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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주와 해적 26화 - 구밀복검

ㅂ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7.18 11:27:03
조회 252 추천 19 댓글 13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nowpiercer2013&no=928443



26화 - 구밀복검



아렌델 안에서도 극히 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이 하나 있다; 회의실 뒤편, 벽난로 안쪽에는 사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밀 공간이 하나 있다. 본래는 군주에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인사들을 파악하기 위해 비밀요원들이 잠복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의 공간이었지만…… 지금 이 시각, 그 안에서 몸을 떨며 바깥의 내용을 듣고 있는 건 비밀요원이 아닌, 분노와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은발의 소녀였다.


솔직히 말해, 왜 멜리사가 올라프를 통해 자신에게 이곳의 위치를 알려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저 밖에서 거들먹거리는 위즐튼의 공작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쩌면 지금 아렌델이 처한 상황을, 그리고 그들의 공통의 적의 행태를 직접 목격하라는 의미일지도?


오오, 해적이라니…… 정말 귀국이 큰 곤경에 처한 모양이로군요. 안 그래도 그 많은 식민지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황제께서 고심이 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요.”

짐짓 안타까운 말투가 잔뜩 묻어나는 멜리사의 대답이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뜻을 모를 정도로 한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관리를 똑바로 못하니까 털리는 거 아냐. 그 해적이 누군지를 뻔히 아는 한나의 입장에선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느라 고생했다.


, 고심이 크시고 말고요…… 게다가 그 해적이 그 악명높은 엘사 드레이크에, 심지어 세간에는 그 마녀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이런 짓을 벌인다는 참람된 말까지 떠돌아다니니……”


물론 위즐튼의 공작 또한 그 말을 못 알아들을 멍청이는 아니었고, 오히려 역으로 이쪽을 압박해오는 수를 던져온다; 엘사와 멜리사 간의 거래가 새어나갔을 리는 없으니, 그저 저쪽에서 판을 흔들어오는 수작일 뿐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게 아이러니지만. 이런 걸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 해야 하나?


소문이란 건 와전되고 부풀려지게 마련이지요. 가뜩이나 뒤숭숭한 마당에 그런 사특한 말을 퍼트리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마땅히 색출해 처단하는 게 옳겠군요.”


지당한 말씀이나, 또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사실 오래 전부터 저는 드레이크의 수상쩍은 전적에 누군가 뒷배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습니다. 언젠간 반드시 그들을 찾아내 심판을 받게 해야지요. 상심에 빠져계실 우리 폐하를 위해서라도, 따흐흑!”


얼핏 들으면 영락없이 나랏일을 걱정하는 충신을 타국의 여왕이 위로해주는 모양새지만, 한나는 정치는 잘 몰라도 그 대화 물밑에서 주고받는 치열한 공방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능구렁이 같은 인간…….


하지만 드레이크라…… 그 자가 이 북쪽 촌동네까지 찾아올 일이야 여지껏 없었습니다만, 대제국인 귀국을 뒤흔들 정도의 인물이라면 아렌델 정도는 혼자서도 유린할 수준이겠군요. 이 어찌 두려운……”


몸서리까지 치며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멜리사. 그 와중에 은근슬쩍 아렌델과 노스 윈드가 접촉한 걸 부인하는 건 덤이다.


흐음, 그 악독한 년의 마수를 여지껏 비껴갔다니 귀국은 굉장히 운이 좋은 모양이군요. 아니면 그 여자가 이 무역국을 내버려둘 중요한 이유라도 있다던가……?”


잘도 언니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는 공작의 언사에 한나의 피가 끓었다. 게다가 방금 사실상 직접적으로 아렌델을 비난한 거 아냐? 그래도 명색이 외교를 위한 자리에서 저래도 돼?


후후…… 그 자들의 사정이야 제가 알 리가 있겠습니까? 귀국 같은 위대한 제국도 이 소국을 복속시키지 않고 자유로이 놔두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을테죠.”


하지만 과연 멜리사는 멜리사였다; 다소 직설적인 말에도 동요하거나 발끈하기는커녕, 역으로 아렌델에게 뻗치려 하는 제국의 마수를 돌려서 저격하고 있다.


