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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여름눈송이 14부

ASI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16 18: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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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눈송이 14부



안나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채 멍하니 주변을 살피니 낯설은 방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새벽의 하늘이 노랗게 빛나며 구름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시간을 확인하고 도로 이불을 뒤집어 쓴 안나의 눈이 감기다 말고 번쩍 뜨였다. 어젯밤의 일이 벼락같이 안나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잠이 확 달아난 안나는 급히 몸을 일으키다 가슴의 찌릿한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은 팬티 한 장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였다. 온몸의 울긋불긋한 자국이 어젯밤의 일을 상기시켰다. 가슴은 발갛게 부어 있었고, 유륜 주변에는 잇자국에 빤 흔적이 역력했다. 자신의 천사가 남긴 열락의 흔적에 안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기억이 흐트러져 머리가 아픈 와중에 엘사의 품에서 신음하는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안나는 찬찬히 어제의 일을 순서대로 떠올렸다. 한스가 깨어나 자신을 때렸고... 자신은 들판을 헤매이다가 비가 내렸고... 엘사가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엘사를 유혹해서 종국에는...



안나는 차마 마지막 말은 입에 담지 못했다. 뒤늦은 죄책감이 강하게 안나를 내리눌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에게 자신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장난을 쳤던 걸까. 단순히 사과하고 끝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안나는 묵직하게 내려앉은 죄악감에 낮게 신음을 뱉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은 엘사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반쯤 나신이었던 자신과 다르게 엘사는 끝까지 옷조차 벗지 않았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이 일방적으로 엘사에게 시달렸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엘사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 그녀를 성적으로 유혹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원한다면 엘사는 뭐든지 다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엘사가 자신에게 꼼짝도 못하는 걸 알면서 그걸 악용해 엘사의 마음을 가지고 논 자신이 말도 못하게 혐오스러웠다.



한스에게 맞은 순간부터 안나는 마음의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모든 것은 한스가 나아지면 다 괜찮아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내심 자신을 다독이고 있었다. 한스에게 내쳐진 지금에 와서야 안나는 비로소 냉정하게 현실이 보였다.



한스만 낫는다면 다 괜찮아지는 게 아니었다.



한스 때문에 자신의 모든 고통이 시작됐고

변수가 없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냉정한 현실에 마음이 무너져서 애통해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안나는 차갑게 가라앉아 한스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한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마냥 멀게 느껴졌다. 자는 동안 뇌가 열심히 방어막을 쌓았는지 의외로 안나는 제 오빠에 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제는 엘사였다. 서서히 다시금 내려앉는 절망감에 안나는 이불을 끌어와 고개를 묻었다. 이제 자신은 무슨 낯으로 엘사를 봐야 하는가. 아무리 외롭고 괴로웠다지만 자신의 비틀린 마음을 엘사에게서 보상받으려 한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키스 하나만으로 쩔쩔매는 아이인데 자신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지 걱정되었다. 자신으로 인해 상태가 악화되지만 않았기를 안나는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방 안에는 자신 말고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쓰지 않은 베개에 온기가 미약하게 남아 있었다. 엘사가 주변을 지키다 자신이 잠든 걸 확인하고 자리를 뜬 모양이었다. 베개 위의 금발 머리카락 한 올에 안나는 으스러지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서웠을까. 정작 범해진 건 자신이면서도 안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최후의 순간 엘사가 자신을 취하지 않고 떠나려 했던 것이 기억났다.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던 것일까. 슬픈 생각에 안나는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바삐 눈을 비벼 눈물을 지우고 안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은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매도당하고 비난당한다 할지라도 엘사를 찾아야 했다. 자신의 천사를 찾아내서, 무릎을 꿇고 한스의 잘못에 대해 사죄해야 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했다. 안나는 이불을 몸에 칭칭 둘러싸고 문 쪽을 향해 일어섰다.



그 때 방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안나는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새하얀 손이 살짝 문고리를 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고, 작은 발이 대신 문을 열어 고정했다. 엘사가 쟁반에 주전자를 놓은 채 방 안에 들어서고 있었다.



