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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카페인 - 13 (下)

불멸에관하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9.24 21: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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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하게 숨을 들이쉬던 엘사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어갔다. 여전히 자신을 끌어안은 채로 숨을 고르던 엘사는 어느새 조금이나마 진정을 찾은 듯 쌔액쌔액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엘사가 자신을 꼼짝 못 할 정도로 꽉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어주자, 곧장 빈 컵에 물을 떠 와서 엘사에게 건넸다. 


  “엘사, 물이라도 조금 마셔 봐요.”


  엘사는 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꼴깍, 물이 목 너머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쿵쿵 날뛰던 엘사의 마음도 점차 진정되어 가는 듯 콩닥콩닥 제 박자를 찾아가고 있었다. 


  “고마워요.”


  엘사는 컵에 담긴 물을 조금씩 홀짝였다. 그녀의 뺨을 타고 삐질삐질 흘러내리던 식은땀도 어느새 멎어 있었다. 


  “악몽… 꿨어요?”


  엘사가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지금 이런 말을 건네도 되는 걸까, 머릿속으론 걱정과 우려가 가득했지만 마음은 그런 것 하나조차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에 화답하듯이 어느새 본능은 이성을 이기고 엘사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있었다. 


  엘사는 텅 비어버린 컵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 순간, 엘사의 모습이 두 눈에 그대로 담겼다. 그녀의 두 손은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말하기 힘들면 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그냥 엘사가 걱정돼서…”


  “... 오랜만에 꿈에서 동생을 봤어요.”


  “동생, 이요?”


  “아주 먼 옛날, 저는 무언가에 홀려서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어요. 동생은 그런 저를 침대에 눕힌 다음, 자기도 눕고 저를 꼭 안아준 다음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었죠.”


  엘사는 힘없이 허탈하게 웃고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오랜만에, 꿈에서나마 겨우 다시 보게 된 동생의 모습인데, 그런 동생의 모습이 조금씩 희미해져 갔어요.”


  “...”


  “무섭고 두려웠어요. 얼마 만에 만난 동생인데, 같이 시간을 얼마 보내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사라져 갔으니까요.”


  “아…”


  엘사는 빈 컵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옴짝달싹 움직였다. 무언가 말할듯 말 듯 고민하는듯 싶더니 이내 말을 다시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던 그 날, 동생을 그렇게 떠나보내게 되고 나서 저는 아주 오랫동안 동생의 흔적을 찾아 헤맸어요. 뭐…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었지만 말이에요.“


  “...”


  “하지만 그렇게 흔적을 찾으러 다니다 보니 알게 되더군요.”


  엘사는 말을 잠시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의 입이 다시 열렸다. 


  “동생은 오로지 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멍청한 저는 동생에게 고통만 주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런…”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참… 바보처럼 뒤늦게 알고 말았지, 뭐예요.”


  다시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 동생을 보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미안하다고. 이미 늦어버렸지만 말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엘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텅 비어버린 컵을 가여운 손으로 조금씩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구슬프고 처량했다. 


  역시, 물어보는 게 아니었는데…  


  잠자코 엘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은근한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괜히 엘사를 우울하게 만든 것만 같았다. 입만 열지 않았다면 조용히 지나쳐 지나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엘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은근한 동질감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녀의 겉모습에 다시 피어난 억지 미소 사이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깊숙하게 숨어있는 엘사의 마음은 조각조각 찢겨버려 있었고, 자신처럼 그녀도 고통받고 있었음을. 그런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고, 토닥이면서 말해주고 싶었다. 


  엘사의 잘못이 아니라고, 모두가 날카로워진 이 세상이 잘못이라고. 


  그리고, 엘사의 동생도 엘사를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는 말도 전하고 싶었다. 자신이라면 그랬을 것 같았기에. 


  엘사가 자신을 고독의 감옥에서 꺼내 주었듯, 자신 또한 엘사를 자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왜일까, 이 모든 것을 뒤로 한채로 어떤 질문이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안 돼, 물어보지 마.


  머리는 스스로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이 질문이 나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이 될 것이라고. 


  방금도 절실하게 느꼈잖아. 선을 지켜, 안나. 


  위화감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문득 어디선가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낸 그 질문이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엘사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엘사가 스스로의 죄악을 드러내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이성을 제쳐두고, 원초적인 본능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었다. 


  왜 엘사는 내 이름을 부른 거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질문을 간신히 꾹꾹 눌렀다. 조금 가라앉나 싶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만 같아 보였다. 


