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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주와 해적 37화 - 모든 게 부서지는 순간

ㅂ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02 10:54:01
조회 233 추천 20 댓글 12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nowpiercer2013&no=928443



37화 - 모든 게 부서지는 순간



아침 일찍 시작했던 멜리사와 위즐튼의 공작 간의 회담은, 점점 길어지더니 어느새 오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쭉 비밀 장소에서 자리를 지키며 그 내용을 들으려 했던 한나였지만, 역시 반나절 이상 좁아터진 곳에 쪼그려 있으려니까 몸이 버티지를 못했다. 결국 스스로의 저질 체력을 저주하며 몰래 들어온 올라프의 인도를 받아 허탈하게 방으로 돌아와 쉬게 되어버린 한나였다.


“………………… 후우.”


그리고 지금, 잠시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조금 자고 일어난 한나. 아니, 정확히는 조금만 자려고 했는데, 일어나보니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설마 아직도 회담이 안 끝났나…….?


불안한 마음에 침대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이기 시작한 한나. 아무래도 자신이 들었던 회담의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위즐튼은 엘사의 꼬리를 잡았다고 주장했고, 멜리사에게 그녀를 잡는 걸 도우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멜리사였지만, 중간에 나온 한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제국은 강경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남부 제도까지 개입했다는 건, 본격적으로 아렌델을 압박하겠단 거지.


만약 멜리사가 거부한다면…… 만약 멜리사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어느 쪽으로 가건 암담한 미래밖에 보이지 않아 울고 싶어진 한나였다. 어떤 선택을 해도 멜리사는 소중한 무언갈 잃게 되겠지…… 그리고 자신도.


그 때


한나…… 나다.”


밖에서 조용히 들려온 멜리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면서도 바로 문을 열어주는 한나. 잠든 사이에 회의가 끝났던 걸까?


여왕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멜리사가 방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고, 곧바로 평소와 다른 점을 눈치챈 한나였다. 젊은 여왕은 늘 입던 드레스형의 예복이 아닌, 매티어스나 마시멜로와 유사한 군주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곧 싸우러 나가는 사람처럼. 하지만 누구와……?


그 대답은, 고개를 들어 멜리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올곧았던 그녀의 암청색 눈은, 마치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그렁그렁한 채로 한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 선택을 하셨군요.”


“…….. 그래.”


조용히 읇조리는 멜리사였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 심하게 떨려서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였다.


“……………”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할 말을 찾지 못해 결국 같이 고개를 떨구는 한나. 지난 약 세 달간 곁에서 보아온 멜리사는 평소에는 자기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필요할 때에는 완벽히 숨길 수 있는, 군주로서 이상적인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지금도 사무적으로, 무표정하게 자신이 아렌델을 위해 엘사를, 한나를 버렸다고 전달했어야 할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건, 그녀가 그만큼 한나를……


“…… 내가 잘못 생각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어. 아직 아렌델은 제국과 정면으로 싸울 수 없다…… 나는……”


그늘진 얼굴로 중얼거리다 결국 말을 잇지 못하는 멜리사였지만, 그 끝은 한나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 여자이기 이전에 여왕이시니까요.”


“…………………..”


그래, 마음 한 구석에선 알고 있었다; 멜리사는 자신 말고도 아렌델의 모든 백성들에 대한 책임을 진 군주다. 이전에 한 여자로서의 멜리사는 한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아렌델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여왕으로서의 멜리사는 냉정히 그녀를 쳐낼 수밖에 없다.


이럴 땐 냉정하게 이성을 앞세워 생각하는 스스로의 성격이 다행스러운 한나였다; 덕분에 지금 이 순간, 슬프고 막막할지언정 멜리사를 향해서는 미움도 분노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내가 조금만 일찍 마음을 잡았더라면…… 내가 진작에 여왕님을 도울 생각을 했었다면……”


어느새 한나의 목소리도 힘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 혹시 자신이 처음부터 멜리사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지식을 나눠주었다면, 제국의 압박에 대항한다는 선택지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언니의 허락 없이 멋대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 결정을 보류했었지만…… 그 선택이 이렇게 돌아올 줄을 누가 알았을까.


시야 한 구석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오는 멜리사가 보였지만, 그녀에게 닿기 직전에 다시 손을 치우며 괴로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미숙해서, 내가 부족해서…… 너에게 지나친 짐을 지웠구나…….”


