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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내 룸메이트가 이렇게 귀여울 리 없어 13

엘산나비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10 15: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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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오늘 강의 끝나고 뭐해?”



“안나, 어디야?”



“안나, 뭐해?”



“안나, 뭐 봐?”



“안나, 이건 뭐야?”



“안나, 아까 걘 누구야?”



안나, 안나? 안나!



그렇게 부끄럼 많던 선배는 어디 간 건지. 안나는 엘사의 넘쳐 흐르는 관심에 말 그대로 익사할 것 같았다. 서로의 감정을 확실히 확인한 뒤부터 엘사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애정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고, 제대로 된(?) 연애가 처음인 안나는 그저 엘사가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해버린 선배가 낯설기는 했지만 그게 또 싫진 않았다. 단둘이 있을 때, 특히 기숙사에 있을 때는 은근한 스킨십까지 스스럼없이 해대며 안나를 당황케 만들면서도, 밖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수줍어하며 까칠하게 대하는 엘사가...



귀여웠다.



시작은 조심스러웠으나, 어느 노래 가사처럼 처음만 힘들지, 엘사는 착실하게 ‘연상’ 애인 노릇을 해나가려 노력했다. 꼴에 연장자라고 모든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모습이 안나의 눈에는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사귀기 전에는 안나가 기숙사에서 무엇을 하든 관심도 주지 않았던 엘사는, 이젠 마치 학부모라도 되는 듯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했다. 막 멋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항상 단정하고 깔끔하게 용모를 갖추고 다니는 엘사와는 달리, 교복이라도 되는 양 주구장창 과잠만 입고 다니는 안나가 가끔 엘사의 수준에 맞추려 평소와는 다르게 꾸미기라도 하는 날엔 득달같이 달려들어 복장을 지적해대기 일쑤였다.



그거, 너무 짧지 않아? 갑자기 웬 고데기야? 하나도 안 어울려.



그냥 다른 사람이 애인 쳐다볼까 봐 질투 난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지! 하나하나 꼬투리 잡아서 시비 거는 듯한 태도가 아주 가관이었다. 심지어 제 옷장에서 가장 노출이 없고 헐렁한 셔츠 같은 것들을 손에 쥐여주며 ‘오늘은 이거 입어.’ 하고 단호히 말하는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엘사의 옷을 입고 외출하는 날엔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니는 선배의 냄새에 웃음 짓는 안나였다.



안나가 과제라도 하는 날엔 옆에 껌처럼 붙어 감시 아닌 감시를 하기도 했다. 이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레포트 쓰는 걸 좋아해. 그 부분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분명 도움이 되는 말들이기는 했으나, 안나는 이제 노이로제가 걸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선배가 자신을 위해 조언을 하는 것일 테니 욱하는 마음을 뒤로 한 채 인내하기를 몇 주, 또 한 번 안나의 자존심을 짓밟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안나, 과제 해?............이게 도대체 뭐야?”



엘사는 안나의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또 시작이네. 안나는 한숨을 쉬며 날카롭게 대꾸했다.



“보면 몰라요? ppt 만들잖아요.”



평소 같았으면 안나의 불손한 태도에 잔소리를 한 바가지 퍼부었을 테지만, 충격에 휩싸인 탓에 말을 잇지 못하는 엘사였다. 저게... ppt라고? ‘대학생’이 만든 ppt라고???? 이제 막 ppt를 배운 초등학생이 만든 게 아니라???????



“이..이번엔 또 뭐가 문젠데요오...”



나름 신경 쓴 건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경악에 물든 엘사의 표정에 안나는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물었다.



“...뭐가 문제냐고?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안 오네.”



글씨체, 템플릿, 그래 뭐 다 그렇다 치자. 근데... 저 뭣 같은 눈사람은 또 뭐냐고?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얘 표정을 보아하니 장난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너 ppt 한 번도 안 만들어 봤어?”



엘사가 이마를 짚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안나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애가 수석이라고? 라고 말하는 듯한 엘사의 표정에 안나는 더욱 기죽은 채로 꿍얼거렸다.



“그동안 발표만 맡았었단 말이에요...”



“그럼, 계속 발표만 할 것이지 왜...”



“이번엔 가위바위보 져가지고...”



