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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썰) 글핀엘사 슬덴안나 23

369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22 16: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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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시험이 끝이 났고, 서늘하던 날씨는 어느덧 더워졌어.


한순간에 더워진 계절에 안나는 마법은 언제나 유용하다 느꼈어. 학교는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건물 곳곳에 바람을 날리고 있었지. 쾌적한 호그와트. 연회장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숙사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안나는 곧 다가올 여름방학을 기다리고 있었어. 부활절 방학은 정말로 완벽했지. 자신의 손길을 받으며 애타던 엘사를 떠올릴 때마다 안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니 이번 여름방학 또한 완벽할 게 분명해.


긴장감을 채웠던 시험이 마무리되자 안나는 다음 계획을 정리하고 있었어. 시험결과와 퀴디치 월드컵. 이 둘은 엘사와 관련됐어. 소원을 얻기 위해 공부하기 싫어하던 엘사가 꾸준히 공부했으니 좋은 성적을 받을 게 분명했고, 퀴디치는 엘사가 선수로 뛰고 있어. 운동엔 영 관심이 없는 안나는 그녀가 없었다면 학교를 다니는 내내 항상 경기관람에 빠졌을 거야. 당연하지만 이 생각으로 엘사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더 자세히 알게 됐어. 나쁘기보단 마음에 들었어.


나머지 식사를 마치기 위해 포크를 집어 들고 음식을 찍어내는 안나의 앞에 편지봉투가 떨어졌어.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허공을 노려봤어. 위에서 배회하는 부엉이는 자신의 목적을 마무리됐다고 생각했는지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연회장에서 빠져나갔어. 보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게 될 황갈색의 물건에 엘사 생각으로 풀어진 안나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졌어. 천천히 식기를 내려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 이런 편지를 보낼 곳은 언제나 한곳이야. 엄지와 검지로 최대한 끝부분만 잡아낸 뒤 들어 올렸어. 아렌델의 인장이 보이자, 안나는 한숨을 쉬었어.


*


집에 도착한 안나를 반겨주는 자들은 언제나 집요정이야. 하지만 그들도 처음만 반겨주고 그 뒤론 정해진 자신들의 일을 하기 위해 하나둘 모습을 감췄지. 그중에서 한두 명은 안나의 등장에 서둘러 다가와 식사는 했는지, 오는데 불편한 건 없었는지 물어왔지만, 안나는 그들을 무시하며 방으로 갔어. 한눈에 봐도 기분이 저조해 보이는 모습에 뒤에서 졸졸 따라가는 요정을 겁을 먹게 했지. 방앞에 도착해 들어가려고 문을 열던 안나는 갑자기 들려오기 시작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몸을 멈췄어. 적막한 집안에서 홀로 젖어있는 아이. 태어났지만 얼굴은 본 적이 없는 자신의 동생. 제 옆에 서 있던 집요정들은 아기의 울음에 순식간에 사라졌지. 저 소리에 반응해도 안나에게 도움 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애써 그 소음을 무시한 안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


교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 안나는 피곤해진 몸을 천천히 움직여 침대에 드러누웠지. 반동으로 스프링은 삐걱대고 이불 위에 깔린 먼지들은 허공을 날아다녔어. 더러워.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은 불결한 것들을 확연히 보여줬어. 이 지저분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누군가 닦은 흔적이 보였지만 그게 꾸준했던 게 아니었을 게 분명해. 정색하며 집요정들에게 벌을 주고 싶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잊힌 존재라고 인식되니 아무런 불편함도 느낄 수 없었어. 아무렴 어때, 이미 전체가 더러운 집인걸. 안나는 최대한 신경을 안 쓰기로 했어.


가문을 위해서라는 말은 지겨워. 보고 싶은 것이 없는 이곳을 외면하기 위해 손을 펼쳐 그대로 눈을 가렸어. 따뜻한 손 온도가 눈 주변에 퍼지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이 찾아왔어. 어둠에서 안나는 엘사를 떠올렸지. 악의 없는 웃음을 보여주는 엘사.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엘사의 얼굴을 그리며 언뜻 울고 싶어졌어. 


*


오랜 시간 동안 방에서 벗어나지 않았어. 식사는 집요정이 방으로 가져왔고, 그녀가 집 안에 있다는걸 알고 있음에도 아무도 안나를 안 찾았으니. 집으로 오라는 편지는 누가 보냈는지. 이럴 거면 왜 불렀는지 모르겠어. 하나부터 열까지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현재 상황들에 안나는 천장을 노려봤어. 그리고 방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깨달았지. 익숙함, 그렇지만 어색함. 이내 완전한 어둠 속에서 빛이 보였어.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안나는 책을 봤어. 오랜만이야. 이제는 찾아올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게 안나에게 왔으니 말이야. 마음엔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 안나는 그쪽으로 다가갔어.


저절로 펼쳐낸 그가 글을 적었어.


[나올 생각이 없나 보군.]


“언제부터 날 신경 썼다고.”


안나는 비아냥거렸어. 말끝을 늘리며 최대한 아니꼽게 노려봤지. 예의 없는 행동에도 책은 별말 없이 다음 말을 이어갔어.


[아직은 네가 쓸만하다.]


