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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Say You Love Me 27 (完)

버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09 21: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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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


“해요.”


“싫어.”


“계속 애처럼 굴면 후회할 텐데.”


“뭐.. 내가 싫다는데 어쩔 거야.”


“빨리 안 보면 오늘은 혼자 자게 될걸요.”


“그걸 협박이라고 하니? 그럼 누가 더 힘들 것 같아?”


“제가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안나는 들고 있던 꽃다발들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코웃음을 쳤다. 그리곤 카운터 안쪽에 앉아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엘사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난 누구랑 다르게 혼자 재미 보는 방법쯤은 아는데-”  


“잘났어...”



엘사는 팔짱을 끼며 크게 흥 소리를 냈다. 한 번도 자기 위로를 해 본 적 없다는 고백은 사실 그 짓에 도가 텄다는 안나를 놀리기 위해 했던 것인데, 안나는 뜻 밖에도 엘사가 해 본 적 없는 일을 제가 끝내주게 잘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곤 엘사를 골려 먹으려 들었다. 자위 잘하는 게 자랑인가? 이런 걸 자랑거리 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정말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엘사였는데, 능글맞게 부듯한 웃음을 짓는 안나를 보고 있으면 어찌 된 건지 황당함은 잊은 채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게 된다는 게 참 우스운 일이었다. 엘사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안나를 노려보더니 안나의 오른손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으며 중얼거렸다.   



“나보다 얘가 더 좋다는 거야?”


“에이, 그럴 리가.”



안나는 엘사의 손가락을 잡고 웃음을 흘렸다.



“그럼 서로 힘들 짓 하지 말자. 알았지? 이게 다 뭐야. 치워버려.”



엘사가 카운터 위의 꽃다발들을 팔로 쓸어버리려 하자 안나는 잽싸게 이를 막았다.



“제발, 몇 종류 되지도 않잖아요.”


“대충 봐도 다섯 종류는 넘게 섞인 것 같은데?”


“설마 이 정도도 못 외울까. 오늘은 이것만 할게요.”


“내일은 또 다른 거 하고? 안 돼. 못 해. 알려줘 봤자 내일 되면 다 까먹어. 전에 알려준 것도 하나도 기억 안 나.”


“어휴, 무슨 금붕어도 아니고! 왜 노력도 않고 못한다고 그래요?”


“너도 있고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내가 이걸 왜 알아야 해? 이런 거 몰라도 아무 문제 없었어. 겔다가 옆에 다 적어놨단 말이야.”


“그래도 몇 가지는 알아야죠. 꽃 가게 하면서 튤립밖에 모르는 건 좀 심하잖아요.”


“안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엘사는 안나의 손을 가볍게 당기고는 전날 함께 본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 표정을 흉내 내며 아련히 말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난 너랑 튤립만 알면 세상ㅇ-” 


“그런 거 안 통함.”



안나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엘사는 다시 팔짱을 끼고 얼굴을 구겼다.



“이게 안 먹히네.”


“대사가 너무 올드했어요.” 안나는 내려뒀던 꽃다발들을 다시 손에 들고 흔들었다. “그런 무리수를 두다니... 그렇게 알기 싫어요?”


“싫어어-..”


“이번 달 내내 혼자 자야 하는데도?”


“오늘이라더니, 왜 갑자기 또 이번 달 내내래?”



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나가 흔들고 있는 꽃다발을 슬쩍 보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계속해서 고집을 부린 대도 이번 달 내내 혼자 자란 말은 그 말을 꺼낸 안나부터가 지켜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근데 쟤는 혼자 달랠 줄 알잖아. 오늘 밤 정돈 견디겠지. 엘사는 입술을 내밀며 꽃다발을 살폈다. 총 세 다발. 포장이 화려한 탓에 풍성해 보여서 그렇지, 자세히 보니 각각의 꽃다발은 거의 장미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 튤립, 장미. 나도 이 정돈 알지. 못 한다고 징징거리긴 했지만 몇 종류 되지도 않는 나머지 꽃을 외우는 거야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오늘 이렇게 넘어가 주면 안나가 내일도 모레도 신나서 새로운 종류의 꽃을 들고 올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재밌는 일도 많은데 매일매일 꽃이나 외우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엘사는 일 좀 하라는 안나의 호통 탓에 영업시간 내내 가게에만 박혀 있게 된 것부터가 불만스러웠다. 날도 좋은데 이게 뭐야. 다 때려치우고 함께 소풍이나 갔으면 싶었다. 엘사는 전문 직원이 넘치는 가게에서 사장이 꽃 이름 좀 모르는 게 운영에 별문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나는 그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고 제가 안나의 고집에 넘어갈 거란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아무튼 오늘 혼자 자기 싫단 말이야.



