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픽] 결혼 계약서(8)

ㅇㅇ(222.110) 2020.07.01 21:07:22
조회 768 추천 67 댓글 15


엘사가 서둘러 방에서 나왔을 때 주방에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안나가 밥을 차려 놓고 앉아 자기를 기다리는 아침과 같은 풍경. 다만 다른 점은 이번에는 메뉴가 샌드위치에서 볶음밥이 되었다는 점.

엘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식탁에 앉았다. 

안나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엘사는 자신이 꼼짝없이 안나의 계획에 말려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혹시 안나는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 아니었을까.

마치 약점을 하나 잡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안나를 보니 갑자기 입맛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당신 기다리다가 너무 배고파서 그냥 내가 만들었어요.”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소리는 그쯤하고 먹어봐요.”


안나의 타박 아닌 타박에 엘사는 숟가락을 들어 볶음밥을 한 입 먹었다. 분명 맛이 없을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엘사는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상대의 눈치를 보느라 무슨 맛인지 느낄 여유가 없었다. 지금 음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안나가 조금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맛있어요.”


“그쵸? 아니면 너무 오래 기다려서 맛있나?”


“…….”


“미리 연락해주지 그랬어요? 그러면 더 맛있는 음식으로 내가 준비했을 텐데.”


“...미안해요. 일이 조금 늦게 끝났어요.”


“아, 사과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에 엘사는 마치 입안에 돌을 한가득 넣고 씹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나가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안나는 이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엘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어땠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그게 끝?”


“...처리 할 일이 많긴 했는데 괜찮았어요.”


“그랬는데 늦었구나..”


“...안나.”


결국 정색하며 이름을 부르는 엘사의 모습에 안나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완벽하고 차가울 것 같은 엘사를 이렇게 놀려보니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실제로 반응도 재미있었고. 

한참을 웃던 안나는 심상치 않은 엘사의 표정을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흠흠, 얼굴 펴요. 나도 당신 기다리다 나름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


“..늦은 건 미안해요. 최대한 빨리 온다고 온 건데..”


“엘사, 당신 진짜 재미없는 사람인 거 알아요?”


“그거 유감이네요. 유머는 좋아하는 편인데.”


“말도 안 돼. 당신이?”


“...저한테 불만이 많으신가봐요, 안나 해밀턴씨.”


“큭큭, 미안해요. 그치만 당신 놀리는게 너무 재밌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의 하루도 듣고 싶은데요.”


“저요? 오늘은 집에서 쉬었죠.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날 찾던지..평소에는 찾지도 않으면서 서류는 어딨냐, 이건 뭐냐 계속 연락 온 거 있죠?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만큼 당신이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란 증거겠죠.”


“중요한 사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아무튼, 잠깐 회사 업무 보다가 간만에 쉬었죠...그러다가 당신이 늦게 온다고 연락이 왔고 뭐, 기분이 좀 상한 건 인정할게요. 그런데 당신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다시 기분이..”


“..?..”


그 순간 안나는 두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마치 말해서 안될 것을 말한 것처럼. 엘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나 해밀턴, 지금 대체 뭐라고 하려고 한 거야? 엘사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하려고? 미쳤어!


“안나?”


“...자, 잠깐 화장실 좀.”


안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장실로 도망갔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엘사는 화장실 쪽을 바라보면서 안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 천천히 곱씹어봤다.


‘내가 늦게 온다고 해서 기분이 상했고, 그리고 내가 집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떠한 부분에서도 안나가 도망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회사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면 이미 짜증이 났다고 말했으니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하나인데..


‘내 연락이 그렇게 짜증났나? 아니면 내가 집에 늦게 와서 아직 화가 났나?’


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목을 쓸었다. 사실 안나에게 연락을 했을 때 할지, 말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이미 같이 저녁을 먹자고 약속했었고 아침을 차려준 안나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게다가 자신이 문자를 보낸 후, 안나의 답장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늦는다고 다시 연락을 했을 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나의 기분이 상한 것도 충분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저렇게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로 도망친 안나를 보니 자신이 늦게 와서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는데 어쩌란거야...거기다 이미 실컷 놀려놓고선..’


엘사는 남아 있는 볶음밥을 거칠게 입안에 쑤셔 넣으며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안나의 눈치를 보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안나의 기분을 풀어줄지 고민해야했다.











한편 화장실로 도망친 안나는 안에 들어오자 마자 문을 잠그고 그대로 문에 기댔다.

마치 들키면 안 될 것을 들킨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당신을 보니까 기분이 좋아졌어요,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미쳤어..안나 해밀턴..”


안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새 엘사와 좀 더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자신은 엄연히 사귀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엘사와 안나가 부부라는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긴 했지만.


안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이상하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치만 대체 누구에게 죄를 짓는 기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크리스토프에게? 아니면 엘사에게?

차가운 물이 손에 닿자 안나는 그제서야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정신차리자. 지금 이건 그냥 착각이야. 엘사는 그냥 룸메이트 같은 거라고.


안나는 다시 물을 잠그고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때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지자 겨우 진정되어 있던 마음이 다시 날뛰는 것 같았다. 

계속 울리는 것을 보니 전화가 온 것 같았다.

안나는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크리스토프?..”










한참만에 화장실에서 나온 안나는 엘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엘사는 다급히 계단을 올라간 안나의 모습에 갑자기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2층 계단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윗층은 안나의 공간이라는 생각에 선뜻 올라가진 못했다. 