흐음…… 역시 그 달변은 어디 가지 않았군요.”


과찬이십니다. 없는 도적도 만들어내 토벌한다는 공작의 화술에 저 따위가 어찌 감히 미치겠습니까?”


살짝 방향을 돌려서 찔러오는 공작의 말 역시 능숙하게 받아치는 멜리사. 엿듣는 한나의 입장에선 거의 신세계였다…… 총칼이 난무하는 그 어떤 전장보다도 치열한 싸움을 체험하는 중이다.


으음……. , 여왕님의 말뜻은 잘 알겠습니다. 부디 제 낮을 보아서라도, 그 가증스러운 여자가 귀국에 얼굴을 내비치게 된다면 반드시 잡아서 저희에게 넘겨주었으면 합니다.”


당연히 멜리사의 표정을 볼 순 없는 한나였지만, 왠지 대답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얼굴이 그려지는 듯했다:


, 믿어주시죠, 공작; 엘사 드레이크가 아렌델에 발을 들이는 날, 그녀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운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

 


휴우, 어떻게든 막아냈다, 망할 늙은이 같으니라고……


일단 잠시 물밑 공방을 멈추고 사담으로 전환한 위즐튼의 공작을 몰래 보며 내적으로 한숨을 쉬는 멜리사. , 생트집이 따로 없지만 얻어걸려서 팩트라 이쪽도 속을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


솔직히 말해서, 공작이 나름 노회한 정객이긴 하지만 딱히 말싸움 상대로서 막강하다고 할 순 없다. 되려 이번 건은 아무 근거도 없이 생트집을 잡는 것에 가까워서 오히려 들어오는 공격이 단조롭고 받아치기도 쉬운 주장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이 영감탱이가 대국의 신하이고, 자신은 소국의 군주이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발상임을 알면서도 생각이 그 쪽으로 가니까 절로 울적해지는 멜리사였다. 이 현실이 싫었다;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이 단지 나라를 잘못 골라 태어났다는 이유로 강대국들에게 치이고 이런 별볼일없는 늙은이 따위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본인 나름대로는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치고 있지만…… 세상 일이 다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이고, 개중에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그나저나…… 오늘은 여왕님의 누이동생 분께서 보이지 않는군요. 제가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는 여기저기서 계속 나타나셨는데 말이죠!”


공작의 입에서 안나가 거론된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멜리사의 포커페이스에 금이 갔고, 자동적으로 곁에 시립해 있던 매티어스와 마시멜로의 눈이 순간 이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니까 이 망할 영감, 몇 년 전에 방문했을 때 안나와 반쯤 억지로 춤을 췄었지…… 그 때 그 녀석이 발을 몇 번을 밟혔었는지.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토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그나저나 이거 난처하네. 대충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대면 되겠지만, 만에 하나 이 인간이 쓸데없이 뒤를 캐려고 들다가 안나가 여기 없는 게 확인되면 굉장히 골치아파진다. 그래도 뭐, 일단은 지르고 봐야지.


그 아이라면 지금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을 겁니다. 지난 방문 때 깊은 인상을 가지셨던 모양이지만, 괜한 기대라면 접으시길.”


짐짓 무심한 체 대답하는 멜리사였지만, 공작의 눈에 살짝 비친 아쉬움을 놓치지 않았다. 아니, 이 새끼가?


그거 참 뜻밖이로군요. 제가 그 분에게 받았던 인상은 약간의 병 정도로 억눌릴 에너지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얼마나 심하길래 그렇게 여왕님께서 가두어 놓으시는 건지…….”


, 또 가짜 웃음이 무너질 뻔했다. 이 개새끼, 의심하는 것도 모자라서 평소에 내가 안나한테 대하는 태도까지 걸고 넘어지네. 확 화내버릴까? 아무리 대국의 사자라도 그렇지, 싸가지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끼이익 -


진지하게 저 빌어먹을 늙은이에게 쌍욕을 박을 고민을 하던 멜리사의 귀에,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접견 중엔 사람을 들이지 않는 게 관례인데? 시종이 노크도 안 하고 들러올 리도 없고…… 아니 잠깐?!


