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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유혈주의]REMAKE/ 운전교육 -48-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30 15:04:05
조회 470 추천 10 댓글 2


배경음악 꼭 들어주기를 바라!



“니들이 죽인 로버트 피츠허버트의 딸!! 라푼젤 피츠허버트가 돌아왔다 이 씹새끼들아!!!”


“이, 이런 미친년..!!”


“다 죽어 개새끼들아아!!!”



황소같은 발돋음질. 라푼젤이 고함과 함께 검은옷들의 사내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수십명의 남자들이 무섭게 달려든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녀는 칼을 빼들고 눈앞에 벙쪄있는 사내에게 몸을 부딪히며 시퍼런 칼날을 몸안에 잔뜩 구겨넣었다. 처절한 눈물과 함께.


“이, 이 씨발년이...!!”


“죽어...죽어어!!!”



흑과 백, 커피와 우유. 그리고 펼쳐진 딸기시럽들. 참혹한 피분수의 광경속에서 나는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라푼젤이 선두에 서서 남자들의 허벅다리와 복부에 푹푹, 칼을 찔러넣고 지나가면 스즈키복의 무리들이 그들을 둘러쌓아 미친 듯이 자신들의 흉기를 내리찍는다. 그들이 지나가고 나면 곤죽이 되어 몸을 축 늘어트린채 혼절한 산 송장들만이 남을뿐.



“..으아아아...”



나는 대열의 맨 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창백한 얼굴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이건 영화가 아니었다. 지독하리만큼 사실적인 현실이었다. 때리면 실리콘 분장이 아닌 진짜 얼굴이 뭉게지고, 찌르면 잉크가 아닌 녹내가 진동하는 비릿한 피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방금까지 친구라고 생각했던 라푼젤이 서 있다. 악마같은 미소를 하고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려대는 그녀가 있다. 순식간에 온 몸이 핏물로 적셔진 채 금발을 휘날리는 악마이자 가녀린 소녀.



“..우욱...우웨에엑!!”


“끄아아악!!! 제발!! 제발!!”


“엄마아아아!! 엄마아아아!!!”



방금전까지 라푼젤을 보고 욕짓거리를 뱉었던 남자들은 눈을 감았다 뜨니 내 옆에 쓰러져 있었다.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웅크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배에서 울컥거리며 튀어나오는 내장들을 손으로 겨우 막아내고 있다. 어려보이는 이십대의 남자는 찢어발겨진 허벅다리에서 끊어진 핏줄을 찾으며 죽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반쯤 정신을 놓고 자신의 어머니를 부르짖고 있다.



“씨발새끼들아!! 니들은 날 죽였어야 했어!!!”


“내 아버지를 죽이고도 편하게 잠들 수 있을꺼라고 생각해?!!!”



야구배트를 든 남자가 라푼젤이 소리치는 틈을 타 그녀의 머리에 배트를 내리찍으려 했다. 방망이는 그녀의 머리로 떨어지고, 라푼젤은 팔을 들어 팔꿈치로 그것을 막아냈다. 깡, 하는 섬뜩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의 라푼젤은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져들었는지 전혀 밀리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씩씩 거리며 콧김을 불어대었다.



“씨발년이..!!”


“죽여봐..어디 한번 죽여봐 이새끼야!!”



또 다시 방망이가 하늘을 향했을 때, 라푼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던지듯 어깨를 부딪혔다. 남자는 눈 아래까지 순식간에 다가온 그녀를 보고는 두 눈을 부릅뜨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녀를 지금 죽이지 않으면, 그가 죽을 것이다.



야구배트는 또 한번 허공을 가르고, 상체를 숙인 채 그를 파운딩 하려는 라푼젤의 등에 직격했다. 하지만 라푼젤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배트를 휘두르느라 중심을 잃은 그를 손쉽게 땅바닥에 패대기 쳤다. 순식간에 정원의 흙투성이가 된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라푼젤은 남성의 위에 반쯤 올라타서는 자신의 칼을 남성의 몸 이곳저곳에 찍어누르듯 찔러대었다.



