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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41-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19 20:20:02
조회 177 추천 11 댓글 5



귀청이야. 별안간 라푼젤은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쏘아보며 이를 갈아대었다. 뭐 문제라도 있는건가. 나름 배려해줬다고 해준건데. 잘만 자더니 악몽이라도 꾼걸까.



“밥먹어. 점심시간이야.”


“어? 어..고맙다.”



라푼젤은 멍청한 표정으로 주위를 잠시 둘러봤다. 학생들은 이미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다들 뛰어나가버렸고, 교실안에 남아있던 사람은 나와 라푼젤. 단 둘 뿐이었다. 잠을 자느라 몇시간이나 흘렀던것인지 알지 못했겠지. 점심시간일때만 깨어있으면서 밥먹는것을 가장 좋아하던 라푼젤이였기에. 난 그녀가 어서 급식실로 사라져주기를 바랐다. 그래야지 학교에 있는 시간들 중 그나마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여유가 찾아왔으니까.


“야 밥먹으러가자”
“....”



난 그녀의 말을 애써 못 들은척 무시했다. 다행이 귀에 먼저 꽂아넣었던 이어폰 덕분에 자연스럽게 교실의 어딘가로 흘러가버린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야 안들려? 밥먹으러 가자고!”
“....”



그리고 그녀는 정말 집요했다. 도대체가 혼자가서 맛있게 밥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왜 나를 대려가려는 건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사라진 목소리는 또 다시 귀를 때려대었고 나는 반응하지 않으려 애썼다. 고개라도 돌리면 또 다시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하는 귀찮은 감정이 앞섰으니까. 그러자 그녀는 내 교복 어깨를 두드리며 어떻게든 대리고 가겠다는 듯이 행동했다.



“...야!!!”
“어, 왜”



결국 나는 귀에 꽂아넣었던 이어폰을 빼서는 할수있을 만큼 얼굴을 찡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내 표정을 보며 기분이 나빠져서는 두고 가버렸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어떤 화도 내지 않고 내 표정을 보며 오히려 의아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점심을 거르는 사람을 처음 본 것 마냥 행동했다는게 더 맞는말일지도 모른다.



“밥먹으러 가자고! 너 때문에 목 쉬겠다 야.”
“내가? 왜?”



난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지금까지 잘 지켜오던 습관을 이 여자아이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트리고 싶지 않았다. 제발 혼자 가줬으면 좋겠는데. 라는 말은 이미 내 팔을 잡고 있는 힘껏 나를 일으켜 세운 그녀 덕분에 산산히 부숴지고 말았다. 이 여자는 사람이 불편해 하는 것을 건드리는게 취미인걸까. 아니면 정말 눈치가 더럽게 없는 타입일까. 머릿속에서 그녀에 대한 여러 욕짓거리가 오갈 때. 이미 그녀는 나의 팔을 붙들고 급식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너 밥 안먹고 살아?”
“아니”


“그럼 뭐, 급식이 맛 없어?”
“아니.”


“그럼 따라와!! 튕기기는..”


이쯤 되면 놔줬으면 싶었지만 조금씩 음식들의 향기가 피어올라오고. 그럴수록 계단을 내려가는 라푼젤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수업 내용은 전혀 외우지 않으면서 매일 바뀌는 점심 식단은 잘도 외우는지 그녀는 한걸음 한걸음 급식실에 다가갈수록 오늘 나오는 메뉴들을 중얼거리며 ‘제발 남아있어라’ 라고 연거푸 말했다.



“아 배고프다~”



결국 그녀의 손에 붙들려 질질 끌려온 나는 수 많은 학생들이 모여있는 급실식에 들어가고 말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집는둥 마는둥 하며 식기류들을 집었고 그녀는 방실방실 기대된다는 마음으로 내 앞에 서서는 콧노래를 불러댔다. 그럴수록 나는 오늘만 같이 먹어주고 말아야지. 다음은 없게끔 만들어야겠다. 라고 연신 다짐했다.



