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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결혼 계약서(20)

ㅇㅇ(222.110) 2020.08.02 15:30:28
조회 1038 추천 69 댓글 22



안나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조금은 낯선 천장과 익숙한 냄새에 조금씩 어제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자신은 지금 엘사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미쳤어, 안나 해밀턴..”


안나의 기억은 단편적이었지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술에 취에 엘사에게 주정부리고 좋아한다느니, 어쩐다느니 이상한 소리를 했던 기억에 점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안나는 결국 이불을 차 던지며 두려운 마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도저히 엘사를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아무리 엘사가 자신을 받아준다고 해도 안나도 부끄러운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안나는 아주 조용히 문을 조금 열었다. 고개를 살짝 내밀고 거실과 주방을 살펴봤지만 엘사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말이긴 했지만 엘사가 출근했을 수도 있으니 안나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안나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찝찝한 기분을 흘려보내고 엘사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안나가 2층으로 올라가자 마자 엘사가 현관에서 들어왔다. 안나를 자신의 방에서 재우고 이번에도 거실에서 잔 탓에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오랜만에 집에서 맞이하는 휴일이 아까워 잠시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들어온 것이었다.


“안나?”


엘사가 안나를 깨우러 방에 들어갔지만 이미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 침대와 왠지 모르게 어질러져 있는 이불 뿐이었다. 

그제서야 엘사는 안나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침대를 정리하고 엘사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 이게 화근이 될 줄은 엘사도, 안나도 그 당시에는 몰랐다.













샤워를 마친 안나가 가운을 걸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을 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 다녀간 것처럼 물건들의 배치나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혹시 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집안은 고요했다. 

어쩌면 그저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안나는 아직 물기가 가득한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고 주방으로 향했다. 


“일단 엘사한ㅌ...!”


그 순간 허리에 누군가 팔을 감는 느낌에 안나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면서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했다. 

본능에 따른 반사적인 행동이었지만 팔꿈치는 정확히 어딘가에 맞은 것 같았고 신음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는 사람이 보였다.


“윽!..”


“누, 누구...엘사!”


엘사는 복부를 부여잡고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고 안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엘사를 부축했다. 

엘사는 고통이 상당한지 입술까지 깨물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엘사! 괜찮아요? 미안해요!”


안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엘사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지만 엘사는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하고 몸을 떨며 고개만 겨우 끄덕거리고 있었다.


“진짜 미안해요! 당신이 집에 없는 줄 알고..”


“…….”


“병원 갈까요? 혹시 뼈에 문제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


“…….”


“잠깐 봐 봐요, 내가 한번 볼게요.”


안나는 엘사를 소파에 눕혀 맞은 부위를 보려고 했지만 엘사는 필사적으로 안나를 막으며 겨우 괜찮다는 한 마디를 했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한번 봐요, 혹시라도..”


“안나, 진짜 괜찮아요.”


“그치만..!..”


안나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엘사는 차마 너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정확히 팔꿈치 뼈로 복부를 맞은 엘사는 처음에는 너무 아파서 그대로 주저 앉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기보다 안색이 더 파랗게 질린 안나를 보니 아픈 티를 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엘사는 걱정말라며 고개를 들어 안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안나의 눈동자를 보기도 전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조금은 헐렁하게 묶은 가운 사이로 살짝 보이는 안나의 가슴에 엘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엘사? 많이 아파요?”


“..아..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무래도 직접 봐야겠어요. 잠깐 옷 들어봐요.”


“괘..괜찮…”


안나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모습을 드러내는 가슴에 엘사는 결국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안나의 손이 엘사의 옷 안으로 들어오자 엘사는 화들짝 놀라며 소파 끝으로 도망쳤다.

갑자기 엘사가 도망치자 안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엘사를 바라봤다. 엘사의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안나는 엘사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정말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안나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엘사가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다급하게 안나의 이름을 불렀다.


“아..안나!”


“엘사, 한번 봐요. 지금 당신 상태 안 좋은 것 같아요.”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요! 지금 당신 얼굴까지 빨개졌는데?”


“그..그건..”


“확인하고 안 좋으면 병원 가야겠어요.”


“자..잠깐만, 안나!”


어떻게든 맞은 부위를 봐야겠다는 안나와 필사적으로 그런 안나를 막는 엘사는 본의 아니게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힘에서 누가 특별하다 할 것 없이 비슷하긴 했지만 복부에 통증을 느낀 엘사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결국 엘사의 위에 올라 탄 안나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엘사의 상의를 살짝 들어 올렸다.


“이거 봐요! 내가 뭐랬어요..”


예상대로 안나에게 맞은 곳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가뜩이나 흰 피부에 부어오른 곳을 보니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나중에는 멍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안나는 자신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속상한지 울상을 짓고 다시 옷을 내렸다. 


“엘사?”


갑자기 조용해진 엘사를 보니 엘사는 귀까지 빨개진 채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안나가 다시 엘사를 불렀지만 엘사는 아예 눈까지 감고 작게 중얼거렸다.


“엘사?”


“..어요..”


“네?”


“..가운 풀렸다구요..”


엘사의 말에 안나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엉성하게 묶여 있던 가운은 이미 오래 전에 풀린 채로 자신의 나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제서야 안나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안나는 황급히 자신의 가운을 동여매고 엘사에게서 떨어졌다.


“...보려..던건 아니었어요.”


“...미..미안해요, 몰랐어요.”


“…….”


“…….”


어색한 침묵이 순식간에 두 사람 사이를 가득 채웠다.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서로를 보지 못 한채 엘사와 안나는 조금 떨어져 앉아있었다. 

단순히 부끄러워서는 아니었다.

상대에게 몸을 보여줬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을 너머 또다른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서로를 원한다는 느낌.


그때 안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엘사를 바라봤다. 여전이 빨간 엘사의 얼굴이 안나의 눈에 담겼다. 

오늘따라 유난히 흰 피부와 붉은 입술이 안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순간 안나는 저 입술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곳에 입을 맞추면 얼마나 달콤할까? 저 하얀 손이, 푸른 눈동자가 자신에게 닿으면 얼마나 황홀할까? 

잠들어 있던 본능이 눈을 뜨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조금 더 엘사와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까?


안나는 천천히 엘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에 맸던 끈을 풀고 부드럽게 엘사의 볼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온기에 엘사의 눈이 크게 떠졌지만 그것 뿐이었다. 엘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두 사람의 숨이 섞이면서 말캉한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길 몇 번, 안나는 엘사의 위에 올라타 진득한 키스를 남겼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엘사의 손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안나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하아, 엘사.”


숨이 가빠질 때쯤 안나가 잠시 떨어지며 엘사의 이름을 불렀다. 두 사람은 얼굴 뿐만 아니라 온 몸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안나가 엘사의 팔을 자신의 가운 속으로 끌어당겼다.

뜨거운 안나의 맨살에 조금은 서늘한 엘사의 손이 닿자 작게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엘사의 손이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드러운 손길로 안나의 몸을 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안나는 한 손으로 다시 엘사의 목을 잡고 깊게 키스했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서.


“읍..하아...당신이랑 할 거야.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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