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픽] 결혼 계약서(23)

ㅇㅇ(222.110) 2020.08.16 23:35:28
조회 621 추천 55 댓글 12


그 대화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두 사람의 생활은 예전과 다름없어 보였지만 무언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서로의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을 못 보는 날이 많아졌다.


일이 바쁘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지만 엘사는 이 작은 균열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안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자신을 피하는 느낌이었다. 만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젠 예전만큼 안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엘사가 종종 먼저 연락을 하곤 했지만 안나에게 답이 올 때는 많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안나는 엘사의 연락을 무시하고 있었다.


엘사는 이 상황이 불안했지만 안나에게 무슨 일인지 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사실 엘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저 확인하기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새벽에 나눴던 대화 이후로 안나의 태도는 변했다. 그 말은 안나는 아렌델 프로젝트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안나는 자신의 거짓말을 알아챘을 지도 모른다.


“..하아.”


엘사는 갑자기 몰려오는 두통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좀처럼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안나는 어디까지 알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실을 말하지 않은 자신을 뭐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저 나를 의심하고 있을까?

애초에 안나는 무슨 말을 듣고 싶었을까.


엘사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눈을 감았다. 안나가 자신을 그렇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만약 안나가 자신의 거짓말을 알고 있다면 가서 오해를 풀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으로선 말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안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아직 또 다른 문제를 찾지 못했고 엘사와 한스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때 한스가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한스는 어두운 얼굴로 엘사에게 다가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보고 때 회장님께서 아렌델 프로젝트 중간 보고서도 같이 보길 원하십니다.”


“이렇게 빨리요?”


“네. 최종 보고서일 필요는 없지만 대략적인 큰 틀이라도 보고싶어 하세요.”


“…….”


“아무래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


“..안 돼요.”


“엘사, 그만해요.”


“말이 안 돼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에요. 분명 뭔가가 더 있어요.”


“설령 그렇다 해도 알아낼 방법이 없잖아요. 이미 우리 손을 떠난 일이예요.”


“…….”


“엘사.”


“..안나가 오해하고 있어요. 아니, 의심이라고 해야하나.”


혼잣말에 가까운 엘사의 중얼거림에 한스가 무슨 의미인지 물었으나 엘사는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안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두려웠다.

혹시라도 안나가 자신에게 실망해 떠나게 될 까봐.

엘사는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흐린 날씨를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재차 묻는 한스의 목소리에 엘사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안나가 이 프로젝트에 대해 무언가 알고있는 것 같아요.”


“해밀턴에서요?”


“...해밀턴인지, 그냥 개인인지는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 나한테 아렌델 프로젝트에 대해서 물어봤었어요.”


“우리도 알았으니 해밀턴도 뭔가 아는 게 있을 수도 있죠.”


“..문제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거예요.”


“거짓말?”


“이 프로젝트에 대해 모른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 것 같아요.”


“근거는요?”


“...태도가 변했다고 할까..사실, 감이에요.”


“그 부분에 대해 얘기해봤어요?”


“아뇨. 그냥 나를 피한다는 느낌이에요.”


“그럼 추측이네요?”


“네.”


그 대답에 한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이런 일은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엘사의 입장도, 안나의 입장도 이해했기 때문에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두 사람이 부부인 탓도 있었지만 이 일은 사업까지 얽힌 복잡한 문제였다.

게다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엘사.”


한참의 침묵 끝에 한스가 엘사를 불렀다. 엘사가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한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안나를 믿어요?”


“네?”


“안나를 믿냐구요.”


“..네. 믿어요.”


“내 말은 사업적으로 믿는지 묻는거에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만일 안나를 믿을 수 있다면, 대화를 해 봐요. 정보도 공유하고 그쪽에서 필요한 것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그건 마치 안나를 이용하는..”


“지금 무슨 말 하는거에요? 필요하면 당연히 이용해야죠.”


“한스. 말 조심해요.”


“엘사, 지금 우린 절벽에 서 있어요.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떨어진다구요. 그리고 이건 안나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 아는 걸 조금만 공유하자는 거니까.”


“…….”


“지금 더 간절한 쪽은 우리에요. 대화를 해요, 오해도 풀고 싶다면서요. 어쩌면 이 방법이 돌파구가 될지도 몰라요.”


“…….”


“당신의 입장을 이해하지만...엘사, 이건 알아둬요. 우리 모두 이미 진흙탕에 들어왔어요. 여기서 깨끗해질 수는 없어요.”


엘사는 듣기 괴로운 듯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모르게 절로 인상이 써지는 것 같았다.

한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쉽게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 동안 안나와 지내면서 최대한 사업적인 부분은 배제하려고 했었다. 정말 순수한 감정으로만 안나를 대하고 그렇게 애정을 쌓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엘사는 안나에게 사업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 동안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정이 아닌 득실에 따라 이야기를 하는 순간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다.

엘사는 절대 안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무거운 침묵 끝에 엘사는 입을 열었다. 한스는 생각보다 빠른 대답에 의외라는 듯 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사는 한스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린 다 진흙탕에 들어왔어요. 당신 말대로 여기서 혼자 깨끗할 수는 없죠.”


“…… .”


“하지만 그 상대가 굳이 안나일 필요는 없어요.”


“네?”


“...직접 부딪쳐야겠어요. 해밀턴 부회장, 위즐튼과 약속 잡아주세요.”








안나는 최대한 엘사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엘사의 말이 거짓임을 알았을 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동안 자신에게 웃어주던 엘사의 모습이, 사랑한다 속삭이던 말들이 전부 거짓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대화 이후로 엘사를 피하고 연락도 무시했다. 도저히 엘사를 볼 자신이 없었다.