엘사는 안나를 보자 쟁반을 든 채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설마 안나가 깨어나 돌아다니고 있을 줄은 몰랐던 듯했다. 내가 일어났을 때 같이 깼던 건가? 몰래 부엌에 다녀오려던 엘사의 계획은 그렇게 물건너갔다.



엘사의 눈길이 재빨리 벽에 걸린 시계로 옮겨갔다. 오전 5시 40분. 이르긴 했지만 안나가 잠든 시각을 생각하면 얼추 일어날 시간이 맞긴 했다. 대강 9시를 넘겨서 잠들었으니 시간만 따지면 오히려 늦잠을 잔 셈이었다.



굳은 채로 안나를 살피던 엘사의 표정이 이내 풀어졌다. 진지하게 있기엔 눈앞의 광경이 너무나 순수하고 깜찍했던 탓이다. 잠들기 전 울었던 게 원흉이었는지 안나는 양 눈이 퉁퉁 부어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침의 사자머리가 된 채 이불에 돌돌 말린 안나의 모습은 마치 빵에 감싸인 아기 사자 같았다. 어처구니가 없는 모습에 긴장이 느슨해지자 엘사는 몸으로 밀어 방문을 닫고 안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안나는 자신을 보자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무리도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은 안나를 잡아먹으려 했던 것이다. 제아무리 승낙이 있었다고 해도 안나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채 욕정에 몸에 맡기는 건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마지막 선을 넘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엘사는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있었다.



엘사는 침대 옆 탁자에 쟁반을 놓고 안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안나는 뭐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힌 채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하고 있었다. 그걸 본 엘사의 이마에 짐짓 핏줄이 솟았다. 엘사는 성큼성큼 다가와 안나의 턱을 받쳐들고 자신을 향하도록 살짝 돌렸다.



안나.



아기 사자가 살짝 겁에 질린듯 떠는 눈망울로 엘사를 바라보았다.



한 번만 더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가는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용케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안나가 턱이 잡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엘사는 만족한 눈치로 턱에서 손을 떼고, 대신 안나의 허리를 감싸안아 침대로 이끌었다. 안나는 왕방울만하게 눈을 뜨고 엘사가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안나는 몰랐지만 초콜릿으로 원기를 회복한 엘사는 아침부터 힘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안나가 침대에 앉자 엘사는 거리낌 없어 안나가 두르던 이불을 걷어냈다. 으레 있어야 할 가운 대신 하얀 속살이 눈에 들어오자 엘사는 깜짝 놀라 재빨리 이불을 도로 둘러 가렸다. 눈이야 호강했지만 아침부터 두번이나 인내심을 시험당하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서서 돌아다니길래 옷은 입었겠거니 싶었는데 설마 아직도 알몸이었을 줄은 몰랐다. 엘사는 저택에 자신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이 새삼 다행스러웠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엘사는 침대 옆의 옷장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방이었던 만큼 온갖 생활복이 구비되어 있었다. 마침 안나에게 딱 맞을 법한 잠옷도 보였다. 진작 이 방에서 옷을 찾지 않은 것에 혀를 차며 엘사는 옷을 꺼내 안나에게 내밀었다.



손을 뻗어 안나가 잠옷을 받자 엘사는 발길을 돌려 욕실로 들어섰다. 수건...물티슈랑...빗이랑...스킨... 헤어 에센스를 찾아 선반을 살피던 엘사의 눈이 찌푸려졌다. 하기야 손님 방이라도 그런 것까지 구비되어 있을 리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자신의 방에서 모로칸 오일을 챙긴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엘사는 선반 문을 닫았다.



욕실을 나서자 안나가 잠옷을 다 입은 채 침대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평소에 나불나불 떠드느라 바쁜 아이가 조용하니 엘사는 묘한 느낌에 입술을 삐죽였다. 그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했다.



엘사는 침대 위에 욕실에서 가져온 물건을 내려놓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양갓집 규수처럼 얌전하게 있는 모습이 무색하게 안나의 잠옷은 단추를 잘못 끼워 위아래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아무래도 여전히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걱정 반 어이없음 반에 엘사는 묵묵히 손을 내밀어 안나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아...”



