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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공주와 해적 47화 - 감히 바라건대...

ㅂ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18 18:07:07
조회 206 추천 16 댓글 10

링크 모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nowpiercer2013&no=928443



47화 - 감히 바라건대...



듣는 이에게는 의외일수도 있겠으나, 패배감과 무력감은 멜리사에게 있어 딱히 새로운 감정은 아니었다.


흔한 착각이었다; 여왕이라는 지위에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오만한 태도, 그리고 그 모습이 전혀 아깝지 않은 뛰어난 능력까지 갖춘 사람이기에, 그만큼 무심코 실패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겪어온 풍파나 괴로움, 아픔에 대해선 생각하기 힘드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다스리는 아렌델이 규모는 터무니없이 작은 주제에, 무역 강국으로서의 입지 때문에 두 제국들에게 호시탐탐 노려지는 입장이었던 것…… 그리고 성격이야 어쨌든 군주로서의 책임감 자체는 투철했던 그녀가, 도저히 그런 상황에서 제 나라를 버릴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제 나름대로 열심히 발버둥쳤고, 어느 정도는 성과를 보였다; 자신의 정치력으로 제국의 마수를 적절히 쳐내는 동시에, 뒤에서 엘사의 활동을 지원하며 그들을 서서히 약화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상 외로 그녀와 엘사를 훨씬 경계하고 있었고, 주어진 시간은 거기에 대비하기엔 너무나 짧았다.


그랬기에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제 꿈을 스스로 짓밟고, 신뢰를 나눈 이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여왕으로서, 자신의 모든 선택은 아렌델을 위한 것이어야 했기에.


“…… 비겁한 변명일 뿐인 것을.”


집무실에 앉은 채로 천장을 우러르며 헛웃음을 짓는 멜리사. 그래, 변명이다; 선택이니 뭐니 해도, 결국 그녀는 제국에게 패한 것이며, 그 대가로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희생시켰다. 이 괴로움은 아마 평생 남아 그녀를 괴롭히게 되겠지…… 나라를 살리기 위해 그들을 내쳐버린 그녀에게 합당한 벌이라면 벌이겠지만.


똑 똑 또독 똑


그렇게 조용히 자괴감에 무너져가던 멜리사의 귀에 갑자기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자신이 그녀를 피한다고 느낄 때마다 오히려 더 달라붙어왔던, 한번도 언니로서의 자신을 포기한 적 없던 가엾은 안나, 나의 동생.


언니…… 안에 있지? 나 좀 들어갈게.”


집무실 밖에서 경비병들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언제 안나가 신경 쓴 적이나 있었던가? 며칠 전부터 계속 그녀와 대화를 시도하는 동생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줄곧 그녀를 밀어내놓고 뻔뻔한 건 알지만, 아무튼 안된다.


지금 그 애와 얘기하게 되면…… 기껏 독한 맘 먹고 결심한 일이 모두 무너질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으니까.


돌아가라, 안나…… 지금은 너와 얘기할 수 없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매몰차게 대답하는 멜리사. 아무리 익숙해져도 이런 식으로 하나뿐인 동생을 밀어내는 건 괴로웠지만, 이번만큼은 안된다…… 그리고 이 정도로 하지 않으면 안나는 절대로 포기 안 하는 성격인 건 자신이 제일 잘 아니까.


내가 안되면…… 한나는 가능할까?”


“…………………. ?!”


하지만 이어지는 안나의 말에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나라고? 분명 출정하기 전에 도망치라고 말했을텐데……!


“…… 저 여깄어요, 여왕님.”


그리고 문 저편에서 다시는 듣지 못할 줄 알았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기 손으로 집무실 문을 열고 있었던 멜리사였다.


한나, ……!”


경악한 멜리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치 유령처럼 후다닥 방 안으로 들어오는 안나와 한나; 이 둘이 한데 있으니 마치 자신보다도 더 친자매같아 혼란이 올 뻔했다. 밤중이라고는 해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인지 큰 망토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온 한나였지만, 그녀를 보는 동시에 그 안쪽에서 흔들리는 회청색 눈을 놓칠 리가 없었다.


“…… 말한 대로 안 해서 죄송해요.”


어째서 이런 무모한 일을……!”


다른 것 다 떠나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은 멜리사 앞에서, 마침내 후드를 벗은 한나 옆에 안나가 서서 대신 대답했다:


왜겠어? 이 애도 아는 거야; 아직 포기하긴 이르단 걸.”


“………………..”


안나의 말에 어째선지 민망한 표정을 짓는 한나였지만, 멜리사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굳어버렸다; 역시 그 얘기었나. 이래서 대화를 피하려고 그렇게 애썼건만……..


언니를 탓하려는 건 아냐. 나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아……. 그치만 언니도 괴롭잖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잖아. 나도 한나도, 아무도 원하지 않은 선택인데도 말야.”


“…….. 나는 아렌델의 여왕이다, 안나. 군주는 때로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해.”


