..’


 ‘아니, 전혀요.’



 선선히 고개를 젓는 그 순간마저도 나에겐 느릿느릿 한 장의 사진처럼 멈추어 있었다. 아마도 나의 구릿빛 피부 밖으로 붉게 물든 두 볼이 보였을 테지. 그럼에도 그녀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나를 보는 건지 나의 등 뒤, 맑은 하늘을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그녀는 시선을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눈앞이 보이지 않는걸까, 하는 착각이 들었던 정도로.



 한마디는 두 마디가 되고, 두 마디는 한 문장이 되었다. 나는 빠르게 그녀와 짧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둘째날의 저녁이 되어 음식을 가지고 올라간 뒤에는 거의 두 시간 가량이나 그녀의 건너편 철제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시작해서 시덥잖은 어릴적의 이야기까지.



 그녀는 나의 이야기에 싱긋, 웃기도 했고. 안타까워하며 입술을 우물거리기도 했다. 밥을 먹는 와중에 내가 건네는 말들이 다행스럽게도 싫지는 않은 듯 했다. 그녀도 혹시 말을 걸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마음 한 구석에 머물다 사라지곤 했다. 멜리사 화이트. 그녀는 이곳 아토할란에서 세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대도시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다. 관광지도 아닌 곳에 사람들이 오는것도 신기했지만 그토록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니 나의 호기심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그녀가 궁금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어쩌다 오신거에요?’


 ‘...음 뭐 경치 좋고 아름다운 곳이니까요.’



 난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은 도시에도 볼 것은 있으니까. 대부분 머물던 손님들의 말들도 그러했다. 풍경의 광활함과 자연이 주는 짙은 찬란함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비경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같이 오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그녀의 말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떠버려선 고개를 쳐들고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왜?. 내가 왜 한숨을 쉬었던 거지?.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되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멜리사는 나의 한숨을 듣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그릇을 싹싹 비우고선 언제나처럼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을 길게 빨아들이고 있었으니까. 나는 황급히 아메리카노 한잔을 그녀 가까이에 밀어주고는 그릇과 포크를 담아 급한 듯이 내려왔다. 떨리는 호흡과 쿵쾅대는 심장을 풀어주자 그제야 밀린 감정들이 소용돌이가 되어 몸을 감싸왔다.



 방금 느꼈던 것들은 뭘까?. 왜 나는 그녀의 말에 아쉬워했을까?.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 거지?. 내 볼좀 봐, 이렇게나 빨개져서는 홍당무처럼 달아올랐어. 뜨거워서 데일 것 만 같아.


 설마,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거야?.


 그날 밤, 펜션의 한편에 세워진 작은 건물. 내가 주로 잠을 자며 생활하는 개인 방 안. 침대 위에 누워서 잠들지 않는 눈을 감고 천천히 생각했다. 감정들과 머릿속을 스쳐가던 여러 속마음의 대화들을 끄집어내어 다시 읽어갔다. 사이사이 비어있는 논리적 오류들을 겨우 찾아가며 연기처럼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진심들을 잡아놓으며 내린 결론.



 ‘나는 멜리사에게 한 눈에 반했어.’



 잠 못 이루는 밤, 달이 뛰노는 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애석하게도 내려갔던 태양은 다시 떠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시계는 일분, 일초. 초록빛 잎사귀를 건너가는 달팽이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두어 시원한 밤바람이 살랑이며 들어오고, 달빛이 스며들어오는 사이. 풍경 속에는 멜리사의 객실 창문이 희미하게 비추어 보였다. 불은 켜지지 않았다. 분명 잠을 자고 있겠지. 과연 그녀는 꿈속에서 어떤 일들을 겪을까. 저녁에 말해주었던 그 연인과의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까?. 아니면 나에게 보였던 깊은 두 눈동자 속의 아픔을 다시 견디어내고 있을까.



