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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32-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23 18:33:10
조회 199 추천 15 댓글 5


“아토할란의 볼거리는 뭐가 있을까요?”


 “음~ 그래도 바닷가 도시니깐요. 해변을 걸어보는건 어때요?”



 상큼한 샐러드와 신선한 채소가 곁들어진 푸짐한 샌드위치, 그것들을 몽땅 해치운 안나와 엘사는 아침의 공기를 맡으며 진한 하품을 하곤 창밖만을 응시했다.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묘한 웃음을 지어 보내기도 헀다. 두 사람의 기류는 카운터에서 그들을 흘깃 스쳐보던 허니마렌에게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한동안 따스한 햇빛을 마주하곤 멍하니 시간을 때우던 그녀들은 비어버린 그릇들을 정리에 카운터에 가져왔다. 엘사는 담배를 피우러 밖을 나섰고 안나는 그릇을 받아들이던 허니마렌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나의 생기발랄한 목소리에 허니마렌은 머릿속에 존재하던 고민들을 한 곳에 치워두었다. 명량한 그녀의 분위기는 카페 올라프와 참 잘 어울렸다. 안나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받은 허니마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상 속에 아토할란의 간단한 지도를 그려내었다.


 “원래 관광지는 아니라서요..으음..아!. 그래도 번화가에 가면 무언가 있지 않을까요?”


 “그것도 괜찮겠네요!”


 이대로 다시 자신들이 살아왔던 대도시로 돌아가기엔 무언가 아쉬웠다. 어찌되었던 이번 여행을 통해서 엘사와 새로운 관계가 되었지만 일주일간의 휴가 모두를 그녀와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남들의 생각보다 안나는 굉장히 바쁜 몸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엘사와 나눌 수 있는 추억들을 만들어서 돌아가려는 계획이었던 안나는 한시라도 빨리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시내의 규모, 특산품, 아니면 특별한 장소. 그런 것들은 상관없다. 엘사와 단 둘이 걸어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했다. 아무리 바다근처의 작은 도시라지만 황량한 폐 간판만 세워져 있지는 않을 것이니까. 분명 나쁘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어림짐작 했다.

 

 “그러면 오늘 시내를 돌아보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그렇겠죠?”


 안나와 허니마렌의 두 눈동자가 동시에 어딘가로 향했다. 카페의 정문 밖, 재떨이 앞에서 담배를 퍽퍽 피우고 있는 청바지와 청자켓, 하얀 백금발의 여성. 엘사 아렌델. 엘사는 두 사람의 눈빛을 느꼈는지 저 먼 바다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카페의 카운터로 눈길을 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마저 담배를 다 피우곤 긴 하품을 뱉으며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뚜벅뚜벅 카페 안으로 걸어들어 오는 사이 바람이 불어 엘사의 머릿결이 살랑였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는거야”


 엘사가 카페 안으로 들어와서는 카운터 뒤에 놓여있던 메뉴판들을 훑어봤다. 출발하기 전 마실 것들을 고르는 듯. 허니마렌은 천천히 움직이는 푸른 눈동자에 미소를 머금어 바라보았다.


 “엘사씨. 오늘 떠나시나요?”


 -아이스 카페모카, 짧게 중얼거린 엘사는 안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카운터의 작은 조각인형들을 신기하게 만지던 안나는 -같은 걸루요. 라는 한마디를 중얼거리곤 다시 조각인형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주문을 받은 허니마렌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무언가 기대한다는 눈빛으로 엘사의 얼굴을 보았다. 확실히 처음 이곳으로 도착했을 때보다 달리진 표정과 눈망울이 되어있었다. 안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멍하니 생각에 잠긴 표정 위에도 말할 수 없던 보이지 않는 얇은 커튼이 사라진 것처럼 생기가 감돌았다.
 