공작께서 저를 그렇게 높이 생각하시는 건 고맙지만……. 보시다시피 이런 몰골이라서 말이지요. 좀 더 일찍 인사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한 얼굴을 하고 올라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한나의 모습에, 순간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

 


***

 


아침의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망망대해를 나아가는 노스 윈드의 뱃머리에서, 나란히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서있는 공주와 해적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적어도, 안나는 그럴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


무심코 엘사 쪽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이쪽을 힐끗 보고는 이내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자기도 모르게 바보 같은 웃음이 지어진다; 평소엔 진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 선장님의 이런 표정을 자기만 볼 수 있다는 게 묘하게 기분이 좋다.


엘사……. 어제 내가 너무 막 밀어붙인 건 아니죠?”


그래도 내심 마음에 걸려 묻는 안나였다. 사실 어젯밤엔 자신도 감정에 휩쓸려 일단 저지르고 본 거라……. 괜히 의욕이 넘쳐서 오히려 엘사를 밀어낸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대답하는 엘사의 얼굴엔 엷게나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제의 공주님은 굉장히 저돌적이셨죠…… 하지만 거기에 기쁘게 말려든 건 다름아닌 저니까 누굴 탓하겠습니까? 좀 부끄럽지만, 어제 일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안나.”


굉장히 조그맣게 중얼거린 마지막 한 마디였지만, 그 어떤 말보다도 그 끝의 두 글자가 기뻤다; 서로의 마음이 이렇게나 가까워졌다는, 어젯밤 자신이 마구 쏟아낸 진심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니까.


그래서……. 이젠 어디로 가는 거에요? 역시 배도 고쳐야 하고, 부상자들도 제대로 치료해야 하잖아요?”


물론이죠; 공주님도 그 부상자들 중 하나고요.”


이젠 거의 나았는데…….”


엘사의 차분한 지적에 왼쪽 어깨에 두른 붕대를 민망한 마음에 가리는 안나.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검은 수염과의 싸움에서 반파에 가깝게 손상된 노스 윈드였고 선원들도 사상자가 다소 있었다. 빠른 시일 내로 어디엔가 정박하긴 해야 하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금방 육지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엘사의 얼굴을 다시 보자 거기엔,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뭐지?


공주님, 이건 저희 모두가 공주님께 드리는 최상의 신뢰의 표시입니다…….. 이제 이 배는, 저희 근거지로 귀환할 거니까요.

 


- 작가의 변 - 


아놔, 컴퓨터가 갑자기 두번이나 다운돼서 이제서야 올리네...... ㅋㅋ 안 그래도 연재가 늘어져서 초조한데.....

소제목인 '구밀복검'은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엔 칼이 들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상대를 찌를 생각 만만이라는 뜻이야. 딱 지금 상황에 걸맞지? ㅋㅋ

멜리사와 위즐튼의 설전이 잘 묘사됐나 모르겠네. 정리하자면 위즐튼은 엘사의 습격을 어떻게든 아렌델과 엮어서 이권을 취하려고 몰아붙이는 모양새고, 멜리사는 제국에게 지나치게 개기지 않는 선에서 의혹을 부정하는 모양새네. 아무래도 위즐튼의 빽이 좀 크다보니 괜한 생트집을 잡는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설전이 되지? 물론 그게 본인의 능력도 있지만 내가 위즐튼을 대제국으로 설정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그나저나 한나야, 너가 왜 거기서 나와......

일단은 검은 수염과의 전투를 수습하러 근거지로 향하는 엘산나지만, 일단은 궬백커플 쪽에 좀 더 집중해볼게! 내일도 올라오니까, 지금은 예고로 만족해!


- 27화 예고: 멜리사의 큰 그림 -  



크큭, 좋고말고. 그 원숭이 면상의 닭대가리 표정을 네가 제대로 봤으면 너도 지금쯤 같이 웃고 있을텐데 말이야, 으하하!”


...


“…….. 절 이렇게 곁에 두시는 이유가 뭔가요?”



흐음, 멜리사와 한나 둘만 등장하는 챕터는 처음이네. 기대되는 부분인가? 내가 쓴 픽썰이 유독 얘네의 분량이 서브 주인공급으로 높긴 해.  암튼 건필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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