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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팬픽] Whiskey Bonbon -2

ㅇㅇ(14.32) 2020.08.21 20:17:36
조회 432 추천 34 댓글 8




"방금 우리가 어떤 계시를 받은 건 아닐까?"


올라프가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글쎄, 아무리 좋게 봐줘도 가게 내부는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만 같았다.


“나는 너의 그 긍정적인 마인드가 참 부러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초콜릿을 잔뜩 받았잖아? 그것도 전문가가 만든.”
“첫째, 오늘은 발렌타인데이가 아니야. 둘째, 망해가는 가게의 ‘전문가’ 말이지.”


처리곤란 봉투를 냉동실 구석에 던져 넣으며 엘사가 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나는 초콜릿 안 좋아해.”
“그렇다고 해서 버리다니 너무해.”
“오해하지 마,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만 보관해두는 거야.”


결국 종착지는 쓰레기통이잖아? 올라프는 인상을 찌푸렸다.


“얼핏 듣기로 매일 올 거라 그러지 않았나? 계속 쌓아둘 작정이야?”
“하, 하. 잘도 오겠다. 지금 길바닥에 드러누워 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 무렵, 아닌 게 아니라 당사자는 길가에 널린 눈사람 하나하나마다 일방적인 우정을 쌓고 있었다. 안녕, 친구야! 너 이름은 뭐니? 근데 많이 추워 보인다, 목도리 하나도 걸쳐주지 않다니 여기 사람들 되게 매정하네! 이것도 운명인데 따뜻한 우리 집으로 가자! 혹시 초콜릿 좋아하니? 내가 핫초콜릿에는 일가견이 있어서 말이야......


그도 역시 같은 참사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큰 길까지라도 데려다 주지 그랬어?”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 거 봤잖아? 나도 필요 이상으로 손님과 얽히는 일은 이제 극구 사양이야.”


그러니까 잔소리는 그만 해! 엘사의 일갈에 올라프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여태 베푼 선의의 대가가 어떤 식으로 돌아왔는지 같이 보고 들었으면서, 도대체 왜 나한테 친절을 요구하는 거야? 엘사의 머릿속에선 그간 바에서 있던 진상 해프닝만으로도 에세이를 8권째 편찬하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최신화의 제목은 크레이지 초콜릿 걸이었다. ......잠깐만, 대가? 무언갈 놓치고 있단 기분이 들어, 방금 떠올린 문장을 곰곰이 되뇌어보던 엘사가 소리를 질렀다.
 
“계산을 안 했잖아?!”
“맞아, 내가 그 말 하려고 생각했어.”
“왜 생각만 했어!”
“잔소리 하지 말라며?”
“이..., 이..., 관두자!”


이러고 있을 시간에 당장 나가서 찾고 말지! 외투도 입지 않은 채 훌쩍 뛰쳐나간 엘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 눈사람 꼴로 다시 돌아왔다. 올라프가 예의상 물어보았다.


“찾았어?”


엘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내일 다시 온다니 다행이네.”
“......아니면 이 쪽에서 찾아가는 방법도 있지.”


생각났다는 듯, 그녀가 냉장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리고 신데렐라가 남기고 간 증거물(쉽게 말하자면, 봉투)을 꺼내 감식반 마냥 유심히 살폈다.


“요즘 같은 시대엔 상호명만 알아도 위치부터 구글 별점까지 전부 나오니까 말이야.”
“음, 내가 보기엔 아무거나 가져온 것 같은데. ‘오큰의 잡화점’이라고 써있어.”
“......포장에 신경을 안 쓰는데 홍보가 될 리 있나!”


안 돼!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쓰레기통을 겨냥해 봉지를 집어던지려고 하는 친구의 팔을 붙잡고, 올라프가 다급히 설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직접 만든 성의가 있는데 버리는 건 아깝잖아! 초콜릿은 죄가 없어!”
“나는 그 죄 없다는 초콜릿만 보면 그 때가 생각 나, 대학원 노예 시절이!”
“다시 왔을 때 맛에 대해 평가해줘야지!”
“그런 건 굳이 안 먹어봐도 할 수 있어, 달다, 덜 달다, 완전 달다!”
“아까 펑펑 울던 모습을 떠올려 봐!”


젠장! 마침내 양심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그녀가 얌전히 팔을 내렸다.


“......진짜 딱 한 개만 먹을 거야.”
“잘 생각했어.”


엘사는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초콜릿의 포장을 풀어 입 안에 집어넣었다. 봤지? 여기엔 어떤 속임수도 없다는 듯이 그녀가 손을 펼쳐 앞뒤로 흔들어보였다. 초콜릿을 깨묾과 동시에 엘사가 연신 투덜거렸다.


“만에 하나 그 사람이 다시 찾아온다면, 너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으로서 내 노력을 입증해 줘야 해. 쉬는 날에 골치 아파지는 건 질색이야.”
“그럼, 내가 바로 네 갈등중재전문가잖아.”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초콜릿은 더 받지 마, 무슨 말인지 알겠지?”
“충분히 만족했다고 잘 얘기하면 되는 거잖아, 걱정 마!”


얘를 믿어도 될까? 엘사는 이 천진난만 순진무구 친구에게 이리 중하고 귀한 일을 떠맡겨도 될지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나 금쪽같은 휴무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 설마 하루정도 안 나온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라도 나겠어?


그리고 이틀 후, 엘사의 회고록 ‘내가 만난 진상들’에는 ‘안면 냉수세례’라는 새 챕터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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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버전이랑은 쪼오끔 다르게 가려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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