“하 이년들은 나 버리고 어디간거야”



그녀는 평소 나처럼 혼자 있는 일이 많았다. 어찌 보면 성격이 완전 다른 아웃사이더 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누구도 나를 반기지 않았고, 누구도 그녀를 반기지 않았다. 라푼젤은 너무 거칠어. 입이 험해. 매일 잠만자는 얘랑 같이 붙어있는걸 누가 좋아하겠어. 라는 말들이 쉬는시간에 오갔다. 하지만 라푼젤은 그런것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지나가는 남학생에게 틈만나면 말을 걸어댔고, 눈을 뜨면 보이는 여자애들 무리에 스스럼 없이 끼어들어갔다. 물론 그럴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고는 그녀가 보지 못할 때 서로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라푼젤을 욕하기 바빴지만. 참으로 대단한 성격 덕분인지. 아니면 그저 마음가는대로 자신이 원하는 감정들만 충족하면 모든게 괜찮았기에 그랬던 것인지 내가 보는 라푼젤은 살면서 처음 느끼는 타입의 아이였다.



“야! 나빼고 밥 먹으니까 좋냐?”



저 멀리서 자기들끼리 모여 밥을 먹으며 재잘대는 무리들. 그곳을 향해 라푼젤은 환한 미소를 띄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에 먹던것도 떨어트리며 깜짝 놀란 그녀들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미안하다는 체스쳐를 취했다. 곧, 고개를 돌린 채 눈을 내리깔고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라푼젤 쪽을 노려보며 인상을 찡그리기는 했지만.



“전혀 널 반기는 눈치가 아닌데?..”



그리고 나는 그런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남들의 치부를 금방 잡아내고 그 자잘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차곡 차곡 쌓아가는 것을 즐기곤 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별 쓸모도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던 나에게는 이것만이 유일하게 사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나쁜 습관들에 금을 가게한 장본인이 바로 내 앞에서 군침을 흘리며 자신에게 쌓여가는 음식들을 바라보던 여자. 라푼젤이었다.



“그건 지들 사정이지 어쩔 거야.”


“..아하..”



가장 구석진 자리. 햇빛이 강하고 테이블 중에서 낡은 것들만 모아져있어 학생들이 잘 앉지 않는 곳. 거기가 라푼젤의 전용석인 듯 했다. 햇볕을 한껏 받는 것을 좋아하던 라푼젤은 남들이 기피하던 그 자리를 자주 이용하는 듯 했다. 밥을 다 먹고 종이 칠때까지 계속 음식을 받아오던 동안 누구도 테이블에 오지 않았으니까.



“야 근데 넌 급식실에 잘 안보이더라.”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밥을 꾸역꾸역 집어넣고, 나머지는 남긴 뒤 터덜터덜 걸어가던 그녀는 뒤따라오던 나를 향해 갑자기 질문을 걸어왔다. 잠만 자는줄 알았더니 나름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은 있었나 보다. 하고 새로이 바라보게 된 계기였다.



“맨날 학교에서 잠만 자다가 점심시간에만 눈 떠 있으면 급식실에서 보는 얼굴들 밖에 기억에 안남지.”


“..오..일리있네..그럴만 해.”



그리고 자아성찰도 잘 하고 있는 듯 했다.



“..너 지금 나 욕한거지.”


“아닐걸”



조금 멍청해 보이는게 단점이긴 했지만.



교실로 돌아가는 내내. 그녀는 이때다 싶었는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정말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리 물음을 던졌던 건지. 잠을 자러 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잠깐 말동무가 필요했기에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라푼젤은 양호선생님이 된 것 마냥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선 내 몸을 진찰하듯이 이곳저곳을 훑어보거나 머릿속에 있는 문답지를 작성하는 것처럼 여러 질문들을 던져대었다.



“하아..뭐 아무튼.. 왜 평소에 밥 안먹어? 별로 입맛에 안 맞아?”

“그건 아닌데”


“맛있는데.. 어디 몸이 안좋아?”

“딱히”


“아..그렇네! 같이 밥먹을 사람이 없지?! 그래 그래~ 이 언니가 이제부터 같이 밥먹어줄께!!”