“이리 줘 봐.”



엘사는 힘없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안나는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건넸다. 엘사는 장미를 한 송이 뽑아 휙 던지며 말했다.



“이건 장미.”


“이-야!” 안나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똑-똑해-!” 


“이제 됐지?”


“어허. 어딜 벌써.” 



안나는 장미 사이에 꽂힌 안개꽃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이건 뭐예요?”


“장미.”


“음... 잘 생각해봐요.”


“장미.”


“고장 났어요?”


안나는 이것도 모르냐는 소리를 겨우 참으며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안개꽃.”


“아- 머리 아파..”


“벌써 아프면 안 되는데.” 



엘사가 머리를 싸매고 카운터에 고개를 박자 안나는 카운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엘사 옆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다시, 저게 뭐라고요?”


“장미.”


“장난치지 말고!”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며 한숨을 내쉰 안나는 문득 든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안나는 오른손을 엘사의 허벅지에 올리더니 곧 허벅지와 허리의 선을 타며 손을 슬슬 움직였다. 



“우리, 처음부터 다시 해요..”



안나의 느닷없는 손길에서 낮 중의 일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상한 야릇함을 느낀 엘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안나를 내려다보는 두 눈은 튀어나올 듯 크게 뜨여져 있었다. 안나는 허리를 슬쩍 세워 엘사의 얼굴에 제 뺨이 닿을 듯 말 듯 할 정도까지 거리를 좁혔다. 그리곤 조금 전 엘사가 던져버린 장미를 주워 엘사의 코를 톡 치며 말했다.



“...이건?”


“...장..미”


“옳지-”



안나는 엘사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안나가 몇 번 더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춰대자 상황 파악을 하느라 눈썹을 씰룩이던 엘사는 곧 웃음을 흘리며 안나의 팔을 끌어당겼다. 안나가 별다른 저항 없이 일어나 제 무릎에 앉자 엘사는 가게의 출입문과 뒷문을 흘끔이며 안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나갈까?”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영업 끝날 때까지 한참 남았잖아요.”


“그냥 이대로 계속하자는 거야? 대담하네. 누가 봐도 난 몰라.”


“들키면 누가 더 손해라고? 자기 가게면서.”


키득거리던 안나는 엘사를 끌어당겨 다시 한번 뺨에 입을 맞추더니 카운터로 손을 뻗어 꽃다발 속의 안개꽃을 톡톡 건드렸다.


“이건 뭐였죠?”



엘사는 대답 없이 끌어안은 안나의 어깨만 잘근거릴 뿐이었다. 허리에 감겨 있던 엘사의 손이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로 슬슬 내려가자 안나는 엘사의 손을 찰싹 때리고는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날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몰라요? 누가 봐도 아무 문제없겠네. 우린 다시 아-주 평범하게 일만 할 거라-”



엘사는 안나의 허리를 와락 안으며 제 무릎에 다시 앉히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이런 못된 것만 배워왔어? 짜증 나.”


“자, 저 꽃은 뭐예요?”


“으..” 엘사는 안나의 뺨에 이마를 기대고 신음했다. “..안개꽃.”



엘사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안나는 엘사의 뺨을 잡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잘한다! 다음은-”


“처음엔 뺨, 이번엔 입, 다음은? 여기서 계속 배웠다간 큰일 나겠는데. 홀딱 벗고 카운터에 누워 있는 널 보면 겔다가 무슨 생각을 할까.”


“거기까지 가려면 50개는 더 배워야 할 텐데요.” 


“그건 너무 하잖아. 왜 점점 늘어나?” 엘사가 투덜거렸다. “아니, 정말. 일단 내 말 좀 들어봐. 배우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누가 봐도 배우기 싫어서 이러는 것 같지만-"

 


안나는 몸을 살짝 뒤로 눕히며 엘사를 바라봤다. 



"-말 해봐요.”