 상상들이 또 다른 고민들을 낳고, 가지처럼 뻗어가는 머릿속의 복잡한 풀숲을 모두 헤쳐나아갔을 때, 난 이미 멜리사의 객실 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정신 차려 허니마렌. 그녀는 너의 소중한 손님일 뿐이야.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속 여러 목소리가 겹쳐 울렸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대답 없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떨리던 두 손이 손잡이를 잡았을 때 나는 모든 걱정과 고민들을 깊은 바다 속으로 던져 넣듯이 송두리째 머릿속 어딘가로 빠트리고 말았다. 하얀 백지가 되어 바래진 마음속에 남은 것은 멋모를 용기와 자신감 뿐. 긴 호흡과 함께 힘껏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철컥, 철컥.’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럼 그렇지. 어떤 사람이 문을 잠구지도 않고 잠에 들겠어. 요동치는 심장과는 다르게 찰나의 순간처럼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다시 되돌아오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나는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서 몸을 타고 흐르는 묘한 감정들을 맛보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큰 실수를 할 뻔했어. 쿵쾅대던 심장은 조금씩 잔잔해졌다. 간질거리던 깊은 곳의 열기 또한 빠르게 식어갔다.


 

 ‘자칫하면 큰 잘못을 할 뻔했어.’


 ‘철컥.’


 ‘어떤 잘못?’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차가운 겨울의 한기에 맞닥뜨린 듯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눈앞, 열어진 문과 문틀에 기대어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은 채 짧은 반바지와 검은색 나시.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브레지어 끈을 노출하고선 서있는 멜리사를 보았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는 짝다리를 짚어선 나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깊은 눈빛에 고개를 푹 숙여버린 나는 이제야 입고있던 옷이 잠옷이며 바람에 날려 몸에 달라붙은 면들 사이로 속옷의 은밀한 선들이 보여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랬다. 그날 밤의 바람은 파도에 실려 조금은 차갑기도 했고, 평소와는 다르게 세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마음 역시도 세찬 바람이 불어대었다, 아마도 구멍이 몇 개 송송 뚫려버린 것처럼 추웠다. 그러면서도 시원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나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새벽에도 커피를 가져다 주는거야?’


 ‘아..아...죄, 죄송해요..’


 ‘뭐가?’



 멜리사는 나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냈다. 설마 알고 있는걸까?. 그녀는 신발장 위에 올려져있던 담뱃갑과 라이터를 집어 나를 지나쳐선 테라스의 철제의자에 살며시 앉았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반바지를 입고 있던 터라 다리를 꼬아 앉는 그녀를 보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다리는 얇고 매끈하게 잘 빠져선 일어서서 볼 때와는 다르게 유려한 선처럼 굴곡져 아름다웠다. 잘 빚은 도자기의 그것들처럼 알 수 없이 끓어 넘치는 예술작품들의 쾌락들이 느껴졌다.



 ‘왜 나를 빤히 봐?. 이야기 하러 온거 아니야?’


 ‘아..저, 저기..’



 재떨이를 가까이 잡아 두고는 담배에 불을 붙힌다. 그녀가 불을 붙임과 동시에 펜션으로 불어오던 세차던 바람이 멎는다. 그리곤 바람 덕분에 묻혀있던 파도소리가 나와 그녀를 감싸안았다. 솨아, 솨아. 모래사장을 내려치며 쌀알처럼 흩어지고 장난스럽게 모래를 쓸어간다. 또 다시 모여서는 큰 고동이 되어 높게 솟아오른다. 나의 마음처럼.


 

 ‘담배 피워?’


 ‘아, 아뇨..’


 ‘이참에 한 대 피우지 그래? 그러면 떨리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거야.’



 멜리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그녀의 앞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을 보이고 말았을까?. 아니면 방금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을 때에 확신을 가졌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참혹한 심정이 되 버린 나는 그녀의 건너편 철제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젠 저 두 눈을 맞출 수가 없겠지. 하루아침에 나는 큰 실수를 범하고야 말았다. 어린날의 치기라기엔 이미 커버린 몸은 절대 변명이 되기에 부족해 보였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나를 멜리사의 객실 앞으로 오게 만들었을까.



 침울한 표정이 되어 땅바닥만을 응시하던 나에게 고개를 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멜리사가 건네 온 담배 한 개비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였다. 데굴데굴 굴러서 나에게 다가온 하얗고 동그란 담배와 고개를 들며 그 길을 따라 눈을 돌린 끝에는 하얗고 흘러가는 담배연기 사이. 씨익 미소 짓는 멜리사의 얼굴이 있었다.