안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으므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안나? 괜찮아요?”


안나가 다시 모습을 보인 것은 그때였다. 

안나는 겉옷을 입고 손에는 자동차 열쇠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미안해요, 엘사. 지금 내가 급하게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별일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안나는 엘사의 얼굴도 보지 않고 곧장 현관으로 향했다. 

엘사는 안나에게 괜찮은지 물었지만 안나는 대답하길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엘사, 내가 나중에 설명할게요.”


“..그래요.”


“식사 중에 일어나서 미안해요. 아, 미안해요. 전화가 와서..”


“아니에요, 잘 다녀와요.”


안나는 엘사의 인사에 답할 겨를도 없이 전화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짧았지만 엘사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크리스토프.


현관문이 닫히자 엘사는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크리스토프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불이 붙은 것처럼 온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결혼 전부터 안나가 만나는 사람이었고, 그건 엘사도 알고 있었다. 거기다 사생활은 간섭하지 않기로 했고.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엘사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터져 올라오는 감정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이건 좋지 않은 신호였다. 

엘사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안나는 자신이 아닌 크리스토프를 선택했다. 그것도 자신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그리고 엘사는 이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추천 비추천

67

고정닉 13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62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6 286
1123711 청정한 헬요일 ㅇㅇ(223.62) 00:18 7 0
1123709 뒤조심)아 되게 충격적인 짤 봫는데 얘기할데가 여기밖에 없어 [7] ㅇㅇ(110.47) 06.09 51 0
1123708 디시 이미지 왜 깨져... ㅇㅇ(223.62) 06.09 10 0
1123707 누가먼저 보내나 시합! [1] ㅇㅇ(223.62) 06.09 21 0
1123706 일편단심 안개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19 0
1123705 넘쳐나는 go간 [1] ㅇㅇ(223.62) 06.09 27 0
1123704 축 늘어진 흰 옷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아기 [1] ㅇㅇ(223.62) 06.09 19 0
1123703 설갤 단점 ㅇㅇ(223.33) 06.09 13 0
1123702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0 0
1123701 그런가 [2]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700 아니 69라고 설갤러(118.43) 06.09 11 0
1123699 크 69가 와버렸다!!!! 설갤러(118.43) 06.09 12 0
1123698 엘산나를 만난게 행운이야 [5] ㅇㅇ(223.62) 06.08 29 0
1123697 배거파 [1] ㅇㅇ(110.47) 06.08 16 0
1123696 오늘막글 ㅇㅇ(223.62) 06.08 13 0
1123695 어 내일이 69잔아 ㅇㅇ(223.62) 06.08 13 0
1123694 쥬미 영화 보러옴 ㅇㅇ(211.234) 06.08 15 0
1123693 안탄절 지나면 엘탄절도 금방 ㅇㅇ(223.62) 06.08 14 0
1123692 모험가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17 0
1123691 싯발 언제 비 그친거냐 [1] ㅇㅇ(223.62) 06.08 19 0
1123690 수상하게 칼을 잘쓰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29 0
1123689 뭐지? 결혼식인가? [5] ㅇㅇ(211.234) 06.08 54 5
1123688 정령을 잡아다 예쁘게 묶어 공물로 바치기 ㅇㅇ(223.62) 06.08 20 0
1123687 혐퀘후식사 [2] ㅇㅇ(211.234) 06.08 18 0
1123686 오늘은 자동으로 실내활동 [1] ㅇㅇ(223.62) 06.08 18 0
1123685 자연스레 깊어가는 둘의 관계 ㅇㅇ(223.62) 06.08 19 0
1123684 아찜글 ㅇㅇ(211.234) 06.08 14 0
1123683 새벽글 [1] ㅇㅇ(115.138) 06.08 15 0
1123682 다다음주가 안탄절이네 곧 [2] PeopleOfArendel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2 1
1123681 안나가 엘사를 [1] ㅇㅇ(223.62) 06.07 30 0
1123680 엘산나의 금요일 ㅇㅇ(223.33) 06.07 15 0
1123679 여전히 존버중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25 0
1123678 안나vs안나는 기존쎄 대결일듯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33 0
1123677 애틋하게 뺨쓰담 ㅇㅇ(223.62) 06.07 20 0
1123676 눈 깜짝할 새 킹요일 ㅇㅇ(223.62) 06.07 20 0
1123675 원하는 초능력을 얻는 대신 댓글이 부작용을 정해줌 [18] ㅇㅇ(115.138) 06.07 85 0
1123674 크으 모닝갤먹 [1] ㅇㅇ(223.62) 06.07 21 0
1123673 [그림] 원치 않은 신앙 [10] 애호박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102 10
1123672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창작물 [6] 케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111 11
1123671 세명이서 서로 아래 핥으려면 원을 그려야하냐 [3] ㅇㅇ(223.62) 06.06 51 0
1123670 프로즌 ost는 언제 들어도 좋아 [2] 설갤러(118.43) 06.06 23 0
1123669 크읏 이러다 울룩불룩 설줌이 돼버렷 [1] ㅇㅇ(223.62) 06.06 26 0
1123668 엘사만 만나면 움츠라드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5 0
1123667 태어날 때 부터 얀데레 엘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47 0
1123666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1 0
1123665 이럴 때 정신놓으면 갓반인 된다 [2] ㅇㅇ(223.62) 06.06 30 0
1123664 말라간다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4 0
1123663 단편이나 떡밥 내놔!!! ㅇㅇ(211.234) 06.06 23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