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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약수위]REMAKE/ 운전교육 -51-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11 00:59:48
조회 259 추천 16 댓글 5



 “..무슨 말이야..”



 라푼젤을 보았다. 그녀는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있다. 엘사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안나를 보았다. 너무도 차분한 얼굴이다. 마치 눈앞의 치킨과 피자, 그리고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며 ‘다 먹었어요?’ 라고 물어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긴장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운 걸지도 몰랐다. 아마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면 한차레 거한 사례에 들려 기침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불어온 것일지 차가운 공기가 엘사의 볼을 훑고 지나갔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굳게 닫힌 창문을 보고는 볼을 긁적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다시 몸을 돌려 자신 앞의 안나를 보았다. 여전히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제야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는걸 확신했다.



 또 한번의 정적.



 “..정말이야..?”


 “..싫어요?”


 “아니 그, 그건 아닌데..”



 싫을 리가 있겠는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원하는데.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엘사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대며 슬쩍 라푼젤을 흘겨보았다. 금발의 철부지.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그녀의 호흡이 깊은 정적을 깨고 두 사람의 기류 사이에 밀려 들어왔다. 안나 역시도 엘사의 시선을 따라 라푼젤의 빨간색 후드티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엘사의 어색한 웃음을 마주했다. 



 아쉽지만 오늘의 데이트는 이쯤으로 끝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무언의 인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안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엘사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그녀가 깨지 않기를 바라며. 아니, 혹은 잠에서 깨고 일어나 버려서는 지금 자신이 엘사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아 주었으면 하는 위험하고 야릇한 상상을 함께 한 채로. 안나는 손사래를 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떨리는 손끝을 어찌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엘사에게 천천히,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겼다.



 “잠, 잠깐 안나야..푼, 푼젤이 깨겠어..”


 “괜찮아요”


 “아..아니..”



 자신도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안나는 의자를 조금씩 뒤로 미루는 엘사의 앞으로 다가왔다. 취한걸까. 아니, 취한건 아니었다. 아직 방안의 잡동사니들과 전등에서 비추어 오는 빛이 울렁거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저 쾌락에 사로잡혀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걸까.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안나는 엘사의 의자를 붙잡았다. 몸을 숙여 당황한 표정을 한 채 딱딱하게 굳어있는 엘사를 보았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뒤로 빼는 엘사의 얼굴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하하..잠, 잠깐만..으읍!!”


 ‘츄읍..춥..’



 엘사의 목덜미를 팔로 감싸 안고는 거침없이 입을 맞추어 대었다. 첫 번째 입맞춤이 있었던 아토할란의 첫날밤 때 보다 더욱 거친 저항이 느껴졌다. 엘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안나의 어깨를 잡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뜀박질 덕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않는 팔을 어떻게든 힘을 주어 밀어내려고 했지만. 어디서 나온 힘일지. 엘사는 있는힘껏 안나의 어깨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밀고 들어오는 촉촉한 혀의 감각과 전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안나의 팔 덕분에 점점 주었던 힘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


 “하아..하아...너..너..왜이래에..”



 안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당황하는 엘사의 표정과 입술 끝에 묻은 자신과 그녀의 타액. 붉게 달아오른 두 볼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이 감정은 발정난 동물의 쾌락도 아니었고, 술기운에 흔들리는 감정도 아니었다.



 가슴 속 아주 깊은 곳. 공허한 외로움이 만들어 낸 질투심이었다.



 “...기분나빠..”


 “무,..뭐?!”



 그리고 자신의 이 감정이 질투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안나의 눈에선 눈물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그리니 엘사는 오죽 당황스러웠을까. 엘사는 갑자기 안나의 눈동자에 맺히는 눈물을 보자 얼굴을 더욱 붉게 달아오르며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왜?. 무엇을?. 어떤 이유로?.



 엘사는 자신의 품에 쓰러지듯 안기는 안나의 가녀린 몸을 밀쳐낼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울음소리 조차 내지 않은 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아주 작은 고양이를 껴안듯이. 자신의 품 안에 가득담긴 몸. 그리고 어깨너머 보이는 라푼젤의 등을 보자 아차 했던 엘사는 안나의 등을 토닥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괜찮아..”


 “...엘사..”



 몇 번이나 우는 모습을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애처로운 모습은 처음이었다. 오히려 목놓아 울지 않고, 한에 받혀서 소리를 지르는것도 아닌. 마치 모든 것이 끝나버린 듯 채념한채로 눈물만을 보인적은 없었으니까. 엘사는 그렇기에 안나의 허리를 감싸안고는 조심스레 소파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레 그녀를 앉힌 뒤. 힘없이 주억거리는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에 내어주고는 한동안 말 없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안나는 엘사의 품 속에서 잠깐동안 눈물을 감추었다.



 왜 이렇게 심장이 뛰지 않는걸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품 안에 있는대도. 몸을 감싸오는 온기가 이렇게나 포근한대도. 왜 자신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걸까.



 사실 안나는 불현듯 자신을 감싸온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 질 법도 하지만. 자신을 덥쳐올 때마다 마주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피하게되는 두려움이 함께하고 있었다. 질투심과 두려움. 그건 엘사와 라푼젤을 바라보며 생겨난 감정이었다.



 “엘사, 나한테 키스해줘요.”


 “..으,응?”


 “..빨리요..”



 어미의 젖을 찾는 고양이처럼. 안나는 엘사의 품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는, 사랑을 갈구하듯 엘사의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따듯하고 조심스러운 혀놀림으로.



 “..하앗..잠, 잠깐만..하아아..흐읍!”


 “나한테 키스해줘요..제발요..”