그녀의 지식수준은 바닥을 기고 있었지만. 직감만큼은 확실했다. 평소였으면 혐오스러운 표정을 하고 그 자리를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겠지만. 그녀의 너무도 크고 당당한 목소리와 스스럼없이 사람 배알꼴리게 만들 줄 아는 화법에 나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랫입술을 물어댈 수 밖에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아! 사양안해도 돼! 괜찮아 괜찮아~”



본격적으로 라푼젤이 나와 같이 밥을 먹겠다고 선언 아닌 선언을 나에게 통보했을 때.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있던 고정관념들과 심장을 얼려놓던 얼음들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도 다른 사람과 함께있다보니 생기는 스트레스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 자체가 사람을 살갑게 만드는 마술같은 힘을 가진 거겠지.



원치 않던 점심시간이 있은 뒤. 라푼젤은 학교의 모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잠에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왠일인지 코도 골지 않고 조용히 숨만 새근새근 거린 덕분에 나 역시도 불편하지 않게 수업을 잘 들을수 있었다. 마지막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짐을 모두 챙긴 나는 학생들이 나가는 와중에도 자리에 누워 잠을 자던 그녀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곤 그녀가 입을 뻐끔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려할 때 자리를 슬며시 빠져나왔다.


그렇게 몇주가 흘러갔다. 매번 반복되는 라푼젤과 원치 않는 점심식사.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짤막하게 던지는 인사. 그것들이 그녀와 마주치는 대부분 일상이 되어갈 즈음. 버스비가 모자라 집까지 걸어가야 하던 날. 학교가 아닌 다른곳에서 그녀를 만나고 말았다.


내가 그녀를 발견한 곳은 공원이었다. 아이들도 놀다 지쳐 모두 떠나버린 황량한 공원. 까끌스러운 모래만 가득한 그곳에서 라푼젤은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모자란 햇빛이 있는걸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떨어지는 석양 마저도 온몸으로 마주하며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야 앗! 안녕!”



지나가던 길이었다. 흘러가던 시선에 뜻밖에 발견한 그녀였기에 나는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내 발소리가 컷던 것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라푼젤은 못 본척 하고 내 갈길을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던 나를 불러세웠다. 아 제발.



“안녕”


“아...이름이 뭐더라..”


“엘사 아렌델”



지금까지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니.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나올뻔했다. 하긴, 원래 이름도 잘 못외울 것 같았으니까. 원래 이런 부분은 체념하고 있던 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으니까.



“아 진짜 미안해, 너 이름은 절대 안 잊을께 미안하다!”



잊어도 괜찮긴 한데.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 다시 잊어버릴거 같은데.



“뭐 괜찮아..그럼 안녕”



나는 그녀가 보았든 보지 않았든. 손을 빠르게 휘적거리고 몸을 돌렸다. 내일 저녁 식재료를 사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걸음을 움직여 동네에 도착해야만 했다. 짧은 인사에 아쉬운건 쟤고 내가 아니니까.



그리고 라푼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어지던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내 뒤를 종종종 따라오기 시작했다. 어디 동네에 돌아다니던 개가 소세지를 주던 이름모를 아저씨를 따라가는것도 아니고. 그녀와 나의 거리는 참 멀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만큼 빠른 걸음으로 내게 점점 다가왔다.



“어디가?”
“나?, 집.”


“아하..”
“너는?”



예의상 물어봤다. 정말로.



“나? 그냥..산책?”
“산책을 교복입고 해?”


“아니 뭐..어쩌다 보니까? 하핳하핳...”



흐음, 하는 짧은 한숨과 함께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다리에 힘을 가해 걷는속도를 빠르게 가져갔다. 늦어선 내일 저녁을 인스턴트 음식으로 떼울지도 몰랐다. 조금씩 멀어지는 걸 알았으면 알아서 자연스럽게 헤어지면 괜찮을 텐데. 라푼젤은 내 걸음에 맞춰서 뒤처지지 않으려 했다. 누가 보면 때 아닌 학생들의 경보 경주로 착각할지도 모르는 웃픈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 나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너 밥 먹었어?”
“아니 아직.”



이젠 내 저녁시간까지 노리고 있을 줄이야.


“잘 됐다! 밥먹자!”
.
.
.

------------------------------

내 글에 관심 가져 주는 쥬미들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ㅠㅜ 미천한 글솜씨 봐줘서 정말 고마워! 이 스토리는 금방 끝날꺼야! 그 뒤에 본 편으로 다시 넘어갈테니 조금만 기다려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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