일부러 얼굴을 굳히고 정론으로 안나의 말에 반박하는 멜리사였다.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야


그래, 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칠 순 없으니까…..


언니……”


그만; 이미 끝난 얘기다.”


머리를 감싸쥐며 손을 내밀어 동생의 말을 저지하는 멜리사. 이 대화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멈춰야 해……. 그리고 더 이상 이 아이들을 마주해선 안돼. 안 그래도 위태로운 결심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 정말 그렇게 절 안 보실 건가요, 여왕님…..?”


“…………!!!!”


아니 잠깐, 그건 반칙이잖아, 한나……! 그렇게 얘기해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그 저주받은 날, 처음으로 한나를 밀어내고 도망치게 했을 때 끝났다고 생각했다. 통곡하는 심장을 억누르며, 이 일만 끝나면 한때의 추억으로 묻어둘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산산이 부서진 그녀의 마음에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바로 앞에서 저런 말을 하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여왕님……”


다시 한번 그녀를 부르는 한나의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시점에서 이미 멜리사의 의지는 의미가 없게 되고 말았다.


한나, 너는 어째서……..”


탄식하며 얼굴을 가리던 손을 치운 멜리사의 목소리에 담긴 건 부정할 수 없는 패배의 신호였다. 그래, 자신은 또 졌다 그래도 이번엔 다른 이도 아닌 안나와 한나에게 패한 거니까 그렇게까지 불쾌하진 않지만.


하하…… 둘이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냥 내가 빠질까?”


옆에서 졌다는 표정으로 짓궃게 중얼거리는 안나였지만, 그 말투와는 별개로 청록색 눈은 안도와 기쁨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니, 벌써 얘기 끝난 것처럼 굴지 말라고!


왜 자꾸 그러는 거냐…… 희망이 없는 일에 희망을 불어넣으려고 하고……”


다시 머리를 싸쥐려는 충동을 참으며 괴롭게 중얼거리는 멜리사.


“…… 희망이 있다면요?”


“…………!!!”


하지만 대답하는 한나의 말에는 조금의 과장도 허세도 없는, 그저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한나……”


말문이 막혀버린 멜리사였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잇는 한나였다:


솔직히 저도 막막했어요. 다 포기하고 막 나갈 생각도 했었죠…… 근데 동생분의 말을 듣고 마음을 생각해보니까…… 극악의 확률이긴 하지만, 그 무엇도 버리지 않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


감히 바래도 된다고 얘기하는 건가, 이 소녀…… 아니, 소녀들은. 그 무엇보다도 바랬던, 하지만 차마 꿈도 꾸지 못했던 희망을 품어도 괜찮다고…….?


쉽다고는 안해요. 하지만…… 여왕님이 계시고, 엘사 언니가 있고, 공주님이 계시고…… 무엇보다 내가 있어요.”


“…………..!!!”


이 무슨 자신감인가. 하지만 멜리사는 알 수 있다: 저 말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엔, 그들에 대한 신뢰 또한 기반해 있기에 가능하단 걸.


언니, 지금 당장 마음을 바꿔달란 얘기는 아냐. 그래도 나름 우리 둘이서 머리 싸매고 고민한 결과다? 그러니까 한번쯤 들어라도 봐주면 안돼?”


거기에 마지막으로 안나가 쐐기까지 박으니, 멜리사 입장에선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를 꼭 닮은 그녀의 동생은,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강한 사람들이었다.


“…… 듣고 있어.”



- 작가의 변 - 

 

잊지 말자...... 한나도 짱나인 것이다! 이 픽에서 한나의 캐릭터를 알고 있다면 얘 말이 빈말은 아니라는 걸 어느 정도 느꼈을거야. 과연 멜리사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을지...... 소제목 '감히 바라건대'는 어쩔 수 없이 희생을 강요해야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멜리사의 속마음을 대변해봄. 아니, 사실 네자매 모두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픽을 쓰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주인공으로서' 안나의 역할이었어. 까놓고 말해서 초~중반부까지는 엘사가 다 해먹어서 안나의 존재감이 희미했거든. 그래서 이 시점에서 활약할 기회를 준 거지; 짱나가 제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로.


아무튼, 제법 열심히 달렸다, 그치? ^^ 벌써 47화라니..... 근데 원고는 지금 50화가 넘었는데도 내용이 까마득하다...ㅋㅋㅋ 일단 60화까지는 갈 거 같고, 잘하면 넘길지도....ㅋㅋㅋ 그럼 다음화 예고를 보자!



- 48화 예고: 심판 - 



오오, 이 나이를 먹고 나서 드디어 저 악마가 심판받는 날을 보게 되다니……!”


...


“’용의 딸엘사 드레이크! 아렌델은 너와 같은 해적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다. 이에 아렌델의 여왕으로서 판결을 내리노니!”


...


도둑질한 걸 다시 빼앗아갔는데 뭐가 불만이지?”



으음, 다음 씬은 바로 재판장이네! 과연 멜리사의 판결은.......? 다음(=내일 or 모레)화를 기약하며 건필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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