 ‘괜찮으니까. 한 대 피워.’


 ‘네?’


 ‘괜찮다고, 한 대 즘은.’



 무엇이 괜찮은 걸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 내 머릿속의 필터가 걸러낸 문장은 그것이 아니었다. 손 안에 들어있는 중지손가락만한 길이의 담배. 그리고 눈앞의 여자. 멜리사 화이트가 말하는 것은 내 손안에 있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었다. 담배 한 대. 그건 담배처럼 금방 끝나버릴 잠깐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거였다. 한 두 모금과 살짝금 느껴지는 쾌락 뒤에 남아버리는 꽁초처럼 뒷맛이 나쁘지는 않지만 타오르지 못한 감정은 버려질 수밖에 없는 담배 같은 사랑.



 라이터에 불을 키고는 나에게 가까이 가져왔다. 다시금 떨려오는 두 손과 심장의 고동소리에 귀까지 멀어버린 건지 언제부터 파도소리마저 멎어선 벙어리처럼 멍하니 붉은 라이터의 빛을 응시했다. 불빛 너머 멜리사의 얼굴에 음영이 그려져 보였다. 아름다웠다. 너무도 깊은 눈을 가졌다. 한번 빠져버리면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눈. 그 속에 담긴 것들이 무엇일지라도 잠깐은 들어가 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인 눈이다.



 ‘입에 물고 살짝 빨아들여.’


 ‘후읍...켁! 콜록! 콜록!’


 ‘처음은 언제나 힘들지.’



 눈을 질끈 감고는 몸속으로 들어간 매운 연기들을 필사적으로 뱉어냈다. 나의 멍청하고 서투른 모습들이 웃겼던 건지 멜리사는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대었다. 처음으로 보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괴로워하던 나는 찔끔 흐르는 눈물을 닦는 척 눈을 살짝 뜨고선 힐끔 훔쳐보았다. 나쁘지 않다. 마음속에서 스스로에게 보내는 이야기였다. 지금 이 상황을 말하는 건지, 처음으로 피우는 담배연기를 말하는 건지. 나조차도 모르는 대답이었다.



 ‘어때, 괜찮아?’


 ‘좋아요..’


 ‘그렇지?, 계속 피우다 보면 익숙해 질거야.’



 사랑을, 아니면 담배를.


 찔끔 찔끔 담배를 나누어 피우는 어색한 나의 모습을 멜리사는 신기한 표정으로 관찰하듯 바라봤다. 어느새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고는 나와 속도를 맞추려는 듯 천천히 느릿하게 호흡을 가져가는 그녀와 나. 우리 둘은 그렇게 몇 분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선 담배만 뻑뻑 피워갔다. 필터 가까이 타 들어간 담배에도 누구하나 먼저 재떨이에 비벼 끌 생각도 없이. 시간이 지나 모든 담배의 불이 꺼지고 지독한 꽁초 끝단의 재 냄새가 손가락에 남아 흩날릴 때에도 꽁초를 버리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 낀 채 서로의 눈을 맞추어 대답할 수 없는 대화만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달빛만이 그녀와 나를 비추어 사이를 메워갈 때 즈음. 재떨이의 가득 찬 꽁초들 사이로 자신이 집고 있던 꽁초를 구겨 넣은 멜리사가 서서히 일어났다. 나의 손가락 사이에 남아있던 꽁초를 집어 재떨이에 대충 집어넣고는 내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켰다. 그리곤 나를 이끌어 객실의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미 밤눈이 익숙해진 듯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아 침실로 나를 데려갔다. 그 동안 그녀의 손에 힘없이 뒤따라가던 나의 심장은 터질 듯 두근대고, 눈앞이 희미해져 모든 것이 흔들려보였다. 내가 인테리어한 침대와 화장대, 옷걸이마저도.


  

 ‘나와 하룻밤 잔다면 두근대는 심장이 괜찮아 질 것 같아?’


 ‘.....’