 “..네 뭐, 오늘 밤 안에는 도착해야하지 않을까요. 안나도 바쁠 것 같은데요”


 허니마렌의 말에 엘사는 아쉬운 듯 씁쓸히 웃었다. 하지만 더 이상 펜션에 머무는 것도 일종의 민폐이다. 돈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면서 마지막까지 무료로 음료수를 만들어 주는 허니마렌의 친절함은 감사하지만. 며칠간 더 있겠다고 한다면 장사에 방해만 될 것이다. 거기다 안나는 자신보다 몇 배는 바쁜 사람이다. 아마 지금도 매니저에게서 오는 압박들을 겨우 쳐내고 있겠지. 안나와의 하룻밤.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한 여행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엘사의 씁쓸한 웃음에 허니마렌 역시도 아쉬운 듯 보였다. 시간은 흘러간다. 매번 새롭고 신기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언젠간 헤어져야 하는 잠깐의 인연일 뿐. 허니마렌 에게는 안나와 엘사 역시 잠깐 휴식을 취하며 삶을 돌아보던 사람들, 그들처럼 원래 본인들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행객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비슷한 계절의 휴가철에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랄 뿐. 하루만 더 있어달라고 잡아놓고 진상을 피워서도 안 되지만 피운다고 해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빠르게 머릿속에서 아쉬움을 지워가는 그녀였다.


 “..으음..그러시군요.. 혹시 제가 말씀드렸던 건 이루셨나요?”


 커피 두 잔을 만들기 위해 몸을 돌리던 허니마렌의 입에서 스치듯 뱉어나온 말. 귀에 아른거리는 허니마렌의 목소리에 엘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사랑을 이루었는가. 에 대한 장난스러운 질문에 엘사의 머릿속에는 어제의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자신은 안나와 키스했다. 그것도 엄청 열정적으로. 서로의 은밀하고 소중한 부분을 더듬거리고,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어 잠에 들었다. 서로는 서로를 몸에 딱 맞는 인형처럼 껴안고는 깊은 꿈속으로 빠졌다.


 “...네..”
   
 점점 빨갛게 바뀌는 두 볼. 그것을 본 안나는 엑, 하는 의아스러운 표정이 되어 조각인형들을 뒤로 한 채 카운터로 몸을 기울였다. 허니마렌은 주방 옆 커피머신 앞에서 피식 입 꼬리를 올린 채 열심히 커피를 만들고 있다. 엘사는 왜인지 모르게 빨개져버렸다. 흐음, 하는 콧방귀를 뀐 안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뭔데요. 뭔데요.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했길래 얼굴이 빨개져요?”


 “..아무것도 아니야..”


 “안나씨는 좋겠네요~”


  엘사가 눈을 피하고는 안나의 옷자락을 잡아 꾹꾹 잡아당겼다. 힘없이 당겨지는 옷자락의 느낌과 수줍게 머뭇거리는 엘사의 행동을 보자 자신은 모르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두사람에게 샘이 났던 것인지 안나의 눈빛은 가늘게 노려보는 고양이처럼 되어선 커피머신 앞의 허니마렌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 눈빛을 받고 오히려 환한 미소를 띄워 보내는 허니마렌을 보자  김이 빠지듯 생각했던 것만큼 재밌는 주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 판단했는지 다시 평소의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엘사씨가 부럽네요. 저렇게 질투해주는 애인도 있구요~”


 “...아 예..음..”


 “당연하죠! 엘사는 내껀데요!”


 손을 허리춤에 올려놓고 던져버린 말. 그 당당함에 엘사와 허니마렌 모두 멍하니 안나의 얼굴을 훑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오고, 대답 없이 안나를 바라보던 허니마렌은 배를 잡고 까르륵 웃고 말았다. 엘사는 더더욱 빨개져서는 이젠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고 겨우 서서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 있었다. 물론, 어제 떨리는 정사를 가지면서 안나의 본 모습을 살짝 엿보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당돌할 줄은 몰랐던 터라, 엘사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려대었다.


 “안나아아...난 물건이 아니야아..”


 기어들어가는 엘사의 목소리를 듣자 허니마렌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커피머신의 위에 플라스틱 컵을 올려두고선 제대로 터져버린 듯 꺄르륵 대는 모습을 보니 안나의 얼굴이 더 당당해지곤 흥, 하는 콧김마저 불었다. 마치 추억속의 소중한 곰돌이 인형을 되찾은 것 마냥 당돌하고 까칠한 귀여움이 묻어나는 안나의 행동에 허니마렌은 상큼한 과일을 맛본 것 같은 미소를 띄웠다. 정말이지 매력적인 여자구나. 라는 속마음과 함께.