 엘사는 알고 있었을까?. 안나의 깊은 상처가 만들어낸 아주 사소한 습관을. 오랜시간 상처 받고 곪아왔던 흉터는 평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감정의 공백속에서 작지만 치명적인 결점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사..사랑해”



 때로는 홀로 침대에 누워 울기도 했다. 늦은 새벽, 불현 듯 찾아온 그리움과 공허한 외로움에 뜬 눈으로 차가운 밤바람을 맞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안나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그녀에게 도달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뿐. 연예인이란 원래 그런것이었다. 언제나 외로워하고, 자신의 감정과 얼굴을 숨긴 채. 멋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거짓된 사랑을 노래하는 존재라는 것 말이다.



 안나는 사랑을 필요로 했다.



 “키스해줘요.”


 “키스보다는...”



 엘사는 잠시 안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초록빛 칵테일같은 맑은 눈동자. 아주 오래전부터 기억속에 남아있던 지중해의 바다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맑은 눈망울.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때때로 꿈속에서 희미하게 자신을 감싸오던 포근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알 수 없이 이끌리게 되는 마법같은 여성. 그녀가 바로 안나 아그나르였다.



 “잠깐동안...안아보자”


 “.....”


 “이렇게.”



 엘사는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허리를 감아 꼬옥 안아주었다. 파르르 떨리는 몸을 붙잡듯이. 혹여나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어미새의 날개짓처럼. 한동안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서로를 끌어안으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어느샌가 라푼젤이라는 걱정거리는 저만치 사라지고, 방안의 공기는 오롯이 두 사람의 숨결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내 곁에 있어줘서.”


 “...천만에”



 이윽고 안나의 떨리던 몸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진자운동을 하던 시계추가 천천히 멈추어 가는것처럼. 두근거리던 엘사의 심장도 서서히 차분해져갔다.



 “왜 갑자기 울어버린거야..놀랬잖아..”


 “..그냥..싫었어요..”


 “..뭐가?”


 “..왠지 모르게..그냥..엘사랑 라푼젤씨가 부러웠어요..그래서 싫었어요.”


 “나랑 라푼젤을? 왜?”



 엘사는 안나의 정수리에 가져가 대었던 턱을 거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듣고는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자신과 라푼젤이 무슨 실수라도 했던걸까. 물론, 그런저런 과격했던 인사법이 실수였다면 실수였겠지.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 외에는 기억속에서 딱히 짚이는 것이 없었던 엘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허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던 시선이나..대하는 태도나..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부러웠어요”


 “...아..그래서..”


 “..저는 누구하고도 그래본적이 없었어서..죄송해요..”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자신과 라푼젤의 사이를 부러워한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서로 보면 욕부터 뱉고 시작하는 사이인데. 설마 그런것들을 바라고 있는걸까. 잠시동안 자신이 안나에게 욕을하는 상상을 하던 엘사는 끔찍하게 어울리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한테 욕을 해..”


 “..바보..그런게 아니에요...”



 안나는 난처한 얼굴을 하고있는 엘사를 한차례 올려다보고는 실풋,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머금은 안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사는 환하게 웃으며 안나의 얼굴을 마주해 왔다. 자신에게 바보라고 부른 사람은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슴이 따듯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솔직히 저도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왜 라푼젤씨와 엘사를 보고 질투심이 들었는지..그래서 엘사에게 키스하고 싶었어요”


 “키스하면..조금 나아질 것 같았어?”


 “..네..그런데 막상 엘사 앞에 서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싶다고.. 혹시 저 이상해보이고 그런거 아니죠?”


 “아니야. 뭐, 그럴수도 있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부끄러웠던 것인지. 안나는 엘사의 품 속에서 꼼지락 대었다. 자세를 조금 비틀어 엘사와 마주보게 앉은 뒤. 또 한번 엘사에게 쓰러지듯 안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안나가 엘사의 허리를 감아왔다. 엘사는 아무 말 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안나의 팔을 받아들였다. 사랑하는 연인의 스킨십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또 한번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질투하지 않아도 돼. 내가 말했잖아, 너 곁에는 언제나 내가 있을거라고.”


 안나는 엘사의 푸른 눈동자를 보았다. 조심스레 팔을 뻗어 백옥같은 하얀 두 볼을 쓰다듬었다. 언제나처럼 보드랍고 따듯한 느낌이었다.



 “사랑해요.”



 스르륵 감기는 눈과 다가오는 입술. 엘사는 첫 번째의 키스와는 다르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 선선히 들어오는 혀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안나의 허리를 감았던 손을 움직여 등을 쓰다듬으며 혹시나 아직도 떨고 있는 것은 아닐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다독여 주었다.



 “..하아..”


 “어때. 이제 괜찮아졌어?”


 “..네에에..”


 “그러면..”



 흘깃, 엘사는 안나의 어깨너머, 거하게 취해 식탁에 뻗어있는 라푼젤을 보았다. 술에 약한 라푼젤이라면 한동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일어나서는 안되었다.



 “침대로..갈까..?”



 천천히 안나의 고개가 주억거렸다. 엘사는 미소를 머금고 안나의 손을 잡았다. 작고 가녀린 예쁜 손을. 엘사의 얼굴 속 피어난 흐뭇한 미소를 보던 안나는 엘사의 손을 잡은채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녀가 이끄는 방향대로 힘없이 이끌려갔다. 라푼젤이 찾아오기 전, 천정을 보고 누워 잠시동안 휴식을 취했던 침실로.



 ‘탁, 타닥.’


 집안의 모든 불이 꺼지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춤을 추듯, 느린 호흡으로 손을 뻗어 서로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 비추어오는 뒤뜰의 가로등 빛. 따듯하게 달아오르는 호흡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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