 말없이 끄덕인 고개에 희미한 미소, 내가 그녀에게 보낸 충분한 답변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그날 밤. 멜리사 화이트와 몸을 섞었다. 그녀의 젖가슴을 빨고, 푹 젖은 꽃잎을 어루만졌다. 가녀린 교성을 지르고 달라붙은 몸 사이로 뜨거운 체온을 나누었다. 그녀의 품 안에서 헐떡이며 세상을 가진 듯 황홀한 오르가즘을 느꼈다. 진한 키스와 타액이 오가고, 잠깐이지만 깊은 두 눈 속에 빠져들어 포근하게 감싸는 바다와도 같은 편안함을 맛보았다.



 사랑은 없었다. 쾌락의 갈증만을 채워 나아갔을 뿐. 꿈같은 씁쓸한 하룻밤은 그렇게 시간을 타고 흘러갔다.


 타오르던 담배처럼.



 다음날 멜리사 화이트는 펜션 밖으로 나섰다. 지금까지 고마웠다는 말들과 함께 또 하나의 지폐다발을 내 손에 쥐어 주고는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갔다. 어차피 사라질 시간들이었다. 아니면, 아직도 내 마음속에 멈추어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언제라도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희미한 추억과도 같이 굳어있던 그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 가을의 삼일이 지나가고, 손님은 부쩍이나 줄어갔다. 그럼에도 아쉽지 않았다. 어떤 손님을 받아들여도 예전처럼 뿌듯한 여름날의 따듯함처럼 몸을 감싸오지 못했으니까. 내 여름은 그 가을을 지나치며 끝나갔다.



 나이도, 사는곳도, 직업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던 연인은 주황빛깔의 석양 같은 머릿결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만날 수 없이 바라만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마도 풍경 좋은 객실에 앉아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담배만을 피워대었던 것이겠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허니마렌씨.”


 “아 일어나셨네요, 좋은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이네요..”


 “네, 엘사씨도 좋은 아침이에요.”



 새콤한 드레싱이 잘 섞어진 샐러드와 신선한 샌드위치. 난 그것들을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내었다. 오랜만에 온 손님 두 명. 자신을 안나와 엘사. 라고 소개한 두 여성에게 가져가 창가에 자리잡은 그녀들의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놓았다.



 “언제 봐도 요리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후훗, 고마워요. 두분 다 맛있게 드셔주시면 감사할게요~”



 난 이제 담배를 피운다. 기억속의 그녀 멜리사 화이트처럼. 하얗게 흩날리는 연기들 사이 보았던 두 눈빛이 언젠간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그녀와 닮은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다.



 엘사 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하얀 백금발의 여자가 있다. 그때의 그녀처럼 깊고 짙은 눈을 가져선 나에게 심장을 뛰게 만들던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그녀. 하지만 내 여름은 오래전 끝이 났다.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곳에서 멈추어진 시간은 이제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녀의 곁에는 석양처럼 아름다운 주황머리의 애인이 있으니까. 멜리사가 말했던 광휘의 빛처럼 눈부신 얼굴의 안나가 있으니까.


 

 저런 눈을 가진 사람들은 저렇게 예쁜 머릿결을 가진 예쁜 사람들을 찾아 가는걸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운명처럼 엮어진 사랑일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동물적 감각의 하나일까?.



 과연 멜리사도 바라만 보아야 했던 애인을 찾아 다시 사랑을 이어나갔을까?.