허, 엘사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두면 안나는 물론이고 팀원들까지 재수강행 급행열차를 탈 것이 안 봐도 블루레이였다. 결국 엘사는 자신의 과제를 뒤로하고 밤늦도록 안나의 ppt를 손봐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두 사람의 모습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 흡사 학부모와 학생, 보호자와 피보호자와 같은 모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안나는 이러한 엘사와의 관계가 굴욕적이고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연인이 되면 자신이 선배를 더 챙겨줘야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이래저래 챙김 받는 자신이 어린 애 같아 보일까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뒤,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안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모처럼 과제도 없고 여유로워 일찍 잠자리에 든 엘사와 안나는 한창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한창 달콤하게 잠에 빠져있던 찰나, 번쩍거리는 섬광과 함께 귀를 찢는 듯한 천둥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예고 없던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창문은 곧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흔들렸다. 시끄러운 소음에 눈을 뜬 안나는 건너편 침대에서 귀를 틀어막고 와들와들 떨고 있는 선배를 발견하곤 웃음을 터뜨렸다. 수면용 안대를 끼고 있어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안대 너머로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선배, 괜찮아요?”



세찬 빗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는지 엘사는 대답 없이 여전히 몸을 떨어댈 뿐이었다.



“선배!”



다시 한 번 크게 부르자, 엘사가 흠칫 놀라며 안대를 벗어 내렸다. 겁에 질린 눈동자가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많이 무서워요?”



“무, 무섭긴 뭐가...”



엘사가 펭귄 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항변했다.



“이리 와요. 오늘은 같이 자요, 우리.”



엘사는 안나의 달콤한 유혹에 순응하고 싶었지만, 그건 선배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난 그냥 선배도 아니고 ‘연상’ 애인이라고! 엘사는 되지도 않는 자존심을 부리며 인형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그럼 내가 갈까요?”



“...싫어. 좁단 말이야.”



“내가 무서워서 그래요... 네? 같이 자면 안 돼요?”



엘사의 마음을 읽은 안나가 배려하며 말하자, 그제서야 엘사는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베개를 들고 엘사의 침대로 건너간 안나는 후배가 누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벽 쪽으로 몸을 비키는 선배의 귀여운 행위에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선배, 근데... 이 인형은 좀 치우면 안 될까요? 이름이... 요로리였나?”



안나가 엘사와 제 사이에 눈치 없이 끼어 있는 인형을 가리키며 항의했다.



“요르겐 비 요르겐.”



“아.”



엘사의 단호한 대답에 안나는 더이상 항의하지 못하고 언젠간 저 펭귄을 뛰어넘으리라 다짐하며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 온종일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기분. 평생 일탈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엘사는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래, 일탈. 안나와의 연애는 엘사에게는 일탈이었다. 계획에도 없던, 아니 애초에 계획해서 될 리가 없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참 신기했다. 엘사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다에 빠져 말 그대로 허우적대고 있었다. 강의 시간 내내 안나 생각을 하느라 필기 없이 깔끔한 노트를 보며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너무 빠져있나, 싶다가도 강의실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안나를 보면 그런 잡생각은 훨훨 날아가 버리곤 했다. 자신을 보며 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 안나를 볼 때면 모든 근심, 걱정이 잊혀지는 듯했다.



“캐스, 서류 정리 좀 도와줘.”



“넵.”



과사무실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꿀을 빨던 카산드라는 최근 밀려 들어오는 업무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조교에게 서류 뭉치를 건네받은 노예는 서류를 하나하나 카테고리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엘사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발견하곤 무심코 읽어내려가던 카산드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교님?”



“으응?”



“엘사 선배, 유학 가나 봐요?”



“으응, 그런다더라. 뭐, 그 형편에 유학 한 번 안 가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조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반면 카산드라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유학? 그럼 안나랑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안나는 알고 있는 건가?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동기가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하던 카산드라는 이내 곧 자신이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업무를 계속해나갔다.



그리고 바보 같게도, 엘사는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이 벌여 놓은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면 인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평화로운 나날들을 만끽하기 위해 뒷일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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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안나가 만든 의문의 ppt는 대충 요런 늒김... ㅈ같은 보노보노 처럼 더 ㅈ같이 만들고 싶었는데 은근 어렵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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