움츠러들다 단추가 잘못 꿰인 것을 눈치챘는지 안나는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안나의 잠옷 옷깃 사이로 자신이 남긴 붉은 흔적이 보였다. 엘사는 다시 고개를 드는 음심을 무자비하게 눌러 죽이고 묵묵히 아래에서부터 다시 단추를 채워 올렸다.



몇 분 전에 비해 붓기가 좀 빠졌는지 안나가 더 커진 눈으로 자신을 응시했다.



“고마워...엘사...”



안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안나가 어떤 심정인지 엘사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자세로는 얼굴의 눈물 자국을 지우기 힘들었다. 눈물이 말라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엘사에게는 그저 고통스러운 광경일 뿐이었다. 안나는 뭔가 힘든 일을 겪고 자신을 찾아왔는데 그런 안나를 자신은...



자신에 대한 분노로 엘사는 주먹을 꽉 쥐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무서웠는지 눈앞의 소녀가 살짝 떨었다. 그 모습에 엘사는 더욱 속이 뒤틀려 냉정한 표정을 깨트릴 뻔했다. 자신이 고뇌하는 모습을 안나에게 보여줄 순 없었다. 애써 표정을 바로 하고 물티슈를 집어 몇 장을 뽑았다.



엘사는 손을 들어 안나의 턱을 받치고 자신을 마주하도록 살짝 위로 올렸다. 두려움에 질려 떨고 있는 눈동자가 자신을 봤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동자 속에서 엘사는 두려움 이외에 다른 감정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두려움마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손바닥 뒤집듯 제 마음을 읽어내는 안나와 다르게 엘사는 안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걱정으로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엘사는 천천히 물티슈를 문질러 안나의 눈물 자국을 지워나갔다.



한쪽 뺨을 다 닦기가 무섭게 반대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혹감으로 엘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무서운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우는 걸까. 역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젯밤 욕정에 밀려 사그라졌던 의문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엘사는 물티슈를 내려놓고 팔을 벌려 안나를 끌어안았다. 언제인가 안나가 자신에게 했던, 제 몸은 푹신해서 기분 좋다는 말이 떠오른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 없었다.



안나, 부탁이야. 제발 울지 말아줘.



끌어안은 게 기폭제였는지 안나가 품 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아예 자신의 옷깃을 움켜쥔 채 방이 떠나가도록 서럽게 울었다. 역시 무슨 일이 있는 거라고 확신한 엘사는 안나를 토닥이며 울음이 사그라들 때까지 감싸안은 팔을 놓지 않았다.



얼굴이 물티슈로 닦기 전보다 엉망으로 변하자 엘사는 아예 수건을 꺼내들고 살살 주근깨 가득한 얼굴을 닦았다. 타들어가는 제 속과 다르게 안나는 한껏 감정을 내보내 기분이 좀 풀렸는지 자신을 향해 배시시 웃었다. 엘사는 제 속도 모르고 즐거워하는 괘씸한 천사에게 애정이 샘솟아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이번엔 빗과 오일을 꺼내들었다.



안나가 가만히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다 고개를 젓고는 다시 엘사의 품에 안겨왔다. 시체처럼 들판에 널부러져 있던 어제와는 영 딴판이었다. 엘사는 변화가 달가웠는지 다시금 안나를 품에 안고 안나의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행복으로 젖어있던 엘사의 눈동자가 위기감을 느끼고 번쩍 뜨였다. 언제 손을 움직였는지 자신의 앙큼한 천사가 가운 옆지퍼를 내리고 빈틈으로 손을 밀어넣고 있었다. 엘사의 뇌리에 시설에서 간지럽혀졌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이런 자세로는 반격을 할 수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금새 안나가 옆구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갈비 아래의 민감한 부분을 희롱당하자 엘사는 화들짝 놀라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갑자기 힘이 되살아나기라도 했는지 안나가 자신을 붙잡은 채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흐흐 웃으며 안나는 간지럽히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안나 밑에 깔린 채 엘사는 간지럼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함부로 팔을 휘둘렀다간 안나가 맞고 다칠지도 모른단 생각에 자신은 소극적인 방어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 안나가 이것까지 계산해서 공격을 했던 거라면 참으로 영악한 아이가 아닐 수 없었다.