분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는 멜리사와 그녀의 제복 차림을 본 한나의 마음 속에 절망이 달렸다. 이렇게 될 거라고 왜 생각을 못했을까…… 일이 꼬여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중 둘이 서로 죽이게 될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는 걸.


언니…… 엘사 언니는 어떡할 거에요? 공주님도 함께 있는데……!”


한층 불길한 예감이 확 솟구친 한나가 급하게 묻자, 멜리사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 나도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겠다. 네 말대로 안나가 있으니 일단 즉결 사살은 면할 수 있겠지만…… 그 아이가 노스 윈드에 있는 게 들키면 다른 의미로 곤란해져.”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처한 상황에 한나가 머리를 싸쥐는 순간 드디어 고개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마주한 멜리사가 조용히 말했다:


“…… 도망쳐, 한나.”


…………?”


깜짝 놀란 한나가 고개를 들자 멜리사의 눈이 젖은 상태에서도 묘한 불꽃을 일렁이고 있었다.


내가 무능해서 너흴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네 목숨만큼은 확실히 살릴 수 있다. 이번 출정 때 위즐튼의 사절단을 모조리 이끌고 나갈 테니, 그 틈을 타 몸을 숨겨라.”


그게 무슨…… 나 혼자 살아서 무슨 소용이에요! 언니를, 동료들을 다 잃으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발상에 몸을 움츠리면서 속삭이는 한나. 안돼, 그건 절대 안된다. 모두가 없어진 세상에서 혼자 살아남느니, 차라리……


부탁이다, 한나……”


차마 손은 대지 못하면서도, 마치 눈빛으로 설득을 시도하듯 멜리사의 시선이 한나에게 창처럼 파고들었다.


여왕님……”


무기는, 배는…… 그리고 동료는 잃을 수 있어. 하지만 네가 살아있는 한…… 네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절대 잃지 않아. 살아남아라, 한나…… 지금 그 좌절을 양식 삼아, 언젠가 다시 일어나서…… 꼭 너희 동료들의 숙원을 이뤄라.”


거기까지 얘기하고는, 눈이 커진 한나를 뒤로하고 방 밖으로 홱 나가버리는 멜리사. 하지만 뻔히 보였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점점이 남은, 바닥에 카펫을 얼룩진 눈물 자국을.


“………………”


한동안 그 자리에 못박힌 듯이 서서 움직이지 못하는 한나였다. 분명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몸도 마음도 제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방금 제 앞에서 떠나간 사람이 이제는 자신과 언니의 적이라는 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굳어진 표정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기는 한나였지만…… 그 방향은 멜리사가 말한 밖이 아닌, 방 안쪽이었다.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중얼거리며 불이 다 꺼진 벽난로 앞에 선 한나가, 조용히 그 옆의 벽돌 하나를 누르자


드르르르르르르륵


깊은 울림과 함께, 안쪽 벽이 함몰되면서 숨겨진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처음 아렌델 왕성에 머물게 되었을 때 멜리사가 그녀에게 이 방을 배정해준 이유.


“…………. 그리고 그 일은 여기서만 할 수 있어…….”


아무도 못 들을 속삭임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한나가 숨겨진 장치를 한번 더 건드림으로서 거짓말같이 닫히는 비밀 통로. 그래, 이제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다…… 

설령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그들의 마음만은 절대 헛되지 않도록……


…… 그래, 그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 모두 닳아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 작가의 변 -


비상, 비상......! 멜리사가 위즐튼의 요구에 굴복했다.....!

물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거라 멘탈이 완전히 망가져버렸고, 그 와중에 한나만큼은 살리겠다고 도망치라고 하는 게 참 안쓰럽지만...... 한나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지? 누가 짱나의 얼터 에고 아니랄까봐 이쪽도 근성 하나는 끝내준다 이말이야!

어찌됐건 엘사 입장에선 가장 큰 아군이 적으로 돌아선 셈이라 큰일도 이런 큰일이 없게 됐는데, 지난화에서 나온 거래가 잘 돼야할텐데, 그치....? 내일 연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예고는 봐야지?


- 38화 예고: 배반자 - 



그래, , 기분좋게 가자고; 기왕 하기로 한 거 완벽하게 해야지.”


...


윤 섬은…… 한때 노르드의 왕국이 위치했던 곳이에요.”


...


엘사…… 몸조심해요.”


...


천만에요, 엘사. 오히려 바다의 악마 검은수염과 함께 그 쓰레기들을 치워줬으니 대신 감사라도 해야 할 지경입니다.”



다음화에선 드디어 엘사의 비밀 정보원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건필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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