엘사는 안나가 몸을 기댈 수 있게 어깨에 팔을 둘러주고는 고개를 숙였다. 안나가 엘사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가까이하니 맞닿은 이마가 콩콩 부딪혔다. 안나는 미소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할 말이 뭔데요?”


“...나 혼자 자기 싫어.”


“뭐야. 그럼 다음 꽃을 알아야죠.”



엘사는 능청맞게 웃으며 얄미운 소리를 하는 안나를 보며 화가 난 척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깨물어도 넘실거리는 미소를 숨기긴 역부족이었던 탓에 그만 포기하고 슬며시 고개를 틀었다. 엘사의 입술이 닿자 안나는 작게 콧소리를 내더니 엘사의 목을 끌어안았다. 엘사는 소리 내 웃었다. 


안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 한결같게도 사람 짜증 나게 하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았다. 알아서 잘 굴러가는 가게에 왜 공을 들여야 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는 엘사였지만 성실히 일하라는 안나의 요구에 불평하는 건 별 소득 없는 짓이었다. 어떻게 불평하든 결국엔 안나의 말에 따르게 되는 이상하고 자연스러운 흐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 게으름 피우던 엘사를 나무라던 안나는 지나가는 말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살아요.” 같은 소릴 한 적이 있었다. 장난치듯 한 소리였고 진지한 생각을 거쳐 나온 말 같진 않았다. 하지만 엘사는 그 말에 많은 의미가 내포된 것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안나의 말과 요구엔 안나 자신도 모르게 꿈꾸고 있는 듯한 미래가 담겨 있었다. 한 집에서 함께 할 일을 당연히 맞을 미래처럼 여기는 듯한 안나의 태도는 놀랍게도 엘사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안나는 엘사와 함께할 미래를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그것도 밝은 쪽으로만. 수십 번의 짧은 연애를 겪었다면서도, 심지어 엘사와의 만남조차 순탄치 않았음에도 안나의 믿음은 이별을 모르는 사람의 것처럼 순진하고 사랑스러웠다. 틀림없이 이런 태도를 낯설어하며 부담스러워했을 과거 제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안나가 꿈꾸는 미래를 알아채고 기분이 좋아진 건 엘사 자신에게도 조금 충격적인 일이었다. 엘사는 부모님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는 사랑의 정도 문제가 아니었다. 성실함이나 꾸준함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엘사에게 사랑과 성실의 전통적인 결합, 즉 동거나 결혼은 머나먼 꿈같은 얘기였고 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제대로 된 개념부터 잡혀 있지 않았다. 같이 산다고? 왜? 그 일과 관련해 머릿속에 가진 것이라곤 그 정도 의문뿐이었다. 그러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에 고려될 기회가 주어질 리 없었다. 안나를 사랑하면서도 역시 안나와 함께 살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안나가 말을 꺼냄으로써 그 일은 엘사의 머리에 밝은 상상으로 자리 잡았고 곧 엘사에게까지 당연히 맞을 미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밝은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된 거지? 아무튼 안나의 요구를 못 들은 척 하는 건 소득이 없는 것에 더해 오히려 손해 볼 짓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안 좋은 일은 이미 다 겪은 것 같으니 앞으론 좋은 일만 남았을 거란 긍정적인 생각 회로도 한 몫 거들었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게 생각보다 훨씬 포근하고 행복한 일이란 걸 요즘 알아가고 있기도 했고. 그렇게 엘사는 성실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홀린 듯 발을 들이고 있었다.  


