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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한 발짝 옆에 39 (five feet apart)

믇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0.11 02: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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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옆에 39


211일차 - 편지 pt.2


이게 아마 오늘의 마지막 일과가 될 것이다.


난… 난 느낄 수 있었다. 이 편지를 읽고 나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지금 엘사는 집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 추수감사절을 가족과 보내러 갔다. 내가 여기 남아 있는 것에 장점이 있다면, 그녀의 가족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엘사의 이모나 삼촌이 묻는 것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고, 말썽꾸러기 사촌들을 돌보는 일은 더더욱 하기 싫었다. (이런 말을 해도 괜찮다. 엘사 역시 사촌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엘사는 가기 전에 나를 꼭 껴안아 줬다. 끝내기 싫은 포옹이었다. 엘사는 토요일에 돌아온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엘사가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아도 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돌아오겠지만, 일단 지금은 나 혼자다. 또다시.


나는 부엌에 혼자 앉아 내 앞에 놓여 있는 열린 편지봉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사의 귀신이 내 옆에 있는 듯 내 등 뒤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엘사에게 한 짓에 엘사가 한이 맺혀 생긴 귀신일 것이다.


안나 라인하르트, 지금이야.


씨발, 술이라도 한 잔 마셔야지 원. 좆같은 진통제. 말라가는 내 목을 축일 물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봉투를 들고 열어서 편지지를 집었다. 총 두 장이었다. 내게 하고 싶은 말 모두가 이 종이 두 장에 담겨있었다. 나는 고작 이 종이 두 장에 겁을 먹었다.


=============


안나에게.


이제 같이 산지 반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런 편지쯤은 가뿐히 쓸 수 있을 줄 알았겠지만, 그렇지 않네. 지금 쓰고 있는 이게 몇 번을 퇴고한 건지도 까먹었어.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못한 느낌이야. 학교 때처럼 글자 수 제한이나 페이지 수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난 그저 너한테 내 감정을 말하면 되는 거잖아. 맞지?


근데 지금도 그게 힘드네. 내 감정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일찍 말하지 않은 것이 미안해서 그래.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거 같애. 우리 둘을 생각하면--- 아니, 내가 네게 한 짓을 생각하면 불안해져서.


근데 너는 내가 한 짓을 다 용서해줬잖아. 그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야, 안나. 근데…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너하고, 나, 우리(?)를 위해서 말이야. 이제 우리는 함께가 아니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안나야, 너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대담한 사람이야. 나를 이렇게 대해준 건 네가 처음이야, 부모님도 이런 적은 없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부모님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지? 그러니까 이 말은 그냥 빈말이 아니야. 너는 네가 원할 때면 즐겁고 매력적이고, 너와 함께였던 시간이 소중했어. 나는 네 입으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네가 울면서 말하기는 했지만… 나는 기뻤어.


물론 너도 울고 있었고 나도 울고 있어서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거 알아. 근데 사실이야. 내가 알던 안나가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것에 안심했어. 우리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네가 아직 나에 대한 감정이 있다는 것도 말이야. 내 감정을 모르는 상태로 네가 고백했다는 게 네게 얼마나 큰 다짐이 필요했는지 알아.


이제 알게 될 거야.


네가 처음에 소시지 피자를 들고 배달을 왔을 때부터--- 실은 치즈피자를 시켰지만--- 나는 네가 다시 보고 싶었어. 그리고 계속. 아마 그달 내 지출은 대부분 피자 가게였을 거야. 나는 거의 너한테 첫눈에 빠졌어. 그리고 오로라 일 이후에 다시는 이렇게 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네가 해낸 거야, 안나. 


나는 그저 내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준 이 아름다운 사람 곁에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수많은 심리상담과 네 덕에 드디어 이 말을 쓸 수 있게 됐어*.


* 너무 예전이어서 기억을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엘사는 오로라와의 일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하지 못했다.


안나야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처음 내게 말해줬을 때, 우리가 헤어졌을 때, 우리가 동거를 시작했을 때, 그 모든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내가 지금까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너뿐이야. 그리고 너만큼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사람도 없어.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너를 사랑해!


진심으로 너와 함께 일 수 있다면 대회쯤은 집어치워 버리라 그래. 내가 이 편지를 네게 줄 때까지도 네 마음도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어도 이해해. 문을 먼저 닫은 건 나니까 내가 그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지.


근데 너도 아직 나를 사랑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랑 같이 있고 싶다. 너를 사랑하니까. 하, 좀 길어진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말하니까 속이 후련하네. 네… 네게 말로도 전할 수 있기를 바라.


하여튼 지구에서 가장 바보 같은 금발 여자가 전합니다. 사랑해, 안나.


엘사 스타크.


================


난 병신이다.


엘사도 나를 사랑한다는데 지붕을 뚫고 날아갈 만큼 신 나야 했다. 실제로 그렇긴 하지만, 내가 병신이라는 생각이 좀 더 컸다. 아마 지구, 아니 우주를 통틀어 가장 병신이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편지는 아마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편지 중에 가장 좋은 소식이 담겨 있었다. 근데 나는 이 편지를 무려 2주 동안이나 읽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사랑해’라고 적힌 줄을 읽는 것을 거듭 반복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 아니야 이건 진짜라고. 왜냐하면, 내가 아직도 깁스하고 있잖아.


엘사가… 나를 사랑한다니.


시간을 흐를수록 뭔가 더 선명해져 갔다. 점점 실감이 나면 날수록 세상이 밝아졌다. 아마 이건 내 생애에 가장 기쁜 일이 아닐까 싶다. 마음 같아서는 기뻐서 소리 지르고 싶었다. 나는 원래 그런 기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엘사 스타크가 나를 사랑한다는데 이번만은 예외로 쳐두자.


나는 편지를 내려두고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크게.


너무 크게 울어서 그런지 벌써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기뻐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왜 울고 있는 거지? 뭐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주일간 어디로 떠났는데 내가 같이 떠날 수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건 좀 오바같은데.


엘사와 나는… 서로 다른 일을 겪고 다른 이유로 틀어졌어도, 우리 둘은 평생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됐으니, 이 감정은 기쁨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다였다.




읽어주는 쥬미들 모두 고맙다. 52화까지니까 13화나 남았네. 아직 갈길이 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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