 아토할란의 이차선 변두리. 펜션 올라프가 있다. 어릴적부터 가지고 싶었던 꿈같은 건물이 있다. 내 이름은 허니마렌. 이 꿈같은 펜션을 관리하는 작은 사장이다. 그리고 지금 여름날의 햇빛이 내리쬐는 일층의 카페 안에서 카운터의 원목 탁상에 턱을 괴고는 오랜만에 찾은 손님 두 명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들의 이름은 안나 와 엘사. 꽤나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는 이제 막 시작된 커플이다. 한명은 나의 기억 속 접혀있던 그녀와 닮았다, 그런 그녀의 건너편에는 참으로 어울리는 매력을 가진 또 다른 그녀가 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더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부디 그녀들의 사랑이 여름날의 열기처럼 따듯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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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6 286
1123711 청정한 헬요일 ㅇㅇ(223.62) 00:18 3 0
1123709 뒤조심)아 되게 충격적인 짤 봫는데 얘기할데가 여기밖에 없어 [6] ㅇㅇ(110.47) 06.09 38 0
1123708 디시 이미지 왜 깨져... ㅇㅇ(223.62) 06.09 10 0
1123707 누가먼저 보내나 시합! [1] ㅇㅇ(223.62) 06.09 19 0
1123706 일편단심 안개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17 0
1123705 넘쳐나는 go간 [1] ㅇㅇ(223.62) 06.09 25 0
1123704 축 늘어진 흰 옷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아기 [1] ㅇㅇ(223.62) 06.09 19 0
1123703 설갤 단점 ㅇㅇ(223.33) 06.09 13 0
1123702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0 0
1123701 그런가 [2]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700 아니 69라고 설갤러(118.43) 06.09 10 0
1123699 크 69가 와버렸다!!!! 설갤러(118.43) 06.09 12 0
1123698 엘산나를 만난게 행운이야 [5] ㅇㅇ(223.62) 06.08 29 0
1123697 배거파 [1] ㅇㅇ(110.47) 06.08 16 0
1123696 오늘막글 ㅇㅇ(223.62) 06.08 13 0
1123695 어 내일이 69잔아 ㅇㅇ(223.62) 06.08 12 0
1123694 쥬미 영화 보러옴 ㅇㅇ(211.234) 06.08 15 0
1123693 안탄절 지나면 엘탄절도 금방 ㅇㅇ(223.62) 06.08 14 0
1123692 모험가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17 0
1123691 싯발 언제 비 그친거냐 [1] ㅇㅇ(223.62) 06.08 19 0
1123690 수상하게 칼을 잘쓰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29 0
1123689 뭐지? 결혼식인가? [5] ㅇㅇ(211.234) 06.08 50 4
1123688 정령을 잡아다 예쁘게 묶어 공물로 바치기 ㅇㅇ(223.62) 06.08 20 0
1123687 혐퀘후식사 [2] ㅇㅇ(211.234) 06.08 18 0
1123686 오늘은 자동으로 실내활동 [1] ㅇㅇ(223.62) 06.08 18 0
1123685 자연스레 깊어가는 둘의 관계 ㅇㅇ(223.62) 06.08 19 0
1123684 아찜글 ㅇㅇ(211.234) 06.08 14 0
1123683 새벽글 [1] ㅇㅇ(115.138) 06.08 15 0
1123682 다다음주가 안탄절이네 곧 [2] PeopleOfArendel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2 1
1123681 안나가 엘사를 [1] ㅇㅇ(223.62) 06.07 29 0
1123680 엘산나의 금요일 ㅇㅇ(223.33) 06.07 14 0
1123679 여전히 존버중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25 0
1123678 안나vs안나는 기존쎄 대결일듯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33 0
1123677 애틋하게 뺨쓰담 ㅇㅇ(223.62) 06.07 20 0
1123676 눈 깜짝할 새 킹요일 ㅇㅇ(223.62) 06.07 20 0
1123675 원하는 초능력을 얻는 대신 댓글이 부작용을 정해줌 [18] ㅇㅇ(115.138) 06.07 85 0
1123674 크으 모닝갤먹 [1] ㅇㅇ(223.62) 06.07 21 0
1123673 [그림] 원치 않은 신앙 [10] 애호박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10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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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671 세명이서 서로 아래 핥으려면 원을 그려야하냐 [3] ㅇㅇ(223.62) 06.06 5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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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669 크읏 이러다 울룩불룩 설줌이 돼버렷 [1] ㅇㅇ(223.62) 06.06 26 0
1123668 엘사만 만나면 움츠라드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4 0
1123667 태어날 때 부터 얀데레 엘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46 0
1123666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1 0
1123665 이럴 때 정신놓으면 갓반인 된다 [2] ㅇㅇ(223.62) 06.06 30 0
1123664 말라간다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3 0
1123663 단편이나 떡밥 내놔!!! ㅇㅇ(211.234) 06.06 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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