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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내 룸메이트가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 3

엘산나비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03 17: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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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화







한가로운 주말 오후, 안나는 홀로 기숙사 방구석에 처박혀 미드를 정주행하고 있었다. 아, 이 얼마만의 여유인가! 엘사는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엘 갔고, 귀따가운 잔소리를 하는 부모님도 여기엔 없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 어떤 방해꾼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던 안나를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방해했다. 뭐야, 비 오네. 창문 너머 풍경에 아주 잠깐 관심을 주고는 다시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려는 찰나,



“아!!! 빨래!!!!!!!!!!”



빨래를 널어 두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급히 옥상으로 향한다. 허겁지겁 옷가지들을 걷어내고 돌아가려는 순간, 안나의 눈에 익숙한 것이 보인다. 저거, 선배 거 같은데. 안나는 거대한 펭귄 인형과 같이 널려있던 옷들도 함께 챙겨 낑낑대며 방으로 돌아왔다. 휴우, 양손 가득 짊어진 것들을 내려놓고 간단히 한숨 돌린 뒤, 제 옷들을 모두 가지런히 개켜놓은 안나는 이어서 엘사의 것들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단지 순수한 배려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니나노~ 바람은 점점 쌀쌀해지고~ 우린 어른이 되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옷을 개던 안나는 속옷을 갤 차례가 오자,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칫했다.



‘속옷까지 개어놓는 건 좀 부담스러우려나? 그렇다고 속옷만 놔두는 것도 좀 이상할 것 같고...’



에잇, 모르겠다! 결국, 하는 김에 다 해버리기로 한다. 그렇게 속옷 역시 차곡차곡 쌓여갈 때 즈음...



“와우... 이게... 도대체 사이즈가 몇이야?”



엘사의 브래지어를 정리하려다가 자신의 것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보고 감탄을 자아내는 안나였다. 선배는 역시 빵빵하네. 가만 보자, 이 정도면... C? D?... 설마 E는 아닐 테고, 따위의 생각을 하며 브래지어를 자신의 가슴께에 가져다 대 사이즈를 가늠해 본다. 그 순간,



“...너 뭐해?”



“히익!”



이어폰을 끼고 있던 탓에 엘사가 방에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브래지어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안나는 제 어깨 위에 턱, 하고 느껴지는 손길에 화들짝 경기를 일으켰다.



“아, 어, 어, 어... 선배 이건, 그게 그러니까... 갑자기 비가 와서 빨래 걷는 김에 선배 것도 같이 걷어 왔는데... 제거 정리하다가... 하는 김에 선배 것도 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선배 몸매가 진짜 좋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동경할 만큼! 잠깐, 아니, 이게 아니라...!”



안나는 그렇게 수습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속옷 사건 이후로 엘사와 안나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루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기숙사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두 사람은 한 공간 안에서 서로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을 하다가, 엘사가 샤워를 하러 들어가자 안나는 그제야 한 시름 놓으며 긴장을 풀었다. 선배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기 전에 얼른 잠자리에 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안나가 침대에 몸을 누이려는 그때,



“끼야아아아아악!!!!”



들려오는 엘사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안나는 곧장 달려가 욕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서, 선배!!!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욕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덜덜 떨고 있는 엘사였다. 그리고 이윽고 보인 것은... 욕실 바닥을 유유히 기어 다니고 있는 시커멓고 반질거리는 ‘그 녀석’이었다.



“휴, 난 또... 넘어지기라도 한 줄 알았잖아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 벌레에 면역이 있는 안나는 능숙하게 그 녀석을 잡아 변기통에 흘려보냈다.



“됐다. 아무래도 기숙사 소독 한 번 해달라고 해야겠...”



손을 X자로 한 채 제 알몸을 가리며 예의 속옷 사건 때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엘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안나는 생각했다. 진짜 돌아버리겠다고.



.


.


.




“...이렇게 된 거야.”



그 후로 은근히 날 피하는 것 같다니까? 안나의 진지한 하소연에도 그녀의 절친한 동기 카산드라는 끅끅대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바빴다.



“큭큭, 너 진짜 완전 변태로 찍혔네?”



“그러니까아! 아니, 속옷 사건은 뭐, 그래. 그렇다 쳐. 근데 욕실 사건은 진짜 억울하다고!”



“근데 네 말 들어보니까 엘사 선배 좀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완전 의외네.”



“어?”



“왜, 맞잖아. 같은 여자끼리 속옷 좀 정리해 주고 몸 좀 보는 게 어때서. 그게 부끄러워서 너 피하는 거 아냐?”



“...그런 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해. 너 잘하는 거 있잖아. 사람한테 들이대는 거.”



“이씨, 말을 해도 꼭...!”



“자, 자, 마셔, 마셔. 짠~”



“...짠.”



두 청춘은 그렇게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터덜터덜 기숙사로 돌아가던 안나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하나 집어 들었다. 비틀거리며 카운터로 가 계산을 하려던 찰나, 최근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던 엘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커피라도 하나 사 갈까.’



결국, 무난하게 아메리카노 하나를 집어 들어 같이 계산한다.



방으로 돌아오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엘사가 보이지 않았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아하니 샤워 중인 것 같았다. 안나는 오히려 잘 됐다 싶어 하며 엘사의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 두고는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스르륵 잠이 들었다.