너무나 무책임하고 뻔뻔한 답에 안나는 분노가 치밀었어. 필요할 때만 찾다가 쓸 일이 없으면 버릴 존재가 바로 자신. 주먹을 쥐고 힘을 줬어. 당장이라도 저 빌어먹을 종이뭉치를 찢어버리고 싶었지. 살짝 떨리는 주먹이 안나의 마음을 보여줬어. 소모품이라고! 이곳은 언제나 나를 그런 식으로 취급했지. 후계자로 이용할 때는 언제고 혈통 있는 존재가 태어나자 문을 닫고 침묵만 유지하던 그. 아니, 더 명확하게. 인간도 아닌 정신만 유지 중인 가문의 오랜 주인.


“... 됐어. 나는 이제 당신이 원하는 거 해줄 생각 없어.”


분노했지만 안나는 그것을 잠재웠어.


“이제 안 해.”


강제적으로 책을 덮으며 말했어. 점점 닫히는 틈으로 무언가 적고 있던 글이 보였지만 안나는 냉담했어. 완전히 그것을 덮자, 어둠은 사라지고 시야가 밝게 보이기 시작했어. 빛이 들어오고 한순간에 사라진 책이 있던 곳을 노려보다 침대로 다시 돌아갔어.


*


닫혀있는 창문에 새가 날아왔어. 날개를 퍼덕이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책을 읽고 있는 안나가 쳐다봤어. 엘사를 떠오르게 만드는 새하얀 부엉이가 창문턱에 앉아 안나를 보고 있었지. 저 아이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어.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다가갔어. 힘껏 당겨 창문을 열고 반겼지. 더운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와 잠시 가벼운 물건들을 움직이게 했어. 부엉이는 안나의 인사에 보답하듯 문이 열리자 접었던 날개를 살짝 펼치며 고개를 끄덕였어. 예의 바른 짐승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인 안나는 발목에 묶여있는 종이를 발견해, 그것을 떼어냈어. 돌돌 말려진 작은 종이를 펼쳐내자, 안나는 웃음을 지었어.


‘보고 싶어, 안나!’


글이 이렇게 사람을 간지럽게 만들어도 되는 걸까. 무언가 급했는지 휘갈겨진 글씨가 안나를 애틋하게 만들어 간지럽혔어. 제게 찾아온 엘사의 편지를 조심히 쓸어내린 안나는 책상 한구석에 자리 잡은 깃펜을 들고 새로운 종이를 꺼내 답장을 적어 기다리고 있는 부엉이의 다리게 묶어줬어.


“네가 가져온 건 내가 가져갈 테니, 이걸 엘사에게 주렴.”


부탁해.


안나의 부탁에 고개를 한번 끄덕인 부엉이는 제 몸보다 더 커다란 날개를 펼쳐 하늘을 힘차게 날아갔어.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보던 안나는 창문을 닫고 가만히 서서 제 손에 잡힌 종이를 소중하게 품다가 챙겨왔던 교복 주머니에 집어넣었어. 단비 같은 소중함. 방안에만 조용히 지내던 안나는 이제 방 밖으로 떠날 준비를 했어. 따로 챙겨둔 지팡이도 들고. 가늘지만 꽤 무게가 느껴져 안정적으로 다가왔어. 자신을 보고 싶어 하니 찾아가야지. 엘사는 언제나 자신에게 길을 알려줬어. 관심을 주고, 알려주고, 사랑을 주는-. 문을 열고 한치의 거리낌 없이 복도를 지나치고 계단을 올라갔어. 안나가 도착한 곳은 그가 있는 방문 앞이었어.


문은 열릴 거야. 저를 이용하려고 노력 중인 그였으니깐. 하지만 곧이곧대로 그걸 이뤄줄 생각이 없었어. 안나는 문을 열었어.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 루나드 아렌델. 정확히 말하면 그의 정신만 담겨있는 책. 앞으로 다가갔어. 그는 안나가 찾아올 거라 예상했는지 당연히 반겨주었지.


[나는 언제나 이곳에 있지.]


“지루한 삶이네.”


[너 또한 이곳에 있을 수 있다.]


“덧없이 재수 없는 말이고.”


[후계자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네게 다시 기회를 주겠다. 너도 이제 곧 성인이-]


“루나드.”


[감히...]


그의 분노가 담긴 촛불이 일렁였어.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불은 그대로 몸집을 키워 안나를 집어삼킬 거 같았지. 집 안에 있는 모두가 그를 무서워해. 영원한 삶, 끝없는 지혜. 그로 인해 아렌델이 일어났고 그의 뜻대로 아렌델이 움직일 거야. 정전이 일어났어. 불이 켜지고 꺼지는 게 반복됐어. 안나는 분노가 담긴 책을 노려봤어.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해도 이젠 아니야.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는 자신은 이제 없어.


“다시는 엘사와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도록 없앨 거야.”


내 소중한 시간을 너무 낭비하는 거 같아.


없애겠다는 말에 분노에 찬 루나드는 고함을 질렀지만, 안나는 그 틈을 노려 순간이동을 했어.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방안에 아무런 흔적도 없자, 화를 내던 그는 입을 다물었어. 평범한 공격으로는 죽일 수 없는 몸이 바로 그였어. 죽지 않는 영원한 불사라고 자부했던 그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지. 언제, 순간이동을 배웠던 거지? 소리 없는 불안함은 파도가 되어 밀려오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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