이런 생활은 난생처음이니 싹트기 시작한 의지와는 별개로 당연히 적응은 힘들었고 짜증도 났다. 그런데 뜻 밖에도 엘사의 노력은 엘사를 제외한 주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아예 출근조차 안 하던 시기를 넘긴 엘사가 이젠 단순히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을 넘어 잡일이지만 나름 열심히 하는 데다 미모의 사장이 가게에 온종일 박혀있는 덕에 떨어져 가던 매출까지 수직 상승하고 있었으니, 직원들에게 엘사의 근황을 정기적으로 보고 받던 엘사의 아버지는 감격해 울먹이는 소리로 엘사를 칭찬했다. 가게는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거니, 이젠 제대로 해보려나보구나. 드디어 사람이 됐구나.... 엘사는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언젠 사람 아니었나? 아버지가 하도 울먹였던 탓에 엘사는 불만의 말을 삼켰다. 부모님 말씀을 귀담아들은 적은 그다지 없었지만 그날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찌나 떨리던지,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잠자코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엘사는 내가 정말 이제야 사람이 된 건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다 이러고 산단 말이지?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종일 쉴 새 없이 일하다 같은 시간에 퇴근. 반쯤은 자의로 발을 들인 생활이었지만 매일매일 똑같은 날을 보내기만 할 거면 사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은 종종 들었다. 그럴 때마다 엘사는 카운터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앞치마를 입은 안나가 꽃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걸 보려고 사는 건가. 솔직히 가게 따위 망하든 말든 엘사의 인생에 타격을 줄 만한 일은 전혀 아니었고 생계 걱정하게 일은 더더욱 없었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혹은 알면서도 그저 엘사가 삶을 성실히 살길 바라는 건지, 안나는 안나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엘사가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 길에서 엇나가면 큰일 날 거란 생각에 기반을 둔 도움은 안나 나름대로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과 같은 셈이었다. 엘사를, 더 나아가 엘사의 인생을 걱정하며 위하고 있단 소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바란 적 없는 도움에 왜 이리 저릿한 감동이 느껴지는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안나 말을 들으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엘사보다 나을 뿐 안나가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이 겉핥기 지식에 불과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같이 배워 가면 직원 둘 필요 없이 가게를 꾸릴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 엘사는 문득 든 생각이 오글거려 몸을 떨었지만, 썩 괜찮은 생각이긴 했다. 가게 창틈으로 쏟아지는 나른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꽃 정리를 돕는 안나의 모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소중했고, 그 모습 덕에 잔잔히 뛰는 가슴과 달아오르는 얼굴은 엘사로 하여금 풋풋한 젊음의 기운과 삶의 의미를 느끼게 했다. 안나와 함께라면 기약 없는 장사꾼 생활도 그럭저럭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도- 엘사는 안나의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며 뺨을 크게 쓸었다. -오늘 당장 50종류 꽃을 외우는 건 무리지. 엘사는 고개를 들었다. 안나가 눈썹을 꿈틀이며 웃고 있었다. 



“..좀 깎아줘.”


“이젠 협상 시도까지?” 안나가 키득거렸다. “대신 뭘 해줄 건데요?”



엘사는 안나를 만나고 난 뒤 자신이 많이 달라진 것을 알았다. 좋게 생각하자면 안나나 아버지가 말하듯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나쁘게 생각하자면 전보다 삶을 빡빡하게 살고 있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제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적 없는 변화는 생각할 때마다 새삼 놀라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건 진심이든 아니든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열 손가락이 다 오그라들었던 그 말이 이젠 그렇게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안나의 귀에 그 말을 속삭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질 때가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선 겸사겸사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엘사는 안나의 뺨을 어루만지며 귓가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안나가 침을 꼴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지금?” 엘사의 목을 감싸고 있던 안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렁뚱땅하는 말이 아니어야 할 텐데.”



안나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뭘로 보고. 어떻게 이런 말을 얼렁뚱땅하겠어.”


“그럼- 꽃은 그대로 50개 배우는 거예요?”


“안나, 내가 지금 사랑한다고 하잖아. 분위기 깨지마.”



말을 하는 본인도 어이가 없고 민망했던 탓에 엘사는 큭큭 웃음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거 맞네요, 뭘.”



엘사가 안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웃으며 몸을 떨자 안나 역시 그런 엘사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웃었다. 



“배울게, 조금씩은... 급할 거 없잖아.”



엘사가 작게 말했다. 적어도 이 말엔 조금의 꼼수도 없었다. 젊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 탓에 조급한 마음을 먹었던 때도 있었지만, 안나와 함께한다면 엘사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지루하고 처량하게 나이 들어갈 것 같진 않았다. 앞으로도 쭉 함께하고픈 바람 앞에선, 정말, 급할 게 하나 없었다. 엘사의 말에 눈을 깜박이던 안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할 거죠?”


“응-” 



... 사랑할 거고. 

엘사는 안나와 입술을 맞댄 채 속삭였다.












----- 

으아 완결~ 그동안 정말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요 몇 달 아주 재밌게 보냈어.

후기글 따로 써 본적이 없어서 고민 했는데... 할 말이 좀 있어서 써야 할 것 같아. 며칠 내로 후기 올릴게. 아무튼 다시 한 번 진심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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