엘사는 방어를 포기하고 안나를 밀어내던 양손을 뗐다. 옆구리의 감각에 까무러칠 것 같았지만 이것밖에 남은 방법이 없었다. 손을 물린 건 의외였는지 안나가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올렸다. 여기까지도 엘사의 계획대로였다. 엘사는 일부러 혀를 내밀고 안나와 눈을 맞춘 채 손바닥을 길게 끝까지 핥았다. 느닷없는 요염한 광경에 안나의 손이 살짝 주춤했다. 엘사는 그 찰나의 순간 손을 아래로 내려 타액이 묻은 손가락을 안나의 귀에 대고 귓바퀴를 훑었다.



“느히이익!”



공격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안나가 귀까지 빨개진 채 서둘러 자신에게서 손을 거두었다. 어제 알게 된 성감대를 이런 식으로 써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엘사는 그 부분에 대한 죄의식은 없었다. 먼저 공격을 했던 건 안나였다. 자신의 앙큼한 천사는 이제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음험하게 웃는 엘사의 표정에 안나는 다시 엘사의 옆구리를 노렸지만 자신은 이미 순식간에 제압당해 엘사 밑에 깔려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안이 벙벙한 안나에게 엘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알 수 없는 두근거림으로 안나의 가슴이 잠옷 속에서 요동쳤다.



서서히 엘사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안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엘사의 양손이 자신의 머리를 살며시 잡는 게 느껴졌다.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안나는 발갛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엘사의 입술이 안나의 이마에 닿았다. 입술이 닿은 부분에 번개가 내려쳐 온몸으로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심장이 찌릿함에 아프도록 조여들며 흉곽 안에서 기쁘게 요동쳤다.



안나는 시간 감각을 잃어버렸다. 엘사의 입술이 닿아있는 몇 초가 몇 분인지 며칠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 묘한 행복감에 저도 모르게 양손을 가슴에 포갰다. 안 그러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다시 뜬 안나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엘사는 천천히 안나에게서 입술을 뗐다. 이마에 입술 자국이 도장마냥 붉게 남았다. 묘한 만족감에 엘사는 미소를 띤 채 안나를 내려다봤다. 간지럽힐 때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자신의 천사는 얌전해진 고양이마냥 손을 포갠 채 몽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엘사는 손을 내려 안나의 뺨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이렇게 안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자신은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안나가 너무나, 너무나 그리웠었다. 시설에서의 사고 이후, 어쩌면 두번 다시 안나를 만날 수 없을 거라며 눈물과 불안으로 지새웠던 밤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기어올라 희망을 바라보며 일어섰을 때 하늘은 최고의 선물을 보내주었다.



나의 천사. 나의 사랑.



완전히 떠오른 태양이 눈부시도록 두 사람을 비추었다. 자신의 위에서 뺨을 훑는 엘사를 보며 안나는 여태껏 눈치채지 못한 감정의 정체를 비로소 깨달았다.



초콜릿을 사들고 시설로 향하던 때의 두근거림.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의 슬픔.


다시 만났을 때 저도 모르게 내려앉았던 안도감.


왠지 모르게 장난치고, 앵기고 싶은 마음.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빨라지는 자신의 심장과


가슴을 간질이는 알 수 없는 행복감.



모든 것이 어우러진 하나의 감정이 안나의 귀에 노래처럼 울렸다. 내리쬐는 태양에 엘사의 머리카락이 보석처럼 빛났다. 어째서 여태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몽롱했던 청록색 눈동자가 예기를 되찾고 파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처음인 듯이 인사를 건넸다.



엘사.


나 너를 사랑하고 있나봐.









- - - - - - -

작가의 말


폰으로 링크 붙이면 본문에서 클릭 안 되는 거 이제서야 알았네요ㅠ

전의 글도 링크 클릭 되게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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