*





[2020년도 사학과 추계 답사 일정 계획]


어느 대형 강의실, 안나는 대형 스크린에 ppt를 띄워놓고 열심히 발표하는 엘사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 이렇게 심술이 났냐면, 안나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커피가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먹기 싫으면 싫다고 말로 하지, 왜 사람 민망하게 그냥 그 자리에 둬? 아니면 그냥 버리던가! 심통이 나버린 안나는 결국 제 손으로 커피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ppt에 고정하던 시선을 슬쩍 옆으로 돌리니, 제 동기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엘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엘사가 학과에서 또라이로 유명하긴 했지만, 빛나는 외모에 뛰어난 성적, 소문에 의하면 집까지 잘 산다고 하는, 소위 말하는 설정 과다의 인물이었기에 그녀를 동경하는 후배들도 더러 있었다.



안나의 시선이 다시 엘사에게로 향한다. 뭐... 좀 멋있긴 해. 깔끔하게 만들어진 ppt와 물 흐르듯 진행되는 엘사의 발표를 보며 안나는 생각했다. 곧이어 저렇게 완벽해 보이는 엘사가 의외로 귀여운 면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저 평민들은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자, 안나는 왠지 모르게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칩니다.”



그렇게 잡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엘사의 발표가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인사와 함께 학생들이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엘사, 오늘 학생회 회식 할 건데, 너도 갈 거지?”



“아니, 나 내일 우리 답사 장소 사전 답사도 가봐야 하고...”



“에이, 내가 네 주량을 모르냐? 가서 밥만 먹고 가, 밥만.”



동기 메가라의 성원에 못 이겨 엘사는 결국 회식에 끌려오고 말았다. 안나는 엘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불안에 떨며 그녀를 예의주시했다. 선배, 술 마시면 안 되는데... 그럼 보나 마나 내가 둘러업고 그 언덕을 올라가야 할 텐데...



“엘사, 온 김에 한 잔만 마셔. 아, 딱 한 잔만~”



“...나 내일 운전도 해야 된단 말이야.”



엘사의 철벽 방어에 메가라도 포기하는가 싶더니, 엘사가 한 눈판 사이 물컵에 몰래 술을 타버리는 바람에 안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헉, 헉, 안나는 엘사를 등에 들춰 메고 가쁜 숨을 내쉬며 언덕을 올랐다. 술에 취한 사람은 물 먹은 스펀지처럼 축 늘어져 더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라,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힘 좀깨나 쓴다는 안나임에도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저보다 큰 엘사를 날랐다.



“우웅.. 앙나아...”



“헉, 허억... 선배... 정신이 좀 들어요?”



“으응, 아니이...”



“저, 저 도저히 힘들어서 더는 못 가겠어요... 저기서 좀만 쉬었다 가요.”



안나는 가까이 있는 벤치에 엘사를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털썩, 그 옆에 주저앉았다. 으응... 밤공기가 쌀쌀한 탓인지 몸을 떠는 엘사에게 외투를 벗어 덮어주고는 제 허벅지까지 베개로 내어준다.



“앙나아... 미안...”



“...됐어요.”



커피 사건의 앙금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행동은 따뜻한 주제에 말은 쌀쌀맞게 내뱉는 안나였다. 그러다가도 고작 그거 하나로 틱틱대는 유치한 본인을 스스로도 참을 수 없었는지, 술도 먹었겠다, 용기를 내어 돌직구를 날려본다.



“...선배.”



“웅...?”



“왜 커피 안 마셨어요?”



“...? 무슨 커피...?”



“그, 제가 책상 위에 올려놨던 거요.”



“...”



대답을 곧잘 하던 엘사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선배!!! 자는 척하지 마요!!!”



“으응?! 으응... 사실 그게...”



엘사가 대답을 주저하자 안나는 계속해서 엘사를 채근했다. 그렇게 노력 끝에 안나가 받아낸 답변은...



“나 커피 못 마셔...”



역시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아... 아아...! 그랬... 그러셨구나아...”



안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속으로 선배를 원망했으니...



“그럼... 선배는 뭐 좋아해요?”



“으응? 나아?”



“네. 다음엔 선배가 좋아하는 걸로 사드릴게요.”



“나느은...”



쪼꼬 우유. 생긴 건 에스프레소만 마실 것 같은 사람이 초코 우유라니. 귀여운 엘사의 답변에 안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엘사 선배는 초코 우유를 좋아한다.’를 가슴에 똑똑히 새겼다.





*





“...선배, 선배...!”



“으... 으으...”



“선배, 일어나세요! 알람 울려요. 지금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으응...”



엘사는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선배 괜찮아요? 중요한 일 아니면 그냥 쉬는 게...”



“우리 추계 답사 장소... 사전 답사 가야 해.”



“아... 그런데 이 상태로는 무리일 것 같은데... 선배 지금 이 상태로 운전하면 위험해요.”



“그래도 가야...”



“그럼 같이 가요.”



“...뭐?”



“혼자는 못 보내요.”



“너 운전 할 줄 알아?”



“그럼요! 이래 봬도 저번 여름 방학 때 친구들이랑 여행 갔을 때 제가 운전 했다구요~”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는 엘사였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결국 안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럼 부탁해.”



안나는 번쩍번쩍 빛나는 엘사의 외제차를 보며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선배, 집이 잘산다더니 소문이 진짜인가 보네... 애써 태연한 척하며 조심스럽게 운전석에 올라탄 뒤, 시동을 켰다.



“그런데 선배.”



“?”



“엑셀이 왼쪽이었죠?”



엘사는 지금이라도 유서를 써놓아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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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충 등장 : 자동차 엑셀 페달은 오른쪽, 왼쪽은 브레이크 페달이다.


오늘도 읽어줘서 고맙워 쥬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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