‘푹! 푹! 퍼억!’


“...허어어...커억...”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폐 속에 잔뜩 뚫린 구멍들 사이로 공기가 빠져버렸으니까.



“살려주세요!! 한번만 살려주세요!!”


“닥쳐 이새끼야!!”



모르겠다. 누가 옳은 걸까. 누가 더 잘못된 걸까. 서로는 서로에게 칼과 흉기를 겨눈다. 라푼젤이 앞서나가 남자들의 몸에 한 두방씩 고통을 선사해줄 동안 수십명의 하얀색 옷을 입은 사내들과 또 다른 무리의 사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서로를 죽이려 들었다. 하지만 숫자에 밀려 일방적인 학살이 되어갈뿐. 이 사람들은 그저 밤중의 보초를 서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들을 보며 무력하게 쓰러져갔다. 당황스러움도 지우지 못한 채 자신의 몸에 난 칼자국들과 정원을 수놓는 빨간 핏물을 보며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도 판단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울부짖는 사람들을 무참히 팬다. 애워쌓아서는 비명을 지르지 못할떄까지 밟아댄다. 이윽고 그들은 아무런 말 없이 혼절하고 만다. 폭력의 반복. 나는 맨 뒤에서 이 광경들을 모두 지켜보며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혹시나 나에게 날아올지 모르는 흉기를 쫓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려줘...살려줘어...”


“꺄악!!”



입에서 피를 질질흘리는 남자가 내 발목을 잡았다. 얼굴은 알아볼수 없이 짓이겨저 있었다. 어디서 나온 힘일지. 서 있는 나를 넘어트릴 만큼 쭉 끌어당긴 그는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나의 발목, 무릎, 허벅지를 끌어안으며 부둥거렸다. 이미 두 다리는 부러진 듯 일어서지 못하고 낑낑대며 바닥을 기고있었다. 내 몸을 지탱해서 일어나 도망이라도 치려는 것 같았다. 핏발이 선 눈으로 파르르 떠는 내 몸을 올라타려 하고 있었다.



“개새끼가!!”



그때였다. 가장 먼저 앞서나가고 있던 라푼젤이 어느새 내게 달려와 남성의 얼굴을 걷어찼다. 어찌나 세게 맞았던지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 나뒹굴던 그는 이내 축 늘어지며 아무런 힘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손끝만이 간헐적으로 부들거렸다. 저 사람도 곧 죽게 되겠지.



“정신차려!!”


“...라, 라푼제에엘...”


‘짜악!’


“난 널 도와줄수 없어. 그러니 네 몸은 너가 직접 지켜!”



그녀가 내 볼을 후려쳤다. 왜인지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거침없는 고함과 얼얼해진 볼이 정신을 일깨워준 것만 같았다. 공기를 가르며 먹먹하게 다가왔던 비명들과 흉기들이 맞붙는 파열음들이 일순 내 귀 앞에서 들리듯이 가깝게 느껴졌다.



“안될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라, 라푼젤..”



그녀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있다. 하얗던 스즈키복은 벌써 빨간색 핏물로 축축히 적셔져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그녀의 복부쪽에 길게 찢어진 옷가지를 말이다.


라푼젤도 온전치 않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였을까. 맨 처음 몸을 던졌을 때 칼을 가졌던 사내에게 베인걸까. 상처는 구겨진 옷가지에 가려 볼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부터 번진 핏자국에 단번에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 스스로의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저들에게 몸을 불태우고 있다.



엘사, 너는 라푼젤에게 짐이 되어선 안 돼. 여기서 빠져나가 도망을 치던지, 맞서 싸워야 해.