엘사의 행동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날이 갈수록 엘사에 대한 믿음이 전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혼란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대화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엘사에게 이미 이 프로젝트 담당이 당신인 것을 알고 있으니 아는 것을 말해달라고 했으면 나았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할까.


안나는 괴로운 듯 눈을 감았다. 아마 엘사도 이미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대화 이후로 자신의 태도가 달라졌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왜 그저 가만히 있을까?

정말 사업적인 이유로? 정략결혼에 불과했기 때문에?


안나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으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엘사에 대한 마음은 점점 커져가는데 현실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누군가 안나의 귓가에서 엘사는 그저 널 이용한 것이라고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팀장님, 회의요.”


그때 들려온 팀원의 말에 안나는 눈을 떴다. 아직도 환청이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안나는 최대한 머리를 비우려 애썼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엘사를 보고싶지 않았다.



추천 비추천

55

고정닉 11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공지 음란성 게시물 등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63] 운영자 14.08.29 167262 509
공지 설국열차 갤러리 이용 안내 [2861] 운영자 13.07.31 439696 286
1123712 안녕 털복숭이들 ㅇㅇ(112.157) 11:26 0 0
1123711 청정한 헬요일 ㅇㅇ(223.62) 00:18 10 0
1123709 뒤조심)아 되게 충격적인 짤 봫는데 얘기할데가 여기밖에 없어 [7] ㅇㅇ(110.47) 06.09 64 0
1123708 디시 이미지 왜 깨져... ㅇㅇ(223.62) 06.09 11 0
1123707 누가먼저 보내나 시합! [1] ㅇㅇ(223.62) 06.09 25 0
1123706 일편단심 안개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4 0
1123705 넘쳐나는 go간 [1] ㅇㅇ(223.62) 06.09 29 0
1123704 축 늘어진 흰 옷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아기 [1] ㅇㅇ(223.62) 06.09 23 0
1123703 설갤 단점 ㅇㅇ(223.33) 06.09 16 0
1123702 설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9 22 0
1123701 그런가 [2] 설갤러(118.43) 06.09 16 0
1123700 아니 69라고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699 크 69가 와버렸다!!!! 설갤러(118.43) 06.09 14 0
1123698 엘산나를 만난게 행운이야 [5] ㅇㅇ(223.62) 06.08 32 0
1123697 배거파 [1] ㅇㅇ(110.47) 06.08 17 0
1123696 오늘막글 ㅇㅇ(223.62) 06.08 15 0
1123695 어 내일이 69잔아 ㅇㅇ(223.62) 06.08 14 0
1123694 쥬미 영화 보러옴 ㅇㅇ(211.234) 06.08 17 0
1123693 안탄절 지나면 엘탄절도 금방 ㅇㅇ(223.62) 06.08 16 0
1123692 모험가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20 0
1123691 싯발 언제 비 그친거냐 [1] ㅇㅇ(223.62) 06.08 20 0
1123690 수상하게 칼을 잘쓰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1 0
1123689 뭐지? 결혼식인가? [5] ㅇㅇ(211.234) 06.08 56 5
1123688 정령을 잡아다 예쁘게 묶어 공물로 바치기 ㅇㅇ(223.62) 06.08 22 0
1123687 혐퀘후식사 [2] ㅇㅇ(211.234) 06.08 19 0
1123686 오늘은 자동으로 실내활동 [1] ㅇㅇ(223.62) 06.08 19 0
1123685 자연스레 깊어가는 둘의 관계 ㅇㅇ(223.62) 06.08 21 0
1123684 아찜글 ㅇㅇ(211.234) 06.08 15 0
1123683 새벽글 [1] ㅇㅇ(115.138) 06.08 17 0
1123682 다다음주가 안탄절이네 곧 [2] PeopleOfArendel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8 33 1
1123681 안나가 엘사를 [1] ㅇㅇ(223.62) 06.07 31 0
1123680 엘산나의 금요일 ㅇㅇ(223.33) 06.07 16 0
1123679 여전히 존버중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26 0
1123678 안나vs안나는 기존쎄 대결일듯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34 0
1123677 애틋하게 뺨쓰담 ㅇㅇ(223.62) 06.07 21 0
1123676 눈 깜짝할 새 킹요일 ㅇㅇ(223.62) 06.07 21 0
1123675 원하는 초능력을 얻는 대신 댓글이 부작용을 정해줌 [18] ㅇㅇ(115.138) 06.07 86 0
1123674 크으 모닝갤먹 [1] ㅇㅇ(223.62) 06.07 23 0
1123673 [그림] 원치 않은 신앙 [10] 애호박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7 105 10
1123672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창작물 [6] 케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112 11
1123671 세명이서 서로 아래 핥으려면 원을 그려야하냐 [3] ㅇㅇ(223.62) 06.06 53 0
1123670 프로즌 ost는 언제 들어도 좋아 [2] 설갤러(118.43) 06.06 24 0
1123669 크읏 이러다 울룩불룩 설줌이 돼버렷 [1] ㅇㅇ(223.62) 06.06 28 0
1123668 엘사만 만나면 움츠라드는 안줌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36 0
1123667 태어날 때 부터 얀데레 엘사 [2]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48 0
1123666 안나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3 0
1123665 이럴 때 정신놓으면 갓반인 된다 [2] ㅇㅇ(223.62) 06.06 32 0
1123664 말라간다 [1] 써리파이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06 25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