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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팬픽] Whiskey Bonbon -8

ㅇㅇ(14.32) 2020.09.03 20:20:47
조회 363 추천 28 댓글 8




“이 쓰레기!”


어딜 도망가! 귀에 익은 목소리와 문장이었지만, 엘사는 다가오는 위기감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태평할 따름이었다. 요즘 쓰레기는 스스로 돌아다니나 보지?


“근처에 수거반이 있나 봐요. 돌아서 지나갈까요?”


그 쓰레기가 자신을 일컫는단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망나니 바텐더!”


머리채를 쥐어뜯기기 일보직전, 곰 같은 사내가 미쳐 날뛰는 안나를 가까스로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당장이라도 덤벼들고 싶었지만 단단히 붙들린지라 그의 팔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이거 놔! 안나가 허공에 발을 구르며 벽력같은 노성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아주! 끝장을! 봐야겠어!”
“죄송합니다, 여기 이 친구가 가끔 고장 날 때가 있답니다. 저희는 그럼 이만 수리를 맡기러 가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안녕하세요, 그 쪽도 이 인간이 친구하자고 접근했나요? 그게 걸프렌드일줄 알았죠? 안 됐지만 섹스프렌드랍니다!”
“야, 너 지금 데이트 하는 커플한테 무슨 막말이야! 방해되잖아!”


그는 망발을 쏟아내는 입을 막아보려 했으나, 곧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악! 결국 물려버린 중재자는 손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맹수는 오직 목표물에게만 시선을 고정하며 으르렁거렸다.


“당연히 방해하려고 이러지! 저 인간한테 인생교훈을 얻은 이상, 피해자가 더 늘어나지 않게 해야 할 의무가 있어!”


아르르...... 난장판을 목도하고 굳어버린 엘사에게 허니마린이 물었다.


“저 사람이 그 윌리 웡카인가요?”
“네, 아마 취한 것 같은데요.”
“누구 보고 취했다는 거예요, 지금! 그쪽도 남의 일이 아닐걸요, 한 번 자고난 여자를 제정신 아닌 취급하는 모양이니까!”


뭐라고? 엘사는 폭탄발언 반경에 속한 모든 사람(행인 포함)이 자신을 인간말종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용케 눈치 챘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피고는 더듬더듬 항변을 시작했다.


“자-잤다고요? 제가요? 누구랑요?”
“지금 그걸 진짜 몰라서 물어요?”
“모르니까 물어보죠!”
“하, 가증스럽긴! 눈앞에 있잖아요!”


설마...? 엘사가 떨리는 손으로 눈앞의 안나를 가리켰다. 뭘 금시초문이란 표정을 짓고 있어! 안나는 언짢은 듯이 이를 딱딱 부딪쳤다. 그러자 다음 공격 예고로 받아들인 엘사가 화들짝 놀라 손을 숨겼다. 손가락을 잃을 뻔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엘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 믿기지 않는 유언비어를 다시금 확인했다.


“내가? 너랑? 잤다고요?”
“그래! 이제 좀 떠오르나 보죠?”
“떠오르다뇨? 제가 무슨 풍선인가요? 아, 아냐, 지금 이런 말 할 때가 아닌데. 그 데-데이트(단어 선택에 당황한 엘사가 도중 혀를 깨물었다)도 차인 마당에 어떻게 그래요, 계기가 없는데!”
“그야 데이트 이전 역사니까! 잠깐, 데이트가 성공했으면 또 뒹굴었을 속셈으로 들리는데, 맞아요?”
“또라뇨? 자꾸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마세요, 그럴 마음도 없는데!”
“계속 그렇게 주장할 거예요? 처음엔 분명 나한테 관심 있었을 거면서!”


마지막은 그냥 지레짐작으로 던져본 거였지만, 공교롭게도 정곡을 찔린 눈치였다. 거 봐! 말문이 막힌 틈을 타 안나가 더욱 독하게 몰아붙였다.


“내 말이 맞죠? 사기꾼! 협잡꾼! 사람 가지고 노는 이 난봉꾼!
“그건, 그, 완전 처음에만,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아니란 말이에요, 한참 전부터!”
“그러시겠죠, 그러니 다음 먹잇감을 찾아 떠났겠지!”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엘사가 외쳤다. 내가 진짜 자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진 않을 텐데! 거짓말에 담긴 악의가 정도를 넘었잖아! 그깟 초콜릿 때문에 이렇게까지 나온단 말인가? 괘씸해서 데이트하는 꼴조차 못 보시겠다? 참 나, 본인도 옆에 남자 끼고 놀러 다니면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부아가 치밀어 올라 엘사는 역공에 나섰다.


“아무리 저한테 앙심을 품었다고 해서, 길 한복판에서 거짓 주장을 펼치면서까지 복수해야겠어요? 딱 보니 스트레이트 같은데 괜한 소리로 파문 일으키지 말고 서로 갈 길 가자고요!”
“스트레이트으? 진짜 스트레이트가 뭔지 한 번 보여줄까?”


안나는 금방이라도 뒷주먹을 내지를 자세를 취했다. 덩달아 크리스토프도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의 반응에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엘사가 야무지게 쥔 주먹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며 외쳤다.