“싸, 싸울게! 걱,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믿는다. 그러니까 죽지 마.”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이었다. 라푼젤이 싱긋 웃는 얼굴로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핏물이 내 하얀 머릿결에 흥건이 묻어가고 진득하게 달라붙는대도 기분나쁘지 않았다. 처음으로 마주하게된 죽음들 사이에서의 웃는 얼굴. 아마도 그녀는 이 생활이 정말 싫지만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익숙해져서 지금껏 잃어왔던 행복을 전쟁터 사이에서 찾은 걸지도 모른다. 그녀의 미소가 거짓이었든,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기뻐했던지 간에. 나는 라푼젤이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내주고 뒤 돌아서 또 다시 참혹한 살육의 현장으로 빠져들어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은 생과 사가 철저하게 나뉘어지는 갈림길이었다. 내게 다가오는 사람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는, 자비따윈 존재하지 않는 심판대 위처럼.



“저년! 저년을 잡아!!”



새로운 무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정원안에 있던 남자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차지한 뒤. 뒤이어 큼지막한 대문이 열리며 칼을 든 정장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어림잡아 우리들과 다를 것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당당히 서있는 라푼젤이 있었다. 남성들은 부들거리는 칼 끝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익!! 죽, 죽여버려!! 저년을 죽이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어디한번 죽여봐!! 들어와아아!!”


분명 두려웠을 것이다. 라푼젤의 모습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빨간 악귀, 귀신같이 늘어트린 장발은 붉은 핏물로 푹 젖어있다. 핏발이 잔뜩 선 눈동자와 목 위로 드러난 힘줄들. 달빛에 반짝이는 푸른 단검을 부러질 듯이 쥔 손. 죽음을 결의한 그녀의 정신은 그저 하룻밤의 쾌락을 쫒던 그들과는 너무도 다른 눈을 하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자와 살기를 바라는 자.



‘챙!’



내리찍던 칼을 막아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인 남자의 팔뚝을 꽉 물어버린 라푼젤은 남자의 눈을 노려보며 입으로 팔뚝을 물고, 한손으로 얼굴을 짓이기는 상태로 우당탕탕 앞으로 걸어들어갔다. 고등학생 여자에게서 나오지 못할 힘으로 밀려버린 남자는 당황하며 씹어댈 듯이 팔을 문 입을 잘근대는 라푼젤 덕에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이이익...끄아아악!! 내 팔!! 이,이거 안놔?!!....커어억..!!”


“...즈그브아...이스끄야..”



곧, 등 뒤에 벽과 마주하게 된 그가 허겁지겁 주위를 둘러보며 빠져나갈곳이 있는지 찾았고, 그때를 놓칠새랴 한 번더 그를 밀어 벽과 밀착시킨 라푼젤은 칼과 칼이 맞대어진 남자의 팔에 힘이 빠진 것을 눈치채고는 순식간에 까까각 거리며 칼날끼리 힘싸움을 하던 것을 빼내어 푹푹, 가슴팍에 찔러넣었다.



팔을 문 입을 떼지 않은 상태로 그의 눈동자가 총기를 잃어가는 것을 빤히 바라보던 라푼젤은 고개를 들어 현재 흘러가는 상황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 나왔던 정장을 입은 사내들의 숫자가 무리들의 머릿수와 비슷하다. 자신의 무리들은 이미 한번의 싸움을 치룬탓에 힘이 빠져있을 것이다. 남자를 밀어낸덕에 어쩌다보니 우당탕 먼저 집 안으로 들어와버린 라푼젤은 자신이 대문 앞에서 싸우는 그들과 자신이 노렸던 목표, 우두머리들 사이에 있음을 자각하고는 날쌘 눈매로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을 거듭했다.



“..지금..지금이 기회야..그새끼들이 도망가기전에 해치워야 해..”



홀로 떨어진 라푼젤에게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다. 그 말은 즉슨 건물 내부에는 더 이상 자신들을 방어할 인력이 남지 않았다는 것. 저 양복의 남성들이 이 건물에 있던 마지막 조직원들이다. 그렇다면 분명 그들은 이 자리를 몰래 빠져나가 다른 지역에 산개해 있는 자신들의 조직원들을 불러모아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알쨜없이 이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끝맺음을 당하게 된다.