  “저, 엘사? 이제 좀 괜찮아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랬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네, 이젠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혹시,”


  엘사는 지쳐 보이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드리웠다. 하지만, 본능이 다시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저 미소는 억지라고. 엘사는 지금, 정상이 아니라고. 저 미소는 그저 나를 안심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쿵, 쿵. 귀에 들릴 정도로 심장이 마구 뛰었다. 어쩌면 터져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내 입에서 나온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엘사의 미소가 조금씩 굳어갔다. 제발, 여기서 멈추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그 기도가 닿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통제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몸은 더 이상 내 것 같지 않았다. 


  “동생의 이름도 안나인가요?”


  아아, 결국 저지르고야 말았다. 엘사의 미소가 부서졌다. 엘사는 숨을 헉 들이쉰 다음, 커다란 눈으로 그 원인을 바라보았다. 


  “그걸, 안나가 어떻게…?”


  이제 돌이킬 수는 없었다. 


  “엘사가 잠결에 막 외쳤어요. 가지 마라면서…”


  하지만 심장이 터져 버리는 일은 없고, 오히려 반대였다. 마음이 이토록 아픈데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평소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덤덤하게 말이 나왔다. 


  “...”


  엘사는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욕실 앞에 섰다. 얼굴이 자신에게 보이지 않도록 등을 돌린 채였다. 


  “... 맞아요. 제 동생의 이름도 안나예요.”


  엘사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웃음기라고는 단 한 부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주… 쾌활한 아이였죠. 안나, 미안하지만 먼저 씻어도 될까요?”


  엘사는 욕실 문고리를 꽉 잡고 내게 물었다. 여전히, 나를 등지고 서 있었다. 


  “네.”


  쿵, 욕실 문이 닫히고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허탈하게 욕실 문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가, 어디서 인지 모를 곳으로부터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처절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같이 절망하도록 만들지도 몰랐다.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소리였을까. 욕실에서 들려온 소리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속에서 들려온 소리였을까? 아니, 어쩌면 두 곳 모두였을지도 몰랐다. 


  다시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부터 욕실 쪽에서 들려오던 그 울음소리는 조금 멎어 있었다. 그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남아서 여전히 나에게 울리는 이 울음소리는, 모든 것을 망쳐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는 소리였음을. 


  엘사가 자신을 원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과 자책이 뒤엉켜서 날뛰었다. 


  엘사와의 관계, 그 선을 깬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 멍청한 선택으로 인해 한 줄기 희망마저 스스로 저 버린 것이었다. 어쩌면 다시 혼자가 될 지도 몰랐다. 공허와 고독이 바로 옆에서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엘사가 슬퍼하는 얼굴을 보면, 난 도저히…


  어쩌면 사람들의 말이 옳았던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저주받은 아이, 자기 스스로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존재를 파멸시키는 아이. 항상 내게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던 그 사람들이 현명했던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기 전에, 내가 떠나는 게...


  쿵, 문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엘사가 욕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 위에는 미소가 다시 새겨져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드디어 미쳐서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늦어서 미안해요, 안나.”


  엘사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내 마음을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었다. 충혈된 두 눈, 한 순간에 잔뜩 쉬어 버린, 그리고 여전히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엘사는 아직도 슬픔에 잠겨 있었다.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순간, 이런 결과를 마음 한 구석으로는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결국 전부 내 선택이었고, 내 책임이었다. 


  멍청아, 다 네 잘못이야. 


  머릿속에서 차근차근 생각이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엘사는 그저 이름이 같아서 나를 친근하게 대해 준 것이고,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엘사의 동생 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안나.”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찰나를 못 참고 선을 넘어버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를 봐요, 안나.”


  “미안해요, 엘사.”


  “안나!”


  처음 듣는 엘사의 고성이었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보니,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엘사의 모습이 보였다. 


  “안나, 이것 하나만은 꼭 약속할게요.”


  엘사는 내 손 위에 그녀의 두 손을 포개며 말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안나가 곁에 있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나만을 바라보기로.”


  엘사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소중한 사람을 두 번 놓치는 것은 싫어요. 저는 늘, 안나의 곁에 있을 거예요.”


  “난 늘 곁에 있을 거야.”


  꿈에서 들려온 -어쩌면 엘사의 동생이었을지도 모를 사람의- 목소리와 엘사의 목소리가 겹쳤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엘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35/81


사실 그렇게까지 진지한 장면 아님

9

복선을 숨기는건 언제 해도 재미있는것 같아!

자매의 마음 속에 서로를 향한 걱정이 피어 오르기 시작하는데, 과연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마 끝없는 삽질이 이어지지 않을까... 말잇못

질문 언제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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