 겨우 만들어진 카페모카 두잔. 그것들을 받아들일 때에도 엘사의 볼은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물론 아까 전 보다는 가라앉아 두근거리는 심장과 감정들이 드러나지 않고 차분해 졌지만, 안나의 충격 같은 한 마디 뒤에도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리던 –내꺼 맞는데.. 라는 소신 있는 발언 덕에 한 동안 안나에게 엘사 자신과 안나의 관계에 대한 은밀함을 설명해야 했다. 남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우리 연애하는데요!. 라고 떠벌리고 다니면 안 되지 않은가. 그랬다가는 정말 엘사는 어느 날 팬들에게 둘러 쌓여서 돌에 맞아 죽어도 어색하지가 않을 거다.


 “..응..그러니까 알겠지?..남들 앞에서는..”


 “알았어요. 흥!”


 “..왜그래에에..”


 몹시 까칠거린다. 시큼한 레몬의 껍질처럼 앙 하고 깨물면 팍, 하고 과즙이 튀어 나올 것처럼 귀여우면서도 상큼한 반항이 가슴속을 간질거리게 만든다. 어째서인지 안나는 어제 그런저런 일이 있은 뒤로 엘사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듯 옅은 스킨십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유혹하는 고양이처럼 엘사의 마음을 이리저리 뒤흔들고 있었다. 방금 전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먹을 때에도 갑자기 손깍지를 끼는 탓에 사례에 걸릴 뻔 했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기분 좋은 흔들거림, 심장이 콩닥 대다가도 지진 뒤에 찾아오는 여진처럼 작은 간질거림과 함께 포근함이 감돈다. 아침부터 몇 번을 느꼈는지 모른다. 혹시나 이게 연애감정일까 하고 스스로 되물어 보기도 했지만. 한 번도 인생에서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엘사이기에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혼자서만 가지고 있던 고민이었다.


  안나는 고개를 홱 돌려선 콧김을 분다. 그리고 엘사는 쭈구리가 되선 안나를 걱정한다. 혹시나 무언가 잘못한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연인들이 주로 하는 걱정들. 카페모카를 두 손에 받아들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려 문밖을 향한 안나의 고개와 등 뒤를 본다. 엘사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콧김을 불고 홱 고개를 돌린 뒤, 안나의 얼굴에 피어난 행복한 입 꼬리를.

 

 ‘귀여운 커플이야.’


 모든 것을 지켜보는 허니마렌은 정말이지 깔깔 웃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흘깃 자신을 보던 안나의 눈 속에 담긴 장난스러운 명량함을 보았다. 이대로 놔두어도 괜찮겠지. 참 어울리는 두 사람이다. 문 밖을 나설 때까지도 안나와 엘사 두 여자는 서로의 색깔로 카페를 물들였다.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 색채로. 초록빛깔 물감과 하늘색 물감이 만나 보이지 않을 명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떠난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주차장까지 같이 걸어간 뒤, 엘사와 안나가 차에 탑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곧 시동이 걸리고 거칠지만 귀에 걸리지 않는 엔진음과 함께 자동차가 갸르릉 댄다. 선팅이 짙은 창문이 내려가고 운전석과 조수석, 각자 자리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환한 미소가 보인다. 허니마렌 역시도 애써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띄워 보내주었다.


 “고마웠어요.”


 엘사는 손을 휘적거리며 인사를 했다.


 “두분 다 다음에 또 보기를 바랄께요.” 


 허니마렌은 평소와는 다른 공손하게 모은 두 손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있어요~!”
 
  허니마렌이 만들어 준 카페모카를 쫍쫍 마시던 안나는 컵을 홀더에 가져다 놓고는 두 손을 펄럭펄럭 흔들었다. 그 격한 인사에 허니마렌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작게 살랑여 주었다.


 ‘부우웅’


 자갈밭을 해쳐 나가는 검은색 승용차. 저 먼 곳까지 나아가 번호판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을 흔들던 허니마렌은 아쉬운 듯 입을 달짝이더니 천천히 재떨이로 걸어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펜션 올라프는 또 다시 기분 좋은 고요와 정적 속에 쌓여간다. 여름날의 휴가를 오는 손님들이 많은 성수기는 아직 멀었지만, 이번 여름은 참으로 재밌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근거리는 상상을 해본다.



 “보고싶네요. 멜리사”


 맑은 하늘 아래 절벽에 위치한 펜션, 카페 올라프. 석양의 비경과 황금 같은 백사장. 푸른 해변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아토할란은 여름날의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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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미안ㅠㅜㅜ 요근래 다른것도 쓰고 지우고 하다보니까 정작 연재하던건 소홀이 해버렸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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