그들이 도망치기전에 뱃속에 칼을 찔러넣어야 한다.



“엘사!! 따라와!!”


“..으, 응!!”



라푼젤의 머릿속에선 나를 싸움터 한 가운데에 홀로 있게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정장의 남성들과 하얀스즈키복의 남성들의 숫자는 비슷했다. 자칫하면 전투에서 질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홀로 남아있던 내가 살아남은 정장의 남성들에게 당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일. 어찌 되었든 칼은 뽑혔으니 누군가를 베어야 한다. 아마도 자신곁에서 행동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는지 나를 부른 라푼젤은 무리들에게 잡히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온 내 손목을 잡고는 건물 안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내 옆에서 꼼짝말고 있어! 여기가 더 안전하니까!!”


“알, 알겠어!!”



이곳은 그녀가 살던 집이었다. 방 구조를 기억해내는 것쯤이야 쉬운일이었다. 이미 자신의 원하는 표적은 어디있는지 불보듯 뻔해보였다. 몇 개의 입구를 지나치며 빠르게 달려가던 라푼젤은 가장 고급스러운 장식이 들어가 있는 큼지막한 미닫이 문을 발로 걷어차며 뛰어들어갔다.



“나와 이새끼들아!!”


‘콰지직!’



얇은 창호지로 덧대어진 나무로 된 문이었다. 손쉽게 부러지며 날아간 문. 그러자 눈앞에는 그녀에게 익숙할 것 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갈색의 나무 장판. 벽에 걸어진 기다란 검과 병풍. 주황빛깔로 아른거리는 촛불.



“...아, 아빠...”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시신과 덤덤하게 앉아있는 더러운 늑대들. 이미 늙을대로 늙어 뱃살이 출렁거리는 중년의 남성 세명이 눈을 감고 일렬로 앉아있었다. 그들의 앞에 거구의 몸을 가지고 편안한 얼굴을 하며 잠들어 있는 남자. 라푼젤은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깊게 파인 눈. 오똑한 콧대와 호기롭게 뻗은 수염. 하지만 그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어있다. 그녀를 기다렸던 걸까. 세 명의 남성들은 라푼젤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들고 감았던 눈을 떴다.



“..드디어 오셨네...약속은 지키셔야지..?”


“...니년 몸뚱이를 기다리느라 매장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다네.”


“..그럼 그럼 약속은 지켜야지..애비처럼 간사하게 지 새끼를 살릴 생각은 하지 말고, 당당하게 죽기를 바라네.”



너무도 담담하다. 마치 밥은 먹었냐는 듯이 평온한 얼굴로 선선히 미소짓고 있다. 공허속에 밀려오는 더러울정도로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들이 나와 라푼젤의 몸을 뒤덮었다.



“..어, 어떡해...”


“...씨, 씨발새끼들이이이!!!”



라푼젤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따듯한 눈물방울은 얼굴에 흥건한 피와 만나 한방울의 피눈물이 되어 바닥에 톡, 하고 떨어져 내렸다.



“...아빠 살려내 이 개새끼들아아아!!!”


‘뻐억!!’


“...!! 엘, 엘사!!”



그들은 웃고있었다. 내 등뒤에서 내리쳐진 몽둥이를 보며.



“미친년은 매가 약인법이야.”


“그럼그럼..때려야 말을 듣곤하지.”


“..네 친구도 쓰러졌으니..자네도 쓰러지기를 바라네.”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방안으로 밀고 들어온 여덟명의 남성들과 둘러쌓인채 칼을 들어 미친 듯이 저항하는 라푼젤. 그리고 그 광경을 선선히 지켜보며 히죽거리는 늙은이들.


“...푼..젤...”


“이 씨발!!...으아아아아!!!”


난 그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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