“보세요, 논리가 못 받쳐주니까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이 전형적 오류를!”
“논리? 지금 논리가 딸리는 게 어느 쪽인데? 자꾸 말 돌리려는 그 뻔뻔한 속내를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뻔뻔한 게 아니라 떳떳한 거예요! 취해서 기억도 못할 줄 알았더니만, 이렇게 귀찮게 할 줄 알았다면 애초에 거절했어야 했는데! 대체 초콜릿 따위가 뭐라고!”


초콜릿 따위? 이 말을 듣자마자 안나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천하의 엘사여도 저 눈에 담긴 외마디를 모른다고 할 순 없었다. ‘네 입에서 어떻게 감히!’. 다음 순간, 안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코트 안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설마 그건가? 총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으나, 다행히(?) 지갑이었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엘사의 가슴팍에 다짜고짜 푸른 잎 몇 장이 던져졌다. 모멸감을 느끼기에 앞서 엘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또 뭐죠? 깽값?”
“너한테 얻어먹었다는 그 술값이 나한테 있어서 최대의 수치다!”


아 참, 그대로 떠나려던 안나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팁을 깜빡했네. 남아있던 동전도 탈탈 털어 신발 위로 와르르 쏟아 붓고서야 만족했는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행을 데리고 그길로 유유히 마켓을 떠났다. 전원 코드가 뽑혀버린 엘사를 대신하려는지, 나뒹구는 현찰을 주우며 허니마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취해서 기억도 못할 줄 알았다니......”


또다시 피어나는 오해의 소지에 엘사가 가까스로 얼음 조각상 상태에서 풀려났다.


“그, 그건 저번에도 얘기했잖아요. 믿어주세요, 제가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라는 거 아시죠?”


엘사는 주특기인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눈물 젖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판결은 싸늘했다. 초콜릿에 엄청난 은유가 담겨있었군요. 허니마린은 엘사의 손 위에 잔돈을 올려두고, 이 치정극 무대에서 조용히 내려왔다. 그제야 엘사는 사랑도 사회적 체면도 모두 박탈당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



“애초부터 난 홀로 살 운명이었어. 식물로 태어났어도 외떡잎식물이었을 거야.”


아무리 오지랖이 남태평양 같은 올라프라지만, 꾀죄죄한 앙고라토끼 같은 몰골에 대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대답이 저 모양이라면. 어떤 진부한 위로의 말을 꺼내야 할 지 고민하던 찰나, 그는 보아선 안 될 것을 목격했다. 기어이 저걸 꺼내다니! 올라프의 동공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너, 그, 그거... 버린 거 아니었어?”
“그때보다 하나가 더 추가됐지. 이제는 오대선언이야.”


어쩐지 술이 아니라 주스를 시키더라니. 그가 영 탐탁치 않다는 듯 팔짱을 끼었다.


“그렇다고 해서 네 심장을 얼릴 필요까진 없잖아.”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건 카페인만으로 충분해.”
“해결할 방법이 그것 말고는 정녕 없을까? 너무 극단적이야.”
“걱정 마, 내가 연애시장에 뛰어들려고만 하면 더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니까.”
“그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물어보는 게 낫겠다. 그럼 이제부턴 어쩔 계획인데?”
“새로운 모임에 나가볼까 해, 평생 애인이 없을 테니 친구를 좀 더 늘려야 할 것 같거든. 초콜릿너무싫어모임이 딱 좋겠네.”


그런 모임이 실제로 있는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지금의 엘사가 들어갔다간 영영 냉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친구의 마음속에 새로이 피어난 초콜릿 레지스탕스의 불길을 꺼트리고자, 올라프는 속히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내가 다니던 북클럽은 어때?”
“과거형이 신경 쓰이는데.”
“오히려 너한테 잘 맞을 수도 있어, 내가 다니기엔 너무 조용했거든. 생각해 봐, 말 많기로는 박사급...... 헙.”


무심코 튀어나온 금지 단어에 그가 입을 틀어막았다.


“미안, 요놈의 주둥이가......”
“괜찮아, 어차피 다 지난 일인걸.”


괜찮다는 사람치고는 유독 눈시울이 붉었다. 안 돼, 손님들 계신데서 울면 또 이상한 소문이 퍼질 거야. 기존의 흑역사만도 감당키 어려웠던 엘사는 멘탈을 다시 부여잡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을 확실히 못 박아두기로 했다.


“혹시 그 중에 여자도 있어?”
“무슨 생각인지는 알지만,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돼. 다들 나이대가 있으시거든.”


그럼 적어도 그 인간은 얼씬도 안 하겠군. 그제야 위안이 되었는지 엘사의 눈에는 조금이나마 빛이 돌아왔다. 기운을 차린 것 같아 다행이네. 올라프는 즉석에서 잔을 채워 엘사에게 들이밀고선 살짝 윙크했다. 엘사는 그의 의도를 이해하고서는 본인도 잔을 들었다. 내 친구의 무자극 인생을 위하여! 뒤이어 두 사람의 유리잔이 맑게 울었다. 그리고 크레이지 초콜릿 걸과의 영원한 작별을 위하여.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엘사가 속으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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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부터 영고안으로 역전될 듯! ㅎo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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